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가진 SS급 문방구-38화 (38/202)

#038

다른 말로는 새알탄이란 이름을 가진 물품이었다.

진하는 재빠르게 탁자 위로 새알탄을 던짐과 동시에 허공에 떠 있는 시스템 창 버튼을 눌렀다.

<삼각자 세트가 배송됩니다.>

퍼엉! 휘익!

새알탄이 터지며 잠시 멈추는 사람들, 그와 함께 빠르게 사방으로 퍼지는 삼각자 세트.

“거기까지.”

우뚝.

한의 목소리와 함께 날아간 삼각자가 제자리에 멈춰 섰다.

“여, 반응이 빠르네?”

진하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분명 제일 경계하던 인물이었다.

그래서 세 개의 삼각자 중에 두 개나 그를 향해 날렸고.

근데 그중 하나는 튕겨 나갔고, 나머지 하나는 그의 목까지 닿기엔 거리가 조금 있었다.

반대로 한의 비도는 그의 목 앞에서 날을 세우고 있었다.

“근데 주인도 잘 지켜야지?”

진하의 눈동자가 한쪽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그녀의 목을 거의 찌르기 직전인 삼각자가 놓여져 있었다.

“어때, 해 볼래? 내 생각이 빠를까 아니면 네 손이 더 빠를까?”

진하가 한을 보며 짙게 웃었다.

애초에 혐오하는 블랙 길드를 오면선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았을 리 없었다.

<삼각자 세트: 선을 긋거나 각도를 잴 때 쓰는 도구. 제대로 사용하기보단 자르거나 날리며 노는 데 많이 썼다. 각도를 잘 잡아 보자. (각도 잘 봐라)>

그의 생각대로 움직이는 삼각자 세트와 원격 구매에 붙어 있는 배송 시스템.

비록 5만 포인트짜리 무기에 배송비까지 장난 아니게 포인트가 날아가기는 했지만 충분히 제값을 하는 물품과 기능이었다.

“이 칼 좀 치우게 하지?”

진하가 그녀를 보며 말했다.

“당신부터 이 무기 좀 치우죠?”

그녀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내가 이래서 네가 싫어. 너 좋을 대로만 하고, 숨기는 건 더럽게 많고, 자존심은 강하고.”

“저를 잘 아는 듯 말하시네요?”

“잘 알지. 네 왼쪽 가슴 아래에 점이 있다는 것까지?”

주르륵.

목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마찬가지로 진하의 생각에 따라 어느새 그녀의 목에도 피가 흐르고 있었다.

“재밌는 말을 하네요? 그것도 아티팩트의 능력인가요?”

“그래, 하나만 물어보자. 내가 너희와 거래를 한다면 뭘 얻지?”

이건 진하가 사랑했던 사람에 대한 마지막 예의였다.

혐오하지만 그만큼 사랑하고, 서로를 채우려 갈망했던 관계.

이미 지나가 버린 것에 대한 마지막 예의.

“그거야…….”

“잘 대답해, 송하나. 너의 대답에 모든 게 달라질 수 있으니까.”

진하의 말에 그녀가 멈칫했다.

송하나. 자희라는 가면 속에 대부분 살아온 그녀의 본명.

‘모르는 게 뭐지?’

송하나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자신의 신체적 정보? 그런 건 어떻게든 알 수 있다.

투시 아티팩트를 사용했을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송하나라는 이름, 적어도 그건 김진하가 절대 알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 이름을 아는 사람은 아버지와 자신의 측근까지 3명뿐이니까.

애초에 그녀조차 기억 못 하는 아주 어릴 때 이후로 사용하지도 않았던 이름이었다.

“제 대답에 모든 게 달라진다고요?”

“그래, 너의 조직과 운명 모두 다.”

송하나는 직감적으로 진하가 거짓말을 하지 않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렇다면 그에게 무엇을 주어야 하는 걸까.

그 화두가 그녀를 괴롭혔다.

‘돈? 아니면 권력?’

그런 거로는 설득할 수 없었다.

송하나가 가진 돈이며 권력은 다른 길드도 충분히 줄 수 있는 거니까.

그녀가 줄 수 있는 것.

“아무것도 없어요.”

송하나는 솔직해지기로 했다.

어차피 이미 그녀의 분파는 해체 직전까지 몰린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블러핑이나 협박, 타협 따위는 먹히지 않는다.

“칼 치워요.”

송하나의 명령에 한이 비도를 회수했다.

그리고 한과 조직원 모두 두 걸음 물러났다.

“이제 그쪽도 좀 치워 주시죠?”

“내가 왜?”

진하는 태연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쪽한테도 좋을 거 없으니까? 정말 목숨이 아깝지 않으신가요?”

“응.”

진하가 아무 망설임 없이 말했다.

꽈악.

이것 또한 진실.

그것을 알아본 그녀는 더욱 입술을 꽉 깨물었다.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돈도, 권력도 원하지 않는 인간. 그렇다고 딱히 목표가 뚜렷하게 보이는 것도 아니었다.

