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8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 모든 조직원을 때려눕힌 진하와 이기수가 블랙 길드의 보스를 무릎 꿇린 채 물었다.
“비밀 장부 어딨냐?”
“그런 거 없다.”
“진짜 없어?”
“없다.”
쥐어 터졌음에도 입을 꾹 다무는 보스.
그런 보스를 보며 진하가 옆에 쓰러진 조직원 한 명을 들었다.
스윽!
그리고 순식간에 목을 그었다.
“자, 이제 말할 기분이 좀 들어?”
진하의 물음에 보스가 큭큭소리를 내며 웃었다.
“큭, 겨우 목숨 가지고 협박한다고 내가 말할 것 같아? 어차피 죽는 건 마찬가지 아닌가?”
“그건 그렇지 뭘 하든 넌 반드시 죽어. 근데 다 말하면 얘처럼 편하게 죽을 거고, 아니면 손가락부터 시작해서 살점을 1cm 단위로 잘라 내면서 죽일 거야.”
“미안하지만 너한테 죽나, 고객들한테 찢어 죽나 비슷하거든.”
“흐음, 그래? 우리 그럼 내기하나 할까?”
진하가 주머니에서 쇠자 하나를 꺼냈다.
틱, 틱
“고통에 얼마나 강하려나?”
짜악!
진하가 가볍게 당긴 쇠자를 보스의 팔뚝에 때렸다. 보스는 뼈속까지 울리는 고통에 이를 악물었다. 그 모습을 보며 진하가 보스의 귓가에 작은 목소리로 뭐라 속삭였다.
“자, 잠깐!”
“쉿!”
진하가 보스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리고 싱글벙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일단 딱 30대만 맞고 시작하자. 알겠지?”
20분 뒤, 모든 심문을 마친 진하가 칼에 묻은 피를 닦았다.
“아, 생각보다 오래 걸렸네.”
태연하게 말하는 진하를 보며 이기수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꼭 그렇게까지 해야 했냐?”
분명 고문당했던 보스는 말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진하는 그런 보스의 말은 들을 생각조차 하지 않고 일단 고문부터 자행했다. 심지어는 주변 간부까지 깨워 똑같이 고문해 교차검증까지 한 다음 비밀 장부를 가져온 뒤 그들을 죽였다.
“맨정신에 말하는 악당의 말을 누가 믿냐?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너덜너덜하게 만들어야 제대로 말하지.”
“그런 건 그냥 교차 검증만 했으면 됐잖아. 고문까지는 할 필요 없었어.”
“말을 안 했잖아.”
“아까, 뭐라 속삭였는지 모르지만 말하려고 했던 것 같던데?”
“아, 별거 아냐. 그냥 가족한테 지금 하는 짓 똑같이 해 주겠다고 했지.”
진하의 말에 이기수가 인상을 찌푸렸다. 지금 진하가 하는 말은 너무나 잔인한 행동을 뜻하는 거였으니까. 진하가 그런 이기수의 기분을 눈치채고 물었다.
“설마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거야?”
“아니, 죽이는 건 그럴 수 있어. 어차피 교화 불가능한 쓰레기들이니까.”
마약 밀매에 인신매매까지 손을 댄 놈들이었다. 아무리 사람 죽이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이기수라도 이런 놈들은 죽이는 게 더 낫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럼 뭐가 문제인데?”
“너 행동, 굳이 잔인하게 필요 이상으로 할 필요는 없잖아.”
이기수의 말에 진하가 멈칫했다. 그리고는 이기수를 빤히 바라보았다.
“지금 우리가 상대하는 자들을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짐승 그리고 쓰레기들.”
“그걸 아는데 그래?”
“쓰레기를 잡겠다고 우리까지 쓰레기가 되자는 거야?”
이기수의 말에 진하가 한숨을 내쉬었다. 확실히 이 부분은 이기수에겐 이해시키기 어려울 수도 있었다. 그는 곧은 사람이었으니까. 설사 죽여야 하는 상대가 있더라도 필요 이상의 고통을 주는 걸 좋아하지 않는 존재였다.
“쓰레기를 치우는 사람의 몸에 쓰레기가 묻었다고 그 사람을 쓰레기라 부르지 않아.”
진하가 다 닦은 단검을 검집에 꽂아 넣었다.
“그리고 너한테까지 나처럼 하라곤 말 안 해. 하지만 적어도 고민은 해봐. 앞으로 돌아다닐 곳들을 네 눈으로 직접 보고 정말 내 행동이 잘못된 건지 아닌지 확인해봐.”
진하는 그 말을 마치고 걸음을 옮겼다. 어차피 이 문제는 여기서 바로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니 직접 보고 깨닫게 해야 했다. 회귀 전 우리들을 궁지로 몰아넣었던, 동료들을 죽였던 블랙 길드의 실체를.
* * *
2주 후.
30번째 블랙 길드를 모조리 도륙한 진하가 비밀 장부를 가지고 지하에서 나왔다.
