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가진 SS급 문방구-51화 (51/202)

#051

하준수의 온몸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픽!

쿠웅!

“말만 많은 놈이었군.”

전격으로 하준수의 머리를 꿰뚫은 데카르트가 시간이 아깝다는 듯 말했다.

“글쎄…….”

쓰러진 몸을 일으켜 세우는 하준수.

“호오, 네 능력은 재생 능력인가?”

“재생? 그럴지도 모르지.”

“이런 죽기 전에 고통만 늘겠구나.”

데카르트의 말에 하준수가 피식 웃었다. 고통? 고통은 하준수에게 익숙했다.

특히, 버서크 스킬을 쓴 상태에선 싸우는 1시간이 모두 다 고통의 연속이었다.

‘더 빠르게 파괴한다.’

하준수는 자신이 가진 스킬에 감사했다. 버서크, 절대 죽지 않는 이 능력만큼은 그 어떤 스킬보다도 특별했다.

리미트 브레이크, 한계를 부수고 자신을 부수는 능력. 부서지는 신체가 더욱 강인할수록, 더욱 빠르게 부서질수록 큰 증폭이 이루어진다.

현재 하준수의 신체 스펙은 더욱 강해져서 A급을 상대하는 데 필요한 붕괴 속도는 처음과는 달리 초당으로 부술 필요는 없어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S급을 상대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그럼 모든 걸 최대치로 부순다. 아니, 죽는다.’

말 그대로 리미트 브레이크, 죽지 않는 이상 이 능력의 증폭에는 끝이 없었다. 죽기로 마음먹은 하준수는 뇌를 제외하고 모든 걸 최대치로 붕괴시켰다.

“하, 하하하! 이거 웃긴 인간이로구나. 아니, 인간이긴 한가?”

순식간에 검은색으로 물든 하준수의 상태를 알아본 뱀파이어가 깔깔깔 웃었다.

“죽어!”

퍼억!

“껴들지 마라, 버러지야.”

달려드는 헌터 한 명을 손쉽게 죽인 데카르트가 가만히 서 있는 하준수를 바라봤다.

무슨 원리인지는 모르겠지만 저 인간은 지금 약 0.01초 단위로 모든 피와 살이 죽었다 살아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만큼 느껴지는 기운도 강대해지는 게 그의 눈에 보였다.

‘하지만 그뿐.’

기운이 강대해졌다. 어쩌면 그조차 위협을 느낄 만큼 강한 기운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게 다였다.

“그렇게 꼭두각시처럼 서 있는 걸 보여 주려는 거였나?”

저렇게 초에 100여 번 죽어서는 움직이지 못한다. 아니, 생각조차 하기 어렵다.

말 그대로 살아있는 시체나 다름없었다. 생각이라도 할 수 있다면 그게 다행인 수준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고통을 참아 내는 게 신기하구나. 아니, 못 느끼는 건가?”

일시에 모든 것이 죽는다는 건 꽤 강한 고통이다.

그대로 끝난다면 편안하겠지만 다시 살아난다는 건 그 고통을 느낀다는 거니까.

그런 점에서 저 인간은 고통에 정신이 나갔거나 아니면 빠른 죽음으로 그 고통조차 못 느끼고 있을 게 분명했다.

“흐음, 내가 말실수 하나를 했구나. 너는 짐승이 아니구나. 오히려 귀중한 존재지.”

츄릅.

데카르트가 혀를 핥았다. 끝없이 재생하는 몸뚱어리, 뱀파이어 종족도 저렇게는 하지 못한다.

‘이 얼마나 사랑스러운 산해진미인가.’

죽었다가 살아날수록 증폭되는 기운, 즉 생명력, 이는 데카르트에게 있어 맛있는 음식과 다름없었다.

저벅, 저벅.

데카르트가 미소를 지으며 하준수에게 다가갔다.

“나의 식사가 되려는 그 갸륵한 마음 잘 받으마.”

쩌억!

