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가진 SS급 문방구-44화 (44/202)

#044

“내용은 일부 바꿨지만 이건 진짜예요.”

전 세계에 있는 3대 게이트 중 유럽에 있는 제2 게이트의 폭주.

그로 인해 모든 헌터가 소집되어 이기수 또한 떠난 지 오래였다.

<앞으로 당신이 알고 있는 사실은 일부 쓸모없어질 겁니다.>

진하가 자신을 사서라고 칭했던 의문의 남자에게 받았던 쪽지.

그의 말대로 진하가 알고 있던 사실과 별개의 사건들이 터지기 시작했다.

동시에 터졌어야 할 유럽의 게이트 중 하나가 먼저 터져 버렸다.

“지금 제2 게이트의 몬스터 중 일부가 한국 쪽으로 향하고 있어요.”

대다수는 현재 유럽의 제2 게이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일부 몬스터가 탈출했고, 한국 쪽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당신이 봤던 일이 진짜로 일어날 수 있어요.”

“하지만 제가 뭘 할 수 있다는 거죠?”

“노력하세요. 그리고 행동해 주세요.”

정의 관념.

그의 신념이 강해질수록, 관철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렬해질수록 그는 더욱 강해질 것이다.

우선 그거면 된다.

애초에 지금 당장 그에게 바라는 건 없었다. 그는 어디까지나 미래에 사용한 카드였으니까.

“그리고 미안해요. 이런 걸 보여 줘서.”

진하의 말에 송준하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에요, 괜찮아요.”

송준하는 오히려 김진하가 고마웠다.

분명 환상에서 깬 직후 이게 모두 거짓이라는 걸 알았을 때는 황당함과 분노가 치솟았다.

하지만 완벽한 거짓이 아니었다.

게이트 폭주란 게 실제로 일어났고, 그중 일부가 한국을 향해 오고 있었다.

만약 평소와 같이 그저 살아가기만 했다면 분명 그는 환상 속에서와 같은 후회를 했을 게 분명했다.

비틀.

앞으로 나가려던 송준하가 비틀거렸다.

“괜찮아요?”

“네, 괜찮아요.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어서 이만.”

송준하가 다리에 힘을 줬다.

소집령이 떨어진 이상 예비 헌터들도 모일 게 분명했다.

당장 뭘 바꿀 순 없지만 우선 그들을 제외시켜야 했다.

그것부터 그가 해 나갈 수 있는 일을 해야 했다.

탁.

송준하가 나가고 셋만 남은 시점에서 송하나가 고갯짓했다.

그녀의 고갯짓에 가볍게 목례를 하고 방을 나가는 환상 능력자.

완벽하게 둘만 남게 되자 송하나가 진하에게 물었다.

“당신이 원해서 하긴 했는데 이걸 왜 한 거죠?”

송준하라는 인물이 인망이 좋다는 건 알았다.

협회를 뒤흔들기 위해서 하는 행동으로 그를 이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지만 너무 돌아갔다.

그냥 그를 도구로 이용하면 될 텐데 지금 진하는 그를 리더로 만들려 하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망을 제외하고는 쓸모가 없었다.

“그는 네가 아는 것보다 더 대단한 사람이야. 그리고 모든 일에는 절실함과 신뢰가 있어야 해. 도구로 이용하는 게 아니라.”

물론 진하는 송준하가 협회장이 되는 미래를 알고 있기에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거였다. 다른 사람이 보기엔 확실히 알 수 없는 사람에게 투자하는 것처럼 보이겠지.

“흠, 그럼 우리 관계는 신뢰 관계인가요?”

“아니, 절실함에 의한 계약 관계지.”

선을 긋는 진하.

그런 그를 보며 송하나가 혀를 찼다.

“새로운 정보는?”

“다가오는 몬스터의 종류는 뱀파이어 계열이에요. 그리고 예상 도달 시간은 앞으로 약 3일.”

“빠듯하네.”

“당신이 여기에 시간을 투자하지 않았다면 덜 빠듯했겠죠.”

송하나의 말에 진하가 혀를 찼다. 아쉽기는 그도 마찬가지였다.

마음 같아서는 천천히 그를 각성시켜야 됐는데 그러지 못했다.

그래도 일단 어느 정도 자극을 주긴 해서 나쁜 상황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아쉽긴 했다.

“뱀파이어라…….”

진하가 목을 매만졌다.

자신의 목에 상처를 남겼던 이슬라.

아마도 지금 한국으로 날아오는 뱀파이어는 대공이거나 전령일 가능성이 컸다.

12층 보스인 시안은 불가. 아마도 세력 싸움에서 진 대공이 도망쳤거나 시안의 전령으로 오는 경우라 생각되었다.

‘회귀 전에는 시안이 둘을 잡아먹었던가.’

가장 마지막으로 잡혔던 유럽의 보스인 시안의 경우 리비카와 비앙카가 인간을 도와 싸웠다는 자료가 있었다.

