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가진 SS급 문방구-56화 (56/202)

#056

“네?”

진하가 로드에게 되물었다.

“자네가 상대하던 아이를 자네가 죽였다고. 아니, 내가 깃들었으니까 내가 죽인 건가?”

‘내가 죽였다라…….’

여기까지는 그도 예상한 부분이었다. 살아남았으니까.

다만, 한 가지 이해되지 않는 게 있었다.

“저는 분명 변신형 아이템을 썼습니다. 근데 어째서 당신이라는 존재가 나온 거죠?”

아티팩트는 어디까지나 아티팩트였다.

무언가를 소환하는 아티팩트가 아닌 이상 그저 변신이나 버프를 주는 아티팩트에서 무언가가 생기거나 소환되는 건 말이 안 됐다.

“그건 간단하네. 내가 뱀파이어 로드이기 때문이지.”

“그게 무슨 소리죠?”

“흠,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까. 일단 자네가 쓴 물품이 뭔지는 아는가?”

“아티팩트요.”

“여기 차원 인간들은 마법이 새겨진 물품을 아티팩트라고 하는가 보는군. 아무튼 자네의 아티팩트가 특별히 더 관리자의 손길이 닿은 거라는 것도 알고?”

또 관리자라는 말이 나왔다. 저번의 그 사내도 말했던 단어, 관리자. 이번 기회에 정확하게 그 뜻을 확인해야 했다.

“도대체 관리자라는 건 뭐죠?”

“음? 관리자를 모르는데 관리자의 물품을 쓴다고?”

로드가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네, 몰라요. 그러니까 처음부터 설명해 주세요.”

“허, 그래, 처음부터 설명해 주지. 일단 간단하게 이 세상은 여러 차원이 존재하네. 자네가 사는 세상 또한 한 차원의 일부이지.”

“다중 차원 이론 같은 건가요?”

세상이 하나가 아닌 여러 차원으로 되어 있다는 이론. 그 말과 똑 닮았다.

“다중 차원 이론?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한 설명과 비슷하다면 아마 맞을걸세. 아무튼, 그 다중 차원마다 차원을 관리하는 자들이 있지. 우리는 그들을 관리자라고 부른다네.”

“그럼 신인가요?”

“신? 아니 그들은 신이 아니야. 자네 입장에서야 신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그저 차원을 관리하는 관리자일 뿐이야.”

“그럼 신은요?”

“글쎄, 어딘가에 있지 않을까? 아무튼 차원을 관리하는 자들인 관리자의 손길이 닿은 물품을 우리는 관리자의 손길이 닿았다고 말하지.”

아티팩트를 말하는 듯싶었다.

“잠깐만요. 그럼 다른 아티팩트들도 관리자의 손길이 닿았다는 건가요? 그럼 능력자들은요? 그들도 관리자의 손길이 닿은 건가요? 몬스터의 정체는 도대체 뭐죠?”

진하의 질문에 로드가 손을 들어 그의 질문을 막았다.

“내가 모든 걸 답해 줄 순 없네. 그럴 권한도 없고 시간도 없어. 그러니 속성으로 얘기하지. 아무튼, 자네가 쓴 물품은 관리자의 손길이 닿은 것이고. 그중에서 몇몇 개가 뱀파이어와 관련이 있었네. 맞지?”

“네, 뱀파이어의 이빨과 망토, 그리고 피.”

“혹시 거기에 뭔가 왕이나 신을 상징하는 능력을 사용하지 않았나?”

그의 말에 진하의 머릿속에 도깨비 가면이 스치고 지나갔다.

“썼어요, 도깨비 가면. 신이라고 불린 존재를 형상화한 가면.”

“그래, 그걸 썼기에 내가 불려진 거야. 왜냐하면 난 모든 뱀파이어의 왕이니까.”

“어째서 나타났다는 거죠?”

눈앞의 상대가 뱀파이어 로드라는 것은 알겠다.

만들어진 존재인지, 아님 소환된 존재인지 모르겠지만 말하는 투로 봐서는 소환됐다는 것 같은데 그것과 변신형 아이템이 무슨 상관관계가 있는 것인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

“제가 쓴 건 변신을 시켜 주거나 그와 비슷한 힘을 주는 버프 계열 아티팩트였어요. 소환형이 아니었죠. 당신이 불릴 가능성 따위는 없지 않나요?”

“아, 확실히 그 아티팩트라는 걸 써서 만들어진 몸이 좀 조잡하긴 했지. 하지만 아무리 조잡하더라도 왕을 모방한 신체였어. 그래서 나에게도 연결된 거고.”

“그러니까 뱀파이어 왕이나 신이라고 불리는 힘이 만들어지면 당신에게 신호가 간다는 거예요?”

“그래, 비슷하네. 아무튼, 그래서 마침 할 일도 없겠다. 무슨 일인가 해서 한번 내려 가 봤지.”

“그럼, 내가 소환한 게 아니라 당신이 내려온 거네요?”

“그렇지?”

진하는 어이가 없는 표정으로 그를 보았다.

