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가진 SS급 문방구-42화 (42/202)

#042

“목줄과 권력?”

한진석이 되물었다.

“그래, 벗고 싶잖아. 목줄.”

진하가 진짜로 목에 목줄이 걸린 마냥 목 주변을 당겼다.

한진석은 그런 진하의 행동을 무표정하게 바라봤다.

“어떻게 목줄을 풀겠다는 거지?”

“협회의 비리.”

“그 정도는 나도 알고 있다. 하지만 증거가 없어.”

“말은 똑바로 듣지? 그리고 무력의 충당.”

현재 진하의 입장에서도 항암 그룹은 한 번에 무너지면 안 됐다.

도화선이나 다름없는 항암 그룹이 무너진다면 펼쳐질 미래는 두 가지밖에 없었다.

첫 번째로 본보기가 되어서 대기업들이 수그러들고, 협회가 날뛰는 미래.

두 번째로 목숨의 위협을 느낀 대기업들이 똘똘 뭉쳐 난타전을 벌이는 경우.

어느 쪽이든 진하에게 좋을 건 없었다. 현재 진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시간이니까.

그렇기에 눈치 싸움이 사그라드는 지금 시간을 벌기 위해선 세력 간에 파워 균형을 맞춰 줘야 했다.

“이기수랑 손잡으면 당장 숨통은 트이지?”

“비리는?”

“그거야 언플이지. 누가 진짜로 타격 주래?”

겉으로는 언론 플레이로 타격을 주고, 안에서는 이기수를 이용해 방어막을 친다.

당장 숨을 이어붙이는 데는 나쁘지 않은 방법이었다.

“그래도 결국 시간 벌이야.”

“당연히 그사이에 무기를 더 충당해야지.”

진하가 책상 위로 서류 하나를 올려놓았다.

“인재 포섭 및 후원 좀 하지?”

진하가 건넨 자료를 집은 한진석이 빠르게 서류를 훑어보았다.

“블랙 길드라. 확실히 나쁘지는 않아. 하지만 블랙 길드가 뒤통수칠 수 있지 않나?”

“지금 그거 따질 때야? 그리고 걱정 마. 당신들이 살아야 내가 사는데 뒤통수를 치게 냅둘 것 같아?”

진하의 말에 한진석이 턱을 쓰다듬었다.

나쁘지는 않은 이야기였다.

약간 급하게 짠 느낌이 없잖아 있긴 했지만 확실히 아티팩트를 얻을 거라는 보장이 없는 이상 이것보다 좋은 것도 딱히 없었다.

“그럼, 내가 할 일은 간단하겠군.”

“그래, 돈지랄뿐이지. 어때, 할래?”

“어쩔 수 없군.”

한진석이 손을 내뻗었다.

진하는 그가 내뻗은 손을 잡았다.

이걸로 이쪽도 운명 공동체가 되었다.

* * *

“하아…… 머리 아파.”

되지도 않는 짱구를 굴리려니 힘이 들었다.

그래도 일단은 급한 일은 수습되었다.

‘더 빨리해야 돼.’

시간이 빠르게 지나가고 있었다.

게이트 폭주가 시작되기 전에 하나라도 빠르게 정리해야 했다.

진하는 한숨을 내쉬며 문방구를 열었다.

드르륵.

“하하, 좀 꺼지시죠?”

“어머, 말이 거치시네요?”

“??”

진하는 문을 열자 들려온 목소리에 고개를 갸웃했다.

어째서 이 목소리들이 여기에 존재하는 거지?

“진하야, 왔어?”

“김진하 씨, 왔나요?”

진하는 자신을 바라보는 둘을 보며 물었다.

“둘 다 여기 왜 있어?”

“나야 너 보러 왔지. 근데 없길래 그냥 문 열고 들어왔어.”

하예진이 열쇠를 티가 나게 보여 주며 말했다.

그에 질세라 송하나가 주머니 하나를 꺼냈다.