이슬라의 반응 또한 생각해 보면 대공끼리의 사이는 정말 극악일 게 뻔했다.

아마도 전령보다는 도망일 거라는 생각에 무게가 쏠렸다.

“특이 사항은?”

“몬스터가 지나간 공간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어요. 그리고 숫자 또한 증가하고요.”

“쯧!”

과거처럼은 되지 않을 것 같았다.

아마도 멀리 도망가 세력을 키우려는 것 같았다.

그렇다는 건 일단은 확실히 적이었다.

“3일, 3일 안에 대충 마무리하고 인천으로 가겠어.”

게이트가 있는 서울까지 오려면 인천을 무조건 지나야 했다.

거기서 요격해서 없애야 했다.

협회도 그걸 알기에 인천에 헌터들을 모으고 있는 중이었고.

“무장은?”

“모두 마치긴 했어요. 하지만 겨우 이걸로 될까요?”

송하나가 불안함을 감추지 못하고 물었다.

지금 진하가 하려는 일들은 너무나 급진적이고 급했다.

그가 급한 이유가 몬스터 때문인 건 알았지만 그렇다면 분파를 정리하는 건 그 이후로 미뤄도 될 텐데 진하는 그전에 해결하려고 하고 있었다.

“안 돼도 되게 해야 돼. 지금 아니면 기회는 없다고 생각해.”

유럽의 게이트가 터진 이상 한국의 게이트도 언제 터질지 몰랐다.

그때가 되면 혼란에 빠질 것이다.

지휘해야 할 협회 수뇌부는 도망가고, 각 그룹들 또한 도망간다. 그리고 블랙 길드가 날뛰게 된다.

그걸 막아야 했다.

그러기 위해선 정보 길드 내 송하나의 분파를 키워야 했다.

블랙 길드가 함부로 행동하지 못하게, 그리고 협회를 무너뜨릴 칼날이 되게.

“항암 그룹한테도 연락해. 오늘 바로 습격한다. 송하나 너의 역할이 뭔지는 알겠지?”

“알고 있어요.”

진하의 말에 송하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진하의 말을 따랐던 이유는 그가 말했던 계획이 실제로 현실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성공한다면 단번에 그녀의 분파의 힘이 강해지기도 했고.

“명심해, 네가 핵심이야.”

* * *

그날 밤.

한과 함께 송하나는 정보 길드의 아지트로 향했다.

“잠시 확인이 있겠습니다.”

입구를 지키던 조직원이 송하나를 멈춰 세웠다.

그녀를 멈춰 세우자 뒤에 있던 한이 살기를 뿜어냈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덜덜 떨면서 사과하는 조직원.

송하나는 손을 들어 한을 제지했다.

“됐어, 네가 무슨 죄가 있겠니.”

송하나가 씁쓸하게 말했다.

이게 그녀 분파의 위치였다.

다른 분파에게 무시당하고, 굴욕을 참아야 되는 위치.

“확인됐습니다.”

재빠르게 신원을 확인한 조직원이 문을 열었다.

그녀는 담담한 표정으로 문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 후로도 핵심부로 들어가는 중간중간 경계를 하던 모든 조직원이 그녀를 검문했다.

‘유치해.’

어떤 생각인지 모를 리 없었다.

전형적인 기 죽이기.

자신의 위치를 알고 알아서 기라는 무언의 압박.

하지만 그녀는 이 모든 행위를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익숙하기도 했고, 또 오늘 안으로 모든 게 결판날 거니까.

“오, 어서 와!”

아지트 가장 안쪽에 위치한 문을 열자 백발의 남자가 그녀를 맞이했다.

“오랜만이네요, 후안 님.”

“하하, 그리 딱딱하게 굴지 말라고. 편하게 불러 편하게.”

그녀에게 다가와 어깨를 두들기는 후안.

송하나는 더러운 기분을 꾹 참으며 그가 안내하는 자리에 앉았다.

“자, 그래. 우리 아가씨가 무슨 일로 나를 불렀을까?”

“그전에 드릴 게 하나 있어요.”

송하나의 손짓에 한이 들고 온 가방을 내려놨다.

“선물입니다.”

“선물?”

“네, 여기 조직원을 위한 간단한 선물이죠.”

지이익!

한이 가방을 열자 그곳에는 홍삼액이 가득 들어 있었다.

“수량은 약 150개 조직원들한테 돌리기엔 딱이죠?”

“흐음…… 선물? 굳이 이런 걸?”

“조금이라도 잘 보여야죠. 앞으로 함께할 테니까.”

송하나가 의미심장한 말을 내뱉었다.

그리고 한이 가방에 든 병 하나를 꺼내 벌컥 들이켰다.

“흐음…… 선물이라, 갑작스럽군. 그리고 유별나기도 하고.”

