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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진 SS급 문방구-60화 (60/202)

#060

진하의 행동에 해완이 무언가를 하려는 제스처를 취하려 했지만 이미 딱 붙어버린 둘이었기에 무언갈 하기엔 애매한 상태였다.

‘같잖은 수작.’

방금 분명 두 명이라고 말했었다. 그건 이기수와 진하, 이렇게 둘만 들어가라는 소리였다. 그렇다는 건 송하나는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 여기서 진하나 이기수가 송하나만을 두고 갔다간 그녀는 완전히 들러리가 되어 버리고, 길드의 보스로서의 자질을 의심받게 된다.

‘하지만 이러면 방법이 없지.’

두 명이라는 말에 이기수가 아닌 송하나를 택했다. 이는 그녀를 이기수보다 우선으로 생각한다는 것, 무력적으로 최강을 논하는 이기수를 두고 그녀를 택한다는 것은 그녀가 중요한 인물이라고 말하는 일종의 신호였다.

“이대로 쭉 내려가면 되나요?”

내 질문에 해완이 표정을 수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제가 안내해 드리도록 하죠.”

“나도 따라가도 상관없겠지?”

가만히 있던 이기수가 해완을 보면서 말했다. 그의 말에 해완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진하의 눈에는 아주 미약하게 떨리는 그의 눈꼬리가 보였다.

“자, 가시죠.”

해완이 앞서서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진하는 가장 뒤에서 계단을 내려가면서 흘낏 뒤를 쳐다보았다. 그곳에는 조직원들이 주변을 경계하며 서 있는 게 보였다.

‘괜히 데려왔나?’

이렇게 초대형식의 온건한 반응을 보이는 거였으면 건물 안까지 안 데려오는 게 나았을지도 몰랐다. 그들의 역할은 어디까지 전투의 보조였으니까. 이런 상황에서는 되려 그들이 인질로 잡힐지도 몰랐다.

‘아냐. 너무 걱정하지 말자.’

애초에 전투를 상정하고 데려온 이들이었다. 아무리 약하더라도 장난감 총이라는 아티팩트까지 쥐여진 전투원이었기에 걱정하는 건 오히려 과한 걱정이었다.

“이 방입니다. 두 분께서 진하 씨와 이기수 씨를 기다리시네요.”

어느새 계단을 모두 내려온 해완이 한 방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것 봐라?’

방금 의도적으로 송하나의 이름을 뺐다. 아까도 그렇고 정말로 송하나를 죽어도 인정하기 싫은 게 눈에 보였다.

“뭐해? 네가 리더잖아.”

진하의 말에 송하나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 그냥 끝이라서 잠시 감상에 젖은 것뿐이야.”

송하가 가볍게 대답하며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녀의 뒤를 따라 이기수가 들어가고 마지막으로 방으로 들어가는 진하가 해완의 어깨를 가볍게 두들겨 주었다.

“그럼 고생해.”

끼이익. 탁!

진하가 마지막으로 입장하자 해완이 들어와 문을 닫았다. 가볍게 둘러본 방 안은 고풍스러운 디자인이 눈에 띄는 방이었다. 그리고 그 방의 중앙 소파에 앉아 있는 두 명의 남자. 정보 길드의 수장들이었다.

“어서 오게. 앉지 않겠나?”

“예상보다 인원이 많긴 하지만 상관없겠지.”

둘이 자리를 각각 이기수와 진하를 보며 권했다. 노골적으로 그들이 권하는 자리에 놓여 있는 차 두 잔. 그런 둘을 보며 송하나가 가볍게 대꾸했다.

“그러죠.”

송하나가 자리에 앉자, 진하가 이기수를 향해 눈짓했다. 진하의 눈짓을 알아들은 이기수가 가볍게 끄덕이고는 소파의 뒤쪽으로 가 섰다. 이 싸움에서 이기수가 할 것은 그저 서 있는 게 다였다.

“오는데 불편하진 않았나?”

“뭐, 딱히? 예의 없는 얘들이 몇몇 있긴 했는데 괜찮아요.”

“미안하네. 우리 애들이 조금 성질이 급해서 말이야.”

진하의 말에 한 남자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괜찮아요. 어차피 재교육하면 되니까.”

남자의 웃음에 가볍게 대답하는 송하나. 그녀는 남자들을 보며 말했다.

“그래도 의외네요. 끝까지 추할 줄 알았는데.”

“허허, 괜한 피를 왜 흘리나. 자네가 우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몰라도 우리도 정보 길드를 아끼는 보스들이네.”

“큭, 아, 죄송해요. 둘 다 정보 길드를 아끼시긴 하죠.”