“마석 1차 수급 완료했어요. 일단 아공간 주머니에 B~A급 위주로 가져왔어요.”

파지직!

서로를 노려보는 둘.

진하는 그런 둘의 모습에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너는 마석을 주고 가면 되잖아.”

하예진이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아, 하나 더 저 당분간 여기에 좀 머물러도 되죠?”

“뭐?”

“지금 뭐라는 거예요!”

하예진이 급발진했다.

“당신 도대체 누군데? 그리고 어디서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고 있어!”

“예진아, 잠깐만 진정 좀 할래?”

진하가 발끈하는 하예진을 진정시키며 물었다.

“여기에 왜 있겠다는 거지?”

“목숨을 지키기 위해서? 수십 개의 안가를 돌아다니며 자는 것보다 당신 곁이 더 안전할 것 같더라고요.”

“미안한데, 그럼 네가 나한테 붙은 게 너무 티 나지 않을까?”

“어차피 알 사람은 다 알걸요?”

그녀의 말에 진하가 한숨을 내쉬었다.

객관적이라 좋긴 했지만 그만큼 송하나의 분파가 힘이 약하다는 뜻이기도 했으니까.

“알았어. 맘대로 해.”

“진하야!”

하예진이 다급하게 진하를 쳐다봤다.

“너도 잠깐만 가만히 있어 봐, 설명해 줄 테니까.”

진하는 근처에 의자를 하나 끌어당겨 앉은 뒤 그간 있었던 일을 간략하게 하예진에게 설명했다.

하예진은 10분에 걸친 진하의 설명을 들은 후 말했다.

“그럼, 나도 여기 살래.”

“아니, 너는 또 왜?”

“너 말대로라면 저 사람이 널 어떻게 할지도 모르잖아.”

“어머, 심한 말을 하시네요. 저희 둘은 운명 공동체랍니다.”

송하나가 약지에 낀 반지를 보여 주었다.

그 모습에 하예진이 진하의 손을 빠르게 보았다.

그리고 오른손 중지에 있는 반지를 보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너 같은 불여시랑 진하를 같이 둘 수 없어.”

“어머, 불여시는 그쪽 아닌가요?”

둘의 기싸움에 진하는 머리가 아파 왔다.

안 그래도 머리가 아픈데 둘의 싸움을 봐줄 여유는 없었다.

“송하나, 그만하고 마석이나 내놔.”

순간 송하나가 진하를 째려봤다.

“뭐? 문제 있어?”

[그 이름으로 부르지 마요.]

송하나의 말에 진하가 피식 웃었다.

“어차피 더 이상 그 이름을 숨길 이유도 없지 않아?”

그녀가 그 이름을 숨길 이유 따위는 더 이상 없었다. 애초에 가명은 개인 신상 정보의 추적을 막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었다. 혹시나 송하나의 이름을 통해 일반인인 어머니가 드러날지도 몰라 아버지가 사용한 방법, 하지만 그 방법의 이유였던 어머니는 이미 죽은지 오래였다.

[그래도 그 이름 쓰지 마요. 아버지 외엔 부른 적 없다고요.]

진하가 어깨를 으쓱했다.

“에휴, 여기요.”

송하나는 그런 진하의 반응에 한숨을 내쉬며 마석을 건넸다.

진하는 송하나가 건넨 마석을 받아 카운터에 얹어 놨다.

“판매.”

“어라? 마석과 아티팩트가 뭔 관계가 있나요? 그러고 보니 여기에 있는 물품들, 당신이 쓰던 거랑 비슷한 게 눈에 띄네요?”

카운터에서 사라지는 마석을 보며 송하나가 안색을 싹 바꾼 채로 주변 물건을 향해 눈을 반짝였다.

“여기 물건 가져가고 싶으면 가져가든가. 대신 목숨은 책임 못 진다.”

으쓱.

“가져갈 생각도 없었어요.”

“아, 그리고 항암 그룹에서 지원이 들어올 거야. 지원을 받아 세를 불려라.”