입이 벌어지는 데카르트, 그리고 그의 송곳니가 하준수의 목을 향해 다가갔다.

그때.

덥썩.

하준수의 손이 데카르트의 얼굴을 붙잡았다. 놀란 데카르트가 하준수를 바라봤다.

마치 불이 붙어 있는 듯 붉게 빛나는 그의 눈동자.

콰직!

“!!”

데카르트가 부서진 자신의 입을 부여잡은 채 뒤로 주춤주춤 물러났다.

‘생각하고 있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정신이 이어질 수도 없고 정신이 이어지더라도 그 고통을 어떻게 참는다는 건 도저히 말이 안 됐다. 이내 데카르트는 하준수의 눈빛이 죽어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안도했다.

‘정신이 있는 게 아냐. 단순히 본능적인 방어기제인가?’

데카르트의 생각대로 하준수는 아무것도 느낄 수 없는 상태였다. 너무 빠르게 죽음을 반복해서 시야는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고, 주변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뇌에서 오직, 한 단어만이 계속 반복되었다.

―죽여, 죽여, 죽여!

그의 귓가, 아니 뇌에 직접 속삭이는 여동생 환청.

하준수의 몸이 환청의 뜻에 따라 바로 앞에 있는 적을 향해 달려들었다.

* * *

“환자 이쪽으로 데려오세요!”

하예진이 복부에 구멍이 난 헌터 한 명을 치료하며 새로 들어오는 환자를 옆에 눕힐 걸 명령했다.

그녀의 말에 환자를 데리고 온 헌터가 환자를 눕히고 빠르게 밖으로 뛰쳐나갔다.

쾅! 콰앙!

소라가 흔들리며 커다란 굉음이 울려 퍼졌다.

순간 환자들이 불안한 기색을 보였다.

“걱정 마세요, 이거 안 뚫려요.”

하예진이 환자들을 안심시켰다.

이쪽은 극 후방이었다.

날아오는 공격들도 그저 도탄 되거나 잘못 날아온 마법 정도였다.

그 정도로는 이 아티팩트를 부술 수는 없었다.

―리저랙션.

하예진이 빠르게 스킬을 시전했다.

순식간에 헌터의 잘린 팔에서 나오는 피가 멈추고 가져온 신체와 붙기 시작했다.

“후우…… 치료제 먹으시면 될 거예요.”

간단하게 응급처치를 마친 하예진이 소라 안을 둘러봤다.

이걸로 이 소라 안은 모두 응급처치를 마쳤다.

‘어서 가자.’

더 치료하고 싶었지만 이곳의 환자들은 중환자들밖에 없었다.

치료한다고 바로 다시 싸울 수 없는 헌터들.

응급처치는 끝냈기에 이 사람들은 저랭크 치료사에게 맡기는 게 더 효율적이었다.

그그극!

밖으로 나온 하예진이 소라의 뚜껑을 닫았다.

달칵!

문이 잠기는 소리가 들렸다.

이걸로 이곳은 완료였다.

이제 다른 사람들을 치료하러 가야 했다.

“대충 치료해!”

“미친 새끼야! 붕대는 감고 가!”

밖은 전쟁터 그 자체였다.

전투 불능이지만 응급처지만 받으면 다시 전투가 가능한 헌터들과 치료사들로 뒤엉킨 전쟁터.

조금이라도 빠르게 다시 전장으로 복귀하려는 헌터들과 조금이라도 더 치료하려는 헌터들로 가득했다.

“여기 마취약!”

누군가가 소리치는 게 보였다.

“저요! 스킬 있어요!”

정신을 차린 하예진이 소리치며 그곳을 향해 달려갔다.

그때.

콰직!

환자의 머리가 부서지며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호오…… 여기였군.”

환자의 머리를 짓밟은 뱀파이어가 주변을 스윽 둘러봤다.

그의 주변으로 여러 마리의 뱀파이어들이 내려앉았다.

“죽여도 죽여도 계속해서 같은 벌레들이 나오길래 어째서인가 싶었는데 여기가 원인이었어.”

