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가진 SS급 문방구-48화 (48/202)

#048

이기수가 진하의 뒤쪽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커다란 소라 모양의 건축물들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어, 폐품인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

“폐품?”

“본래 목적을 상실한 물품이었거든.”

진하가 쓰게 웃었다. 설마 이미 죽어 버린 소라게의 껍질이 이렇게나 진하의 의도에 딱 맞는 물품일 줄은 생각조차 못했다.

‘심지어 저렇게까지 커질거라고는 생각조차 못 했고.’

가격도 소라게가 죽은 덕에 매우 쌌다. 강도는 당연하게도 매우 상위.

그만큼 소라게라는 소환수가 얼마나 좋았을지를 생각하면 속이 쓰리기도 했지만 지금 입장에선 오히려 이게 더 좋았다.

‘그러고 보니 그놈은 언제 다 크냐.’

소라게를 생각하니 집에서 졸고 있을 병아리가 생각났다. 그 녀석 덕분에 소라게를 찾긴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변화가 없었다. 오히려 일반 닭보다도 성장이 느린 것 같았다.

물론 진하에게 보여 주었던 걸 생각하면 정말 쓸모가 있을 것 같긴 했지만 그게 언제가 될지 한숨만 나왔다.

“다른 건 더 없어?”

이기수의 말에 진하가 생각을 멈추고 대답했다.

“꽤 있어, 더 있는데 그건 좀 이따 올 거야. 우선 이것부터 받아.”

진하가 몇몇 불량 식품을 이기수에게 던졌다. 작은 효과를 가진 도핑 물품이었지만 없는 것보단 나았다. 그리고 다른 물품들은 부피가 커 블랙 길드를 통해 배달을 부탁한 상황이었다.

“다 쓴 거야?”

이기수가 돌려 물었다.

아마도 묻는 것은 포인트, 아무래도 옆에 있는 헌터들을 신경 써서 직접적으로는 묻지 않는 것 같았다.

“아니, 남았어. 근데 다 쓰고 싶어도 딱히 없더라.”

이기수 말대로 후보에서 골라낸 물품을 모조리 구매한 후에도 포인트가 남았다. 블랙 길드가 추가로 가져온 마석이 생각보다 많았으니까. B급은 판매해도 이제 포인트가 거의 안 쌓일 정도니까 말 다 했다.

다만, 살 게 없었다. 1차로 골라냈음에도 후보 중에서도 쓸모가 있는 아티팩트가 그리 많지는 않았다. 모두 나름 특색있고 좋은 것들이 많긴 했지만 그만큼 애매했다. 그래서 진하는 가장 쓸모가 있는 것 위주로만 구매해서 왔다.

‘쯧, 이런 상황이었다면 그냥 다 살걸.’

그런데 괜히 그랬나 하는 후회가 약간 들었다.

헌터도 많겠다. 미래를 대비해서 가장 쓸모있는 것만 가져왔더니 설마 협회가 이렇게 뒤통수를 칠 줄을 몰랐다.

‘뭐, 지나간 버스니까.’

이제 와서 되돌아가서 다시 사 오기에는 시간이 없었다. 원격으로 사기엔 큰 영향을 줄만 한 건 가격이 안 맞았고, 가격이 맞는 건 영향력이 그리 크지 않았다.

뒤적뒤적.

“야, 이것도 가져가라.”

진하가 아쉬움을 삼키며 이기수에게 우유 하나를 던졌다.

“뭔데? 아침밥?”

“아니, 먹으면 좀 더 살수도 있으니까.”

우유 아티팩트 한번 먹는다고 뼈가 엄청 튼튼해지진 않겠지만 그래도 먹는 게 나았다. 실제로 하루에 한 번씩 꾸준히 먹는 진하의 뼈는 효과를 보았으니까.

<업적: 강골.>

<매우 튼튼하고 유연성이 있는 뼈. 다른 뼈들보다 2배의 강도를 가진다.>

<포인트 1만 점을 획득하였습니다.>

“고맙다.”

이기수가 피식 웃으며 우유를 집어넣었다.

