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가진 SS급 문방구-61화 (61/202)

#061

“이게 마지막이네.”

마지막 남은 술을 털어낸 진하가 복잡한 표정으로 술을 흩뿌린 곳을 바라봤다. 술을 흩뿌리며 생각해 보았지만 여전히 그의 머릿속은 복잡할 뿐이었다.

“회귀 전의 너와 지금은 너는 같은 사람일까.”

지금껏 무시해 왔던 생각, 회귀 전의 사람과 지금의 사람은 과연 같은 사람일까, 아니면 다른 사람일까. 지금까지는 살아있는 사람에 대한 가벼운 고민이었다. 다른 모습을 보여도 그들은 어찌 됐든 그 사람이었으니까. 그저 변했다고 생각했으면 되니까.

하지만 죽은 사람은 어떨까? 회귀 전에는 연이 있었지만 지금은 없는 그 사람은 과연 진하가 아는 사람일까? 그의 인생에 진하라는 사람은 하나도 들어있지 않은데 과연 친구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하, 모르겠다.”

알 수 없었다. 다만 그저 그를 추모하는 방법밖에 그는 알지 못했다. 회귀 전의 이진하에게, 그리고 회귀 후의 이진하에게.

위이잉!

그때, 저 멀리서 날갯소리가 들려왔다. 진하는 깊게 잠겼던 생각에서 빠져나와 날아오는 허니비 무리를 보았다. 허니비 무리를 보니 한 가지 확실한 게 있긴 했다. 나를 알든 모르든 그 사람 자체가 소중하던 것. 그러니까…….

“일단은 내가 할 수 있는 일부터 해야지.”

진하는 고민을 뒤로 밀었다. 어차피 현자가 아닌 이상 이런 고민에 답은 없었다. 그렇다면 우선은 죽은 친구에 대해 예우를 하는 것, 그게 다였다. 회귀 전과 회귀 후. 둘 다 하면 되는 거였다.

‘그게 아니더라도 이곳은 꼭 내 손으로 깨고 싶었기도 했고.’

시간이 없어 미루기는 했지만 언젠가는 진하의 손으로 공략하려고 했던 곳이기도 했다. 이곳이 진하의 가장 아픈 손가락이었으니까. 몬스터가 아닌 사람에 의해 죽은 개 같은 사건이었으니까.

위잉! 위잉!

허니비 무리들이 위협적인 소리를 내며 진하에게 다가왔다. 진하는 묵묵히 그 무리들을 보며 스프레이 하나를 꺼냈다.

<벌레 킬러: 곤충을 죽일 때 사용하는 스프레이, 효과가 매우 좋다. 하지만 진짜 효과는 불을 붙일 때 일어난다는 소문이 있다.>

찰칵, 치이익.

라이터로 미리 구해 둔 횃불에 불을 붙이는 진하. 진하는 라이터를 주머니에 넣은 뒤 횃불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전방을 향해 쭉 손을 뻗은 채 벌레 킬러를 들었다.

치이익! 화르르륵!

작은 소리와 함께 횃불을 향해 쏘아지는 벌레 킬러. 하지만 작은 소리와 다르게 횃불을 통과한 액체는 거대한 화염이 되어 허니비 무리를 덮쳤다.

툭, 투두둑.

화염 방사를 맞고 후두둑 떨어지는 허니비들. 진하는 그런 허니비를 보며 씁쓸하게 바라보았다.

‘고작 이런 놈들이었는데.’

C급 던전이었다. 그것도 최하급 던전. 중형이라는 점 빼고는 그리 어려운 던전이 아니었다.

그만큼 얻는 부수익도 적은 메리트 없는 던전이었고. 그런 곳에서 진하의 공략대는 몰살당했다.

‘고작 물품 하나 때문에.’

불량 물품, 냄새를 차단하는 물품이 불량이라는 점 하나 때문에 모두가 죽었다. 사방에서 몰려오는 몬스터들을 막지 못하고.

까득!

다시금 그때의 일을 생각하자 속이 답답했다. 몬스터에게 죽었다면 차라리 나았을 텐데. 그게 아닌 인간에게 죽었다고 생각하니 이가 갈렸다. 물론 지금 시간대에서는 일어나지 않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 되었다. 이미 그 판매자들을 모조리 잡아 죽인 뒤니까. 그럼에도 진하는 답답했다.

화르륵! 후두두둑!

떨어지는 몬스터 무리를 보며 진하가 허탈함을 느꼈다. 이렇게 쉬운 공략을 그 당시에 어째서 실패했던 걸까. 진짜 고작 물품 하나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여유를 두지 않고 딱 공략 수준에 맞춰서 온 공략대의 잘못?

칙, 치익……. 툭, 데구르르.

다 쓴 스프레이가 땅바닥에 떨어졌다.

“후, 진짜 왜 이러냐…….”

성묘를 하러 왔으면 성묘만 하면 되는데 자꾸 잡생각이 들었다. 고민은 뒤로, 오직 죽은 이진하를 위한 성묘만 진행한다. 그러니 이 던전을 공략하여 회귀 전의 이진하를 추모하고, 납골당에서 현재의 이진하를 추모한다. 오직 그것만 한다.