“그래 봤자 의미 없는걸요?”

“그 정도로 격차 못 메우는 거 알아. 3대 분파 중에 너한테 가장 관심 있고 멍청한 분파나 생각해 놔.”

“그거라면 이미 알고 있어요.”

“그리고 하나 더, 환상 능력자 좀 빌리자.”

“알겠어요.”

대화를 마치자 하예진이 진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음…… 예진이, 너는 수련 잘하고 있지?”

“응.”

“그럼 좀 더 열심히 해.”

“어…… 그래.”

약간 시무룩해하는 하예진.

진하는 작은 방에서 줄넘기를 꺼내 하예진에게 쥐여 주었다.

“특히 체력 위주로 올리고. 곧 네가 필요할 일이 많을 테니까.”

“응! 알겠어.”

간단하게 정리를 마친 진하가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따라 들어오는 둘.

“뭐야, 안 가?”

“말했잖아요. 여기가 제일 안전하다고.”

“저 불여시랑 둘이 둘 순 없어.”

“하아, 제발…….”

진하가 한숨을 내쉬며 둘을 쳐다보았지만 둘은 절대로 물러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방 크기가 부족한 건 아니지만…….’

말이 작은 방이지 웬만한 원룸보다 조금 더 컸다.

거기다 진하의 성격상 가구도 거의 없어 자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다만.

‘제대로 못 쉴 것 같단 말이지.’

왜인지 모르게 싸우는 저 둘 때문에 제대로 쉴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아, 모르겠다.’

“들어올 거면 둘이서 문 잠그고 정리하고 들어와.”

진하는 그 말을 하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 * *

“오랜만이죠?”

“예, 그러게요.”

송준하는 자신 앞에 있는 사람을 보며 몸을 긴장시켰다.

그의 앞에 있는 사람은 가장 강한 권력을 가진 거나 다름없는 헌터였으니까.

“벌써 세 번째 만남인데 긴장 좀 푸시죠.”

이기수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아, 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송준하의 긴장은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애초에 송준하는 거물급에 해당하는 이기수가 어째서 자신을 보자고 한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그저 평범한 헌터였으니까.

“세 번째 만남이기도 하고 계속 빙빙 돌리는 것도 그러니까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요. 저번 제안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솔직히 어째서 저를 선택하신 건지 모르겠습니다.”

송준하가 담담히 말을 이어나갔다.

“어째서 평범한 저를 끌어들이시려는 건지도 모르겠고, 제안을 받기도 전에 모든 걸 말해 주시는지도 모르겠어요.”

이기수가 송준하에게 제안한 것은 분명 과분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어째서 송준하가 선택된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러니까 가장 큰 문제는 제가 왜 송준하 씨를 선택했는지 모르겠다는 거죠?”

송준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음,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제가 하려는 일은 알다시피 믿음이 중요해요. 그래서 당신을 골랐어요.”

“하지…….”

“단! 그렇다고 당신이 마음에 든 건 아니에요. 당신 생각대로 대체할 사람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하지만 가장 큰 이유 하나, 김진하 헌터가 당신을 선택해서예요.”

“김진하 헌터요?”

여기서 그 이름이 왜 나오는 건지 송준하는 이해를 하지 못했다.

“지금 하는 일들 대부분 김진하 헌터의 생각에서 나온 거예요. 저는 그를 신뢰하고, 신뢰하는 만큼 그가 선택한 당신을 믿는 겁니다.”

“그렇군요.”

“제가 믿는 게 아니라 실망했나요?”

“아뇨, 애초에 그런 기대는 하지 않았습니다.”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송준하.

이기수는 그런 그를 보며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사실 독하게 말하긴 했지만 그의 눈에도 무력을 제외하고는 송준하가 제격인 인물이긴 했다.

좋은 평판에 두루두루 넓은 인맥, 그리고 두터운 신뢰까지.

사람이 순하고 헌터 랭크가 낮다는 점 빼고는 나쁘지 않은 사람이었다.

