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3
“이기수는?!”
“먼저 현장으로 떠났어요.”
“젠장!”
진하가 이를 갈았다.
이런 상황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분명 게이트의 폭주까지 아직 시간이 많이 남은 편이었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게이트 폭주라니…….
“마석은!”
진하의 물음에 송하나가 답했다.
“지금 최대한 끌어모으고 있어요. 항암 그룹에서도 거들고 있으니까 금방 가지고 올 거예요.”
“D랑 C급도 괜찮으니까 가져오라 해.”
D와 C급은 이미 너무 많이 판매를 해서 효율이 좋지 않은 상태였다.
D급의 경우는 이제 최하급을 팔 경우 겨우 2포인트밖에 안 되는 수준까지 떨어졌으니 말 다한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 2포인트조차 필요한 시기였다.
“후, 침착하자.”
어차피 지금 진하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당장 진하가 움직인다고 도움이 될 수 있는 일도 거의 없었고, 도움이 되려면 가서도 안 됐다.
그가 계산한 시간상으로도 준비를 모두 마치고 가도 괜찮았다. 아직은 여유가 있으니까.
“다른 소식은 없어? 민간인은?”
“민간인은 모두 대피했죠. 그리고 한 가지 안 좋은 소식이 있어요.”
“뭔데.”
“만약 전선이 일정 이상 밀리게 된다면 도시 주위에 배리어를 친다고 해요.”
그녀의 말에 진하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녀가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해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진하가 너무나 잘 아는 작전이 그녀의 입에서 튀어나왔다는 점이 그의 인상을 찌푸리게 했다.
‘썩을 새끼들.’
배리어가 쳐지면 그때부터는 거의 고립이나 다름없었다.
몬스터가 나올 수 없게 된다는 점에서 피해의 확산을 막을 수는 있지만 반대로 말하면 그 안에 있는 인간은 포기한다는 소리였다.
즉, 최후의 보루.
배리어로 가두고 외곽부터 조금씩 소각하거나 폭탄을 떨구는 행위.
그걸 게이트 폭주도 아니고 벌써부터 사용한다는 건 단 하나를 의미했다.
그저 자기들의 안위만을 챙기려 한다는 뜻.
‘배리어가 작동된다면 무조건 다 죽는다.’
폭탄을 떨군다 해도 다 죽는 건 아니었다.
아마 이기수나 운 좋은 몇몇 A급 헌터들은 살아남겠지.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그건 몬스터도 마찬가지.
결국 배리어에 갇힌다는 건 몬스터들과 죽을 때까지 싸우다 죽는다는 의미였다.
“젠장…….”
속이 터질 것 같았지만 지금 당장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에 울화통이 터졌다. 지금 진하가 할 수 있는 건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그저 타임 오버가 되기 전에 그가 준비하던 게 모두 끝마쳐지길 진하는 기도했다.
* * *
“선생님! 우리 살아날 수 있을까요?”
외각에서 휴식 중이던 학생 중 한 명이 물었다.
“살 수 있어, 걱정 마.”
송준하가 그들을 안심시켰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걸 송준하는 알고 있었다.
아주 조금씩이지만 전투 내내 전선이 밀리고 있었다.
고작 반나절 만에 몇백 미터나 밀린 전선.
그나마 이것도 고위 헌터들이 분발했기에 느리게 밀린 거였다.
‘살 수 있을까.’
주변에는 온통 상처 입고 지친 헌터들뿐이었다.
낮에 봤을 때와 다르게 꽤 많은 숫자가 줄어 있었다.
그나마 밤이라 몬스터들이 수면을 위해 잠시 물러났기에 이 정도이지 아니었다면 어쩌면 하루 만에 전멸했을지도 몰랐다.
“얘들아, 여기 있어라.”
“어디 가시게요?”
“잠깐 군인들에게 다녀오마.”
불안해하는 학생을 토닥인 뒤에 송준하는 뒤에서 경계선을 짜고 있는 군인들에게 다가갔다.
이대로 가만히 죽는 걸 기다릴 순 없었다.