“잡생각은 버리자.”

머릿속에 자꾸만 생기는 잡생각을 털어내며 진하가 천천히 던전을 나아갔다. 물론 그렇게 생각한다고 잡생각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당연히 회귀 전과 지금과의 차이, 그리고 던전에서의 전멸 등, 잊고 있었던 고민들이 계속 떠올랐다. 하지만 진하는 그럴 때마다 그러한 고민들을 애써 무시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칙, 치익, 화르르륵!

그나마 다행인 점이 있다면 진하의 고민을 털어 주기라도 하듯 몬스터들이 쉼 없이 달려들었다는 것이다. 마치 불빛을 바라보는 벌레들처럼 몰려드는 몬스터들은 진하의 잡생각이 일정 이상으로 그를 잠식하는 것을 막아 주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치,칙. 땡그랑!

“드디어 끝이네.”

땅바닥에 빈 벌레 킬러 통을 버린 진하가 한숨을 내쉬며 보스방을 바라봤다. 여기까지 오는 데 걸린 시간은 약 12시간, 벌써 새벽이 되다 못해 해가 뜨기 직전의 시간이었다.

끼이익!

진하는 망설임 없이 바로 앞에 놓인 문을 열어젖혔다.

키시시식!

그와 함께 드러나는 커다란 초록색 몸체 하나.

‘자이언트 멘티스.’

과거 코빼기도 보지 못했던 보스가 진하의 앞에 당당히 서 있었다.

“빠르게 끝내자. 과거의 후회.”

진하의 위로 깃드는 환영, 진하는 거기서 한 번 더 스킬을 사용해 환영을 덧씌웠다.

쉬익!

그사이 진하를 노려보던 자이언트 멘티스가 진하를 베기 위해 앞발을 휘둘렀다. 진하는 그 모습을 빤히 바라보다 검을 스윽 들어 올렸다.

카아앙!

커다란 소리와 함께 막히는 멘티스의 발. 진하는 힘을 주어 자신을 베려는 멘티스를 바라보며 손에 힘을 주었다.

그극, 그그극.

진하의 힘에 따라 아주 조금씩 파고드는 검날.

“흡!”

촤악!

진하의 움직임에 따라 앞발을 휘두르던 멘티스의 앞발이 깔끔하게 잘렸다.

타닷!

곧바로 발을 박차 멘티스의 얼굴을 향해 뛰어드는 진하. 그 모습에 고통에 몸부림치던 멘티스가 다급히 나머지 앞발을 휘둘렀다.

“느려.”

진하는 가볍게 앞발을 피하며 멘티스의 얼굴 바로 밑까지 파고들었다.

촤좌작! 기우뚱!

진하의 검에 베어진 다리들이 후두둑 떨어지고 균형을 잃은 멘티스의 몸이 기울어졌다. 그러자 멘티스의 얼굴을 향해 점프하는 진하. 멘티스는 다급히 날카로운 이빨을 진하에게 들이밀었다.

터억!

“소용없어.”

멘티스의 이빨을 잡은 진하가 무심하게 멘티스를 바라봤다. 이미 등급 차이가 극심한 상황이다. 아무리 보스 버프를 받았다 하더라도 멘티스의 이빨이 A등급에 달하는 진하의 내구도를 넘어 상처를 주기는 요원한 일이었다.

“잘 가라.”

촤악! 쿠쿵!

멘티스의 머리가 깔끔히 베였다. 그리고 기우뚱하던 그대로 몸을 땅에 뉘이는 자이언트 멘티스. 진하는 자이언트 멘티스의 시체를 바라보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겨우 이 정도였구나.’

그렇게 힘들었던 몬스터들이 지금은 너무나도 손쉬운 먹잇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래도 이걸로 빚은 갚았다.’

진하가 눈을 감으며 회귀 전의 이진하를 묵묵히 추모했다.

띠링!

<과거의 후회가 추가됩니다.>

<2041년 11월 8일>

“하…….”

진하는 떠오르는 글자를 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11월 8일, 절대 잊을 수 없는 날짜였다.

이진하가 죽었던 바로 그날이었으니까.

‘선물이냐?’

진하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하늘을 바라봤지만 보이는 건 오직 딱딱한 바위 천장뿐이었다.

* * *

그날 밤. 진하가 맥주가 담긴 봉투를 휘적거리며 문방구를 향해 걸어갔다.

“으…… 뻐근해.”

진하가 목을 주물렀다. 던전을 끝내고 이진하의 납골당을 찾아가 술을 기울인 게 화근이었다. 그대로 취해서 잠들어 버리다니…….

‘그렇게까지 길게 있을 생각은 없었는데.’

잠깐 성묘만 하고 온다는 게 과거의 일이 생각나 너무 오래 있어 버렸다.

‘집 가서 술이나 마저 한 캔 마시고 잠이나 자자.‘

한숨을 내쉬며 진하가 걸음을 옮기는 속도를 높였다. 그렇게 빠르게 걸음을 옮겨 문방구에 거의 도착했을 때, 진하는 문방구 앞에 서 있는 사람 한 명을 발견했다.