자신의 목숨을 내놓고 마치 자격이 된다면 도와주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너 같은 사람은 알 수 없지.”

평생 돈과 권력, 배신 속에서 살아온 그녀가 알 리가 없었다.

27년 평생을 그렇게 살아왔을 테니까.

“그래서 아무것도 줄 수 없다면 내가 왜 거래에 응해야 될까?”

애초에 공평하지 못한 거래였다.

그리 크게 아쉬울 것 없는 진하와 아쉬울 게 많은 송하나의 거래.

모든 걸 알고 있는 진하가 질 수 없는 싸움이었다.

한참의 고민 끝에 송하나는 손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무것도 줄 수 없지만 대신 나를 주죠.”

“널?”

진하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네, 저라는 사람이요. 제 적통, 권력을 모두 줄게요.”

“그 쓸모없는 걸?”

“지금은 쓸모없죠. 근데 만약 당신과의 거래 후 우리 분파가 살아남는다면 당신은 정보 길드를 가진 것과 다름없게 되죠. 아닌가요?”

그녀의 말에 진하는 얼굴을 쓰다듬었다.

“그냥 차라리 다른 블랙 길드나, 분파에 간다는 건 생각하지 못했나 보네?”

“그랬으면 당신이 저를 만날 생각을 하진 않았겠죠.”

진하는 속으로 혀를 찼다.

어느 정도는 그녀의 말이 맞기 때문이다.

그에게 필요한 건 이용할 도구이지 협력할 파트너가 아니었다.

정보에 능통하고, 도구가 될 수 있고, 그가 빠르게 접촉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았으니까.

“너를 준다는 건 내 명령에 복종하겠다는 건가?”

“생존을 위협하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진하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조직원들 모두 덤덤한 표정으로 둘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나만 묻지. 아, 송하나 너 말고, 왜 나가지 않는 거지? 다른 분파에서 받아 줄 수 있지 않나?”

질문을 받은 한은 아무 말 없이 진하를 바라봤다.

그의 무뚝뚝한 표정을 보며 진하가 한숨을 내쉬었다.

“좋아, 계약을 체결하지.”

“후회하지 않을 거예요.”

진하의 말에 송하나가 반지 한 쌍을 꺼냈다.

그리고 반지 하나를 진하에게 던졌다.

“끼세요. 약속의 반지라는 아티팩트예요.”

그녀의 말에 나는 반지를 집어 들었다.

“정보 확인.”

<약속의 반지: 약속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반지. 어길 시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받는다.>

“약속은 나는 나의 모든 걸 당신에게 준다는 것, 당신은 아티팩트를 이용해 최대한 우리 분파를 살리는 것. 대가는 목숨.”

그녀의 말에 진하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약속은 현재 너의 지위를 포함, 너와 너희 분파가 가지게 될 모든 것. 나는 내 목숨을 이용해서라도 너의 분파를 돕는다. 대가는 영혼의 소멸.”

진하의 말에 그녀가 흠칫했다.

“너나 나나 목숨을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잖아? 그리고 약속은 똑바로 하자고.”

시답지 않은 말장난으로 당할 생각은 없었다.

그러기엔 진하는 송하나를 너무 잘 알았다.

“좋아요, 그렇게 하죠.”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반지를 꼈다.

그리고 진하를 바라보는 송하나.

진하는 반지를 끼지 않은 채 잠시 그녀를 바라봤다.

“흠, 근데 끼기 전에 하나만 더 확인할 게 있어.”

“뭐죠?”

“일단 이 바보 같은 환상 좀 치워 줄래?”

나쁘지 않은 환상이었다.

하지만 몇 가지가 너무 허술했다.

대기했을 때의 사람의 몸 떨림이라든지, 위급상황에서의 반응 등, 인위적인 게 몇 가지 보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강한 정신력으로 환상에 일부 저항합니다.>

이 알림과 함께 환상이 일부 투명해졌다.

그 덕에 현실감은 더욱 떨어졌고.

따악!

나의 말에 그녀가 손을 튕겼다.

그러자 콘크리트 방이 사라지며 호텔 방 내부가 드러났다.

“환상을 설정할 거면 제대로 해. 주변에는 콘크리트가 사방으로 뒤덮인 건물은 없거든.”

고작 10분이었다.

오감을 틀어막아도 고작 10분 안에 도착할 수 있는 공간은 한정되어 있었다.

거기다가 이렇게 티 나는 콘크리트 건물이라니.

“그리고 중요한 얘기에 이렇게 부하를 이끌고 오는 놈들이 어딨냐?”

역시나 경험의 부족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세가 약한 그녀가 세가 강해 보이려는 일종의 발악이었겠지만.

“어이 형씨들, 잠시 좀 나가 주실래요?”

진하가 환상 능력자와 한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에도 움직이지 않는 둘.

진하가 고개를 돌려 송하나를 바라보자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손을 휘저었다.

“알겠습니다.”

그녀의 명령에 방을 빠져나가는 둘.

그들이 빠져나가고 완전히 둘만 남게 되었다.

진하 또한 그녀의 목에서 삼각자를 거두었다.