“몇 시간 남았어?”

“예상 시간으로는 약 두 시간?”

“그럼 한 시간 반 뒤에 보자.”

“어디 가려고?”

“약간 컨디션이 안 좋아서.”

그 말을 남기고 진하가 멀어졌다.

사람들이 없는 곳을 향해.

* * *

1시간 40분 뒤, 전투 시작 20분 전.

“좀 늦었네.”

이기수가 그의 곁으로 다가온 진하를 보며 물었다.

“어, 조금 늦었다.”

“근데 괜찮냐? 얼굴이 새하얀데?”

“컨디션은 나쁘지 않아.”

그렇게 말하는 진하의 안색은 생각보다 좋지 않았다.

하지만 이기수가 뭐라 하기도 전에 진하가 말을 가로챘다.

“온다.”

진하의 시선이 저 멀리 수평선을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수평선 너머 보이는 아주 작은 점.

“박쥐 무리라…….”

망원경을 통해 본 몬스터들은 전형적인 흡혈귀의 모습다웠다.

옆에서 같이 망원경을 통해 무리를 지켜보던 이기수가 질린 목소리로 물었다.

“저 정도 규모면 어느 정도 될까?”

“글쎄? 겉으로 보이는 규모로 봐서는 대충 1만?”

“많네. 아니, 그래도 유럽보단 낫나?”

“거긴 어떤데?”

“어제 보고 온 것만 하면 대충 50만이야.”

“거기도 징글징글하겠네. 그래도 거기가 더 낫지 않아? S급 이상은 꽤 있잖아.”

그에 비해 여기는 SS급으로 예정된 헌터는 이기수 단 한 명뿐이었다.

거기다 뱀파이어는 종족상 랭크는 무조건 B급부터 시작된다는 걸 생각하면 유럽보다 최악이었다.

후우웅!

그 순간 뒤쪽에서 커다란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그들의 머리 위로 날아가는 수백 개의 미사일.

“해 준다던 지원인가?”

생각보다 양이 많았다. 협회에서 방해할 걸 생각하면 잘해야 수십 발 정도로 생각했는데 육안으로만 봐도 끝없이 이어지는 행렬이 수백 발은 넘어가는 것 같았다.

“잘하면 타격 좀 주겠는데?”

미사일 정도면 B급 몬스터라도 꽤 타격을 줄 수 있을지 몰랐다. 죽이는 건 거의 불가능해도 타격 정도만 돼도 나쁘지 않았다.

지잉―

진하가 그런 생각을 하기 무섭게 박쥐 무리에서 수십 개의 얇은 선이 뻗어져 나왔다.

붉은색을 띠는 그 선들은 마치 두부라도 자르듯 미사일들을 토막 냈다.

콰과광! 쾅!

순식간에 폭발하는 미사일들.

대부분의 미사일들은 박쥐 무리 근처에도 오지 못한 채 거의 다 요격됐다.

“쯧, 안 되나?”

이기수가 그 모습을 보며 혀를 찼다.

그나마 몇몇 미사일은 박쥐 무리 근처에서 폭발하는 게 보였지만 그렇게 큰 타격을 줄 것 같진 않았다.

“원거리 공격은 저 선으로 요격하는 건가?”

진하가 계속해서 거의 끝나가는 미사일 행렬을 보며 턱을 쓰다듬었다.

“기수야, 어제 배달 왔던 거 설치 끝났어?”

“그거? 끝나긴 했는데 고작 그걸로 될까?”

진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될거야. 아니 오히려 미사일보다 이게 더 나을 것 같아. 지금 바로 쏘라고 해.”

“아직 너무 먼데?”

“아티팩트잖아. 더 멀리 나갈 거야. 그리고 오히려 중간에 터지면 좋고.”

“일단 알았어.”

치익―

“준비된 헌터들 바로 쏘세요.”

이기수의 명령이 떨어지자 해안가에서 약 수백 개의 빛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절경이네.”

촥촥촥촥!

쏟아지는 빛무리들을 보며 진하가 감탄했다.

