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6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
송하나가 진정된 걸 느낀 진하가 말했다.
“좀 괜찮아?”
“그래.”
송하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진하는 그녀가 멀쩡하지 않다는 걸 알았다.
마인드 쇼크, 상대방과 자신을 정신적으로 잇고 모든 네거티브한 감정을 쏟아붓는 기술.
텔레파시 능력자의 자폭기나 다름없는 걸 썼으니 멀쩡하면 그게 더 이상한 거였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멀쩡해질 때까지 기다려 줄 순 없었지만.
[여기는 알파, 중앙 점거 완료.]
[여기는 베타, 입구 장악 완료. 하지만 적들이 계속 몰려온다.]
[베타, 여기는 알파. 구역별로 차단막을 내렸다.]
때마침 무전기로 모든 상황이 정리되어 간다는 무전이 들려왔다.
“가자.”
진하가 송하나의 손을 붙잡아 일으켰다.
가까스로 일어난 송하나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쓰러져 있는 후안에게 다가갔다.
그러고는 후안을 잠시 바라보다가 진하를 바라봤다.
“잠깐 입술 좀 빌릴게.”
“뭐?”
쪽.
진하가 반응할 새도 없이 진하의 입술을 훔친 그녀가 후안의 목을 베었다.
그러곤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는 진하를 향해 말했다.
“입술이 더러워져서 깨끗이 할 필요가 있었거든. 이제 가자.”
그 말과 함께 송하나가 후안의 목을 가지고 밖으로 나갔다.
혼자 남은 진하는 멍하니 그녀를 따라 시선을 옮기다 이내 정신을 차리고 그녀를 따라갔다.
“이렇게 쉽게 끝날 거라곤 생각도 못 했어.”
그녀가 옆으로 다가온 진하에게 말했다.
“글쎄, 쉽다고 말할 정도는 아니지 않아?”
진하의 말대로 쉽다고 하기엔 곳곳에 그녀가 고용한 용병 또는 조직원들이 보였다.
“이 정도면 거의 거저먹은 거야.”
그녀의 말에 곰곰이 생각하던 진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이 정도면 싸게 먹힌 거라 볼 수 있었다.
아무리 용병을 이용했다지만 이곳은 블랙 길드 중에서 우위를 다투는 정보 길드의 가장 큰 분파였다.
그곳을 이 정도 피해로 먹은 건 거저먹은 거나 다름없었다.
송하나, 아티팩트, 비밀통로, 이 세 가지가 있어서 가능했다.
정공법이라면 절대 불가능했겠지.
“이 방법은 더 이상 못 쓴다는 거 알지?”
진하의 말에 송하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작전은 어디까지나 후안의 분파에만 사용 가능한 방법이었다.
후안이 그녀를 욕심냈고, 그가 머무는 비밀 아지트가 원래 송하나 분파의 아지트였기에 사용 가능한 방법이었다.
“지금부터는 정공법으로 상대해야 할 거야.”
진하가 아티팩트를 줬기에 무력적으로는 그리 꿀리지 않을 것이다.
공격을 난사할 수 있을 만한 아티팩트가 있다는 건 그만큼 메리트가 있는 거였으니까.
하지만 반대로 그게 다는 아니었다.
남은 두 분파를 상대로 그녀가 제대로 된 보스라는 걸 인식시키지 못한다면 의미가 없었다.
“잘할 수 있겠어?”
“걱정 마.”
진하의 말에 송하나가 힘있게 말했다.
그리고 힘있게 말하는 모습을 보며 진하는 속으로 감탄했다.
‘벌써 멀쩡해졌어.’
중앙으로 가까워지는 그녀의 모습은 어느새 멀쩡함 그 자체였다.
아까까지만 해도 자폭기를 썼다고는 생각조차 하기 힘들 정도로 의연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이렇게까지 독한데도 과거엔 실패했지.’
지금과는 달리 회귀 전 그녀는 모든 걸 잃은 패배자였다.
물론 독하다고 모든 게 해결되는 건 아니지만 진하는 문득 궁금해졌다.
어떻게 패배했길래 이렇게 독한 그녀의 눈빛이 그 당시엔 공허했던 건지.
하지만 더 이상 그 진실을 알 방법은 없었다.
“자, 준비됐으면 어서 가.”
어느새 중앙 가까이에 다다른 진하가 그녀의 등을 살짝 밀었다.
그녀는 온몸에 힘을 바짝 준 채로 조직원들이 기다리는 중앙으로 다가갔다.
꾸벅.
그녀가 다가가자 모든 조직원들이 고개를 숙여 그녀를 맞이했다.
