소설리스트

내가 가진 SS급 문방구-63화 (63/202)

#063

며칠 뒤 협회 회의실.

콰앙!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야?”

이도현이 보고를 진행하는 감찰 1과장을 노려보며 말했다. 감찰 1과장은 이도현의 시선에 어쩔 줄 몰라 하며 입술만 깨물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협회 내에 노조가 만들어지면서 감찰 부서들 자체도 움직이기가 힘들어져서…….”

“그럼 노조를 잡아들이면 되잖아!”

“노조장을 맡고 있는 송준하란 헌터의 아버지가 현재 정계에 나가 있는 현역 의원이라 함부로 건드리기는 좀…….”

퍽!

날아간 휴지 갑이 감찰 1과장의 머리에 부딪쳤다.

“이런 일이 있을까 봐 먹인 돈은 다 어따 꼬라박았는데!”

“죄송합니다.”

“쯧, 다음.”

감찰 1과장이 자리에 앉고 바로 옆에 앉은 집행 2과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현재 협회 건물 앞을 기준으로 대규모 시위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요건만.”

“네, 계속해서 비리 사건이 터져서 묻힐 기미는 안 보이고 시위는 점점 더 커지고 있습니다.”

“언론은?”

“그게…… 압박을 가해도 듣지 않습니다.”

이도현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그 모습에 찔끔한 집행 2과장이 빠르게 말했다.

“가장 큰 언론사의 사장 장남이 이번 뱀파이어 소탕 작전에서 전사한 모양입니다. 그래서 압박도 먹히지 않고 있습니다.”

“대기업들은?”

“다들 자기들도 어쩔 수 없다고 말하면서 전혀 움직이지 않습니다.”

“길드는?”

“오히려 여론을 등에 업고 공격을 하는 중입니다.”

탁, 탁, 탁.

이도현이 탁자를 두들겼다. 그리고 그가 탁자를 두들기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회의를 듣고 있는 각 과장들과 부장들의 속은 점차 타들어 갔다.

탁.

마침내 손가락이 멈추고 이도현이 고개를 들었다.

“그래, 다 좋다 이거야. 대기업이나 길드들은 기어오를 때도 됐고 여론이야 언론사가 저러면 못 막을 수도 있어.”

쾅!

“근데 이게 동시에 일어나면 안 되지! 지금 이 사태가 이렇게 될 때까지 다들 뭘 한 거야, 어?”

으르렁거리며 그들을 압박하는 이도현. 그의 화가 커질수록 회의실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속은 더욱 타들어 갔다.

지이잉!

“이런, 화만 내서 되나.”

회의실이 열리며 한 중년 남자가 들어왔다. 중년 남자의 모습을 확인한 이도현이 다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오셨습니까, 협회장님.”

“어, 그래. 자네들도 편히 앉게.”

협회장이 어느새 일어나 고개를 숙인 직원들을 앉혔다. 그리고 가장 상석에 앉은 그가 입을 열었다.

“내가 협회를 세울 때만 해도 다들 참 날이 서 있었는데 말이야.”

가볍게 질책하는 목소리로 시작하는 그의 목소리에 모두 바짝 긴장했다.

“이해해, 근 8년이 넘도록 거의 지배만 했으면 배에 기름이 낄 만하지. 그래도 이렇게까진 좀 아니지 않나?”

“죄송합니다, 회장님.”

“아냐, 이게 누구 한 명의 잘못이 아니란 것쯤은 나도 알아. 그런데 말이야…….”

말꼬리를 흐리는 협회장.

“내가 다른 건 다 이해해도 하나 이해가 안 되는 게 있어.”

“무엇인지…….”

“이번에 있었던 뱀파이어 소탕 작전 말이야. 누가 지시한 건가?”

협회장의 물음에 모두의 시선이 이도현을 향했다.

“그게…….”

“내가 외국에 다녀오는 사이에 아주 거하게 일을 말아먹었더군. 내가 분명 옛날에 말하지 않았던가? 협회가 흔들릴 순 있지만 단 하나만 지키면 무너질 일은 없다고.”

싸늘한 바람이 회의실 안을 맴돌았다.

“몬스터를 상대하고 인간을 지킨다. 이 대의명제를 가지고 시작했기에 모든 단체들에게 목줄을 채운 게 지금의 협회야. 근데…… 그걸, 그걸 어겨?”

“협, 협회장님! 그게 아니라 반대파들의 세력을 줄이기…….”

따악!

협회장이 손가락을 튕기자 회의실이 열리며 헌터들이 들어왔다. 그리고 이도현의 양쪽 팔을 붙잡았다.

“협회장님! 제발 기회를 조금만 주십시오!”

“자네는 말이야. 너무 기름이 꼈어. 예전 같지 않아.”

“놔! 놓으라고!”

