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7
“맞다, 너도 있었지.”
병아리의 존재를 인식한 진하가 똘망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병아리를 보았다.
문방구가 해금되고 유일하게 살아있었던 생물체이자 소환수.
생각해 보면 벌써 그때로부터 꽤 시간이 지났다.
‘그러고 보니 소환수 중에 변신형도 있었던 거로 기억하는데.’
헌터 중에는 소수지만 사육 능력을 가진 존재들 또한 있었다. 기본적으로 그들은 능력의 각성과 동시에 자신의 동반자이자 영혼의 분신인 소환수가 생겨난다.
보통은 그 소환수를 이용하여 전투를 벌이거나 그 외 사육 스킬로 길들이는 몬스터를 전투에 활용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중에는 전투 외에는 매우 작은 크기로 있는 소환수도 있다고 들었다.
‘혹시…….’
보통 닭의 성장은 최소 한 달만 돼도 성체로 성장한다. 그렇다면 혹시 아티팩트이자 소환수인 병아리는 더 빠르게 성장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도 처음 구매했을 때와 달리 똑같은 모습이기는 하지만 꽤 커진 상태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좋은데 말이야.’
변신형이라 전투에만 써먹을 수 있다면 굳이 성체가 아니어도 상관은 없었다. 전투에만 가능하면 되는 거였으니까. 그렇게 된다면 하예진에게 꽤 도움이 될 듯싶었다.
전투가 진행되면 진하가 그녀를 세세하게 챙길 수는 없으니까.
“감정.”
진하가 병아리를 바라보며 시스템 창을 띄웠다.
<노란 병아리: 매우 건강해진 판매용 병아리. 하지만 방심은 금물, 다 클 때까지 잘 먹여야 한다. 특징: 머리가 뛰어나 알아서 잘 큰다.>
“쯧.”
그럼 그렇지, 진하의 생각대로 될 리 없었다. 시스템 상 병아리의 모습은 건강해진 것 외에는 변화가 없었다.
겉으로도 변화가 없고 시스템 상으로도 변화가 없다면 현재는 쓸모가 없다는 뜻이었다.
“혹시나 했는데.”
아무래도 너무 많은 기대를 한 듯싶었다.
“하아…… 그럼 어떻게 하지.”
원점으로 돌아온 진하는 한숨을 푹 쉬었다. 병아리를 보다가 다시 생각난 거지만 하예진이 제일 걱정이었다.
안 데려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그녀의 옆에 있을 수도 없는 상황.
“보호가 되는 아티팩트가 있던가…….”
예전에 훑어봤던 아티팩트들을 생각해봐도 딱히 그런 건 보이지 않았다.
공격용이나 치유는 있을지언정 보호하는 아티팩트는 그의 기억상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삐약!
그때, 병아리가 진하의 다리를 쪼았다.
삐약! 삐약!
“응?”
진하의 바지를 잡아당기는 병아리, 진하는 뭔가 싶어 병아리를 내려다보니 병아리가 총총 걸어가 쓰레기통을 툭툭 쪼아댔다.
“왜? 거기 뭐 있어?”
뭐가 있을 리 없었다. 애초에 저 쓰레기통은 진하가 쓰지 않는 쓰레기통이었다. 들은 거라곤 예전에 진하가 버렸던 죽어버린 소라게 통 정도였다.
삐약!삐약!
쓰레기통을 계속해서 쪼는 병아리. 그런 병아리를 보며 진하가 쓰레기통을 열어 보았다.
하지만 역시나 쓰레기통에는 죽은 소라게의 껍질이 들은 통뿐이었다.
“뭐 어쩌라는 거지?”
혹시 냄새가 심하게 나나 싶어 냄새를 맡아 보았지만 전혀 냄새가 나지 않았다.
애초에 소라게를 일반 쓰레기통에 버린 이유도 껍질 속에 있어야 할 소라게 시체가 없기에 버렸다.
“아, 맞다. 그러고 보니 비워야 하는데.”
쓰레기 상태라도 아티팩트는 아티팩트, 아티팩트화를 푼 뒤에 버린다는 게 여지껏 깜박하고 있었다.
“내일 버려야겠다.”
현재는 아티팩트화 상태로 문방구를 바꾼 상태라 곧바로 바꿀 수도 없었다. 진하는 또다시 잊지 않기 위해 카운터 위에 쓰레기통을 올려다 놓았다. 이렇게 눈에 잘 보이게 놓으면 잊어먹지 않을 수 있으니까.
“자, 그럼 다시 찾아보자.”
진하는 곧바로 시선을 돌려 아티팩트를 다시 한번씩 살펴보기 시작했다.
“흠, 이건 괜찮고, 이건 별로고…….”
이리저리 아티팩트를 살펴보는 진하, 하지만 생각처럼 좋은 아티팩트는 거의 없다시피 했다. 치유 아티팩트가 있더라도 미약한 수준이거나 제약이 심했고, 보호하는 아티팩트도 마음에 드는 게 없었다. 그나마 공격하는 아티팩트가 후보로 추릴만한 게 많았지만.
