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가진 SS급 문방구-41화 (41/202)

#041

진하는 멀쩡한 소파를 찾아 그 위에 털썩 앉았다.

그리고 그런 진하를 보며 설 비서와 한태성 둘의 시선이 바쁘게 오갔다.

“뭐 해? 앉아.”

진하의 말에 그제서야 쭈뼛거리며 빈 의자에 앉은 두 사람.

“원하는 게 뭐지? 원하는 게 있다면 다 들어주지.”

가장 먼저 한태성이 말했다.

“너, 진짜 뻔뻔하다?”

자신을 죽이려 들 땐 언제고 도망에 실패하자마자 바로 협상이라…….

간이 큰 건지 아니면 멍청한 건지 감이 안 왔다.

“어차피 날 죽일 수 없잖아. 안 그래?”

한태성이 몸을 뒤로 누이며 말했다.

아까는 당황해서 미처 생각하지 못했지만 진하는 그를 죽일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는 항암 그룹의 사람이니까.

“뭐래, X신이.”

푸욱!

진하의 삼각자 하나가 떠올라 한태성의 손을 찔렀다.

“끄…….”

“비명 지르면 바로 모가지다.”

“읍!”

한태성이 멀쩡한 손으로 자신의 입을 틀어막으며 가까스로 비명을 참았다.

“원하는 게 뭐지? 어쨌든 원하는 게 있으니까 이렇게 자리를 만든 거 아닌가?”

설 비서가 침착하게 진하를 보며 얘기했다.

“글쎄, 뭐, 아예 원하는 게 없는 건 아니지.”

“그게 어떤 거지?”

설 비서의 말에 진하는 아직도 끙끙거리는 한태성을 바라봤다.

주인이 공격당했는데도 침착했다.

그리고 당연하게 원하는 게 무엇이냐는 듯 묻고 있었다.

즉, 주객이 전도가 된 상황이었다.

‘쯧, 저놈은 허수아비네.’

생각을 정리한 진하가 설 비서를 향해 말했다.

“딱 하나, 네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어.”

“뭐지?”

“간단해. 지금 당장 저놈 아버지한테 연락하는 거야. 내용은 김진하의 아티팩트를 뺏기 위해 인원을 파견했다. 쉽지?”

진하의 말에 설 비서의 얼굴이 굳어지기 시작했다.

역시나 머저리 옆에 붙여 놓은 놈답게 머리가 굴러가는 것 같았다.

진하가 원하는 걸 들어주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순식간에 파악했다.

“그건 안 된다.”

푹!

삼각자 하나가 설 비서의 어깨를 뚫고 지나갔다.

‘반응이 없어.’

충분히 반응할 수 있을 텐데도 반응하지 않고 있었다.

순간 어째서? 라는 의문이 들었고, 그와 함께 끙끙대는 한태성이 눈에 들어왔다.

“아하~”

진하가 씨익 미소를 지었다.

“구매.”

진하의 손에서 길쭉한 쇠자 하나가 튀어나왔다.

“설 비서라 했던가? 너의 가장 최우선 목표가 저놈이지?”

진하가 쇠자로 한태성을 가리켰다. 물어보기는 했지만 이건 확신이었다.

그렇지 않다면 설 비서라는 놈이 이런 태도를 취할 리 없었다.

권력 서열상으로는 설 비서가 한태성보다 위는 맞았다. 아마 회장이 그렇게 부여했으리라 생각된다.

그런데 회장에게 이번 일을 보고하지 않는다?

이건 회장을 떠나서 이놈의 가장 1순위가 한태성이라는 이야기였다.

“오, 오지 마!”

겁에 질린 한태성이 진하를 보며 덜덜 떨었다.

“걱정 마, 죽이지 않아.”

진하가 한태성의 이마에 대고 쇠자를 뒤로 살짝 젖혔다.

<쇠자: 탄성이 뛰어난 자. 맞으면 너무나 아프다. 한껏 뒤로 젖혔다 놓으면 뼛속까지 고통이 전해질지도? 상처는 남지 않는다.>

끼이익, 탁!

아주 작은 소리.

“끄아악!”

비명 소리를 내며 몸을 뒤트는 한태성.

그리고 그런 그를 보며 설 비서가 몸을 움찔했다.

“약하게 했잖아. 엄살 피우지 마. 이마에 자국도 안 났구먼. 그리고 설비서라 했나? 이놈이 아파하는데도 연락 안 할 거야?”

설 비서는 아무 말 없이 진하를 바라봤다.

“흠, 이게 너무 장난스러워 보여서 그런가?”

진하가 쇠자를 튕기며 설 비서에게 다가갔다.

“자, 그럼 직접 겪어보면 되지. 반항하면 안 된다?”

진하가 한태성의 목 주위를 떠다니는 삼각자 쪽으로 눈을 힐끗했다.

끼이익, 탁!

움찔!

자가 팔뚝을 때리자 설 비서의 눈이 부릅떠졌다.

