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9
송하나의 말에 진하가 잠시 멈칫했다.
“싹 다?”
아주 많은 수는 아니었지만 그가 송하나에게 이 일을 부탁한 지 그리 많은 시간이 지나지 않았다. 거기다가 알려 준 거라곤 나이대와 얼굴, 이름 정도였다. 물론 정보 길드임을 생각하면 어려운 건 아니지만 내전 중이고, 중요도가 매우 낮은 걸 생각하면 꽤 빠른 속도였다.
“정보 길드를 무시하지 말라고. 그 정도 정보는 아무리 내전 중이라도 쉽게 찾아.”
“그래? 그럼 그 목록들 다 나한테 정리해서 줘.”
진하의 말에 송하나가 잠시 머뭇거렸다. 그 낌새에 뭔가 이상함을 느낀 진하가 송하나를 바라봤다.
“왜?”
“저기, 그런데 네가 최우선으로 찾으라고 부탁했던 둘 있잖아.”
“응.”
“그중에 이진하라는 헌터 죽었어.”
“뭐?”
“뱀파이어와의 전쟁 당시 싸우다 죽은 것 같아. 사망자 명단에 들어있더라고.”
까득!
이진하는 그가 가장 먼저 찾았어야 했던 친구였다. 가장 빠른 시일에 죽었던 사람이기도 하고 진하에게 많은 버팀목이었던 사람이었으니까. 그런데 그가 죽어버렸다. 그것도 뱀파이어와의 전쟁에서.
‘젠장, 미루면 안 됐었는데…….’
그가 죽었던 던전만 주시했던 자신이 한심해졌다. 그 던전에 들어가는 것만 조심하면 된다는 생각에 너무 안일했다. 미래가 바뀌었으면 당연히 다른 미래도 바뀌는 건데 그걸 알아채는 게 너무 느렸다.
‘조금만 더 빨랐어도.’
유럽의 게이트가 먼저 터지고 나서야 그걸 인식한 게 너무나 바보 같았다. 당장 송하나부터 시작해서 이기수까지, 충분히 변한 사람을 봤고 일어나는 일들이 기존의 미래와는 딴판으로 흘러가는 것을 알면서도 큰일은 변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자신이 바보였다. 만약, 아주 만약에 자신이 이진하를 바로 찾았더라면 어쩌면 그를 살릴 수 있었을지도 몰랐을 텐데…….
스윽.
“힘 풀어.”
진하의 손을 붙잡은 송하나가 말했다. 그녀의 말에 진하가 손에 힘을 풀었다.
주르륵.
너무 강하게 힘을 줬던 건지 뼈가 보일 정도로 파고든 손바닥에서 피가 줄줄 흘렀다.
“뭔지는 몰라도 당신이 나한테 한 말 있잖아. 보스면 보스다운 행동을 보이라고. 당신도 그래야지.”
송하나가 치료액을 꺼내 진하의 손 위에 뿌렸다. 그러자 멈추기 시작하는 피.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 몰라도 자책은 적당히 해.”
그녀의 말에 진하가 인상을 찌푸렸다.
“자책한 적 없어.”
그녀의 손에서 손을 뺀 진하가 말했다.
“이신혜는?”
“그 사람은 살아있어. 다만 은퇴했어.”
“은퇴? 설마 어딜 크게 다친 건가?”
“아니, 그건 아냐. 사지 모두 멀쩡해. 그냥 단순 변심으로 은퇴한 것 같아. 작은 카페를 운영하고 있더라고.”
역시나 또 진하가 알고 있던 미래가 바뀌었다. 그가 알기론 분명, 이 시기에 아직도 헌터를 하고 있었어야 했으니까. 그래도 그나마 다행인 점은 이번 미래는 오히려 좋은 방향으로 바뀌었다는 거였다.
‘점차 내가 아는 미래와 달라져.’
세세한 것에서부터 이미 거의 다 달라지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그도 모르는 미래가 펼쳐질 지도 몰랐다.
‘아냐, 괜찮아. 아직까진 예상 가능해.’
시간이 당겨지거나 작은 게 변하는 수준이라면 아직은 괜찮았다. 커다란 줄기가 변하진 않았으니까. 그리고 아무리 변해도 던전이나 몬스터에 대한 정보는 변하지 않는다. 그러니 아직은 괜찮았다.
‘아예 내가 겪은 미래는 이제 진짜 사라지는구나.’
그와 다시 인연을 맺은 사람들도 많이 바뀌었다. 하준수나 하예진 같은 사람들은 괜찮았다. 아예 모르는 사람이었거나 죽었던 시점 이후라서 변해도 그려려니 했다. 하지만 송하나나 이기수는 달랐다. 아직 그들이 죽었던 시점은 오지 않았다. 달라진 미래, 달라진 성격. 회귀 전과 다른 모습에 적응하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뭔 생각해?”