송하나의 작은 웃음에 둘의 눈동자가 미미하게 떨렸다.

“그래서 초대를 하셨으면 할 말이 있으신 거겠죠?”

“하, 뭐, 할 말이란 게 있나. 어차피 ‘이기수’와 함께 정보 길드를 접수하러 온 건데.”

“그쵸. ‘송하나’의 명령에 따라 접수하러 온 거죠.”

진하가 빠르게 말장난을 차단했다. 이런 식으로 빙빙 돌려가면서 얘기하는 건 좋지 않았다. 어찌 됐건 둘 다 속에 능구렁이를 몇 마리나 넣은 존재일 테니까. 송하나도 그걸 아는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어떻게 하실래요. 명예로운 죽음? 아니면 살기 위한 도망?”

“이기수 헌터를 상대로 도망을 칠 수 있겠나? 불가능하지. 우리 둘 모두 이미 얘기는 마쳤네. 분파는 이제 자네들 거네.”

“다만 넘기기 전에 너의 옆에 있는 남자, 김진하 군에게 궁금한 게 있는데 하나만 물어봐도 되겠나?”

“대답할 수 있는 거라면.”

진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째서 그녀를 택한 거지?”

짧은 문장이었지만 그 안에는 많은 뜻이 함축되어 있었다. 뭐, 확실히 결과론적으로 통합하긴 했지만 그들로서는 이해가 안 될 만했다. 더 편한 길을 내버려 두고 어려운 길로 돌아갔으니까.

“뭐,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일단 그녀가 제일 접근하기 쉬웠고 계약을 균등하게 맺기 쉬운 게 컸죠.”

그 당시의 진하는 그저 아티팩트를 가진 헌터일 뿐이었다. 이기수를 이용하는 헌터가 아니라.그런 그를 송하나가 아닌 다른 정보 길드에서는 당연하게 무시했을 게 뻔했다. 아니 이용하려 했겠지.

“그리고 적어도 얘는 바뀔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뭐 그것 외에 다른 잡다한 것들도 있고요.”

이미 노회하고 썩은 물이나 다름없는 놈들이 진하와 계약한다고 뭔가 바뀔 것 같지는 않았다. 애초에 중립을 표방하는 정보 길드를 한쪽 성향으로 치우치게 만든 게 눈앞의 이들이기도 했으니까.

“그런가? 하, 어차피 우리는 되지 않는다는 거였군”

“네, 그런 셈이죠.”

뒤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보스 중 한 명이 송하나를 보며 말했다.

“운이 좋구나. 설마 이렇게 너에게 커다란 행운이 생길 줄이야.”

“운도 실력이죠.”

“그래, 운도 실력이지.”

그가 너털웃음을 지었다.

“자, 우리들이 궁금한 건 다 끝났다. 이제 마음대로 하거라.”

그들의 말에 진하가 단검을 꺼내 송하나에게 넘겼다. 진하가 넘긴 단검을 받아든 그녀가 진하를 보며 말했다.

“고마워.”

피익―!

순식간에 그들의 목에 그어지는 깔끔한 선. 잠시 후 그들의 목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데려가.”

“시신을 수습해라.”

송하나의 말에 해완이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한 뒤 천장에 숨어있던 조직원을 불렀다. 해완의 명령에 천장에서 복면인 둘이 내려와 조심스레 쓰러진 시체를 들어 옮겼다.

“이제 어떻게 할 거야?”

셋이 시체를 들고 나가는 모습을 본 이기수가 물었다.

“뭘 어떻게 해? 당연히 통합해야지. 반발이 미친 듯이 크겠지만 그건 알지?”

진하의 말에 송하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내가 감수해야 하는 거지. 뭐, 죽어 가던 시절과 비교하면 그 정도는 껌이야.”

“아무튼, 일차적으로는 이쪽 일은 마무리해 줬다. 그러니까 나머지 일이랑, 블랙 길드 견제는 알아서 해. 그러려고 이런 짓을 한 거니까.”

“말 안 해도 알아. 그리고 그건 이미 하고 있던 거야.”

“앞으로 더 심해질 거야.”

이기수와 함께 블랙 길드를 건들기도 했고, 협회를 건드렸으니 더욱 극성일 게 뻔했다.

“참고하도록 할게.”

송하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번에는 반대로 네가 항암 그룹을 도와. 다른 기업의 압박에서 벗어나게 많이 도와줘.”

츄릅.

“알겠어.”

송하나가 입술을 핥으며 말했다. 완벽하게 그의 뜻을 이해한 그녀를 보며 진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진짜 뭔가 갈수록 무서워지는 것 같기도 하고.’