“일단 이렇게 인가?”
1차 적으로 후보를 골라낸 진하가 곰곰이 아티팩트들을 하나씩 비교하기 시작했다. 사실 마음 같아서는 모두 다 사버리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포인트가 제한되어 있었다.
‘120만이 생각보다 적네.’
많은 수치였는데 전쟁용이라고 생각하니 꽤 적은 편이었다. 물론 오늘 밤에 추가로 마석이 도착하기는 하겠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이걸 모두 살 수는 없었다.
텅그렁!
그때, 뒤쪽에서 물건 떨어지는 소리에 진하가 다급히 몸을 뒤로 빼며 통이 떨어진 곳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카운터 아래로 떨어진 쓰레기통과 카운터 위에 놓여 있는 병아리가 보였다.
땅바닥에 흩어진 톱밥과 병아리를 본 진하가 인상을 찌푸렸다. 쓰레기통에서 쏟아진 소라게 통 중 일부는 포장이 뜯겨져 톱밥이 흩어진 상태였다.
“아, 진짜…… 저긴 또 어떻게 올라간 거야.”
병아리를 보며 혀를 찬 진하가 카운터로 다가가 쓰레기통을 주운 뒤 톱밥이 담긴 곽을 붙잡았다.
<소라게 통을 감정하시겠습니까?>
역시나 그 순간 떠오르는 문구.
“아니.”
진하가 인상을 찌푸리며 거부했다. 이미 한번 확인했기에 굳이 한 번 더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소라게 통: 소라게가 들어있는 통, 그 안에는 키울 수 있는 소라게가 존재한다. 하지만 이미 소라게는 죽어있다.>
‘그러고 보니 이건 쓸모도 없는데 왜 판매되는 거지?’
순간 그런 의문이 들었다. 이미 아무 곳에도 쓸모가 없는 통조차 아티팩트라니, 뭔가 웃겼다.
진하는 피식 웃으며 통들을 주워 담았다. 우선 통은 다시 쓰레기통에 넣었고, 톱밥은 쓸어서 한곳에 모았다.
“그러고 보니 확실히 옛날에 많이 키우긴 했지.”
진하가 톱밥 위에 있는 소라게 껍질을 보며 피식했다. 몬스터가 나타나기 전 아주 어릴 때, 부모님을 졸라 문방구에서 소라게를 샀던 생각이 났다.
“그나저나 이건 꽤 예쁘네?”
진하가 예쁜 모양을 한 소라게 껍질을 집어 들었다.
<소라게 껍질을 감정하시겠습니까?>
“어?”
아까와는 문구가 달랐다. 소라게 통이 아니라 소라게 껍질이라니…….
“아티팩트 감정.”
<소라게 껍질: 소라게가 죽고 남은 껍질, 매우 단단하다. 그런데 소라게는 어떻게 이렇게 작은 공간에 들어갈 수 있는 걸까? 혹시 소라 껍질이 늘어나는 건 아닐까?>
문구를 읽은 진하가 헛웃음을 지었다. 소라게 껍질이라니, 전혀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아티팩트였다. 설마 통과 소라게 껍질이 별개의 아티팩트였다니…….
“이거 통이랑 별개였어?”
진하가 소라게가 들어 있지 않은 빈 통을 집어 들었다. 하지만 아무런 문구도 나타나지 않았다.
“뭐지?”
진하가 소라게가 들어있는 통을 집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문구가 나타났다.
“설마…….”
그러고 보니 구슬을 살 때도 이런 일이 있었다. 묶음으로 산 구슬을 각각 하나씩 감정할 때에는 같은 문구였지만 색에 따른 추가 문구가 있었다. 그때는 그냥 그렇구나하고 넘어갔는데 설마 이런 식으로 설명이 바뀔 줄은 꿈에도 몰랐다.
‘거기다 이거, 방어 아티팩트야.’
진하가 찾던 방어형 아티팩트였다. 정확한 기능은 한번 확인해봐야겠지만 모호한 설명이라도 진하가 원하는 부분과 비슷한 느낌을 내는 아티팩트는 이게 최초였다.
삐약!
고개를 돌려보니 병아리가 자랑스럽다는 듯 진하를 보며 삐약거리고 있었다.
“미친, 이거 요물이네.”
* * *
이틀 뒤 새벽.
인천에 도착한 진하와 하예진이 바닷가를 향해 걸었다. 이미 바닷가 주변에는 여러 헌터들이 저마다 무기를 정비하고 있었다.
‘분위기가 무겁네.’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게이트에서 싸웠던 것과는 다르니까.
게이트나 던전에선 죽어 봐야 자신 또는 동료지만 이곳이 뚫리면 가족들이 죽는다.
그런 사실이 마음가짐을 더욱 무겁게 만들었다.
“예진아, 이거 받아.”
한참을 걸어가던 진하가 소라 껍데기를 그녀에게 넘겼다.
“쓰는 방법은 기억하지?”
“응.”
“아마 전투 자체는 하루 안에 끝나겠지만 그만큼 다치는 사람도 많을 거야.”