뭐라도 해야 했다.
송준하는 후방에 위치한 지휘 막사로 걸음을 옮겼다.
“정지.”
막사 앞에서 경계를 하던 군인이 송준하를 막아섰다.
“지휘자를 만나야겠어요.”
“아무나 만날 수 없습니다. 돌아가세요.”
“협회 소속입니다.”
송준하가 헌터증을 내밀었다.
“그래도 안 됩니다.”
으득!
군인의 말에 송준하는 이가 갈리는 걸 느꼈다.
그의 잘못이 아니라는 건 알았다.
실제로 그는 명령을 따를 뿐이니까.
그래도 현 상황이 이가 갈리는 그의 입장에선 그조차 밉게 보였다.
“지휘자를 만나야겠다고 말했습니다.”
“불가능합니다.”
군인의 말에 송준하가 다리에 힘을 줬다.
이렇게 되면 힘으로라도 돌파할 생각이었다.
그때.
“들여보내.”
막사 안쪽에서 지휘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휘익, 착.
“지나가세요.”
지휘자의 말에 몸을 돌리며 길을 트는 군인.
송준하는 그런 군인을 잠시 노려보고는 막사를 향해 똑바로 걸어갔다.
“그래, 무슨 일이지?”
막사 안으로 들어서자 지휘자와 몇몇 참모들이 지도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지금 뭐 하자는 겁니까? 전투 내내 정말 가만히 있으실 겁니까?”
송준하의 말에 지휘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우리의 역할이니까.”
“당신들이 몬스터를 아예 상대 못 하는 게 아니잖아. 조금만 도와줘도 전선이 밀리는 걸 막을 수 있다고.”
“그래도 안 되네.”
“어째서!”
비각성자라 해도 화기를 이용하면 C급 이하의 몬스터는 잡을 수 있었다.
탱크를 이용한다면 B급까지 타격이 가능했다.
낮이야 뒤섞여 있어서 불가능했다 하더라도 지금이라면 포격 정도는 가능했다.
“지금 우리가 공격하면 날뛰며 빠져나갈지도 모르는 몬스터는 누가 막을 거지? 지쳐 있는 헌터들? 아니면 비각성자인 병사들?”
“그럼 낮에 보병들이라도 투입시켜 줘요. 당신들이 하급 몬스터들만 막아 줘도 훨씬 전투가 쉬워져.”
“그것도 불가능하다.”
“군법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은 겁니까?”
“그래, 너도 모르지는 않을 텐데? 서약서에 서명했으니까.”
지휘자의 말에 송준하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도 알고 있었다, 혹여나 몬스터가 나왔을 경우 헌터와 군인의 역할이 다르다는 건.
알지만 이건 너무했다.
“조금만 도와줘도 더 적은 피해로 끝낼 수 있을지 몰라.”
“장담할 수 있나?”
드르륵.
지휘자가 몸을 일으켰다.
“뚫리면 어떻게 할 거지? 병력들을 뚫고 나오는 몬스터는 누가 잡고 늘어질 거지?”
“안 뚫리게 하면 되잖아! 지금 거의 백중세라고, 당신들만 투입돼도 충분히 승산 있는 싸움이야.”
나오는 몬스터의 대다수가 C급 이하였다.
물량이 많아서 밀리는 것일 뿐이었다.
만약 군인들이 손을 보탠다면 충분히 이길 수 있었다.
“아까, 이기수 헌터도 와서 같은 말을 하고 갔지.”
지휘자가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라고 좋아서 이러고 있는 줄 아나?”
지휘자가 으르렁거렸다.
“우리라고 싸우고 싶지 않은 줄 아나? 싸우는 헌터 중에 내 아들도 있어. 그런데도 가만히 있는 건 어쩔 수 없어서야. 단순히 군법이나 명령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최후의 보루라는 걸 알아서라고!”
그의 말에 송준하가 이를 악물었다.
하나도 틀린 소리가 없었다. 아니, 애초에 송준하도 이게 떼를 쓰는 거라는 건 알았다.