“화면.”
그녀의 말에 조직원 중 한 명이 전자판을 조작했다.
그러자 차단된 구역 곳곳에서 화면이 나타났다.
화면에 나타난 것은 후안의 머리를 들고 있는 송하나.
“너희들의 보스는 죽었다.”
그녀가 CCTV로 차단된 구역의 조직원들을 보며 말했다.
CCTV 사이로 분노의 찬 모습이 보였다.
“어차피 너희들 중 하급 단원은 보스가 바뀐다고 문제가 되진 않을 거라 생각한다.”
어차피 중요 요직에 앉은 게 아니라면 공통 관리를 받는 게 현실이라 그들에게는 그리 바뀌는 게 없었다.
“간부들, 너희에겐 2가지 선택이 있다.”
잠시 침으로 메마른 입 안을 적신 그녀가 다시 말을 이어갔다.
“첫째, 죽은 후안에게 계속 충성하고 반기를 드는 것. 둘째, 나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것.”
화면 너머로 간부들이 고민하는 게 보였다.
이게 정상이었다. 애초에 블랙 길드라 칭해진 시점에서 신뢰란 찾기 힘든 거였다.
오히려 송하나 쪽 분파가 돌연변이에 가까웠다.
“어느 쪽이든 너희 자유다. 하지만 하나는 약속하지. 첫 번째에겐 무조건적인 죽음을 줄 것이고 두 번째에게는 공평한 기회를 주겠다.”
그것으로 그녀의 말이 끝났다.
그녀의 말이 끝나자마자 가장 먼저 반응을 보인 건 하급 단원이었다. 그들은 각자 무기를 내려놓은 채 손을 위로 뻗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뒤, 간부들의 대다수 또한 무기를 내려놓았다.
“날 선택한 사람은 절대 후회하지 않을 거다.”
그 말을 끝으로 화면이 꺼졌다.
마지막 말을 한 그녀가 화면이 꺼진 것을 확인하고 말했다.
“간부는 모조리 죽이고, 간부랑 같이 있는 하급 단원까지 모두 죽여.”
“네.”
그녀의 말에 조직원들이 중앙 밖으로 빠져나갔다.
“성장했네.”
“성장이 아니라 원래 이랬어.”
“근데 진짜 다 죽여도 되겠어?”
그녀의 분파 조직원들로만 모든 걸 해결할 수 없었다.
제대로 흡수하려면 사정을 아는 조직원을 한 명이라도 남겨야 했다.
“어차피 무력은 크게 문제가 안 돼. 중요한 건 신뢰지. 자기 분파를 배신하는 간부를 믿을 수 있을 리 없잖아. 차라리 이렇게 기회를 주는 척하고, 간부들을 모조리 죽이는 게 나아.”
“이미지와 실리 모두 챙기겠다?”
확실히 그녀의 말대로 뒤통수를 맞는 것보다는 낫긴 했다.
“자, 그럼 알아서 수습하고, 나머지는 맡겨도 되겠지?”
“네, 적어도 뒤통수는 맞을 일은 없을 거야.”
“그럼 잘 부탁한다. 그리고…… 아니다.”
‘여기서 굳이 말투가 바뀐 걸 지적할 필요는 없겠지.’
애초에 지적할 거였으면 처음에 둘이 있을 때 지적했었어야 했다.
그때야 충격이 가시지 않아서 그렇구나 하고 그러려니 했는데 지금 보니 그것도 딱히 아닌 듯싶었다. 거기다 이 상황에서 지적하기엔 너무 쪼잔해 보였다.
아무튼, 이제 최소한의 장치는 끝났다. 블랙 길드와 대기업, 송준하와 이기수.
협회를 뒤집기 위한 싹이 모두 심어졌다.
이제는 그 싹들이 꽃을 피우게 만들기까지 지켜보고 옆에서 도와주기만 하면 됐다.
‘아직 불안하긴 하지만…….’
진하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은 게 준비됐다.
다만, 그만큼 변수로 인해 준비가 많이 미흡하긴 했다.
그거야 물론 시간이 어느 정도 해결해 줄 것이긴 하지만 마음이 급한 진하의 입장에선 조금 불안했다.
휙! 휙!
‘지금은 다른 것부터 생각하자.’
고개를 털며 생각을 날려 보낸 진하가 머릿속에 새로운 생각을 집어넣었다.
어찌 됐든 다른 일들은 모두 기초 지반은 다졌다.
지금은 이제 한국으로 습격해 올 몬스터들을 상대할 방법을 생각해야 했다.
‘가장 피해가 적은 쪽으로.’
