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7
<충격! 이도현 이사 숨겨진 딸이 있는 것으로 드러나.>
<속보! 협회는 비리의 온상지? 일부 업체 선정에서 뒷돈을 받아…….>
쾅!
“이게 다 뭐야!”
이도현은 벌게진 얼굴로 비서를 바라봤다.
“그게…… 갑작스럽게 뉴스들이 우후죽순으로 나와서…….”
“지금 그걸 묻는 게 아니잖아!”
이도현이 소리치자 비서가 몸을 움찔했다.
“왜 뉴스에 나오는지 묻는 거잖아. 협회에서 저것들에게 그동안 부은 돈이 얼만데!”
“그, 그게 그쪽 말로는 지금 찾고는 있지만 아무도 기사를 쓰지 않았다고…….”
“그럼 이건 뭔데!”
이도현이 태블릿을 던졌다.
날아간 태블릿은 벽에 맞고 부서지며 땅바닥을 뒹굴었다.
“그, 그게…….”
“찾아내! 당장 이딴 기사 쓴 기자 새끼 찾아내!”
“예, 예!”
비서가 고개를 숙인 뒤 재빠르게 방을 빠져나갔다.
비서가 빠져나간 후 혼자 남은 이도현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 진짜…….”
이런 짓을 할 만한 사람은 몇 되지 않는다.
자신도 모르게 언론을 이용해 정보를 퍼뜨리면서 자신을 적대하는 자.
‘이기수, 아니면 반대 세력.’
일단 이기수는 아니었다.
협회를 통해 김진하의 개인 정보를 보호하긴 했지만 그것뿐이었다.
그가 가진 건 무력이지 권력이 아니었다.
아무리 그라고 해도 언론을 이용할 순 없었다.
“그럼 남은 건 반대 세력인데…….”
그렇다고 반대 세력이 날뛸 이유도 없었다.
애초에 반대 세력의 세가 약하기도 했지만 이런 정보는 여기서 쓸 만한 카드가 아니었다.
마치 김진하의 사건을 뒤덮어 주는 듯한 행보였다.
“설마…….”
아티팩트를 제공받기 위한 거래가 있었나? 순간 이런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줄지 안 줄지 모르는 아티팩트를 위해 반대파가 이런 도박을 할 리 없었다.
그렇다고 거래를 했다기엔 너무나도 빠른 속도로 기사가 뒤집히기 시작했다.
“하, 진짜…….”
도저히 어떤 놈인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삑!
이도현이 인터폰을 눌렀다.
“반대파 최근 4일간 행적 모조리 가져와.”
―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이사님.
“왜?”
―로비에서 기자들이 인터뷰를 할 수 없겠냐는 요청이…….
까득!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 무시해!”
―하지만 기자 스트리머들도 끼어 있습니다. 하는 시늉이라도 하지 않으면…….
“아, 진짜! 그런 건 니들이 알아서 해야지! 그러라고 그 자리에 있는 거 아냐!”
쾅!
주먹으로 버튼을 내리친 이도현이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아무튼 스트리머라는 것들은…….”
매수가 쉬운 기자와는 달리 자신이 마치 무슨 정의의 사도라도 된 듯 날뛰는 몇몇 스트리머라는 족속이 문제였다.
관심 좀 받아 보겠다고 이곳저곳에 끼어들어서 사건이나 키우고.
“요즘 따라 되는 게 없군.”
목줄을 풀어 재낀 대기업부터 이기수까지. 거기다 이딴 언론 사고까지 여태껏 한 번이라도 일어나기 힘들었던 일들이 한 번에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김진하…….”
처음부터 맘에 들지 않는 놈이었다.
자신의 혼외 자식을 가지고 협박한 순간부터 거슬렸던 인간이었다.
분명 이번 기사 역시 그가 일조했을 게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자세하게 그에 대한 행적이 나올 리 없었으니까.
“오냐, 한번 해 보자는 거지?”
날뛰는 물고기는 응당 작살로 꿰뚫어야 했다.
지금 당장은 이기수 때문에 건들지 못하지만 상관없었다.
협회만 아니면 되니까.
* * *
“오케이 이건 이 정도로 마무리하고.”
진하가 뻐근한 손을 털며 씨익 웃었다.
그가 바라보는 곳에는 한 장의 종이가 놓여 있었다.
