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9
“잘한 일이려나.”
문방구로 돌아온 진하는 한숨을 쉬었다.
블랙 길드를 이용하는 것, 정말 하기 싫은 일이었다.
하지만 이기수의 말대로 어느 정도 타협해야 하는 건 맞는 말이었다.
실제로 진하가 겪었던 일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니까.
“쯧.”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였다.
송하나를 이렇게 만나는 건 역시나 너무 싫었다.
아직도 그녀를 찔렀던 그때의 이물감이 손안에서 맴돌아 기분이 더러웠다.
“그나저나 이 문제도 해결해야 하는데.”
진하가 문방구 주변을 둘러보며 혀를 찼다.
사방으로 꽉꽉 채워진 물품들.
이 중 3분의 1에 해당하는 물품이 곧 사라질 예정이었다.
“어떻게 채울 수 없나?”
가장 큰 문제는 물건을 채울 수 없다는 점.
혹시나 하고 다른 물품을 밖에서 사 와 아티팩트화를 시켜 보려 했지만 역시나 불가능.
오로지 이 공간 안에 존재하는 물품들만이 아티팩트화가 되었다.
아직까지는 넘치지만 이대로는 금방 동이 날 것 같았다.
딸랑―
그때 문이 열리며 누군가가 들어왔다.
“어서 오세요.”
진하가 들어온 사람을 맞이했다.
훤칠한 키에 흔한 머리, 본 적 없는 사람이었다.
“무슨 일로 오셨어요?”
“아, 저 물건 좀 사려고요.”
‘손님인가?’
아무리 사람이 잘 안 오는 곳이라고는 하지만 아예 안 오는 건 아니었다.
가끔씩 일반 손님도 오긴 했다.
그래서 물건이 없다며 대충 돌려보내거나 아니면 아깝지만 그냥 물건을 팔기도 했다.
“무슨 물건을 찾으시죠?”
“아, 총을 찾습니다.”
조카에게 줄 장난감 총을 찾는 건가?
벽면에 떡하니 총이 진열되어 있기에 진하는 어쩔 수 없이 혀를 차며 그를 안내했다.
“여기서 골라 가시면 돼요.”
“아, 네. 근데 여기 사장님은 안 계시나요?”
진하는 순간 얼굴을 굳혔다 폈다.
“무슨 말씀이신지? 이 문방구는 제가 관리하고 있습니다.”
“그런가요? 어떤 할머니가 관리하지 않나요?”
남자는 그 말과 함께 할머니를 표현했다.
아무렇지 않게 표현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진하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냥 일반인이구나.’
뭔가 이상한 말이라도 할 줄 알고 미친 듯이 긴장했는데 다행히 그런 건 아닌 듯했다.
“주인이 바뀌었어요.”
“그래요? 그럴 리 없는데…….”
진하는 대답 대신 어깨를 으쓱했다.
남자도 이내 고개를 끄덕이곤 총을 고르기 시작했다.
이것저것 장난감 총을 넣다 뺐다 하는 그.
‘아, 그냥 아무거나 좀 사지?’
“따로 뭐 원하는 거 있나요?”
진하의 물음에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권총류이면 좋겠네요. 이왕이면 파워도 센 걸로요.”
“네, 손님.”
장난감 총인 이상 파워는 다 비슷비슷했다.
그렇다는 건 실제 총기 모델 중에 파워가 비슷비슷한 걸 찾아달라는 거였다.
‘데저트 이글이었나?’
총기에 관해 그리 많이 알진 않지만 대충 권총 중에 가장 강하다고 알고 있었다.
그걸 추천해 주면 되겠지.
“이거 말하는 건가요?”
진하가 구석에 쌓아 둔 박스 중 하나를 찾아 그에게 넘겼다.
“열어서 확인해 봐도 되죠?”
“네.”
박스를 연 남자는 잠시 총기를 살펴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나쁘지 않네요. 규격도 쓰던 거랑 비슷한 거 같고요.”
“그래요? 그럼 계산은 카운터에서 도와 드릴게요.”
진하가 카운터로 걸어가 돈 통을 열었다.
그리고 남자에게 박스에 쓰여있는 가격을 말해 주었다.
“만 원입니다.”
그러자 당황하는 남자.
‘뭐지? 현금 안 가지고 있나?’
“참고로 카드는 안 됩니다.”
“아뇨, 그런 게 아니라요.”
남자가 손으로 이마를 탁 쳤다.
“제가 오해할 만한 행동을 했나 보네요. 지금은 평범한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는 걸 깜박했어요.”
남자의 말에 돈 통을 열던 진하가 멈칫했다. 그리고 그런 진하에게 쐐기를 박는 한마디.
“포인트로 결제하고 싶은데요?”
“하하. 손님, 죄송하지만 저희 문방구에는 포인트 제도 같은 걸 운영하고 있지 않습니다.”
진하는 당황스러운 마음을 감춘 채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응? 여기가 아닌가? 아닌데? 분명 물건들에 마력이 깃들어 있는데?”