“자, 그럼.”

삐― 삐―

그 순간 둘의 핸드폰에서 긴급 알람이 울렸다.

이기수가 재빠르게 내용을 확인하더니 몸을 일으켰다.

“이야기는 다음에 하죠. 그럼 이만.”

순식간에 사라지는 이기수.

그의 모습에 심각함을 느낀 송준하가 핸드폰을 확인했다.

<게이트 폭주, 몬스터 범람 중. 모든 헌터들 지원 요망.>

* * *

“헉! 헉!”

송준하가 격한 숨을 몰아쉬며 거리를 달렸다.

이미 사람들은 대피한 건지 거리에는 널브러진 차와 열린 가게들만 존재했다.

“젠장!”

하루도 쉬지 않고 수련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오늘따라 느리게 느껴지는 몸이 원망스러웠다.

“제발, 제발!”

[오늘 실습 잘 다녀올게요!]

웃는 모습으로 떠났던 학생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쾅!

그때 저 멀리 번개가 내리쳤다.

아마도 먼저 출발한 이기수가 내리치는 번개인 듯했다.

쾅! 콰광!

첫 번개를 시작으로 수없이 내리치기 시작하는 번개들.

번개가 내리칠수록 송준하의 안색은 점점 더 새하얘졌다.

바깥으로 나온 몬스터가 이렇게 많다는 건 던전 안은 이미…….

“민간인 출입 금지입니다!”

경계선을 지키던 군인 한 명이 달려오는 송준하를 막아섰다.

휘익!

헌터증을 군인에게 던진 그는 재빠르게 군인을 넘어 전장으로 달려갔다.

‘무기!’

약속 장소로 나오느라 아무것도 가지고 나오지 못했다.

무기, 무기가 필요했다.

“이거 받아요!”

헌터 중 누군가 송준하가 주변을 훑는 걸 발견했는지 단검을 던졌다.

“고마워요!”

단검을 잡은 송준하가 박차를 가했다.

저 멀리 게이트가 보였다.

그리고 밀려오는 몬스터까지.

덜덜덜.

꽈악!

송준하가 이를 악물었다.

저렇게까지 몬스터가 몰려나왔다면 학생들의 목숨은 이미…….

“선생님!”

홰액!

익숙한 목소리에 송준하의 고개가 다급히 돌아갔다.

그곳에는 온몸이 상처투성이인 학생 둘이 서 있었다.

“얘들아!”

송준하가 다급히 그들에게 다가갔다.

“괜찮아? 다른 사람들은?”

“…….”

송준하의 시선을 피하는 둘.

그 뜻을 알아차린 송준하는 굳으려는 표정을 억지로 피며 둘을 토닥였다.

“괜찮아, 살아 돌아왔으니 됐어. 어서 후방으로 가렴.”

송준하의 말에 둘은 고개를 저었다.

“빠지지 못해요, 아직 전투 중이라.”

“뭐?”

“전투 지속 가능한 헌터 및 헌터 예비자들은 모두 게이트 폭주를 막으라는 공문이 내려왔어요.”

“그럼…….”

“저희도 아까 전에 나가려 했지만 나갈 수 없다고…….”

그들의 말에 송준하는 열이 뻗치는 게 느껴졌다.

아직 학생들이었다.

제대로 교육도 못 받은 새내기 예비생을 전장으로 밀어 넣다니!

‘미쳤어.’

미쳤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판단이었다.

“그럼, 일단 뒤로 좀 빠지자. 선생님이 같이 있을 테니까 외각에서 대기만 하는 걸로 하자.”

송준하가 둘을 데리고 살짝 뒤쪽으로 빠졌다.

다행히 아직 몬스터와의 거리는 아직 꽤 있었다.

그는 사람들이 방해되지 않는 공간을 찾아 둘의 몸을 치료했다.

“괜찮아. 곧 끝날 거야.”

몸을 떠는 그들을 토닥이며 송준하가 전선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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