왠지 저 눈빛에 진하 자신도 포함된 것 같아 묘하게 찝찝했다.

“그래서 다음 스텝은 뭐지?”

이기수가 물었다.

“우리는 다시 양지로 나가야지.”

음지에 있는 건 이걸로 충분했다. 지금쯤 양지에서 뒤흔들고 있을 송준하와 합류해서 협회를 공격해야 했다. 비밀 장부 등 공격할 총알들도 많이 준비했겠다, 아래서부터 하나씩 무너뜨리기만 하면 됐다.

“대기업이랑 거대 길드는?”

“그건, 아마 막을 방법이 있을 거야.”

현재 상황에서 대기업은 항암 그룹을 통해 막으면 됐지만 거대 길드까지는 애매했다. 항암 그룹이 그것까지 막기에는 힘이 부족했으니까. 다만 시간이 흐른 뒤에는 달랐다.

“일단 3일 정도 기다려보고, 안 오면 직접 찾아가야지.”

결국, 목줄을 푼 개가 직접 찾아오지 않는다면 진하가 직접 찾아가면 되는 거였다. 송하나가 넘긴 자료 덕에 대충 범위가 좁혀지기는 했으니 직접 돌아다니면 그중에 하나는 나올 것이다. 뭐 그게 아니더라도 일단 제안을 받아들이는 그룹만 하나 더 있으면 되는 거였다.

“그럼 이제 3일 동안 뭘 할 거야?”

송하나가 물었다.

진하가 계획한 것에는 진하가 할 일은 딱히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물음에 진하가 씁쓸히 말했다.

“뭐긴 뭐야, 성묘지.”

* * *

게이트 3층 C급 중형 던전, 꿀의 정원. 주로 곤충형 몬스터들이 출몰한다고 알려진 던전이었다. 현재 상태는 미공략 상태.

“여기도 오랜만이네.”

던전 초입으로 들어온 진하가 멍하니 던전 안을 둘러보았다. 김진하와 이진하, 둘이서 마지막으로 들어갔던 던전, 그리고 진하를 살리기 위해 풍계 능력자였던 이진하가 남아 시간을 끌었던 공간, 그때의 일들이 진하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나는 여기 왜 온 걸까.”

진하가 나지막이 혼잣말해 보았지만 그 말에 대답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저 메아리처럼 다시 진하에게 돌아올 뿐.

뽕!

진하가 술 뚜껑 하나를 뽑았다. 뚜껑을 열자 달콤한 냄새가 스르륵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너는 술이 써서 먹기 싫다고 했었지.”

그런 그를 보며 진하가 항상 술맛을 모른다고 핀잔을 줬던 게 생각났다.

꿀꺽, 꿀꺽

“크으…… 이 단술이 뭐가 좋다는 건지.”

그나마 유일하게 이진하가 좋아했던 술, 꿀을 가득 넣은 꿀술을 그는 항상 즐겨 마셨다.

“자, 마셔라.”

촤악!

진하가 땅 위로 술을 뿌렸다. 넓게 퍼진 술을 곧 땅에 흩뿌려지더니 조금씩 땅속으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내가 추모하는 건 지금의 너일까 아니면 회귀 전의 너일까.’

술을 뿌리며 진하는 생각했다. 그가 죽었던 인천도 아니고, 그가 묻힌 납골당도 아닌 이곳에 온 이유. 더이상 아무런 관련도 없는 이곳에 온 이유는 무엇일까. 그와의 추억이 많아서? 아니면 회귀 전의 복수를 위해서?

‘그런 게 아니지.’

진하도 알고 있었다. 자신이 이곳에 온 이유. 그건 이곳밖에 올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시간대의 이진하를 몰랐으니까. 어떤 사람인지, 또 어떻게, 어떤 마음으로 뱀파이어와 싸웠을지 전혀 알 수 없었다.

‘분명 똑같이 정의로웠겠지.’

남을 돕길 좋아하고 자신의 목숨보다 남을 우선적으로 챙기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리고 한편으로 진하가 모르는 부분 또한 생겼을 것이다. 그와 만나지 않은 상태에 새로운 사건을 겪었을 테니까. 그렇다면 지금 죽은 이진하는 진하가 아는 이진하일까? 아니면 다른 이진하일까.

촤악!

진하가 다시 한번 술을 바닥에 뿌렸다. 원래 이런 짓은 하면 안 되지만 상관없을 것이다. 이진하는 게이트 안에서 죽은 게 아니니까.

“많이 먹어라. 친구야.”

진하는 그렇게 한참 동안 담담히 술을 허공에 흩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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