<특종! 이도현 혼외자식 비리 입학!>
<혼외자식의 존재가 드러난 가운데…….>
지금 가장 큰 문제는 진하에게 쏠린 시선이었다.
적이 언론으로 그를 공격한 것을 막을 방법이 필요했고 그것 중 가장 좋은 방법은 똑같은 방법으로 공격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필요한 게 이 두 가지 물품.
<샤프: 누구나 사용하는 문방구. 꼭 누가 흰 종이에 지저분하게 글을 쓰면 신경 쓰이더라.>
<롤링 페이퍼: 누가 썼는지 알 수 없게 되는 종이. 근데 꼭 보면 나도 모르게 똑같이 베껴 써 버리더라.>
샤프와 롤링 페이퍼의 콤보.
이젠 애매한 설명만 봐도 대략적인 효능을 알 수 있었다.
샤프로 쓰면 백 퍼센트 볼 수밖에 없고, 롤링 페이퍼를 통해 본다면 똑같이 베껴 쓴다.
이렇게 작성한 글을 기자나 스트리머에게 뿌리기만 하면 됐다.
그럼 자신도 인식하지 못한 채로 알아서 똑같이 베껴 쓸 테니까.
“거기다 화룡점정.”
<편지 봉투: 아기자기한 마음을 담은 편지를 담는 봉투. 잘 도착하겠지?>
봉투에 주소와 받는 사람을 쓰고, 롤링 페이퍼를 넣어서 봉인하기만 하면 끝이었다.
스르륵.
순식간에 사라지는 봉투.
아마도 겉에 썼던 주소의 사람에게로 날아간 게 분명하겠지.
그리고 그걸 증명하는 게 인터넷에 퍼지고 있는 뉴스들이었다.
“일단 이걸로 급한 불을 끄긴 했는데 말이야.”
밖을 쳐다보니 그 많던 기자들도 많이 사라졌다.
확실히 어디 있는지 모를 사람을 찾기보단 다른 뉴스거리를 찾으러 가는 듯했다.
지금 밖은 난리가 난 상태일 테니까.
“그나저나 이 짓도 비효율적이란 말이지.”
인터넷을 뒤져서 기자를 찾고, 그 기자들에게 편지를 보내는 게 말이야 쉽지, 신체 능력자인 진하의 손이 뻐근해질 때까지 쓴 걸 생각하면 절대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나저나 올 때가 됐는데.”
편지를 쓰기 시작한 지 벌써 네 시간이었다.
지금쯤이면 연락이 올 때가 됐다.
띠리리! 띠리리리!
“다른 놈이 왔네.”
이기수에게 전화가 온 것을 확인한 진하가 전화를 받았다.
―진하야.
“어, 기수야.”
―이거 네가 한 거야?
주어가 없는 말이었지만 무슨 말인지 쉽게 알아들었다.
“어.”
―너…….
뭔가 할 말이 많은 듯한 음성이 흐리게 작아졌다.
“아직 방어한 것뿐이야, 그저 화제를 돌린 거지. 네 역할이 제일 중요해. 마석의 수급이랑 방패막이 잘할 수 있어?”
―해야지, 할 수 있는 데까지 해야지.
“고맙다.”
―고맙긴, 이건 나도 원해서 하는 거야.
이기수가 전화를 끊었다.
진하는 잠시 꺼진 액정을 보았다.
이기수의 성격을 알기에, 거부하지 않을 거란 건 알았지만 역시나 살짝 찝찝했다.
이용하는 느낌이랄까.
“뭐, 이미 낙장불입이니까.”
혼자서 해결하지 못한다고 판단한 시점과 자신의 비밀을 밝힌 시점에서 이미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스르륵, 툭!
그때 진하의 앞에 편지 하나가 툭 생겨났다.
“왔네.”
이렇게 올 곳은 단 한 곳뿐이었다.
애초에 편지 봉투에 여벌의 봉투를 넣은 곳은 한 곳뿐이었으니까.
* * *
일주일 뒤, 인천 부둣가.
진하는 멍하니 밀려 들어오는 파도를 바라봤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차 한 대가 나타나더니 진하의 앞에 멈춰 섰다.
끼이익!
“왔어요?”
“처음 뵙겠습니다, 김진하 헌터님. 한이라고 불러 주시면 됩니다.”