헌터들이 무너지면 몬스터들에게 폭탄이 떨어질 때까지 시간을 끄는 소모품으로 이용되는 게 군인들이었다.
어찌 보면 헌터보다 더 안 좋은 처우였다.
“젠장!”
송준하가 애꿎은 땅을 발로 찼다.
너무나도 답답했다.
“그래도 예비 헌터들까지 전장에 몰아넣는 건 아니야. 그들이라도 빼 줘.”
군인과 거의 비슷하거나 못한 게 예비 헌터들이었다.
그들이라도 빼야 했다.
“……알았다, 그건 내가 명령해 두지.”
지휘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군법을 위반하는 것이긴 하지만 그 정도는 그의 권한 안에서 해결 가능한 범위였다.
“미안합니다.”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린 송준하가 지휘관에게 사과했다.
멀쩡한 군인들과 다친 헌터들을 보며 제대로 된 판단을 하지 못해 버렸다.
“괜찮네. 왜 그러는지는 나도 아니까.”
지휘관이 씁쓸하게 말했다.
“그럼 이만.”
송준하는 곧바로 몸을 돌렸다.
괜히 이곳에 더 있어 봐야 서로의 복장만 터지는 상황이었다.
그보다는 빨리 학생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 그들을 밖으로 빼내는 게 중요했다.
지이잉!
그 순간 막사를 나오는 그의 위로 막이 쳐지기 시작했다.
“뭐지?”
송준하가 당황하며 주변을 돌아봤다.
다른 헌터들도 당황하며 퍼지는 막을 바라보고 있었다.
막은 순식간에 퍼지더니 그들의 뒤쪽으로 넘어갔다.
‘마법형 몬스터가 나타난 건가?’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주 아래층의 몬스터 중에는 고위 마법형 몬스터도 존재한다고 알고 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 해도 막이 너무 컸고 애초에 아래층에서 여기까지 올라오기엔 시간이 너무 짧기도 했다.
“이거 설마 정부에서 펼친 거예요?”
뒤에서 나오는 지휘자를 보며 송준하가 물었다.
지휘자는 굳은 얼굴로 주변을 돌아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어째서요?”
“몬스터가 퍼지는 걸 막기 위해서.”
“아니, 그런 걸 말하는 게 아니잖아요. 배리어는 헌터들이 뚫리고 나서 펼쳐지는 거 아니었어요?”
“맞네, 아무래도 정부에서 이미 승산이 없다고 생각해서 미리 펼친 것 같네. 헌터들이 싸우다 죽으면 폭탄을 터뜨릴 걸세.”
“뭐 그런…….”
말도 안 되는 얘기였다. 아직 게이트 폭주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런 결정은 말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심지어 타국의 지원 또한 아직 받지 않은 상황에서 이런 판단을 내린다고?
“아마 위쪽 사람들이 겁이 난 걸 테지.”
지휘관이 씁쓸하게 말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외엔 이유가 없었다. 이렇게 미리 펼쳐놓아야 몬스터가 빠져나올 확률도 없고 위험하다 싶으면 바로 마법이 인챈트 된 폭탄을 터뜨리기 쉬울 테니까.
“내가 연락을 취해 보겠네. 이대로는 지원도 받을 수 없으니까.”
배리어가 쳐지면 통과할 수 있는 건 오로지 빛과 공기, 인챈트로 강화된 폭탄밖에 없었다. 심지어 빛과 공기조차 일정량의 운동 에너지를 가지면 차단될 정도의 고성능 배리어였다. 이대로라면 헌터가 뚫리고 말고를 떠나서 보급을 받지 못하는 헌터들이 빠르게 전멸할 게 분명했다.
우우웅―
그때 저 멀리서 비행기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에 지휘관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그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전투기 여러 대가 게이트를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어째서? 아직 전멸하지도 않았는데?”
“전멸하기 전에는 폭탄을 터뜨리지 않는 다면서요?”
송준하의 물음에 지휘관은 대답조차 하지 않고 곧바로 막사로 뛰쳐 들어갔다.
‘학생들!’