‘송하나?’

아니었다. 그녀는 그렇게 키가 크지 않았다. 그에 비해 저 여자는 매우 키가 컸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흩날리는 은색 머리카락.

“그치, 안 올 리가 없지.”

누군지 깨달은 진하가 피식 웃었다. 다행히도 목표가 3일 안에 먹이를 물었다. 하긴 먹이를 눈앞에 들이미는데 안 오면 그게 바보지.

저벅, 저벅.

“나를 찾아?”

“주인이 기다린다.”

그녀의 앞에 다가가 묻는 진하의 말에 무뚝뚝하게 대답하는 여자. 여전히 쇠로 긁는 듯한 목소리였다.

“뭐, 가는 거야 어렵진 않은데…….”

진하가 그녀를 자세히 살펴봤다. 역시나 은발이었다. 하지만 자연스럽게 빛나는 게 염색한 느낌은 없었다. 그렇다고 외국인인가 싶으면 그런 느낌은 없었다. 자연스런 억양에 행동까지, 전형적인 한국인 같았다.

‘아티팩트네.’

아무래도 외형을 바꾸는 아티팩트인 듯싶었다. 하긴 그러니 정보 길드에서 아무리 찾아도 나오지 않은 거겠지.

“그래서 어디로 가면 되는데? 당신이 안내해 주는 거야?”

끄덕.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 뒤 걸음을 옮기는 그녀. 진하는 그녀를 재빨리 따라갔다.

“근데 가는 동안 대화 좀 나눌 생각 없어?”

진하가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하지만 철저하게 무시하며 걷는 여인.

“거, 앞으로 자주 볼 텐데 얼굴이라도 좀 보여 주지?”

우뚝.

진하의 말에 걸음을 멈춘 여자가 진하를 돌아봤다.

“앞으로 자주 볼 일 없다.”

예의 쇠 긁는 소리가 들렸다.

‘그나저나 진짜 궁금하네.’

마스크를 쓰고 있는 얼굴이 궁금했다. 아예 얼굴까지 바꾸는 아티팩트를 사용한 건지 아니면 머리 색만 바꾼 건지 판단이 안 됐으니까. 뭐라도 알기 위해 진하가 입을 열었다. 하지만 미처 입을 모두 떼기도 전에 그녀가 다시 몸을 돌려 걸음을 옮겼다.

‘뭐, 정체야 차차 알아가면 되고.’

무뚝뚝하게 걷는 그녀를 보며 진하가 편하게 마음먹기로 했다. 어쨌든 한동안 배를 같이 타게 될 테니 정체야 천천히 알아내면 된다. 위에 보스만 알면 나머지는 정보 길드에서 알아낼 테니까. 그리고 이왕이면 포섭할 수 있는 실력자였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 분명 그가 기억하기로는 A급 이상의 실력자였으니까. 그렇다는 건 잘만 하면 S급으로도 올라갈 수 있는 능력자라는 뜻. 기회가 되면 포섭해서 나쁠 건 없었다.

그렇게 그녀와 한참을 걸어 한 카페에 도착했다. 밖에서 안을 살펴보니 아무도 없는 카페였다. 앞서가던 그녀가 고갯짓 했다.

“안내 고마워.”

감사의 인사를 한 진하가 안으로 들어갔다. 내부는 고풍스럽게 꾸며져 있었다. 한 가지 흠이라면 아무도 없다는 거?

“여깁니다.”

그때 누군가가 손을 들었다. 그곳을 보니 한 남자가 진하를 보고 웃고 있었다.

“어서 와요.”

‘저놈이었었나?’

남자를 확인한 진하가 속으로 웃었다. 설마 그 자료를 가져간 사람이 신후 그룹 신지하일 거라곤 생각도 못 했다. 현재 가장 대기업들의 선봉에 서 있는 그룹 중 하나가 신후 그룹이었으니까.

“처음 뵙네요.”

진하가 가볍게 대답하며 그에게 다가갔다. 가까이에 다가가 보니 커피를 마시고 있었는지 반쯤 빈 커피가 보였다.

“앉으세요. 오시는 데 불편함은 없었나요?”

“네, 괜찮았어요.”

“우리 비서가 과묵해서 걱정이었는데 다행히 나쁘지 않았나 보네요.”

“비서요?”

“네, 안내했던 여자요. 꽤 과묵하죠?”

“아뇨, 나름 즐거웠습니다.”

자리에 앉으면서 진하가 재빠르게 생각을 정리했다. 분명 그가 기억하기론 카페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은 사나웠다. 그렇다면 적의를 가지고 있는 건데 비서라…….

‘약점 잡혔군.’

안 봐도 뻔했다. 대기업들이 자주 사용하는 방법 중에 하나니까.

“아, 아직 인사를 안 했군요. 저는 신지하라고 합니다.”

“김진하라고 합니다.”

“이렇게 뵙게 돼서 기분이 좋군요.”

“그런가요? 저도 신지하 씨를 뵙게 돼서 기분이 좋네요. 그나저나 무슨 일로 뵙자고 하신 거죠?”

진하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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