고통을 참아 내는 듯 온몸에 힘이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내…… 가 이런 거에 굴복할 것 같은가?”

그의 말에 진하가 싱긋 미소를 지었다.

“너는 굴복 안 하겠지. 하지만 쟤는? 참고로 이거 살짝만 당긴 거라는 건 알지?”

진하가 덜덜 떨고 있는 한태성을 가리켰다.

이미 한번 당해 봤기에 고통을 아는 한태성은 진하를 더욱 두렵게 바라보고 있었다.

‘얼마나 버티려나?’

고통은 사람의 정신을 약하게 만든다.

하지만 그걸로는 확실히 설 비서를 무너뜨릴 수 없다.

하지만 그 고통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에게 간다면?

이미 고통으로 약해질 대로 약해진 정신은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자, 잘 버텨 봐.”

끼이익! 탁! 끼이익! 탁!

쇠자가 기계적으로 당겨졌다.

팔, 목, 허벅지, 이마까지 쇠자가 설 비서의 몸에 닿았다.

그럴수록 그의 몸은 더욱더 힘이 들어갔으며 그의 눈에선 피눈물까지 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나 쇠자를 당겼을까?

“그만, 그만해!”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한태성이 소리를 질렀다.

“서, 설 비서, 우리 그냥 하라는 대로 하자. 응?”

‘호오, 이것 봐라?’

이 부분은 예상외였다.

한태성도 설 비서를 소중히 생각하는 건지 아니면 스스로 곧 당할 고통이 무서워서인지는 그러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러면 일이 더 쉬워진다.

“도…… 련님, 어차피 이자는 우리를 죽이지 못합니다.”

설 비서가 가까스로 말을 내뱉었다.

“그래, 내가 어쩌면 너희를 죽이지 못할지도 몰라.”

그들은 확실히 필요한 인질이었다.

“하지만 때로는 죽음보다 더한 고통도 있다는 거 알지?”

고통에 정신이 무너지고 사는 게 사는 것처럼 안 느껴지는 삶.

과연 그게 죽음보다 나은 걸까?

“여, 연락! 연락만 하면 되는 거지?”

한태성이 다급하게 외쳤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며 진하가 인상을 찌푸렸다.

이 정도로 반응이 좋을 거라곤 생각도 못 했다.

“내가 연락할 방법이 있어. 있으니까 제발……!”

진하가 인상을 찌푸리는 걸 오해한 한태성이 다급하게 외쳤다.

“흐음…… 연락이 가능하다고?”

설 비서가 연락망을 가지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뭐, 상관없었다. 어쨌든 연락만 되면 되는 거니까.

“그럼 연락해, 딱 연락만. 그리고…….”

* * *

쾅!

“당장 그 새끼 불러와!”

책상을 강하게 내리친 한진석 회장이 소리쳤다.

“안 그래도 지금 오고 있는 길이라고 합니다.”

비서가 재빠르게 대답했다.

“하아…… 이 미친놈이…….”

평상시에도 사고를 많이 치긴 했지만 그것들은 다 수습 가능한 선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친 사고는 평소와는 그 급이 달랐다.

“협회는? 협회는 아직 모르겠지?”

“다행히 말을 들어 보니 이제 갓 실행한 듯싶습니다.”

“당장 사람 보내서 그 새끼들 철수시켜!”

그때, 여비서 한 명이 전화를 받더니 조용히 말했다.

“회장님, 태성 도련님 왔습니다.”

“뭐 해? 당장 들이지 않고!”

“그게…….”

위이잉.

그때, 자동문이 열리며 한태성이 들어왔다.

그리고 그 뒤로 들어오는 김진하.

“다들 왜 이리 심각해?”

굳은 표정으로 들어오는 한태성의 뒤에서 진하가 어깨를 으쓱이며 물었다.

“김…… 진하?”

한진석이 황당한 표정으로 진하를 바라봤다.

문방구에 있어야 할 진하가 어째서 여기 있는 건지 그는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자, 일단 우리 할 말 많지?”

“저, 저기 그럼 난 이만…….”

“너도 앉아.”

진하의 명령에 한태성이 재빠르게 의자에 앉았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한진석이 인상을 찌푸렸다.

‘뭔 짓을 한 거지?’

그가 알기로 한태성은 자존심이 강했다.

그런 그가 아무런 반항도 없이 진하의 명령을 듣는다?

물론 한태성이 입은 상처가 보이지 않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여기는 회장실, 보디가드들이 넘치는 공간이었다.

한태성이 원한다면 언제든지 도망갈 수 있는 환경이라는 소리였다.

‘미치겠네.’

한편, 한진석의 예상대로 도망갈 궁리를 했던 한태성이 속으로 울상을 지었다.

마음 같아선 이 자리에서 빠지고 싶은 게 그였다.

하지만 그의 안주머니에 있는 삼각자 하나 때문에 그는 김진하의 명령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조금이라도 허튼짓을 했다가는 그의 몸에 구멍이 날 테니까.

“자, 회장님도 앉으시죠?”