이기는 게 문제가 아니라 헌터들의 소모를 극단적으로 줄일 필요가 있었다.
누가 오든 상대 보스야 이기수가 상대할 거니까 패스.
진하가 할 일은 피해를 줄이는 일이었다.
* * *
“하아, 힘드네.”
일을 모두 마치고 문방구로 돌아온 진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송준하부터 시작해서 송하나까지 쉴 틈 없이 달려왔더니 깊은 피로감이 느껴졌다.
애초에 이런 일은 진하에게 맞는 일이 아니었다. 회귀 전 그저 평범한 헌터였을 뿐인 그가 회귀했다고 작전을 설계하거나 리더가 되는 일을 척척 해내는 게 더 이상한 거였다.
“그래도 해야지.”
깊은 부담이 왔지만 해야 했다. 이미 각자 자신이 맡은 자리에서 일을 잘 해내고 있었다. 송하나는 세력을 공고히 하고 있으며 이기수는 전선에 나가 지휘자이자 선봉으로서 방어선을 구축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진하 역시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했다.
“상태창, 포인트.”
<포인트: 1,205,024 포인트.>
약 120만 포인트, 장난감 총을 대량으로 구매했음에도 엄청난 양의 포인트가 모여 있는 상태였다.
“이걸 털어내야지.”
지금부터 진하가 할 일은 이 모든 포인트를 털어내는 한이 있더라도 헌터들의 피해를 줄일 수 있는 아티팩트를 찾아내는 것이었다.
“설마 이렇게 빠르게 터질 줄이야…….”
애초에 이 시기에 이런 식으로 게이트 폭주가 일어나고 뱀파이어 무리와 맞붙어서는 안 됐다.
이기고 지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아무리 몬스터들이 강하다 해도 전체 헌터 수를 생각하면 지는 건 불가능했으니까. 다만, 그로 인해 죽을 헌터의 수는 짐작하기 힘들었다.
‘아직 평균 헌터 랭크가 낮아.’
회귀 전 게이트 1차 폭주 당시와 비교하면 지금 헌터 들의 평균 수준은 낮았다. 분명 이번 전투에 헌터들이 동원될 것을 생각하면 확실히 엄청난 피해를 몰고 올지도 몰랐다.
그리고 그렇게 줄어든 헌터들 중에는 미래에 고위 헌터가 될 사람도 있을 게 분명했다.
‘막아야 돼.’
이번에 이렇게 큰 피해를 입으면 미래가 더욱 암울하게 바뀔지도 몰랐다. 미래에 필요한 예비 고위 헌터들을 지켜야 했다. 그리고 그걸 실행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건 이 문방구의 아티팩트였고.
‘순서를 정하자.’
가장 필요한 순서를 정해야 했다.
‘우선 필요한 것은 보호소.’
다친 헌터들을 보호하거나 치료할 수 있는 아티팩트를 찾아야 했다. 헌터들의 생존률을 높이는 게 가장 1순위이므로 이것부터 해결해야 했다.
‘그다음이 공격 물품.’
전황을 한방에 뒤집을 수 있는 물품이나 단체에 커다란 타격을 줄 수 있는 물품이 필요했다.
본격적인 전투 시작 전 숫자를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다면 큰 도움이 될 테니까.
‘마지막으로 내가 강해져야 돼.’
현재 한국에 존재하는 S급 이상은 헌터는 이기수가 유일무이했다.
하지만 이곳에 도착할 몬스터들 중 S급 이상은 100% 2명 이상이 존재할 것이다. 당장 뱀파이어를 이끄는 수장만 해도 S급 최상위에 속했으니까.
그렇게 되면 최소 한 명 이상이 비게 된다. 그럼 당연하게도 대학살이 시작될 거고, 이는 피해로 이어진다.
‘그걸 해결 할 수 있는 사람도 나고.’
당장 어디서 뿅 하고 S급 헌터가 나타나는 건 소설 속에서나 존재하는 거였다. 그렇다고 다른 A급 헌터 들 중에 S급을 잡아 둘 수 있는 헌터도 없을 것이고.
그에 반해 진하는 외적이지만 아티팩트를 활용할 수 있었다. 이를 이용한다면 분명 S급도 잡거나 버티는 수준까지는 해낼 수 있을 게 분명했다.
“자, 그럼 이제 찾아야지.”
아티팩트를 구분하고 필요에 맞는 조건도 모두 정했다. 이제 그에 부합하는 아티팩트를 찾기만 하면 된다.
삐약!
“응?”
그 순간 진하의 눈에 똘망똘망한 눈으로 진하를 쳐다보고 있는 병아리가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