이도현이 발버둥 쳤지만 헌터들은 아주 손쉽게 그를 회의실에서 끌어냈다. 이도현이 끌려 나가고 이제는 완전히 얼음덩어리가 되어 버린 공간에서 협회장이 말을 꺼냈다.

“그래, 그럼 여기서 누가 이 사태를 해결할 방법을 말할 수 있는 사람?”

하지만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함부로 손을 들어 의견을 피력하는 순간 그들도 이도현처럼 끌려갈지도 몰랐으니까.

“쯧, 다들 쓸모가 없어. 아주 쓸모가 없어.”

협회장의 질책에 다들 몸을 움찔했다.

“10초 주지. 그때까지 아무도 말이 없다면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협회장의 말에 모든 직원들이 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잘못 말해도 끌려가고 아무도 말하지 않으면 끌려가는 상황이었다.

“7, 6, 5…….”

점차 줄어드는 숫자. 모든 직원들이 맹렬하게 머리를 돌려봤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는 생각이 없었다.

“3, 2.”

“혀, 협회장님!”

그때 한 사람이 손을 들었다.

“자네는 누구지?”

“이번에 들어온 집행 4과장입니다.”

“그래, 무슨 의견을 낼 거지?”

“차라리…… 암살을 진행하는 건 어떨까요?”

“암살?”

“네, 지금 당장 명분도 다른 방법도 없다면 암살을 통해 일단 사건을 가라앉히는 방법이…….”

그의 말에 모두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건 이미 모두의 머릿속에 한 번쯤은 생각했던 거였다. 하지만 그게 불가능하니까 하지 않은 거지.

짝, 짝, 짝

그때 협회장이 박수를 쳤다. 그 모습에 다들 눈이 동그래지며 협회장을 바라봤다.

“아주 단순해. 그리고 멍청해.”

그의 말에 순식간에 새하얗게 얼굴이 질려 버리는 집행 4과장.

“하지만 아주 효율적이지. 앉아.”

“감사합니다!”

집행 4과장이 빠르게 자리에 앉았다.

“물론 저 멍청이처럼 아무나 암살하는 건 하책 중의 하책이다.”

협회장이 직원들을 주욱 둘러보며 말했다.

“잡을 거면 핵심을 잡아야지.”

협회장의 말에 직원 중 한 명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하지만 협회장님, 상대는 이기수입니다. 세계에 몇 없는 SS랭크가 될 헌터요.”

“쯧!”

협회장이 건의를 한 직원을 보고 혀를 찼다. 그 모습에 건의를 한 사람이 다급히 입을 막았다.

“이러니까 아직도 머저리라고 하는 거다. 이기수? 그가 핵심으로 보이나?”

“그럼 협회장님 말씀은 이기수가 핵심이 아니라는 겁니까?”

“자네들은 왜 이기수가 중심이라고 생각하지?”

“그거야 그가 정보 길드를 통합했고, 송준하의 후원 헌터이기도 하니까요. 항암 그룹과 지속적으로 만남을 가졌다는 정보도 있습니다.”

모두 정보부에서 물어온 정보였다. 하나도 틀린 점이 없는 정보였다. 교차 확인도 해서 거짓된 정보도 아니었다.

“그래서 자네들이 바보라는 거야. 이기수? 물론 중요한 키 카드긴 하지. 근데 정말 그가 모든걸 진행했으리라 생각하나?”

“그럼 도대체 누가…….”

협회장은 말 대신 앞에 놓인 리모컨을 들었다. 그리고 켜진 화면에 떠 있는 자료들을 넘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멈춰선 화면, 그곳에는 한 헌터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김진하.>

“이놈이 원인이야.”

“하지만 고작 B급 헌터인데요? 물론 특이점으로 아티팩트를 대량으로 가지고 있다고 들었지만 겨우 그걸로…….”

삑.

―신후 그룹에 대해서 모조리 조사해.

회의실 안에 울려 퍼지는 진하의 목소리.

“이놈이 머리야. 다들 이기수의 무력에 속아 그가 중심이라고 보고 있는데 내가 보기엔 이놈 한 명만 잡으면 태반이 해결되는 문제야.”

협회장의 눈이 감찰 3과장에게 향했다.

“준비해 둔 사냥개들은 당연히 있겠지?”

“예, 언제든지 풀 수 있습니다.”

“감찰과 2, 3, 4 사냥개를 모조리 푼다.”

협회장의 말에 감찰과장들이 당황했다. 명령한 대로 그렇게 사냥개를 모조리 풀어 버리면 기존에 감시를 붙여 뒀던 인물들에 대한 구멍이 났으니까.

“그리고 집행과 각 에이스들 감찰과 사냥개들이랑 동행하게 시키고. 빈 인원은 다른 과에서 차출해서 메워.”

“협회장님 B급 헌터일 뿐인데 굳이 그럴 필요까지 있을까요?”

무려 수백 명이 넘는 헌터를 투입하는 거였다. 그들 모두 최소 B등급 이상이었고 그중 3분의 1은 A등급이었다.