“아냐, 아무것도. 다른 분파들은?”
“당연히 연합했지. 우리가 오늘 쳐들어간다는 것도 전달됐는지 조직원들도 끌어모은 상태야.”
“정보가 샌 곳은?”
“이미 막아 놨어.”
“괜찮아. 어차피 이미 들키는 거를 전제로 짠 작전이야.”
애초에 블랙 길드를 30개나 부쉈으니 원치 않아도 알려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 존재가 자신의 분파의 반대쪽에 속한다면 감시하는 건 당연했다. 설마 작전 당일까지 들킬 줄은 몰랐지만.
“저기…….”
“싸워도 일반 조직원은 최대한 안 건드릴 거야. 수뇌부만 빠르게 타격할 거야.”
“고마워.”
“그게 더 효율적인 것뿐이야.”
진하가 말을 끝내고 문 쪽으로 갔다. 그곳에는 여전히 이기수가 퀭한 상태로 바닥을 보고 있었다.
“아직도 힘드냐?”
진하가 묻자 그의 고개가 올라갔다.
“어제 악몽 꿨어. 조용히 해.”
“그 정도면 양호하네.”
이기수의 성격상 아예 잠을 못 잘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했는데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았다.
“이제 진짜 가야 돼.”
짝!
진하의 말에 이기수가 자신의 뺨을 힘껏 쳤다.
“후, 완벽하게 끝났으니까 이제 가자.”
힘차게 일어나는 모습을 보며 진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가자.”
문을 열고 진하와 이기수가 빠져나왔다.
그곳에는 이미 대기 중인 조직원들이 둘을 바라보고 있었다.
찰칵, 털썩.
가장 맨 앞의 차량에 탑승하는 둘.
휘익!
창문 너머로 나온 진하의 손짓에 따라 하나, 둘 차량들이 나아가기 시작했다.
정보 길드를 향해.
* * *
“뭐야, 벌써 정리 시작했어?”
차를 타고 달리던 진하가 무전기에 대고 물었다. 두 분파가 연합한 곳으로 향하는 길이 너무 깨끗했기 때문이다. 거기다 중간중간 묶여있는 조직원들을 보아하니 그녀의 조직원들이 처리한 것 같았다.
[가는 길목에 있는 놈들만 어느 정도만 제압했어.]
무전기 너머로 송하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느 정도가 아닌데?”
어느정도 정리된 게 아니라 아예 모든 길목이 뻥 뚫려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지금 지나고 있는 이곳부터 습격이 시작되고도 남았어야 했다. 그런데 지금 보이는 건 제압당한 조직원들 뿐이었다. 즉, 진하가 출발하기 전 대기할 때부터 손을 쓰기 시작했단 소리였다.
‘조직원들의 피해를 줄이려고 한 건가?’
그런 거라면 진하는 송하나에게 박수를 쳐주고 싶었다. 무슨 지시를 내린 건지는 그녀의 조직원은 물론 상대 조직원들까지 피해가 매우 경미해 보였으니까.
“도대체 무슨 지시를 내리면 이렇게 피해가 적은 거야?”
진하가 의문을 담아 그녀에게 물었다.
[딱히 별 지시를 내린 거 아냐. 애초에 그냥 반항 자체가 매우 적었어. 뭔가 이상해.]
“흠, 그래? 뭔 꿍꿍이가 있는 건가?”
진하와 송하나는 혹시 숨겨져 있을지 모르는 함정에 대비하여 긴장감을 높였다. 하지만 그들이 입구까지 도착할 때까지 함정 같은 건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끼익―
입구에 도착한 차량이 멈추고 차에서 내린 이기수가 따라 내린 진하를 보며 물었다.
“어떻게 할 거야? 함정이 있을 수도 있는데.”
진하가 이기수를 보며 물었다.
“뭘 어떻게 해? 함정을 준비해봤자. 협회가 아닌 이상 나한텐 의미 없어. 가자. 남자는 직진 오케이?”
가볍게 말하며 입구를 향해 들어서는 이기수. 진하도 그의 뒤를 따라가며 뒤쪽으로 싸인을 줬다. 그러자 뒤따라와 대기하고 있던 길드원들이 하나, 둘 차량에서 내려 진하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파지직! 콰광!
이기수가 입구 바로 앞에 있는 문에 간단히 전격을 날렸다. 그러자 간단하게 나가떨어지는 문짝. 그 뒤에는 저마다 무기를 든 조직원들이 새파랗게 질린 채로 이기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비켜, 아니면 죽을래?”
파직.
이기수의 말과 함께 작은 전격이 튀어 올랐다.