지휘관의 모습을 본 송준하가 다급히 학생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저게 정말 폭탄이라면 학생들이 위험했다. 아니, 모두가 위험하긴 했지만 아무것도 모를 학생들을 그냥 내버려 둘 수 없었다.
“비켜!”
송준하가 하늘을 보는 헌터들을 밀치며 달려 나갔다.
휘이잉, 콰광!
저 뒤쪽에서 폭탄이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그걸 확인한 헌터들이 너도나도 비행기를 피해 뛰기 시작했다.
“윽!”
도망가는 헌터들로 인해 뛰는 게 쉽지 않았다.
그사이 폭탄은 순식간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선생님!”
그때 저 멀리 학생들이 그에게 다가오는 게 보였다.
“도망가!”
송준하가 다급히 외쳤다.
하지만 그의 말에도 학생들은 헌터들과 반대로 그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선생……!”
콰앙!
그리고 그들 위로 떨어지는 폭탄 하나.
폭발에 휘말린 송준하가 뒤로 날아갔다.
“으윽…….”
겨우 정신을 차리고 눈을 뜨는 송준하.
그리고 그의 앞에 펼쳐진 시체들.
“아…… 아아…….”
순간 송준하의 머릿속이 하얘졌다.
그리고.
딱!
“어때요?”
뒤바뀐 세상 속에서 처음 들린 말이었다.
“이게…….”
송준하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정신이 없었다.
분명 방금 전까지만 해도 폭탄이 떨어지고 사람들이 죽어 나갔다.
그리고 그 또한 폭발에 휘말려 다친…….
더듬, 더듬.
“다치지 않았어?”
송준하가 자신의 몸을 만지는 것을 보며 진하가 쓰게 웃었다.
확실히 급하게 끝내서 그런지 송준하의 현실감이 아직 돌아오지 않은 것 같았다.
“당신이 본 건 환상입니다.”
“그럴 리가…….”
송준하는 이해가 안 됐다.
분명 그가 느끼는 고통까지 현실감이 느껴졌었다.
“환상만 준 게 아니니까요.”
“네?”
“환상과 동시에 통각까지 심었습니다.”
진하가 옆에 있는 두 사람을 가리켰다.
한 명은 환상능력자였고, 한 명은 송하나였다.
환상으로 송준하를 속이고 송하나의 텔레파시를 통해 통증을 전달했다.
그래서 그가 환상과 동시에 통증까지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어째서…….”
“당신의 각성이 필요했어요.”
진하가 주저앉아 있는 송준하를 일으켜 세웠다.
“전부 다 환상은 아니에요. 당신이 만난 이기수는 진짜였고 이기수와 나눴던 이야기, 행동들은 다 진짜였습니다.”
그리고 이기수가 방을 나가는 순간부터 환상이 시작됐었다.
‘너무 성급했나.’
원래 이런 식으로 환상을 진행할 생각이 없었다.
이기수와 함께 차근차근 환상을 진행하면서 송준하를 각성시킬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러기엔 변수로 인해 시간이 너무 없어져 버렸다.
그래서 급하게, 어설프게 끝내 버렸다.
“송준하 씨, 이런 식으로 당신을 대한 건 정말 죄송합니다. 하지만 당신이 본 것들, 지금이야 환상이지만 앞으로는 아닐 거예요.”
환상은 진하의 기억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급하게 진행하느라 사건이 어색하게 진행되긴 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거짓인 것은 아니었다.
“지금의 협회는 좋지 않아요. 단순히 썩은 부분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체제, 법 등 모든 분야에서 좋지 않아요. 당신도 그걸 느꼈죠?”
“그렇지만…… 어쩔 수 없는 거 아닌가요? 그리고 그런 일이 진짜로 일어나리라는 보장도…….”
“진짜로 일어나요. 제가 말했죠? 일부는 사실이라고. 당신의 핸드폰을 보세요.”
진하의 말에 송준하가 핸드폰을 열어보았다.
<제2 게이트 폭주, 몬스터 범람 중, 모든 헌터들 소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