남자의 말에 진하는 더 이상 시치미 뗄 수 없다는 걸 느꼈다.
착각이 아니었다. 확실하게 이 남자는 이 문방구에 대해 알고 왔다.
“당신은 누구시죠?”
조심스레 묻는 진하의 모습에 남자가 아차 하는 표정을 지었다.
“아, 새로운 관리자시면 절 모르실 만하네요. 저는 아카식 레코드의 사서라고 합니다.”
‘아카식 레코드? 뭐 하는 곳이지?’
진하는 그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어쩌면 그 할머니랑 관련된 단체일 수도 있었다.
파직!
순간 남자의 몸이 흐릿해졌다.
“음? 왜 이러지?”
남자는 잠시 당황하더니 허공을 몇 번 두들겼다.
“뭐야? 인과율이 왜 소모된 거야? 난 한 게 없는데?”
알 수 없는 말을 하며 남자가 허공을 계속해서 두들겼다.
‘시스템 창?’
남자가 허공을 건드리는 모습이 마치 시스템 창을 건드는 듯했다.
하지만 진하가 알기로 시스템 창은 단순했다. 그런데 저 남자가 허공에 무언가를 두드리고 있는 모습은 마치 컴퓨터를 조작하듯 복잡한 화면을 건드는 듯했다.
“아, 미친, 여기 이야기가 왜 꼬여 있는 거지?”
무언가 확인을 마친 건지 남자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진하를 바라봤다.
“당신 관리자 아니네요?”
“관리자? 그게 뭐죠?”
진하는 몸을 긴장시키며 물었다. 진하의 말에 남자가 한숨을 내쉬었다.
“아, 진짜 내가 이래서 관리자라는 족속을 싫어한다니까.”
“당신, 뭘 알고 있는 거죠?”
“당신, 왜 여기를 맡고 있는 거죠? 관리자도 아니고 예비 관리자도 아닌데.”
“뭘 알고 있냐고 물었습니다.”
“그리고 당신 이미 죽어 있어야 하는데 왜 살아 있습니까?”
둘의 이야기가 평행선을 달리고 있었다.
특히, 진하를 노려보는 그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진하는 슬며시 파우치로 손을 가져갔다.
타앙!
작은 소리와 함께 파우치를 스쳐 지나가는 BB탄 하나.
“거기까지, 허튼짓은 하지 마세요.”
‘어…… 떻게?’
진하의 몸이 굳어졌다.
분명 문방구는 아티팩트화가 풀려있었다. 그런데 지금 저 남자는 총을 쏘았다.
그것도 아티팩트화를 시킨 상태로.
‘아니, 그 전에 포인트 지급 알람도 안 떴어.’
기존에 찾았던 모든 상식이 무너졌다. 진하가 찾았던 모든 규칙을 지금 이 남자는 아주 가볍게 무시하고 있었다.
진하는 현재의 상황이 너무나 혼란스러웠다.
“흠, 당신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담담하게 진하를 바라보는 남자.
방금 전까지 아무런 느낌도 없었던 그에게서 압도적인 기운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슬라? 아니, 그 이상인 것 같았다.
‘못 이겨.’
본능적으로 느낌이 왔다. 절대 이길 수 없는 상대였다.
“일단은 사정도 알아야 하니까, 좋게 말로 할까요?”
남자의 말에 진하가 아주 천천히 파우치에서 손을 뗐다.
지금은 그의 기분을 거스르지 않는 게 제일 중요했다.
“자, 그럼 가장 중요한 것부터 묻죠. 당신, 왜 여기 있죠?”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이해를 못 하겠습니다. 제가 여기에 있으면 안 되나요?”
“네, 당연하게도 이 시간대에 당신은 없어야 합니다. 그리고 당신 때문에 이곳의 이야기가 꼬여 버렸어요.”
“이야기요?”
“아, 그건 몰라도 돼요. 흠, 보아하니 당신도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은데. 당신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를 죽이실 건가요?”
진하의 말에 남자는 잠시 고민 어린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러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가장 간단한 방법은 죽이는 거겠죠?”
그의 말에 진하가 이를 악물었다. 이대로 허무하게 죽을 수는 없었다. 갑작스럽게, 그리고 이렇게 허무하게 죽는다고?
“근데 그건 잠시 보류할게요.”
“보류?”
“아무래도 주인이 찾아온 것 같네요.”
“주인이라면…….”
털썩!
말을 끝마치지 못하고 그대로 쓰러지는 진하. 쓰러진 진하를 보며 남자가 입을 열었다.
“왜 이렇게 늦게 오셨어요?”
“썩을 놈아, 내가 은퇴한 지가 언제인데 왜 여길 찾아와!”
“그거야 필요한 물건이 있으니까요?”
남자가 몸을 돌리자 문방구 입구에는 할머니가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 휴가 중인 거 안 보여?”
“떠돌이인 제가 그걸 어찌 압니까? 그나저나 이 사람 뭐예요?”
그가 쓰러진 진하를 가리켰다.
“관리자로 키울 거도 아니면서 문방구에 앉힌 것도 그렇고, 지금 관리자가 알면 화낼 텐데요?”