자신을 한이라고 칭한 남자는 곧이어 진하에게 안대와 귀마개를 건넸다.
“가시기 전에 이걸 써 주시기 바랍니다.”
“뭐, 그러죠.”
진하는 대충 고개를 끄덕이고는 물건을 받았다.
안대와 귀마개를 하니 시야와 귀가 완전히 차단되었다.
‘아티팩트네.’
다만 게이트에서 나온 게 아닌 아티팩트 제작자가 만든 물품이었다.
아티팩트를 만드는 것 자체가 매우 적다는 걸 생각하면 얼마나 큰 조직인지 감이 왔다.
고작 안대와 귀마개를 아티팩트로 만든 거니까.
가격으로 따지자면 개당 대략 50억?
―그럼 가겠습니다.
진하의 머릿속으로 누군가의 음성이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진하의 손을 붙잡고 이끄는 손길.
진하는 손길이 이끄는 대로 차량에 탑승했다.
스르륵, 탁!
진하의 촉각에 문이 닫히는 진동이 전달됐다.
―출발하겠습니다.
예의 그 목소리가 친절하게 진하를 안내했다.
하지만 출발하겠다는 말과는 달리 진하의 촉각에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티팩트? 아니, 이건 마법인가?’
아무런 느낌도 나지 않는 걸 봐선 둘 중 하나이긴 했지만 지금의 기술로는 차량의 아티팩트화는 불가능하니 분명 1회용 인챈트인 듯싶었다.
아무리 아티팩트 수준은 아니라지만 1회용 인챈트 역시 비싸다는 걸 생각하면 돈지랄을 제대로 하는 조직이었다.
‘그런데도 이 수준이 겨우 약소 분파란 말이지.’
정보 길드를 이루는 4대 분파 중에 가장 약한 분파가 이 정도라면 확실히 이용할 만했다.
드러난 수준만 봐도 웬만한 거대 길드급 자본력과 무력을 가졌으니까.
‘특히, 한이라는 사람.’
A급 헌터였다.
그것도 상위 등급의 A급 헌터.
물론 S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S라는 등급이 정보 길드의 가장 약한 분파에 있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므로 A급 헌터였다.
애초에 한이라는 헌터가 S급 헌터였으면 약소 분파일 리도 없었다.
―다 왔습니다. 이제 안대를 벗으셔도 됩니다.
그 말에 진하는 천천히 안대와 귀마개를 벗었다.
그러자 느껴지는 감각들.
콘크리트로 사방이 막힌 건물이었다.
“자, 이제 어디로 가면 되지?”
“차량에서 내리시면 됩니다.”
한의 말에 진하가 차량에서 내렸다.
차량에서 내리니 바로 앞에 커다란 책상 하나와 여자 한 명이 앉아 있었다.
“잠시 무기 점검이 있겠습니다.”
“무기 점검?”
“보스의 안전을 위해 필요한 조치입니다.”
그 말과 함께 옆에 있던 조직원들이 금속 탐지기와 여러 마법 물품들로 진하의 몸을 탐색했다.
하지만 그에게선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진짜 아무것도 안 가져왔으니까.’
“이쪽으로 오시죠.”
한의 안내에 따라 진하는 책상 앞에 놓여진 의자에 앉았다.
“반갑습니다. 정보 조직 길드의 자희라고 합니다.”
“반가워요. 그런데 의외네요?”
“정보 조직의 수장이라는 자가 여자라는 게요?”
“아뇨, 수장이 아닌 후계자가 나왔다는 게. 이 거래가 별로이신가 보네요? 아니면 어지간히 겁쟁이인가?”
“무슨 소리죠? 제가 정보 조직의 수장입니다.”
그녀는 안색 하나 바뀌지 않고 말했다.
하지만 진하는 그녀의 말을 믿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녀는 진짜 보스가 아니었으니까.
‘어디 보자. 언제 만났었더라.’
그녀를 처음 만난 게 아마도 집창촌 구석진 골방이었을 거다.
1차 게이트 폭주 이후 블랙길드를 소탕하기 위해 조사를 하던 중 그녀를 처음 봤었다.
[뭐야, 너도 하러 왔어?]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들었던 첫마디.
그때를 진하는 잊지 못했다.
독기 어린 눈을 한 표정이었지만 이미 모든 걸 포기해 버린 그 눈동자를.