“내가 말했지. 그놈이 머리라고. 머리를 칠 때는 말이야. 자신이 낼 수 있는 힘을 모조리 끌어모아 내리쳐야 해. 잘못 치면 반대로 내가 죽거든.”

* * *

―K.O

화면에 보이는 캐릭터가 뒤로 넘어가면서 땅바닥을 뒹굴었다. 그리고 그 화면을 바라보는 한 남자가 한숨을 내쉬었다.

“크으, 한 번을 이기지 못하는구먼.”

남자가 건너편에서 자신을 상대하던 사람을 쳐다보았다. 빙긋 웃으며 남자를 바라보는 그.

“운이 좋았죠. 이번에도 아슬아슬했는걸요? 어때요, 한 판 더?”

“아니, 오늘은 여기까지요. 나도 일이란 게 있거든요.”

남자가 아쉬운 표정으로 일어났다. 그리고 남자를 쳐다보며 물었다.

“다음에도 여기 옵니까?”

“뭐, 시간이 된다면?”

그의 말에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만나자고요.”

그 말을 마친 남자가 게임장 밖을 나갔다. 그리고 그가 나가는 뒷모습을 보는 한 사람, 진하는 나간 남자를 씁쓸하게 바라봤다.

“아무튼 옛날부터 게임은 더럽게 못했다니까.”

자리에서 일어난 진하가 게임장 밖을 나왔다.

지익―

송하나가 전달해 준 메모장에 선 하나가 그어졌다. 이로써 그가 회귀 전에 아꼈던 친구들을 모두 만났다.

‘너무 많은 게 바뀌었구나.’

어떤 사람은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었고, 어떤 사람은 여전히 열심히 헌터 일을 하고 있었다. 그들을 하나하나 만나 본 진하는 씁쓸함을 느꼈다. 조금씩 변하기는 했지만 모두 분명 그와 인연을 맺었던 친구들이었다. 다만 진하만이 기억하는 친구들.

‘그렇다고 다시 친해질 수는 없으니까.’

친했던 이들의 대부분이 C등급 아니면 B등급이었다. 나중이면 몰라도 지금 진하가 상대하려는 게 협회라는 점에서 그들과 조금이라도 인연을 만들어서는 안 됐다. 그들이 어떻게 친구들을 이용할지 모르니까.

“하아…….”

딸랑―

“어서 오세요.”

“아이스 아메리카노 하나 주세요.”

진하가 순식간에 만들어진 커피를 받아 구석 자리에 앉았다. 아기자기한 디자인이 돋보이는 작은 카페, 그가 알고 있던 사람의 취향이 그대로 반영된 카페였다. 진하가 멍하니 카운터를 바라봤다. 그곳에는 주문을 하는 손님들과 주문을 받는 사람이 보였다.

―내 꿈은 나중에 돈 많이 벌어서 은퇴하면 카페를 차리는 거야.

분명 그렇게 말했었다. 어찌 보면 그녀가 꿈을 이룬 걸지도 모르겠다. 어쩌다 은퇴를 하게 된 건지는 몰라도 이게 전투보다는 백만 배 나았다.

“저기요.”

움찔.

“저기 알바생이 마음에 드세요?”

“아뇨, 아닙니다.”

진하가 다급히 고개를 저었다.

“그래요? 여기 자주 찾아오시고 멍하니 카운터를 바라보시길래 알바생에게 빠졌나 해서요.”

진하의 건너편에 앉은 한 여성. 진하는 여성을 보며 쓰게 웃으며 말했다.

“아뇨. 그건 아니에요. 그저 이 커피가 마음에 들어서 여기 단골이 된 것뿐입니다.”

“그래요? 어떤 느낌인데요? 커피 맛은 괜찮아요?”

친근하게 다가오며 말을 거는 여성. 진하는 차분하게 그녀의 질문에 대답해 줬다.

“커피는 딱 제가 좋아할 정도로 연해서 좋고, 향이 너무 진하지 않아서 좋네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저한테는 딱이에요.”

“그거 칭찬이죠?”

“네, 칭찬입니다.”

진하의 말에 여자가 빙긋 웃었다.

“좋은 평가 감사합니다. 안 그래도 처음 하는 카페라서 많이 걱정했거든요.”

“여기 사장이신가 보네요.”

“네, 사장이에요. 저 본 적 없으세요? 제가 몇 번 주문 받기도 했는데.”

“기억나요. 알바생보다 허둥대시던데.”

“하하, 제가 초보 사장이라.”

“앞으로 잘하시겠죠.”

“그렇게 말해 주셔서 감사해요. 그러고 보니 여기 단골이시면 앞으로 저도 자주 볼 텐데 우리 통성명이나 하죠?”

“김진하라고 합니다.”

진하의 말에 이신혜가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저는 이신혜라고 해요. 잘 부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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