빛무리는 빠르게 박쥐 무리를 향해 나아갔고, 박쥐 무리에서는 또다시 붉은 선이 튀어나왔다.

“펑.”

쏴아아아!

진하의 말에 맞춰 조각조각 나는 빛무리, 붉은 선이 채 닿기도 전에 수천 개로 나뉜 불빛이 박쥐 무리를 향해 떨어졌다.

후두둑, 후드득!

빛무리를 직격당한 박쥐들이 떨어지는 게 보였다. 이 먼 거리에서 육안으로 보일 정도면 적어도 수백은 떨어진 것 같았다.

“하, 아무리 아티팩트라지만 폭죽이 이렇게 쓸모가 있을 줄이야.”

이기수가 기가 찬 목소리로 말했다.

“정보 확인 안 했어?”

“하기야 했지. 근데 그렇다고 해도 미사일보다는 못하다고 생각했지.”

“못한 거 맞아. 개당 폭발 범위는 없다시피 하니까. 파괴력은 비슷하겠지만 그래서 아마 떨어진 것도 죄다 B급일걸?”

촥촥촥촥!

진하가 문방구에서 챙겼던 폭죽 아티팩트에 대한 설명을 상기해 냈다.

<50연발 폭죽: 순식간에 수많은 폭죽이 쏘아진다. 쏘아진 폭죽은 공중에서 마치 분수처럼 퍼져 시선을 현혹한다. 하지만 닿으면 화상으로 안 끝날걸?>

일반 폭죽의 순간 온도는 약 3천 도, 미사일의 폭발 온도도 약 3천 도였다.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폭죽은 한순간에 사그라들고 미사일은 충격과 함께 넓은 범위를 타격한다는 점이 달랐다.

그래서 사실 진하도 이 폭죽에는 그리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뱀파이어 쪽에서 배리어만 쳐도 쓸모가 없어지니까. 그저 그래도 조금은 도움이 되겠지 해서 가져왔고, 군부대의 미사일 포격을 들었을 때는 거의 쓸모가 없겠구나 싶었다.

“저기 저 붉은 선 쏘는 보스 몬스터가 누군지는 몰라도 선택을 잘못했지.”

얇게 나와 커다란 미사일을 요격한 붉은 선, 그게 실착이었다. 확실히 효율적인 방법이었지만 미사일과 달리 수천 개의 빛으로 조각나 버리는 폭죽에는 전혀 효과가 없었으니까.

“그래도 폭죽보단 미사일에 직격 됐으면 더 좋았을 텐데.”

이기수가 아쉽다는 듯 말했다. 확실히 그의 말대로 미사일이 제대로 폭발했다면 더 많은 뱀파이어가 떨어졌을 것이다. 무려 수백 발이나 되는 미사일이었으니까.

“수백 마리라도 준 거에 감사해야지. 이걸로 수백 이상은 살 테니까.”

“그건 그렇지, 그냥 아쉽다는 거야. 그나저나 너 아까 전부터 뭐 하고 있는 거야?”

촥촥촥촥!

이기수가 아까부터 촥촥 소리를 내며 카드를 섞는 진하를 보며 물었다.

“보면 모르냐, 카드 섞는 중이지.”

“아티팩트냐?”

이미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이기수가 진하의 기행을 보며 물었다.

“어, 근데 몇 장 못 써, 완전 랜덤이고.”

촥촥촥촥!

진하가 카드를 섞으며 말했다.

“그건 또 뭔데?”

진하가 말 대신 아티팩트 설명 창을 이기수에게 보여 줬다.

<카드 최소 제한: 40장 이상.>

<1턴간 자신의 공격 후, 1턴간 강제적 수비.>

<강제로 승부 중단시 페널티 발동.>

“페널티?”

“좋은 거나 뽑히길 기도해라, 이거 49장밖에 없다.”

40장이나 되는 카드를 구입해야 겨우 발동 가능한 아티팩트였다.

무작위라는 점이 가장 큰 단점 중 하나지만 잘만 하면 수천은 더 살릴 수 있을지도 몰랐다.