“나도 전방에서 싸우면 안 돼?”
“안 돼. 고집부리지마. 힐러의 역할을 해야지. 그리고 아직 랭크도 낮잖아.”
아무리 급성장 중이라지만 그녀는 아직 최전방에서 싸우기는 무리였다.
무엇보다 전형적인 힐러 스킬만 각성해서 전투력이 떨어지기도 하고.
“그럼 준비 부탁할게.”
진하는 하예진에게 간단히 부탁한 후 더욱 앞으로 나갔다. 앞으로 갈수록 줄어드는 헌터와 그와 반대로 높아지는 랭크, 그리고 그 끝에 위치한 지휘 막사 하나.
“왔냐?”
지휘 막사에서 몇몇 헌터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이기수가 진하를 맞이했다.
“어, 그래. 근데 이게 다야?”
아무리 생각해도 헌터들이 대부분 동원되었다고 보기엔 적은 숫자였다. 협회에 등록된 헌터만 해도 약 40만 명이었는데 그런 것 치고는 눈에 보이는 규모는 생각보다 작았다.
“뭐, 도망간 놈도 있고, 협회에서 우리 쪽 게이트도 터질 수 있다고 안 보낸 것도 있고.”
“토사구팽?”
“글쎄, 그거랑은 좀 다르지 않을까? 그리고 이 정도도 많은 거야. 추정 10만 명 정도는 된다.”
그렇게 말하긴 했지만, 그의 얼굴은 씁쓸해 보였다.
하긴 그럴 수밖에 없었다. 헌터로 등록된 사람들 중 반의반 정도만 왔다는 소리였으니까.
“A급은?”
“8천 명.”
“그래도 A급은 많이 왔네.”
등록된 헌터 4만 명 중에 8천 명이면 나쁘지 않았다.
“그럼 군인들 지원도 없냐?”
“아니, 그건 그나마 있어. 송준하 씨가 힘쓴 모양인데?”
“뭐?”
“그 사람 생각보다 수완이 좋아.”
이기수도 처음에 군인들이 폭격을 지원해 준다 했을 때 믿지 못했다.
애초에 협조적이지 않은 곳이기도 했고 그곳에 관한 것도 협회 소관이었으니까.
하지만.
―전투 시작 전 폭격 지원이 있을 겁니다.
몇 시간 전에 송준하에게서 온 전화였다.
그 소리에 이기수는 황당하기도 하고, 또 어이가 없기도 했다.
그가 협회에서 일을 벌였다 해도 며칠 되지 않았을 텐데, 벌써 그 정도까지 권한을 획득했다는 건 수완 자체가 장난이 아니라는 소리였으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인재를 찾은 게 신기하단 말이야. 어떻게 찾은 거야?”
“음…….”
이기수의 물음에 진하는 입을 다물었다.
왜냐하면, 진하도 거기까지 할 거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애초부터 열매를 맺기 전 나무였던 건가?”
“무슨 소리야?”
“아무것도 아냐.”
아무래도 나무가 될 싹이 아니라 이미 나무였던 것 같았다.
다만 계기라는 비료를 받지 못해 열매를 맺지 못했던 나무.
‘다시 생각해 보니 잡음 없이 빠르게 협회장까지 갔었지.’
게이트 1차 폭주 당시 많은 사람이 죽었지만 반대로 많은 영웅이 탄생했었다.
그리고 그중 송준하는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 협회장이 됐고.
당시 진하는 그저 강한 능력과 영웅적 모습을 통해 협회장이 됐다고만 생각했었는데 단순히 그게 다가 아닌 모양이었다.
아마도 진하가 모르는 또 다른 무언가 있는 거겠지.
‘뭐, 좋은 게 좋은 거니까.’
“그래서 준비는 다 됐어?”
“사실 준비랄 것도 없지. 초반에 나랑 군대가 폭격하고 그다음은 난전밖에 더 있냐?”
“그건 그렇지.”
휘익! 탁.
“이게 뭐냐?”
진하가 던진 물품을 받은 이기수가 물었다.
“선물.”
진하의 말에 이기수가 손을 펴 봤다. 그곳에는 작은 물체가 하나 있었다.
보자마자 아티팩트라는 걸 깨달은 이기수가 정보를 확인했다.
“정보 확인.”
<딱딱이: 친구들을 놀랠 때 쓰는 장난감. 근데 순간 전압이 미친 듯이 높다고 한다. 이거 살인 무기 아냐?>
“네가 부족한 게 출력이잖아. 도움이 될 거야. 근데 그거 내구도 약하다?”
“하, 이딴 것도 있었냐?”
이기수가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확실히 이건 그에게 도움이 되긴 했다.
순간 출력이 약한 이기수의 특성상 그는 큰 공격을 준비할 때마다 적지 않은 시간을 소모하곤 했다. 그리고 그건 정신력의 소모로 이어졌고.
그런 점에서 진하가 던져 준 이 아티팩트는 몇 번이나 쓸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확실히 도움이 될 것 같았다.
“그런데 저것도 네 작품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