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가진 SS급 문방구-40화 (40/202)

#040

두 시간 후 문방구.

움찔.

쓰러져 있던 진하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뭐지?’

분명 의문의 남자와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 같았는데 어느새 쓰러져 있었다.

시간을 확인해 보니 그때로부터 이미 두 시간이나 지나 있었다.

“으…….”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마치 숙취를 겪는 듯한 통증이 머리에서 느껴졌다.

진하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몸을 일으켰다.

부스럭.

그때 진하의 주머니에서 들리는 소리.

주머니에 손을 넣어 보니 종이 쪼가리 하나가 들어 있었다.

<물건값 못 주고 갔으니까 대신 좋은 정보 하나. 앞으로 당신이 알고 있는 사실은 일부 쓸모없어질 겁니다. ―사서―>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 적혀진 쪽지.

기절하기 전 만났던 남자가 적은 것 같았다.

‘무슨 소리지?’

근처 의자에 앉은 진하는 혼란스러운 머리를 차곡차곡 정리하기 시작했다.

포인트의 존재를 아는 이상한 존재가 찾아왔다.

그로 인해 이야기가 꼬였다고 했다. 이야기가 뭔지는 모르지만 진하로 인해 바뀐 것은 미래, 미래가 바뀌었다는 걸 말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할머니, 관리자라는 존재와 할머니가 밀접한 관계인 것 같았다. 본인이거나 또는 그에 준하는 존재인 것 같다. 그렇다는 건 관리자는 신을 뜻하는 건가?

“모르겠다.”

정리를 해 봐도 도통 감이 잡히지 않았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는 남자의 정체가 무엇인지도 모르겠고, 그가 말하는 게 무엇인지도 애매했다.

만약 여기가 관리자, 아니, 신이 운영하는 가게이고 사람들이 찾아오는 곳이라면 어쩌면 그 남자와 같은 존재가 또 찾아올지도 몰랐다.

‘그 남자처럼 나를 죽이려 할지도 몰라.’

그러고 보니 의문이 하나 생겼다.

그는 죽이겠다고 얘기를 했었는데 어째서 죽이지 않은 걸까?

단순히 힘이 부족해서는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관리자라는 사람의 눈치를 보는 것일까?

‘아냐, 그것도 아냐.’

그랬다면 애초에 죽이려는 의지를 드러내지도 않았을 거다.

추정컨대 관리자라는 존재와 거의 동급 또는 눈치를 받지 않는 위치의 존재였다.

그렇다면 그도 신인가?

“하아…….”

아무리 생각해도 머릿속이 정리되지 않았다.

부스럭.

그리고 이상한 존재가 주머니에 넣어 준 쪽지까지.

정보가 너무 부족했다.

띠리리리! 띠리리리!

전화벨이 울렸다.

진하는 대충 머리를 흔들어 멍한 정신을 깨우고 전화를 받았다.

모르는 번호였다.

“여보세요?”

―오랜만이에요.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

진하는 인상을 쓰며 대답했다.

“오랜만이라기엔 얼마 되지 않았을 텐데?”

―몇 시간도 충분히 오래랍니다.

“그래서 무슨 일이지? 내가 해야 할 일은 알아서 전달한다고 했을 텐데?”

―섭하네요. 당신을 위해 정보 하나를 물고 왔는데.

송하나의 말에 진하가 인상을 찌푸렸다.

정보?

“그게 뭔데?”

―어머, 대가도 없이 그냥 받아 갈려고요?

“장난치지 마.”

안 그래도 아직 머리가 멍한 상태라 장난을 받아 줄 생각 따위는 없었다.

―재미없는 남자네요. 대기업 쪽에서 움직였어요. 알아서 할 거라고 생각되지만 그래도 알아 두는 게 훨씬 나을 것 같아 알려 주는 거예요.

“대기업? 아직 움직일 수 없을 텐데?”

진하가 예상하기로는 대기업은 지금 움직이면 안 됐다.

그를 노리는 단체가 많아 눈치 싸움 중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그의 뒤에 이기수가 존재하고 있었다.

협회도 눈을 부릅뜨고 있는 상황에서 움직인다는 건 말이 안 됐다.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건데 양지로 회유하려고 움직이는 건 아니겠지?”

―그랬으면 내가 당신에게 굳이 연락할 리 없잖아요?

역시 음지로 움직인다는 소리였다.

“머저리가 아닌 이상 움직일 리 없을 텐데?”

―그게 애매해요. 블랙 길드 중 한 곳에 의뢰한 것 같은데, 제가 알기로 대기업 수뇌부들은 이런 식으로 행동하지 않아요. 충분한 힘이 있기도 하고 꼬리가 남으니까요. 아무래도 일부가 단독 행동하는 것 같아요.

“단독 행동? 어느 기업인지 알아?”

―일단 의뢰는 항암 그룹이 했어요. 재계 서열도 높은 편이 아니라 일부 움직인 기업들이 미끼로 내세운 게 아닐까 생각돼요.“

“항암 그룹?”

순간 진하의 머릿속에 한 가지 이름이 스쳐 지나갔다.

‘한태성.’