콰직!

옆에 있던 치료사의 머리가 부서졌다.

“가서 죽여라.”

뱀파이어의 명령에 주변을 호위하듯 서 있던 뱀파이어들이 사방으로 퍼졌다.

“미친!”

“죽어!”

“파이어 볼!”

갑자기 나타난 뱀파이어들에 치료받던 헌터들이 달려들었다.

휘익.

간단한 손짓에 마법이 사라지고 달려들던 헌터들이 날아갔다.

“다가오지 마라, 불결한 것들.”

따악!

뱀파이어가 손을 튕기자 수많은 화살들이 생겨났다.

그리고 사람들을 향해 쏟아지는 화살들.

“크악!”

“크르륵…….”

헌터들이 막긴 했지만 수많은 화살들이 치료받던 환자들과 치료사들의 목과 머리를 뚫고 지나갔다.

‘이, 이길 수 없어…….’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하예진이 덜덜 떨며 뱀파이어를 바라봤다.

그녀가 화살을 피한 것은 순전히 운이었다.

다리에 힘이 풀려 머리 위로 화살이 스치고 지나가면서 맞지 않았던 것뿐이었다.

“죽어!”

“윈드커터!”

헌터들이 뱀파이어를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만큼 바로 튕겨 나가거나 바로 죽어 버렸다.

촤아악!

그녀 앞으로 헌터 한 명이 튕겨져 나왔다.

“어이, 아가씨. 다쳐서 그러는데 치료 좀 해 줄 수 있어?”

한쪽 팔과 눈이 날아간 헌터가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덜덜덜.

하예진이 손을 떨며 그에게 손을 가져다 댔다.

―리저렉션.

순식간에 피가 멈추기 시작했다.

“효과 좋네.”

피가 멈추자마자 몸을 일으키는 헌터.

그 모습에 하예진이 그를 잡으려 했지만 그는 검을 들고 그대로 뱀파이어를 향해 달려들었다.

‘어째서…….’

치료소 한가운데로 떨어진 뱀파이어들은 어중이떠중이가 아니었다.

아무리 다쳤다지만 뱀파이어에게 달려드는 헌터들 중에는 B급도 있었다.

그런데도 작은 상처밖에 내질 못하고 있었다.

그렇다는 건 적어도 죄다 A급 이상의 뱀파이어라는 거였다.

‘어째서 달려드는 거지?’

절대 이길 수 없었다. 당장 도망쳐야 했다.

다른 A급 헌터가 오기 전까지 도망쳐야 하는데…….

“잡았…….”

퍼억!

또 한 명의 헌터의 머리가 날아갔다.

“귀찮은 것들! 다 죽어라!”

자잘하게 생채기를 입은 뱀파이어 하나가 거슬린다는 듯 헌터들을 밀어냈다.

하지만 순식간에 적응한 헌터들이 뱀파이어들을 조직적으로 상대하기 시작했다.

―보호!

“지금이야!”

누군가가 공격을 방어하면 누군가가 공격한다. 그리고 다친 사람을 치료사들이 치료한다.

간단하지만 어려운 일이었다.

‘어째서…….’

하예진은 이해할 수 없었다. 완전히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다.

얼마나 조직적으로 싸운다고 한들 이길 수 없는 몬스터였다. 차라리 멀리 도망치는 게 나았다.

그럼 A급 헌터들이 올 텐데 어째서…….

그그극!

그 순간 그녀의 뒤쪽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대피처로 마련한 소라에서 나는 소리였다.

그쪽을 쳐다보니 문이 열리며 헌터들이 하나둘 나오기 시작했다.

그들의 뒤쪽에서 치료사가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이 보였다.

정확하게 소라 안을 가득 채웠던 헌터들 중 정신을 차리고 있던 헌터들이 모두 나왔다.

“안 돼요!”

하예진이 다급하게 그들을 막았다. 이 사람들은 절대 싸워선 안 됐다.