“이제 만족하나요?”

“반쯤은? 그래서 묻지. 지금 진짜 전력이 얼마나 되지?”

“믿을 수 있는 자는 20명이에요.”

“적은?”

“하위 길드원은 공통으로 관리하니까 제외. 각 분파마다 다르지만 전력은 대충 100에서 150.”

“아, 진짜 망하기 직전이네.”

아직까지 명맥을 유지하는 것 자체가 신기할 지경이었다.

“이제 됐나요?”

그녀의 물음에 진하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하나 더. 분명 네 모든 걸 내놓겠다고 했지? 그럼 어떠한 명령도 들을 수 있나?”

“저와 주변 인물의 목숨을 제외한 거라면 얼마든지.”

“흠, 그래? 그럼 벗어.”

“그러죠.”

진하의 말에 아무런 저항감조차 없이 옷을 벗기 시작하는 그녀.

진하는 그녀를 묵묵히 바라봤다.

일부러 수치스러운 명령을 했음에도 아무런 흔들림 없이 옷을 벗는 송하나, 그리고 두 눈에 서려 있는 독기, 진하가 옛날부터 봐 왔던 송하나와 다를 게 없었다.

다만 피폐한 눈과 모든 걸 포기한 눈빛만 없을 뿐.

“됐나요?”

전라가 된 송하나가 진하를 보며 물었다.

진하는 그런 송하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그냥 그녀의 의지를 확인해 보는 절차에 불과했다.

“어째서 그렇게까지 하는 거지?”

진하가 알기로 그녀는 원한다면 모든 걸 포기하고 도망갈 수 있었다.

“원한다면 넌 도망갈 수 있지 않나?”

“도망이야 쉽죠. 아니, 어쩌면 믿는 인원들까지 같이 도망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런데?”

“다른 분파가 우릴 쉽게 놔줄까요?”

그녀의 말에 진하는 침묵했다.

확실히 미래의 그녀는 도망치지 못한 채 구석에서 썩어 가고 있었었다.

“지금이라면 가능하지 않나?”

회귀 전에는 분명 싸웠을 거다.

진하가 아는 그녀라면 포기할 리 없으니까.

하지만 지금이라면 다를 수도 있었다.

“이미 많은 가족들이 피를 흘렸어요. 그런데 도망갈 수 있겠어요? 되는 데까지 복수는 해야죠?”

진하는 자신을 곧게 바라보는 그녀를 보며 한숨을 내쉬고 반지를 끼었다.

그러자 빨갛게 선이 그어지는 반지, 계약의 완료였다.

“젠장, 어쩔 수 없긴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별로네.”

“그렇게 저희가 별로인가요?”

“아니, 블랙 길드 자체가 별로야.”

기분이 더러웠다.

원래부터 블랙 길드랑 계약 맺는 것도 기분이 더러웠지만 이렇게 송하나를 다시 보는 것도 기분이 더러웠다.

“이만 난 가도록 할게. 이후에는 어떻게 할진 편지로 전달하지.”

“그냥 갈 건가요? 이렇게 벗긴 상태로?”

그녀가 그에게 다가와 물었다.

“미안하지만 너한테 별 관심이 없어서.”

“그래요? 어차피 나 하나 취한다고 변하는 건 없지 않아요?”

“그래, 아무런 경험 없는 애송이 하나 취한다고 변하는 건 없지.”

진하는 코앞까지 다가온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가끔은 네 뜻대로 행동해. 믿을 만한 사람과 의견을 나누는 건 좋지만 넌 장의 자리를 맡은 사람이야.”

“당신……”

“참고로 텔레파시 목소리랑 지금 목소리랑 조금 겹친다. 변조할 거면 제대로 해라.”

진하는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천천히 문 쪽으로 이동했다.

“잠시만요.”

그런 그를 멈춰 세우는 송하나.

“왜 그러지?”

“나도 하나만 물어도 되나요?”

“물론.”

“어떻게 아는 거죠?”

“뭘?”

진하의 말에 송하나는 잠시 주저하다 말했다.

“내 이름, 그리고 능력.”

‘어떻게 할까…….’

어떻게 알려 줘야 할지 잠시 고민되었다.

당연히 진실은 안 되었다. 그렇다면 그냥 아티팩트라고 둘러댈까?

“꼭 알아야 돼?”

“물론이죠.”

“그럼, 너랑 나는 그냥 전생에 사랑했던 사이라고 해 두지.”

진하는 그 말을 남긴 후 방을 빠져나갔다.

잠시 후 한이 들어왔다.

“어떻게 되셨습니까?”

옷을 입고 있던 송하나가 아쉬운 듯 말했다.

“실패했어.”

“그럴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왜 하라고 한 거야?”

“시도가 나쁜 건 아니니까요. 몸으로라도 그런 사람을 잡는다면 충분히 이득이었습니다.”

“그래?”

“아가씨는 그 사람이 마음에 드셨나 보군요.”

한의 물음에 옷을 다 입은 송하나가 머리를 정리하며 말했다.

“어, 왠지 조금 관심이 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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