“일부가 움직인다는 거 어떤 기업들이 움직였는지는 몰라? 혹시 항암 그룹 단독인 거 아냐? 의뢰인 이름은?”

―그것까진 알 수 없어요. 아시다시피 지금 상황으로는 고급 정보를 수집하는 게 힘들어요.

“쯧, 알았어. 그거야 어쩔 수 없지.”

그녀의 말에 진하가 혀를 찼다. 아쉬운 정보력이긴 했지만 그녀 분파의 세력을 생각하면 이 정도만 해도 꽤 힘을 쓴 거라고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대충 짐작이 가기도 했다. 지금처럼 이렇게 다들 눈치를 보는 상황에서 움직이는 건 진짜 바보였다. 적어도 한 그룹의 수장들이라면 움직일 리 없었다.

그렇다는 건 결국 항암 그룹의 단독일 가능성이 크다는 건데 거기서도 회장을 빼면 결국 한 놈만이 남게 된다.

한태성, 머저리 같이 움직일 만한 사람은 그 녀석밖에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상황도 모르겠지.’

상황을 알았다면 아무리 머저리라 해도 움직였을 리 없었다.

가장 위에 속하는 협회마저도 당장은 음지로 접근하려 하지 않는다.

그만큼 무력이라는 큰 뒷배경이 있으니까. 무엇보다 쪼들리고 있는 송하나에게 걸렸다는 건 그만큼 높은 수준의 블랙 길드에게 의뢰가 된 것도 아니라는 소리였다.

―도와드릴까요?

“네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든 판에 무슨 도움을 줘, 일단 마석이나 끌어모으고 있어”

―……알겠어요.

그 말을 끝으로 전화가 끊겼다.

뭔가 마지막 말에서 기분이 상한 듯한 느낌이 들긴 했지만 상관없겠지.

“흠, 이거 어쩌면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겠는데?”

* * *

어두운 밤, 불 꺼진 문방구 앞으로 수십의 사람들이 조용히 다가갔다.

그들은 잠긴 문방구 문을 살짝 밀어 보았다.

덜컥.

안쪽에서 자물쇠로 잠겨 있는 문.

문을 살짝 당겨 본 남자가 눈짓하자 뒤에 있던 사람 중 한 명이 조용히 앞으로 나섰다.

스윽.

자물쇠를 향해 손을 올리자 자물쇠가 조심스럽게 공중으로 들리기 시작했다.

끼익, 끽.

작은 소리와 함께 비틀리며 열리는 자물쇠.

얼마 되지 않아 자물쇠가 완벽하게 열렸다.

자물쇠가 조용히 바닥으로 떨어지고 문을 당겼던 남자가 다시 문을 밀어 보았다.

드르륵.

작은 소리와 함께 열리는 문.

스윽, 슥.

남자의 손짓에 따라 뒤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 문방구 안으로 들어섰다.

그들은 작은 방을 기준으로 반원을 그리며 입구를 포위했다.

툭툭, 툭.

남자의 손짓에 예의 그 염동력자가 손을 뻗었다.

스르르륵.

허공의 손짓에 따라 천천히 열리는 문.

그리고 문이 열리며 나타나는 사람 한 명.

핑!

문틈 사이로 드러난 인영을 향해 암기가 날아갔다.

팅!

하지만 암기는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한 채 튕겨 날아갔다.

“반응 속도는 합격.”

목을 풀며 진하가 말했다.

“하지만 잠입은 불합격. 몰래 들어올 거면 진동 능력자라도 데려와서 소리가 퍼지는 걸 막았어야지.”

“갈 곳이 있다. 가자.”

진하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음에도 그들은 당황하지 않은 채로 진하에게 말했다.

“무슨 자신감이야? 쪽수가 많아서?”

진하가 방을 둘러싼 사람들을 쳐다봤다.

일단 자세로 보아하니 당연히 초짜는 아니었다.

진하가 협회에 갓 B급 헌터로 정보가 올라간 걸 생각하면 최소 C급 최상위부터 B급 중반으로 왔을 것이다.

‘A급은 있을 리 없고.’

대기업에서도 한 명 있을까 말까 한 게 A급이었다.

하물며 대기업이 움직인 게 아닌 블랙 길드, 그것도 급이 낮을 게 분명한 길드였다.

절대 A급이 있을 리 없었다. 아니, B급 상위조차 힘들었다.

“하나만 묻자. 나도 니들이 가자는데 가고는 싶은데 몸 성히 갈 수 있어?”

“팔 하나만 자르면 된다.”

“쯧, 그럼 그렇지. 그러면서 뭘 가자야. 그냥 죽어라지.”

진하가 혀를 차며 몸을 일으켰다.

“근데, 너네, 나 이길 자신은 있어?”

싱긋 웃으며 진하가 물었다.

* * *

“어떻게 됐어?”

“두 시간 전에 출발했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곧 올 겁니다.”

“흐…… 드디어 그 재수 없는 낯짝을 보겠구먼.”

한태성이 낄낄거리며 위스키를 마셨다.

‘아주 사지를 찢어 버리겠어.’

그는 던전에서 나온 날 이후로 한 번도 그날을 잊은 적이 없었다.