쫘아악.
그러자 마치 모세의 기적처럼 갈라지기 시작하는 그들. 이기수는 아주 여유롭게 그들 사이를 지나갔다.
저벅, 저벅.
여유롭게 걷는 이기수를 따라들어온 진하가 재빠르게 그의 곁으로 바짝 붙었다. 뒤따라 오던 조직원들은 이기수가 지나간 자리에 있는 적들을 하나, 둘씩 제압해 묶었다.
‘왜 안 덤비지?’
아까도 그렇고 연합했다고 들었는데 전혀 반항이 없었다. 마치 체념한 듯한 표정이랄까? 이기수도 그걸 알았는지 진하에게 속삭였다.
“원래 이게 맞냐?”
“아니, 맞겠냐. 일단 뭐가 없으니 가야지. 어쩌겠어.”
“하긴 그건 그렇지. 근데 지금 생각난 건데, 이거 이렇게 해도 되는 거야? 부작용 있을 것 같은데?”
“아니, 당연히 이렇게 하면 안 되지. 부작용도 있고.”
“그럼 왜 한 거야?”
진하의 말에 깜짝 놀란 이기수가 물었다.
“시간이 촉박해서.”
사실 이런 식으로 진하와 이기수가 블랙 길드를 건들고 제압하는 건 별로 좋지 않은 행위였다. 전체적으로 모든 블랙 길드에게 적의를 심어 주기도 하고 협회에게 괜한 경각심을 더욱 심어 주니까. 그리고 정보 길드 역시 그건 마찬가지였다. 송하나가 직접 분파를 통합해야 의미가 있지, 이런 식으로 진하와 이기수가 통합해서 넘겨주는 건 정보 길드의 통합에 오히려 마이너스적 요소만이 가득할 뿐이었다. 그래서 진하도 지금껏 돌아갔었다.
‘뱀파이어와의 전투만 없었으면 아마 지금도 돌아가고 있었겠지.’
그런데 협회가 희대의 바보짓을 해 버렸다. 물론 완전히 바보짓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현재 협회 내에서 협회의 기득권에 반항하는 목소리가 작아졌으니까.
하지만 이렇게 명확하게 협회를 노리는 사람이 있는 경우에는 바보짓이 맞았다. 적에게 빌미를 주니까. 그리고 이건 그들의 명분을 버리는 행위였다. 그 때문에 진하는 모든 계획을 앞으로 당겼다. 약간의 부작용을 감수하고서라도 행하는 게 더욱 이득이라고 판단했으니까.
“멈춰라!”
드디어 그들을 막는 조직원들이 등장했다. 눈이 불타오르는 게 딱 봐도 분파에 매우 충성을 하는 놈들 같았다. 하지만.
파직, 콰르릉!
“흡!”
휘익! 콰앙!
그들의 충성이나 각오가 어떻든 의미가 없었다. 그저 압도적인 무력에 죽을 뿐. 전쟁을 바탕으로 더욱 강해진 이기수는 이제 완벽하게 S급을 벗어나고 있었다.
‘근데 뭔가, 내가 여우 같네.’
동화에서 보면 호랑이 등에 올라탄 여우를 호가호위라 말하던데 지금 진하가 옆에서 당당하게 걷는 게 약간 그런 느낌이 들었다.
“더이상은 못 간다!”
“더러운 놈들!”
조직원들 중 한 명이 한 번에 죽는 것을 봤을 텐데도 조직원들은 비킬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 모습에 이기수가 한숨을 내쉬며 전격을 모았다.
“그만.”
그때, 그들이 가로막는 저 뒤쪽에서 한 사람의 말이 들려왔다. 그 목소리에 조직원들이 좌우로 갈라졌다. 그리고 나타나는 한 사내.
“내가 분명 막지 말라고 했을 텐데?”
“하지만…….”
“조용히 해라.”
사내는 조용히 조직원을 흘겨보고는 진하와 이기수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는 정보 길드의 가장 위쪽을 담당하는 두 분을 모시고 있는 해완이라고 합니다.”
“두 사람이 보낸 건가?”
진하의 물음에 해완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제가 모시는 분들의 명령을 받고 왔습니다. 소란을 일으켜 죄송합니다.”
“그래서 용건은?”
“두 분께서 여러분을 아주 정중하게 모시라는 명령이 있었거든요.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아, 조직원들은 두시고요.”
해완은 그 말과 함께 정중하게 아래쪽 계단을 가리켰다. 진하는 잠시 그를 바라보다 피식 웃었다.
‘두명이라…….’
너무나 속이 뻔히 보이는 속셈이었다. 설마 이렇게까지 치졸하게 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가자.”
진하가 바로 뒤에 있던 송하나의 손을 잡아당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