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가진 SS급 문방구-35화 (35/202)

#035

그의 말에 진하는 일주일 전 이기수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네가 진짜 원하는 게 미래를 바꾸는 거야? 아니면 네 주변을 살리는 거야?]

같은 말이었다.

둘 다 진하에게 같은 걸 말하고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 종용하고 있었다.

“도대체 뭘 말하고 싶은 거지? 아니, 내가 왜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하는 거지?”

“그게 순리니까.”

“순리?”

“넌 너무 물러. 모든 목표에는 희생이 불가피하게 뒤따라와. 근데 넌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고 있지.”

“그게 뭐가 잘못된 거지?”

“둘 다 놓칠 테니까. 정말 네가 목표를 이루고 싶다면 둘 중 하나를 택해. 이 세상에 둘 다잡는다는 선택지는 없어.”

“하…….”

진하가 헛웃음을 지었다. 순리? 희생? 웃긴 말이었다.

언뜻 들어 보면 확실히 일리가 있다고 생각할지도 몰랐다.

아까 전까지만 해도 진하도 비슷하게 설득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순리, 역부족, 어쩔 수 없다. 이런 걸 말하고 싶은 거야?”

“그럼 너는 다 이룰 수 있다는 그런 어리석은 생각을 하는 건 아니겠지?”

그의 말에 진하가 씨익 웃었다.

역시 자신과 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저 존재는 절대 자신일 수 없다.

“X까, 내 알 바야?”

“뭐?”

“미래를 바꾼다든가, 친구만을 구한다든가 그딴 선택 내 알 바냐고.”

“무슨 소리야? 지금 모든 걸 포기하겠다는 거야? 그럴 거면 왜 과거로 돌아왔지?”

“너 누구야.”

진하의 말에 그가 인상을 찌푸렸다.

“무슨 소리지? 난 너야. 너와 같은 신체, 능력, 생각. 내가 네가 아니면 누구라는 거지?”

“아니, 넌 내가 아니야.”

만약 진짜 저 존재가 자신이라면 절대 이런 식으로 말해선 안 됐다.

진하가 지금까지 헛발질하면서도 나아가는 이유, 목숨을 쉽게 버리려는 이유를 알 테니까.

“난 원해서 과거로 돌아온 적 없어.”

그저 우연히 기회를 움켜잡은 것뿐, 원해서 과거로 돌아온 적은 없었다.

“그러니까 당연히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지!”

“그러니까 둘 다 잡으려 노력해야지.”

진하가 그의 말을 똑같이 받아쳤다.

“그건 희망 사항일 뿐이야! 냉정해져!”

피식.

“냉정? 냉정하면 뭐가 좋지? 그렇게 해서 결국 어떻게 됐지?”

헌터라는 직종은 그 무엇보다 냉정해야 하는 직종이었다.

그래야 살아남을 확률이 높으니까, 그래서 여태껏 도망쳤다.

자신이 가장 살아남을 확률이 높다는 이유로, 들이닥치는 몬스터를 막는 데 효율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그렇게 이성적으로, 냉정하게 판단하고 살아남아 혼자 남겨진 헌터가 바로 회귀 전의 진하였다.

그렇다면.

“그렇게 살아남았고 그 끝을 봤어. 그러면 적어도 한 번쯤은 반대로 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잖아?”

과거 친구들은 자신을 위해 목숨을 버렸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진하가 친구들을 위해 목숨을 걸 차례였다.

“그럼 넌 미래를 바꾸지 않고 친구들을 구하겠다는 거야? 그렇게 하면 결국 모두 죽어!”

“뭐래, 아직도 이해가 안 가?”

친구들을 구하면 미래는 바뀔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설사 어찌어찌 친구들만을 구해 멀리 도망친다 하여도 친구들은 다시 한국으로 돌아올 것이다.

왜냐하면, 가장 냉정하지 않았던 헌터가 바로 진하의 친구들이었으니까.

결국, 이러니저러니 해도 친구를 구하려고 한순간 진하에게 선택지 따위는 없었다.

“궤변이야! 그러다 결국 모든 걸 실패할 거야.”

“그럼 실패하지.”

“뭐?”

그가 벙찐 얼굴로 진하를 바라봤다.

“이미 한 번 모든 걸 잃었어. 어차피 실패해 봤자 결국엔 과거랑 같아지는 것 외엔 뭐가 달라지지?”

“그, 그건…….”

“내 목숨? 내가 목숨을 아까워할 것 같아?”

목숨 따위에 크게 미련 없었다.

이미 친구들의 목숨을 통해 지금까지 이어져 온 목숨, 친구들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내다 버릴 수 있었다.

어차피 아무도 없다면 의미 따위 없는 목숨이었다.

“난 어설프게 자기 위로할 생각 따위 없어.”

손이 닿지 못한다면 모를까, 닿는 데도 안전을 생각하며 몇 명만 구할 생각은 없었다.

그런 자기 위로 따위 필요 없었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을 살리기 위해 미래를 바꾼다? 그딴 사명 따위도 없었다.