“왜 그래?”
진하가 침울한 얼굴로 있는 이기수를 보며 물었다.
“아냐, 아무것도.”
“아직도 내 행동이 잘못된 것 같아?”
30번째 블랙 길드를 털면서 그들이 살린 사람은 한 명도 존재하지 않았다. 심지어 편하게 죽이지도 않았다. 진하가 줄 수 있는 최대의 고통을 주며 죽였다. 그리고 그걸 바로 옆에서 빠짐없이 본 이기수라면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었다.
“아니, 아직도 이해는 안 되지만 네가 왜 그런 감정이 들었는지는 조금 알 것 같아.”
살인부터 방화, 장기와 인신매매 등등 인간으로서 생각할 수 없는 최악의 것들을 모두 한 놈들이었다. 그 현장을 직접 목격한 입장에서 이기수는 진하의 잔인함을 약간이지만 알 것 같았다. 미래의 장면에서 이런 걸 보고, 정보 길드를 통해 다시 한번 이것을 확인한다면 어쩌면 그 또한 그랬을지도 모르니까. 다만.
“난, 그렇게 하지 못할 것 같다.”
진하의 행동을 이기수가 똑같이 할 수는 없었다. 아무리 쓰레기고 죽일 놈이어도 그놈들에게 고통을 주거나 하는 건 이기수와 맞지 않았다. 그런 이기수의 모습을 보며 진하가 나지막이 말했다.
“내가 처음 블랙 길드를 습격했을 때 말했지? 너까지 굳이 그럴 필요는 없다고. 넌 네 방식에 따라 행동하면 돼. 다만, 이 참상들을 기억해. 그거면 되는 거야.”
“처음에도 그렇고 진짜 너는 담담하네. 그것도 미래에서 미리 봐서 그런 거냐?”
이기수는 이 일을 진행할수록 짙은 환멸감을 느꼈다. 지금은 적대하지만 어느 정도 공생하던 게 협회였다. 그리고 썩었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던 게 협회였다.
그런데 전혀 아니었다. 그가 알고 있던 건 빙산의 일각이었을 뿐이었고, 이곳은 그가 알던 것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뭐, 비슷하지.”
진하는 이미 한 번 겪었던 일이었다. 이 참혹한 짓들을 이미 알고 있었고, 겪었던 사람이었다. 그러니 담담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부터 담담하면 그게 더 이상한 거야.”
진하가 이기수의 어깨를 토닥여 줬다. 회귀 전의 이기수도 협회의 썩어 버린 모습에 많은 환멸감을 느꼈다. 그리고 꽤 오랜 시간 고뇌를 했었다. 오죽했으면 헌터를 그만둘까 하는 고민까지 했었으니까.
그때가 게이트 폭주 1차 이후로 S급 헌터들이 하나, 둘씩 생겨나던 시기라 더욱 그랬었던 거로 기억한다. 다행히도 주변 동료들의 만류에 은퇴하지 않긴 했지만, 그때를 생각하면 이기수의 고통이 어느 정도 될지 대략적으로 짐작이 갔다.
“가자, 설마 그 정도로 주저앉을 건 아니지?”
과거보다 덜 참혹한 현장을 보았다. 그리고 회귀 전처럼 동료들이 죽은 것도 아니었고, 혼자서 대부분의 블랙 길드를 없앤 것도 아니었다. 진하가 아는 이기수라면 이 정도는 충분히 이길 수 있는 존재였다.
“당연하지. 주저앉지는 않아. 어쨌든 이제부터 바꾸면 되는 거니까. 그냥 아직 조금 혼란스러워서 그래.”
씁쓸한 미소를 머금은 이기수가 말했다. 진하의 말대로 그는 이대로 멈추거나 주저앉을 생각 따위는 하지 않았다. 다만 조금 현타가 왔을 뿐이었다.
“내일은 정보 길드야. 할 수 있겠어?”
진하가 걱정하며 물었다. 물론 걱정한다고 이기수가 빠지거나 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이번 일들의 핵심은 이기수였으니까.
“정말 괜찮아. 내일 되면 좀 나아질 거야.”
“그래, 오늘은 일찍 들어가서 좀 쉬어라.”
“그래.”
* * *
다음날.
송하나와 만난 진하가 일의 진척도를 물었다.
“너가 준 정보는 열심히 언론과 인터넷을 통해 뿌리고 있어.”
“화제가 끊이지 않게 적당히 지속적으로 넣어.”
“알고 있어.”
한 방에 터뜨리는 건 화력은 좋을지 몰라도 그 지속성이 너무 짧았다.
협회를 무너뜨리려면 차라리 지속적으로 이슈를 줘서 꺼지지 않는 비난을 주는 게 나았다.
“항암 그룹 쪽은?”
“안 그래도 말하려고 했어요. 항암 그룹 쪽은 영 힘을 못 쓰고 있어요.”
“거기야 아무리 대기업이라고 해도 서열이 제법 떨어지는 곳이니까.”