겉으로만 괜찮아 보이는 거지 완전히 중환자였다. 당장 싸우면 온몸의 상처가 곧바로 터져 버릴 게 분명했다.

“거, 아가씨, 안에 들어가 있어.”

복부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던 헌터가 빈 치료제 병을 버리며 말했다.

“지금 싸우면 죽어요!”

“싸우다 죽는 게 헌터의 일이야.”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그들은 헌터이기 이전에 환자였다.

“곧 다른 헌터가 올 거예요. A급 헌터들도 올 거라고요!”

“못 와.”

헌터의 눈이 저 멀리 전방을 향해 있었다. B급조차 거의 다 전방으로 몰린 상태임에도 저곳은 아비규환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상태에서 A급 능력자가 후방까지 올 가능성은 없었다.

“그나마 내가 가야 돼. A급이니까.”

운이 좋게 후방까지 실려 왔던 A급 헌터는 단검을 꺼내 들며 뱀파이어를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그런 헌터를 하예진은 잡을 수 없었다.

‘어째서…….’

떠나가는 헌터를 보며 하예진은 그런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목숨을 걸고 일하는 게 헌터라는 건 그녀도 알았다. 그래서 던전에서도 목숨을 걸고 싸웠고.

하지만 이건 그저 목숨을 버리는 행위였다. 그만큼 A급 이상과 그들 사이에는 아득한 격차가 있었다.

“크아악!”

그때, 한 마리의 뱀파이어가 쓰러졌다.

“잡았다! 다른 놈 잡으러 가!”

한 마리를 잡은 헌터들이 다른 뱀파이어를 잡으러 달려갔다.

그리고 헌터들이 떠난 자리에는 족히 수백은 넘는 시체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모르겠어.”

그녀는 그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여기에 있는 대다수가 C, D급이었다.

B급이 같은 B급 몬스터에게 다 같이 덤비는 건 이해할 수 있었다.

원래 게이트의 사냥 방식이니까.

A급 하나를 잡으려고 수십에서 백여 명의 B급이 달려드는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교본에 나와 있으니까.

근데 C급들이 A급을 잡으려는 건 절대 이해할 수 없었다.

촤악!

그녀의 앞에 헌터 한 명이 떨어졌다. 아까 치료해 줬던 B급 헌터였다.

그녀가 다급하게 스킬을 사용했다.

―리저랙션.

“어이, 나한테 말고 다른 사람한테 써야지.”

헌터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웃는 헌터의 허리 아래로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왜…… 왜?”

하예진이 저도 모르게 울먹이며 물었다.

이것 아무것도 없는 그저 개죽음이었다. 그런 그녀를 맘을 아는 건지 헌터가 말했다.

“그래도 거의 다 잡았어.”

그의 말대로 치료소 한가운데 떨어졌던 뱀파이어 중 한 명을 제외한 모든 뱀파이어가 잡혔다.

그리고 셀 수 없이 많은 시체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그녀의 주변으로 모두 시체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버러지 같은 것들!”

마지막 뱀파이어의 손짓에 5명이나 되는 헌터들이 한 줌의 핏물이 됐다.

“이야, 저놈은 S급인 것 같네? 맞나? 나 S급 몬스터는 처음 보는데.”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뭐 어차피 죽는 거 웃으면서 가겠다는데 아가씨 너무하네.”

남자가 자신을 계속해서 치료하는 하예진의 손을 붙잡았다.

“이제 그만하고 저기 싸우는 사람들이나 치료해 줘.”

“왜, 왜 싸우는 거예요?”

“뒤에 가족이 있으니까.”

그 남자의 말에 하예진의 말문이 막혔다.

“뭐, 사실 뒤에도 협회가 있으니까 괜찮을 것 같긴 한데. 혹시 모르잖아? 저 자식이 도망가면 큰일 난다고.”

남자가 하예진을 잡은 손에 힘을 줬다.

“그러니까 제발 다른 놈이나 치료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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