“그러라고 그 자리에 앉힌 거야.”
“관리자가 화낸다니까요?”
“내 알 바야?”
“그렇긴 한데 그래도 제 생각도 좀 해 주시죠? 이렇게 되면 이곳의 이야기가 꼬이는 거 몰라요?”
남자의 말에 할머니가 웃음을 터뜨렸다.
“언제부터 그런 거 신경 썼다고 그래? 이미 이야기들이 제대로 흘러가지 않은 지 꽤 됐잖아?”
“그렇게 만든 게 관리자분들이셨고요.”
“그래서 어쩌게?”
“죽일까 생각 중이죠?”
“거짓말을 하려거든 진짜같이 좀 하거라. 그놈을 죽이면 이야기가 더 꼬일걸?”
“어차피 결말만 똑같으면 되죠.”
“그런 놈이 온 세상을 돌아다니면서 이야기를 고쳐 쓰냐?”
“에휴, 아무튼 말로는 절대로 안 져요. 그나저나 이것 좀 어떻게 해 주시죠? 최저로 비틀어 사용하긴 했지만 지금 반동 오는 중이거든요?”
남자가 할머니에게 다급하게 장난감 총을 넘겼다.
총을 받아든 할머니는 총을 가볍게 어루어 만졌고, 그 모습을 본 남자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 진짜 이래서 내가 관리자 물품은 건들기 싫다니까요.”
“그럼 네 능력을 쓰면 되지 왜 억지로 봉인을 비틀어?”
“인과율을 쓰는 것보단 싸게 먹히니까?”
남자의 대답에 할머니가 피식 웃었다.
“아무튼 이거 필요해서 온 거지? 가져가.”
할머니가 남자에게 장난감 총을 넘겼다.
<데저트 이글: 한 방, 한 방이 대포 같은 강력한 총, 반동이 너무 심해 연속으로 쏘는 건 불가능하다. 특수한 BB탄을 넣으면 특수한 효과가 일어날지도…….>
효능을 확인한 남자가 황당한 표정으로 할머니를 바라봤다.
“지금 장난쳐요? 이런 거 말고 제대로 봉인 풀어 주세요.”
“쯧, 재미없기는.”
혀를 차며 다시 한번 총을 어루만진 뒤 남자에게 총을 넘기는 할머니.
남자는 그제야 만족한 표정으로 총을 받아든 채로 물었다.
“근데 여기에 있는 물품들 뭐하러 이중 봉인처리 했어요? 그것도 죄다 쪼개놨네?”
“그야 제대로 풀면 저놈이 못 다루잖아.”
할머니의 시선이 쓰러져 있는 진하를 향했다.
“아, 맞다. 저 친구 뭐예요? 여기를 맡긴 거 보니까 특별대우하는 것 같긴 한데 이야기를 바꾸려는 것치곤 모자라지 않아요?”
“클클, 이야기를 만드는 데 꼭 뛰어난 사람이 필요한가? 난 기회를 원하기에 줬을 뿐이야. 지금 상황이 마음에 안 들기도 하고.”
“하, 역시 관리자들은 하나같이 또라이라니까.”
“사돈 남 말하지 마. 이야기를 고쳐 쓰겠다고 돌아다니는 너도 거기서 거기니까.”
“아무튼 대가는 포인트 맞죠?”
“안 받아.”
“네?”
“너한테는 포인트 안 받는다고. 대신 부탁이나 하나 들어줘”
“아, 싫은데…….”
“그거 필요 없어? 옆 동네 가져다주려는 거잖아.”
할머니의 말에 남자가 인상을 찌푸렸다.
확실히 할머니의 말대로 남자는 이 총을 반드시 가져가야 했다.
“아씨, 원하는 게 뭔데요? 참고로 과한 건 절대 불가능.”
“과한 거 아니다. 그저 때가 되면 내 앞으로 이 녀석을 데려다주기만 하면 돼.”
“때?”
“그래, 이 녀석이 문방구를 물려받기 좋을 때.”
할머니의 말에 남자의 얼굴이 굳어졌다.
“이걸 넘겨준다고요? 그게 무슨 뜻인지는 알아요?”
“알아, 그러니까 넘겨준다는 거다. 맘 같아선 지금 주고 싶은데 아직 자격이 안 돼.”
“하아, 진짜 관리자들이란…… 알았어요. 그건 어려운 일이 아니니까 해 드릴게요. 근데 그전에 죽는다면요?”
“그건 어쩔 수 없지. 지 운명이 그런 거니까.”
“아무튼, 속을 알 수 없다니까. 그럼 전 먼저 갑니다.”
남자는 살짝 고개를 숙인 뒤 문방구 밖으로 빠져나갔다.
남자가 남고 혼자 남은 할머니는 쓰러져 있는 진하를 보며 중얼거렸다.
“자, 어디 한번 발버둥 쳐 봐라. 나도 궁금하구나. 네가 어디까지 나아갈지가.”
그 말과 함께 할머니는 연기처럼 흩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