멍청한 길드로 인해 던전에서 목숨이 위협받았던 일부터 시작해서 별 같잖은 헌터에게 모욕당한 것까지 한 시도 잊은 적이 없었다.

‘흐흐, 이번 일만 잘 끝나면 아버지도 날 다시 보겠지.’

이상한 아티팩트를 가지고 있던 놈이었다.

적당히 목숨만은 살려 준다고 그러면 술술 불 게 분명했다.

“설 비서, 혹시나 하지만 아버지한테 말한 건 아니겠지?”

한태성의 물음에 옆에 있는 남자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모르십니다. 도련님 명대로 알려지지 않기 위해 그룹 내부 인원을 쓰지 않고 외부의 인력을 동원했습니다.”

“좋아, 좋아.”

아버지가 알면 계획에 차질이 생길 게 뻔했다.

평소에도 자신을 못 미더워하는 아버지라면 이 일도 본인이 직접 하거나 동생에게 시킬 게 뻔했다.

그러니 이 일은 아버지 몰래, 아버지가 알아채기 전에 끝내야 했다.

똑똑.

문 너머로 노크 소리가 들렸다.

이 시간에 그를 찾아올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다.

“들어와.”

한태성이 기대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끼익.

문이 열리자 남자 한 명이 보였다.

“어떻게 됐지?”

“그, 그게…….”

남자가 목소리를 떨자 한태성은 인상을 찌푸렸다.

B급 헌터나 돼서 말이나 떨다니, 역시 천한 것들은 문제가 있었다.

“빨리빨리 보고해. 그 새끼는 어디에 있지?”

“그 새끼 여기 있다, 새끼야.”

한태성의 물음에 남자의 뒤에서 진하가 튀어나왔다.

“안내 고맙다?”

진하의 얼굴을 보자마자 한태성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자, 이제 가도 돼.”

진하의 말에 진하를 안내해 줬던 남자가 망설임 없이 진하를 지나쳐 도망갔다.

까딱.

“물론 벌은 받은 뒤에.”

진하의 손짓에 삼각자들이 순식간에 떠올라 뒤로 날아갔다.

퍼버벅!

“흠, 벌이 약했나?”

땅바닥에 쓰러진 시체를 보며 진하가 혀를 찼다.

그 모습을 바로 앞에서 본 한태성은 인상을 찌푸린 채로 외쳤다.

“지금 여기가 어딘지 알기나 하고 이러는 거냐!”

“네 사무실?”

진하가 가볍게 대답했다. 그런 모습에 한태성은 이를 갈며 진하를 노려봤다.

‘어떻게 된 거지?’

스킬을 각성했다는 소리는 들었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면 A급에 도달할 거라는 것도 알았다.

하지만 그래 봐야 아직 애송이였다.

한태성이 진하를 봤던 때의 신체 스펙만 보면 고작 C급 최상위 정도였다.

그렇다는 건 지금은 아무리 높아도 B급 최하위라는 소리였다.

‘아니, 설사 B급 상위였어도 상관없어.’

보낸 인원만 해도 근 스무 명에 달했다.

모두 최소 B급 이상으로 보낸 걸 생각하면 B급 최상위라 해도 제압은 힘들어도 죽일 수는 있는 정도였다.

“왜, 이해가 안 돼?”

진하가 천천히 한태성에게 다가갔다.

“거기까지.”

그때 진하의 앞을 가로막는 설 비서.

진하는 자신을 가로막는 그를 바라봤다.

저 뒤에서 한태성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게 보인다.

“흠, 너도 나를 이기긴 어려울 것 같은데?”

“제 목적은 이기는 게 아닙니다.”

촤르르륵!

남자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쇠사슬이 진하를 노리며 쏘아졌다.

티딩, 팅!

진하는 단검으로 쇠사슬을 쳐내며 설 비서에게 달려들었다.

촤륵! 캉!

설 비서가 뒤로 물러나며 쇠사슬을 휘둘렀다.

‘버티기만 하면 돼.’

중위 B급인 그로서는 절대 진하를 이길 수 없었다.

하지만 버티는 정도라면 얼마든지 가능했다.

고작해야 몇 초. 한태성이 숨겨진 비상 탈출구로 도망갈 시간만 벌면 되었다.

“수가 너무 뻔해.”

진하가 무심하게 말했다.

그와 동시에 설 비서를 지나쳐 가는 삼각자들.

설 비서가 다급히 쇠사슬을 던져 날아가는 삼각자를 쳐냈지만 끝내 쳐내지 못한 한 개가 한태성의 목을 노리고 날아갔다.

“으, 으악!”

날아오는 삼각자를 보며 한태성이 비명을 질렀다.

우뚝!

“자, 모두 스톱?”

삼각자를 한태성의 목 앞에 멈춰 세우며 진하가 말했다.

“…….”

촤르륵.

설 비서가 쇠사슬을 늘어뜨렸다.

톡.

“넌 가만히 있고.”

진하가 몰래 움직이려는 한태석의 목을 삼각자로 톡 찍으며 경고했다.

“자, 우리 이제 이야기 좀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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