결국, 심심해서 내려와 봤다는 소리밖에 되지 않았다.

“잠깐만, 하나 더 여러 차원이 있다고 했죠? 그럼 그곳에도 뱀파이어는 있고 로드도 존재할 거 아니에요?”

“존재하네.”

“그럼 그 존재들이 가진 자아들은요? 모두 당신의 분신 같은 건가요?”

진하의 말에 로드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게…… 분신이라면 분신이라고 할 수 있고 별개의 존재라면 또 별개의 존재이긴 하지.”

“무슨 소리인지 쉽게 설명해 주시면 안 되나요?”

“흠…… 아! 그래, 인간들이 알아듣게 설명하자면 일종의 개념이라고 보면 되네. 뱀파이어 로드라는 개념, 그게 나라네. 그래서 각 차원의 뱀파이어 로드들은 별개의 존재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나이기도 하네.”

완벽하게 이해할 순 없었지만 대충 이해는 됐다.

“자, 그럼 정리하자면 당신의 뱀파이어 로드라는 개념이고 우리 차원의 신적 존재 같은 관리자라는 존재의 손길이 닿은 아티팩트로 뱀파이어 로드라는 개념을 제가 생성했더니 당신이 내려와서 비앙카를 죽였다?”

“맞네. 자네 간단하게 잘 요약하는군.”

“어째서? 그리고 왜 내려온 거죠?”

모든 게 잘 끝나긴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아찔했다.

만약 이 존재가 인간을 공격했다면?

아니 그 전에 비앙카를 죽이지 않았다면 진하의 계획은 크게 틀어졌을 것이다.

“뭐, 무슨 의도로 물었는지 알겠는데 그래봐야 내 피 한 방울 섞인 수준의 잡종이라네. 인간 기준으로 따지자면 고작 귀여운 토끼를 보는 정도랄까? 사실, 동족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수준이지. 그나저나 어찌 됐든 은인인데 좀 고마워해야 하지 않겠나?”

“은인이요?”

“그래, 설마 반쪽짜리 뱀파이어의 힘에 관리자의 힘으로 쌓아 만든 불완전한 뱀파이어 로드가 아무런 부작용도 없을 거라 생각했나?”

그의 말에 진하가 입맛을 다셨다.

부작용이 없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당장 시험 삼아 간단하게 두 개만 겹쳐 보았을 때도 온몸이 찢어질 듯한 고통을 겪었으니까.

“거기다 그렇게 생긴 힘도 그 뱀파이어 아이보다 약간 강한 정도가 끝이었을 거야. 내가 도와준 걸 고마워하게.”

“고맙습니다.”

진하가 순순히 고개를 숙였다.

결과론적으로 보면 확실히 그의 도움을 통해 비앙카를 죽이기도 했고, 부작용도 없애 준 듯싶었다.

“근데 왜 아직까지 계세요? 분명 아이템은 모두 사용된 직후일 텐데?”

무한정으로 버프를 주거나 변신이 되진 않았을 테니 현재 정화되고 있는 진하의 몸은 인간이나 다름없었다.

그렇다면 그도 여기에 있어선 안 됐다.

“거 젊은이가 야박하기는. 여기 있는 나는 내가 아니네. 일종은 사념 같은 거지.”

로드의 말에 진하가 어이없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완전히 사람 그 자체인데 고작 사념이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뭐, 어떻게 생각하든 자유니까. 그건 알아서 생각하고 아무튼 내가 사념을 남긴 건 일종의 서비스랄까?”

“서비스요?”

“그래 모처럼 그래도 나들이를 다녀왔으니까. 서비스를 준 거지. 설명도 해야 되고.”

“뭘 주셨는데요?”

진하가 받은 게 무엇인지 진하는 잘 몰랐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정신 속인데 밖에서 뭐가 바뀌었는지 그가 어떻게 알겠는가.

“내가 그 아이를 죽이면서 잡스러운 힘들은 모두 자네에게 넣어 뒀네.”

“잡스러운 힘?”

“뭐, 이것저것? 관리자의 힘도 있고 몬스터의 기운도 있고. 아무튼 그걸 집어넣어서 부작용이 없을 거야.”

“아, 감사합니다.”

진하가 한 번 더 감사를 표했다.

“근데 대신 미치거나 죽을 수도 있을걸세.”

“네?!”

“아, 걱정 말게. 그걸 해결해 주려고 내가 사념을 남겨 놨던 거니까.”

로드의 말에 진하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기분이었다.

“그냥 갈까 하다가, 그래도 이왕 하는 김에 완벽하게 뒤처리까지 해 주려고 했지. 근데 굳이 필요 없던 것 같기도 하고…….”

로드가 허공을 쳐다봤다.

진하도 로드의 시선을 따라 허공을 쳐다봤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관리자의 물건으로 알아서 해결한 듯하니 뭐 도와줄 게 없구먼.”

로드의 말에 진하는 그가 무엇을 말하는지 깨달았다.

생수병, 그걸 통해 정화한 것을 말하는 듯싶었다.