진하가 상석에 앉은 채로 회장에게 자리를 권했다.

그런 진하의 모습을 보고 회장이 코웃음을 치며 자리에 앉았다.

‘언제까지 여유로운지 한번 보자.’

무슨 수를 써서 한태성을 인질로 잡고 있는 건지는 몰라도 한진석은 자신 있었다.

진하가 무슨 말을 하든 그 어떤 행동을 해도 진하의 뜻대로 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애초에 헌터들로 가득한 이 공간에서 들어온 순간부터 김진하는 진거나 마찬가지였다.

‘쯧, 끝까지 쓸모없는 놈.’

자식이라는 놈이 죽으려면 혼자 죽었어야지 괜히 폭탄을 끌고 돌아왔다.

이래서는 꼬리 자르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일단은 얘기해 본다. 그래도 안 된다면.’

생포해야 했다.

물론 뒷감당이 어렵긴 하겠지만 진하에게서 아티팩트를 뺏을 수만 있다면 그래도 남는 장사였다.

이기수야 협회와 다른 대기업들에게 아티팩트의 지분을 좀 주면 해결 가능할 테고.

“그래, 어디 한번 대화를 해 보지.”

한진석이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여유로워 보이네.’

자리에 앉은 한진석 회장을 보며 진하가 평했다.

보아하니 수틀리면 바로 행동을 보일 것 같았다.

‘보아하니 이놈도 딱히 쓸모는 없겠고.’

내놓은 자식인 건지 딱히 협박이 통할 것 같지 않았다.

‘역시 회장은 회장인가?’

내용물이야 어찌 됐든 사람을 이끄는 자리에 있는 사람다웠다.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고, 언제든지 뜯어먹을 준비를 하는 사람.

“자, 얘기를 하긴 해야 하는데 뭐부터 얘기할까요?”

“그게 고민되면 나부터 얘기하지. 아티팩트 얼마나 있나?”

한진석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툭, 툭.

“예상하는 만큼?”

“그럼, 그걸 항암 그룹에 넘길 의향은?”

“협회는 안 두렵고?”

“그건 내 선에서 해결하지.”

그의 말에 진하가 고개를 갸웃했다.

“근데 그것보다 먼저 해야 할 게 있지 않나?”

“어떤 걸 말하는 거지? 설마 사과를 바라는 건 아니겠고, 만약 그걸 원한다면 그냥 저놈 죽이면 된다.”

“아니, 그거 말고.”

사과 따위를 바라고 온 게 아니다.

그리고 한진석이 사과를 할 리도 없었고.

한진석은 뼛속까지 지배자의 위치에 있으려고 하는 사람이니까.

“당장 살아남는 것부터 생각해야 하지 않아?”

“말했을 텐데? 그 부분은 해결 가능하다고.”

그의 말에 진하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지, 그건 내가 손해지. 어디까지나 살아남았다는 전제하에 거래해야지. 어딜 날로 먹으려 들어?”

아티팩트를 넘기면야 항암 그룹은 멀쩡할 거다.

이기수와 협회 둘만 구슬리면 되는 거니까.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진하의 희생이 바탕이 된 계획이었다.

“설마 여기서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나?”

한진석이 진하를 보며 싸늘하게 비웃었다.

“확실히 아들내미랑 달리 보안이 철저하네.”

기본이 B급이고 A급도 하위지만 1명 존재했다.

거기다 수만 따지면 근 40여 명.

아무리 진하라도 이길 수 없는 수치였다.

“근데 내가 너무 당당하게 들어왔다고 생각하지 않아? 빠져나갈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고?”

진하의 말에 한진석이 진하를 지긋이 바라봤다.

싱긋.

‘모르겠군.’

거짓말이라면 어떻게든 티가 날 텐데 티가 전혀 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사실이냐고 묻는다면 그것도 애매했다.

한진석은 일단 대화를 좀 더 나눠 보기로 했다.

“그래서 네가 말하고 싶은 건 뭐지?”

“뭐, 별건 아니고. 그쪽 때문에 내 계획도 조금 어그러져서 말이야.”

진하의 계획대로라면 아직 대기업들이 나서서는 안 됐다.

대기업과 협회, 블랙 길드 그리고 이기수가 균형을 이뤄야 했다.

건드리더라도 아주 천천히 진행되어야 했고.

그러면 진하는 그사이에 모든 준비를 마친다.

적어도 그런 계획이었다.

근데 항암 그룹이 급발진하는 바람에 도화선에 불이 붙어 버렸다.

“당신도 이대로 죽기는 싫지?”

협회의 입장상 자신의 권위에 흠집을 내려는 그룹을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대기업들은 항암 그룹이 손해를 입고 나서야 움직일 거고, 블랙 길드는 이 기회를 이용해 제 잇속을 챙길 것이다.

결국, 항암 그룹은 만신창이가 되고, 진하는 그들의 공격을 받을 것이다.

양쪽 다 좋은 이야기는 아니었다.

“거래 품목을 다시 정하자고, 거래 품목은 목줄과 권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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