항암 그룹도 발맞춰 언론을 통해 협회를 공격하고 있었지만 크게 효과는 없는 것 같았다.
하기야 항암 그룹을 제외한 모든 대기업들이 모르쇠를 하고 있으면 큰 의미가 없긴 했다.
“내가 말한 자료는?”
“여기.”
송하나가 서류 하나를 건네주었다.
그곳에는 협회에 대한 각 대기업들과 길드들의 공조와 언론을 이용한 압박 등이 적혀 있었다.
‘분명, 이 중에 있을 텐데.’
과거 협회에 관련한 장부들을 빼냈을 때 분명 그를 공격한 세력이 있었다. 은발의 A급 헌터, 그녀가 가져간 장부를 이용해서 분명 거래를 했을 게 분명했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했을 가장 좋은 거래는 목줄을 푸는 것. 협회에게 잡힌 목줄을 푸는 것만큼 중요한 내용은 또 없었다. 그러니 반드시 이들 중에 목줄을 푼 단체가 존재할 게 분명했다.
‘그리고 협조도 미온적일 거고.’
목줄을 풀었는데 굳이 협조할 리가 없었다. 물론 공존 체재를 할 수도 있긴 했지만 그래도 다른 기업들보다는 미온적일 게 분명했다.
“내가 말했던 헌터는 찾았어?”
진하가 서류를 훑어보며 물었다.
“어떤 헌터? 은발의 헌터?”
“응.”
“아니, 당신이 말한 은발의 A급 헌터는 등록된 데이터 베이스에는 없었어.”
“이미 죽은 헌터 중에는?”
“거기에도 없었어.”
송하나의 말에 진하가 서류에서 눈을 뗐다.
“아예 없다고?”
“그래, 혹시나 해서 한국에 들어온 외국 헌터까지 싹 조사했지만 아무도 없었어.”
“염색을 했던 건가.”
헌터로 등록되지 않았을 리는 없었다. 협회가 아무리 썩어도 그거 하나는 철저했다. 자신들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선 위협이 될 만한 건 반드시 감시해야 했으니까. 그러면 둘 중 하나였다.
‘정말 작정하고 협회 모르게 키웠거나, 변장을 했거나.’
진하의 생각은 후자라고 생각됐다. 얼마만큼 성장할지도 모르는 헌터를 협회 몰래 키운다는 건 리턴 대비 리스크가 너무 컸기 때문이다.
“일단 외국 쪽으로도 좀 다시 찾아봐 줘. 은발에 키는 160 이상, 무기는 단검을 최소 부무장으로 사용하는 사람.”
“이미 찾고 있어.”
송하나가 간단히 대답했다.
‘일 처리가 빨라.’
보스가 된 이후로 각성한 건지 어수룩한 모습이 점차 사라지고 있었다. 완벽한 보스가 되어 간다는 느낌이 확연히 들었다.
“근데 진짜로 계속 말을 놓을 거야?”
“문제 있어? 네가 먼저 시작한 거잖아.”
“그렇긴 하지.”
문제가 없냐고 물으면 사실 있긴 했다. 존댓말 할 때까진 괜찮았는데 반말을 계속 듣다 보니 회귀 전의 송하나와 점차 겹쳐보이는 게 문제였다. 안 그래도 점차 가까워지는 것도 좀 그런데 행동까지 더욱 겹쳐 보여서 뭔가 좀 그랬다.
“그리고 이제 좀 오지 말지? 더 이상 위험하지도 않잖아.”
그녀의 위치는 정보 길드의 3분파 중 가장 강한 분파의 보스였다. 이제 굳이 간간히 진하의 문방구에 머무를 필요도, 이렇게 직접 정보를 가져다줄 필요도 없었다. 애초에 비밀 관련 문서를 보내라고 그녀에게 쥐여 준 편지를 그녀가 쓰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정보는 직접 전달하는 게 더 나으니까. 그리고 어찌 됐든 우린 운명 공동체 아니었어? 같이 있는 게 그렇게 싫어?”
“어, 싫어.”
“그럼 이번 일 제대로 해. 완벽하게 길드를 장악하면 고민은 해 볼게.”
그녀의 말에 진하가 한숨을 내쉬었다. 애초에 그녀가 정말 안전을 위해서 오는 건 아니란 건 알고 있었다. 안전 문제는 분파 하나를 잡아먹은 시점에서 이미 거의 끝난 문제나 다름없으니까.
“제발 좀 정보 아티팩트로 보내. 부하를 시키든가.”
그녀가 회귀 전과는 다른 느낌으로 바뀌었다는 건 인지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진하는 역시 그녀가 꺼려졌다. 그녀가 가까이 다가올수록 진하가 그녀의 목에 검을 꽂아 넣었던 기억 역시 선명해졌으니까.
“알았어. 노력은 해 볼게. 아, 그러고 보니 당신이 하나 더 부탁했던 거 찾았어.”
“누구 찾았는데?”
“싹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