“아, 네…… 그럼 볼일은 다 끝나신 거예요?”

“뭐, 대충? 아, 그냥 가긴 심심하니까. 뭐가 바뀌었는지라도 설명해 줄까?”

로드가 초롱초롱한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뭔가 설명을 하고 싶어 하는 눈이었다.

“아, 네. 설명해 주세요.”

뭔가 로드라고는 하는데 위엄은커녕 그냥 동네 아저씨 같았다.

아니, 나이가 많으니까 할아버지인가?

“뭔가 기분 나쁜 생각을 한 것 같지만 그건 넘어가 주겠네.”

로드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일단 크게 바뀐 거는 신체 능력이 올라갔을 거네. 특히 내구도가 많이 올라갔을 거야. 뭘 하든 튼튼해졌다는 의미지.”

“네.”

“그리고 몸도 깨끗해졌을 거야. 노폐물도 모두 없어졌을 테니 수명이 더 많이 늘어나겠군.”

“네.”

진하의 대답에 로드가 뾰로통한 얼굴로 말했다.

“자네, 뭔가 반응이 시원찮군. 뭔가 우와! 이런 리액션 없나?”

“제가 리액션이 원래 적어요.”

“쯧, 몇만 년 만에 만난 존재가 이렇게 심심해서야 흥이 나지 않네, 않아.”

마치 애처럼 투덜거리는 로드.

진하는 그를 보며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아, 진짜 그냥 심심했던 거구나.’

하긴 몇만 년 동안 혼자서 지냈다면 심심했을 것도 같았다.

“그래도 이거는 많이 놀랄걸? 자네를 가로막는 모든 신체의 벽이 사라졌네.”

“네?”

처음으로 진하의 입에서 물음표가 나왔다.

“신체의 벽이 사라졌다는 게 무슨 뜻이죠?”

“말 그대로네. 자네 차원들의 능력자들은 왜인지 모르지만 신체에 벽이 존재하더군. 자네는 그중 하나를 풀었고 말이야.”

로드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감이 잡혔다.

스킬과 신체 능력의 해금을 말하는 것 같았다.

“자네 몸에 깃들었을 때 보니 대다수의 인간들이 벽을 하나도 못 뚫었더군.”

“뭐, 그렇죠.”

“그 벽이 자네는 모두 뚫려 있네. 완벽히 사라진 상태이지.”

“하나도 없이 모두요? 막 뭐 스킬을 각성해야 되거나 그런 거 없이요?”

“스킬? 아 벽을 뚫는 열쇠 말인가? 그런 거 필요 없네.”

뜻밖에 희소식이었다.

로드의 말대로라면 진하의 신체 능력치가 SS급까지 막힘없이 성장할 수 있다는 거니까.

‘이건 좋아 정말로 좋아.’

정신을 정화했을 때 분명 그의 분신이 그런 말을 했었다.

[앞으로의 스킬 각성은 없어.]

그 소리를 듣고 나서 사실 진하는 살짝 고민했었다.

애매한 아티팩트로 신체 능력을 채운다고 해도 S급 이상의 힘을 내기는 힘드니까.

미래를 바꾸기 위해서는 확실히 동료들의 힘 이외도 자신의 힘이 필요한데 성장이 막혀 있다는 사실은 그리 좋은 사실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런 단점이 절반이나마 해결됐다.

‘스킬은 아티팩트로 메꾸면 돼.’

신체 능력이 올라간다면야 스킬은 아티팩트를 이용한다면 얼마든지 채울 수 있었다.

만약 SS급 능력치 상태에서 버프 아티팩트를 쓴다면 그 이상의 신체 능력치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게이트 2차 폭주 때처럼 이기수 혼자 싸울 필요도 없을 것이고.

“이번 건 좀 놀랍고 마음에 드는 모양이군.”

진하의 기분을 알아차렸는지 로드가 흐뭇한 얼굴로 말했다.

“네, 이건 기분 좋은 소식이네요.”

이건 로드가 말해 주지 않았다면 알기까지 매우 오랜 시간이 걸렸을 정보였다.

미리 알았다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었다.

“그럼 됐네. 나도 좀 만족스럽군.”

띠링!

<신체의 정화가 모두 완료되었습니다.>

그때 진하의 눈에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가야 할 시간인가 보군.”

“그런 것 같네요.”

“아 맞다, 그러고 보니까 하나…….”

슉!

그 순간 사라지는 진하의 신형.

로드가 진하가 사라진 곳을 바라보며 입맛을 다셨다.

“하나 더 알려 줄 게 있었는데 가 버리는구먼. 뭐 상관없나?”

로드가 살폈을 때 진하의 영혼이 묘하게 뜯어졌다 붙여진 흔적이 남아 있었다.

누군가가 뜯었다 붙인 듯싶었는데 굳이 말해 줄 필요는 없을 듯했다.

어차피 뭔가 문제가 되는 건 아니었으니까.

“허허, 이제 뭐 하나.”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 로드의 혼잣말이 울려 퍼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