“뭐 어때요, 선물은 어떤 거든 간에 나쁜 건 아니잖아요?”

“그건 그렇지. 그럼 나도 한번 먹어 볼까, 같이?”

후안이 가방에서 홍삼 두 개를 꺼냈다.

그리고 하나를 송하나에게 넘겼다.

“좋은 건 같이 마셔야지. 그렇지 않나?”

“그렇죠.”

송하나가 빙긋 웃으며 홍삼을 벌컥 들이켰다.

“안 드시나요?”

“흠, 나는 나중에 먹지.”

후안은 그 말을 하곤 홍삼을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가져가라. 알아서들 나눠 먹어.”

그의 명령에 뒤에서 대기 중이던 조직원 중 한 명이 한에게서 가방을 받아 들었다.

“자, 그럼 이제 제대로 된 이야기를 좀 하자고? 설마 홍삼이나 주려고 나를 부른 건 아니겠지?”

“그럼 물론이죠. 근데…… 단둘이 이야기하고 싶은데요?”

“둘이?”

후안의 물음에 송하나가 고개를 끄덕이며 주변을 쳐다봤다.

후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다들 나가 봐.”

“비밀 호위까지도요.”

그녀의 말에 후안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설마 걱정되는 건 아니시겠죠?”

그녀보다 등급이 낮긴 했지만 그 역시 각성자였다.

그리고 그녀는 그 부분을 건드렸다.

“걱정이라기보단 철저한 거지. 어차피 비밀 호위는 없는 거나 마찬가지 아닌가?”

혀와 이를 뽑아 육성한 자들이었다.

비밀 유지에 문제는 없었다.

“중요한 이야기라 그렇습니다.”

“흠…… 좋아, 내가 한번 믿어 보지.”

그의 턱짓에 검은 그림자 몇 개가 문밖으로 빠져나가는 게 보였다.

‘능구렁이 자식.’

검은 그림자가 나가긴 했지만 아마 모두 나가진 않았을 것이다.

저건 어디까지나 생색내기, 아마도 한 명은 남아 있을 게 분명했다.

소인배 중의 소인배인 후안이 진짜로 모두 내보냈을 리 없으니까.

하지만 송하나는 굳이 그 부분을 지적하진 않았다.

“자, 이제 이야기해 볼까? 그나저나 참으로 잘 컸단 말이야.”

후안이 징그러운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말씀 감사해요.”

“허허, 지하 그 친구가 보면 아주 좋아하겠어. 딸이 이렇게 보스로서 조직을 잘 이끌어 나가니까.”

꾸욱.

아버지의 이야기에 그녀가 주먹을 꽉 쥐었다.

“자, 그래. 본론으로 들어가 볼까? 무슨 얘기를 하러 왔지?”

“아시지 않나요? 저희 분파 얘기죠.”

“분파라…… 그래, 요즘 많이 힘들지?”

“네, 그러니까 말하죠. 우리 통합하죠.”

“통합, 통합이라…….”

툭, 툭.

책상을 두들기는 후안.

그는 고민에 빠진 듯 가만히 책상을 두들기다 말했다.

“나쁘진 않지만 오히려 독이 되는 게 더 많은 것 같은데 말이야.”

지금 송하나를 제외한 세 개의 분파는 거의 비등비등했다.

물론 그의 분파가 그중에서는 제일 강하긴 했지만 여기서 송하나의 분파를 흡수하면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었다.

나머지 둘이 힘을 합칠 수 있으니까, 차라리 찢어 가지는 게 더 나았다.

거기다 갑자기 송하나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가 찜찜했다.

“명분과 정당성이 존재하죠.”

아무리 블랙 길드여도 모든 일에는 명분이 필요했다.

그냥 찢어 먹는 것보다 온전히 흡수하는 게 명분상으로 좋았다.

그리고.

“어차피 분파의 통합을 노리는 거 아닌가요? 저라는 명분과 충성스러운 A급 헌터만으로도 충분히 이득이잖아요.”

아무리 찢어 가진다 해도 그녀와 한은 가질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가 직접 넘어간다면 얘기는 달랐다.

가질 수 없는 걸 가지게 되는 거니까.

지금 그녀는 자신을 담보로 딜을 하고 있는 거였다.

“호오…… 확실히 거기까지 생각하면 나쁘지 않지. 하지만 그렇게 돼서 네가 얻는 게 뭐지?”

너무 그에게 유리했다.

그로 인해 송하나가 얻는 것? 고작해야 목숨이다. 그가 알기로 송하나는 목숨 때문에 이런 딜을 할 여자는 아니었다.

“간단해요. 동등한 관계.”

“동등한 관계?”

“당신의 밑이 아니라 동맹으로서 가자는 거죠.”

“그럼 난 받아들일 수 없는데?”

“아뇨, 받아들일 거예요. 왜냐면 그 동맹이 결혼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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