그리고 신혜와 닮았던 그 얼굴을.
“거래 안 할 거야? 나, 간다?”
진하가 아무렇지 않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진하를 바라보던 그녀가 빙긋 미소를 지었다.
“뭘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시지만 제가 진짜 수장이랍니다.”
“네 아버지는?”
진하의 말에 순간 그녀의 표정이 굳어졌다.
하지만 재빠르게 표정을 수습한 그녀가 아무렇지 않게 말을 이어 나갔다.
“제 아버지를 찾으시는군요. 아버지는 일선에서 물러나신 지 꽤 되셨습니다. 제게 편지를 보내셨길래 당연히 아시는 줄 알았는데 아니셨군요.”
그녀의 말에 진하가 속으로 혀를 찼다.
‘뭐야, 벌써 그 상태야?’
그녀의 아버지가 혼수상태라는 건 꽤 많은 부분이 밀렸다는 거였다.
실질적으로 4대 분파가 아니라 3대 분파라고 칭해야 할 정도.
아직 그 정도까진 아니라고 생각했던 진하의 입장에선 안 좋은 소식이었다.
‘하긴, 과거에 대해 제대로 말을 나눠 본 적이 거의 없긴 하지.’
그녀를 구하고 나서 진하와 그녀는 대화를 많이 하지 않았다. 특히 과거에 대한 것은.
그저 그를 그녀가 보듬어 주고, 그는 그런 그녀를 안기만 하는, 말없이 정을 나누는 사이.
그나마 본명도, 과거에 대한 어느 정도 사연도 2차 폭주의 조짐을 확인했을 때 들었었다.
“게이트 따위는 냅두고 도망가자.”
안전한 곳을 안다며 그에게 처음으로 부탁이란 걸 했던 그때, 진하는 당연히 그녀의 부탁을 거절했었다.
“그럼 마지막으로 안아 줘.”
그리고 그녀는 관계 중 그의 목에 칼을 찔러 넣었다.
물론 운이 좋게 한 번에 죽지 않은 진하는 그녀의 칼을 뺏어 그대로 그녀의 심장에 찔러 넣었다.
“안타깝네. 가지지도, 죽이지도 못했어.”
그때부터 진하는 블랙 길드를 더욱더 혐오했다.
정을 준 존재조차 손쉽게 배신하는 게 블랙길드였다.
원래도 갱생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일은 진하에게 갱생이라는 희망의 끈을 아예 놓게 한 사건이었다.
“그래? 그럼 딱히 할 말 없어.”
진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의 이용 가치는 어디까지나 그녀의 아버지가 살아 있는 상태에서나 있는 거였다.
그는 침몰하는 배에 탑승하는 취미는 없었다.
“호오, 그런가요? 거래할 게 있으셔야 할걸요?”
그녀의 손짓에 조직원들이 그를 에워쌌다.
“흐음? 이러면 그쪽 손해 아닌가?”
“아티팩트에 비하면 무기 하나 없는 B급 헌터는 충분히 수지맞는 거죠.”
“그래? 그럼 다른 것도 알아?”
“뭐요? 당신이 이기수의 멘티라는 거? 아니면 스킬을 각성한 거?”
그래도 정보 길드라고, 아예 정보를 못 얻는 건 아닌 듯싶었다.
적어도 스킬은 분명 아는 사람이 거의 없을 텐데 알아냈으니까 말이다.
“뭐, 그것도 그렇고.”
진하가 허공을 두들겼다.
“뭘 하는 거죠? 거기서 더 움직이시지 않는 게 좋으실 거예요.”
“옛날부터 느꼈는데 너는 그 약간 조급한 성질이 문제야.”
가끔씩 드러나는 조급함만 없으면 꽤 괜찮은 리더감일 텐데.
“뭐라는 거예요.”
“네가 원하는 게 아티팩트지?”
진하가 안쪽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조직원들의 몸이 움찔하는 걸 보며 진하가 어깨를 으쓱했다.
“무기는 아까 검색했잖아.”
금속 탐지기는 물론, 공격력이 있는 물품은 모조리 마법으로 검사당했다.
당연히 공격 무기가 있을 리 없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진하는 대충 어깨를 으쓱이고는 한 개의 물품을 꺼냈다.
흰색 종이로 감싸진 것을.
“그게 뭐죠?”
“네가 원하는 아티팩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