촥촥촥촥!

“후, 승부다! 듀얼을 스타트!”

촤좌자작!

모든 카드를 섞은 진하의 눈앞에 8장을 카드가 떠올랐다. 카드를 확인한 진하는 빠르게 카드를 훑은 뒤 카드 두 장을 뽑아 뒤집었다.

“카드 두 장을 뒤집어 놓는다.”

진하의 말에 허공으로 뒤집혀져 놓이는 카드 두 장.

“그리고 오크 전사와 엘프 궁수를 소환하지.”

<오크 전사: 강력한 힘을 가진 오크 전사. 소환 시간: 1시간.>

<엘프 궁수: 빠른 속사를 가진 엘프 궁수. 소환 시간: 1시간.>

또 한번 카드 두 장이 사라지며 진하의 앞에 2미터를 넘어가는 소환수 두 개체가 소환됐다.

“턴을 넘기지.”

“지금 누구랑 얘기하냐?”

진하의 모습을 본 이기수가 황당한 표정으로 진하를 바라봤다.

저렇게 얘기하는 게 아티팩트의 제한인 건가 싶었지만 진하의 표정을 보면 딱히 그런 것 같진 않았다.

“누구긴 누구야, 저기 오는 몬스터들 수장이지. 그리고 원래 이게 국룰이야.”

진하가 식은땀을 흘리며 말했다.

턴제 카드 게임이라 상대를 보스 몬스터로 지정하긴 했는데 설마 이런 효과가 있을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설마 상대 보스와 영상통화가 되는 기능이라니…….

-비앙카: 이건 뭐지? 거기 너는 누구냐!

-비앙카: 이게 무슨 마법이냐! 뭐야! 왜 갑자기 마법 사용이 안 되는 거야!

<적에게 턴이 넘어갔습니다.>

<적 턴 남은 시간: 10초.>

“야, 큰 거 하나 오겠다.”

“뭐?”

콰르릉!

진하가 말을 끝내기 무섭게 핏빛으로 물든 허리케인 하나가 박쥐 무리에서 튀어나왔다.

“미친!”

파지지직!

이기수가 다급히 전격을 모았다.

“잠깐만 기다려.”

진하가 이기수를 제지했다.

“함정 카드 오픈, 남들보다 색다르고 빠른 방어막.”

우웅!

진하의 말과 함께 뒤집어진 카드 하나가 빛으로 산화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진하를 향해 날아오던 허리케인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기수는 그 모습에 감탄하며 진하를 바라봤다.

고작 카드 한 장에 강한 공격을 쉽게 막아 낼 정도면 어쩌면 커다란 타격을 줄지도 모르니까.

앞서 진하가 소환했던 몬스터들 또한 겉모습과 달리 엄청나게 강할지도 몰랐다.

“미안하지만 개패다.”

곧바로 진하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이기수의 생각을 부정했다. 분명, 이 카드 더미 중에는 이기수가 생각하는 그런 카드가 있긴 하다.

그래서 진하도 이거다! 하고 바로 구입해서 이렇게 쓰는 거니까. 근데 막상 써 보니 생각보다 너무 안 좋았다. 설명으로는 몰랐던 단점이 너무 많았다.

움직일 수 없다. 아마도 이건 진하만 해당하는 듯했다.

턴제라서 무조건 한 번씩 번갈아 가며 싸워야 했다.

가장 큰 단점, 뽑히는 카드가 무작위다.

현재 진하의 패는 개패 그 자체.

아까 소환한 두 마리의 소환수 역시 낮은 랭크의 소환수였다. 진하가 손에 들린 카드를 주욱 훑어봤다.

<소생>, <증식>, <치유>, <파멸 군주의 오른손.>

당장 쓸 만한 카드가 아무것도 없었다.

거기다 박쥐 무리의 속도가 갑자기 더욱 높아지며 빠르게 해안선으로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로 인해 계산상 뽑을 수 있는 턴은 겨우 1번. 이번이 마지막이었다.

“내 턴이다. 카드를 하나 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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