“그저 친구들을 구하는 것에 최선을 다한다, 그게 다야.”

그게 진하라는 사람의 본질이었다.

냉정한 척하려 하지만 끝내 냉정하지 못한, 감성적으로 움직이는 그런 사람.

친구들의 도움으로 한 생을 살아 봤으니, 이번에는 다른 삶을 살아 보려는 사람.

후회하고 또 후회하겠지만 그럼에도 행하는 존재.

그런 모순된 존재였다.

“고맙다. 덕분에 머릿속이 좀 편해졌네.”

주변에서 다들 이러쿵, 저러쿵 거리는 덕에 착각하고 말았다.

진짜 무언가를 선택해야 한다는 거로.

너무나 소중한 사람들이 한 이야기라 그게 맞고, 모순을 없애야 한다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적어도 나는 그런 소리 할 사람이 아니지.”

스스로에게 종용당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그는 어느 한쪽도 될 수 없는 모순된 존재.

항상 후회하고, 실패하면서도 욕심을 부리는 그런 사람이었다.

“웃기지 마! 그딴 번드르르한 말이나 늘어놓는다고 설득될 것 같아?”

“설득할 생각 아니었는데?”

“네 말이 맞다면 증명해!”

단검을 소환해 달려드는 그.

진하는 달려드는 그를 보며 말했다.

“증명할 생각 없어.”

푹.

복부에 찔리는 그의 단검.

진하는 진한 고통을 느끼며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이상하게 너무 아프다 했어.”

고작 물리적인 상처 하나로 이렇게 아플 리 없었다.

고통에는 나름 이골이 난 헌터였으니까.

하지만 한 가지, 정신적인 고통이라면 이렇게 아픈 게 가능했다.

익숙해지지 않는 고통이니까.

그렇다면 어떤 게 가장 고통스러울까?

“너, 내 후회지?”

지금껏 진하가 해 왔던 후회.

선택하지 못했던 선택, 잃은 것에 대한 후회라면 이렇게 아플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진하와 똑같은 존재가 했던 말들은 모두 진하가 한 번씩은 생각했던 거였다.

‘묘하게 익숙하다 했어.’

설득이 되기도 하고 익숙하기도 했던 말.

진하 스스로가 생각하고 후회했던 말이기에 설득됐던 거였다.

“그래서 뭐 어쨌다는 거지?”

으드득!

진하를 칼로 찌른 그가 칼날을 비틀었다.

진하는 오장육부가 찌그러지는 느낌에 온몸을 벌벌 떨었다.

“어차피 넌 나를 이기지 못하는 이상 이곳을 나가지 못해!”

촤악!

칼을 뺀 그가 그대로 진하의 심장을 향해 단검을 내리꽂았다.

푹!

“죽일 생각 없어.”

저항 없이 그의 칼을 받은 진하가 말했다.

처음 이곳으로 들어왔을 때 분명 정화를 한다고 했다.

진하의 정신적인 트라우마는 후회라고 했었다.

아마도 이 존재가 후회 덩어리라면 그걸 없애는 게 정화의 목표이겠지.

“어차피 너도 나니까.”

하지만 진하는 그를 죽일 생각이 없었다.

이 존재를 죽이고 정신적인 트라우마가 없어진다고 다시 후회하지 않을까?

지금까지 한 후회는 모두 잘못된 것일까?

결국, 후회라는 것도 진하의 일부였다.

“아프고, 실패하고 병신 같은 행동을 하더라도 지우지 않아.”

트라우마고 뭐고, 결국 그였다.

“하, 병신 같은 놈.”

그가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너는 절대로 이 순간을 후회할 거야.”

“그러겠지.”

“앞으로 모든 걸 잃고 실패할 거야.”

“그럴지도 모르지.”

“그런데 왜 담담한 거지?”

“그거야…….”

진하가 씨익 웃었다.

“아직 정해진 건 없으니까.”

“하, 미친놈.”

그가 손에서 단검을 새로 생성했다.

그러고는.

푸욱!

“큭!”

“뭐 하는 거야!”

스스로를 찌른 그를 보며 진하가 외쳤다.

“야, 트라우마가 무슨 말인지 몰라? 다 안고 가겠다고 다른 걸 못 봐서는 안 되지.”

천천히 진하에게 다가가는 그.

그는 진하의 코앞에까지 다가가 말했다.

“하나만 명심해, 너에게 더 이상의 스킬 각성은 없어.”

“뭐?”

“그건 스킬이 아니니까, 그리고 하나 더.”

작게 속삭이는 목소리.

그는 그 말을 마친 뒤 진하에게 떨어지며 말했다.

“어디 한번 가 봐. 멀리서 지켜봐 주마.”

그 말과 함께 사라지는 그는 사라졌다.

혼자 남은 진하는 멍하니 그가 사라진 자리를 쳐다봤다.

<정신이 정화되었습니다.>

<트라우마: 후회 정화 완료.>

<정신의 세계가 무너집니다.>

* * *

하얀 세계가 무너지고 다시 원래의 공간으로 돌아온 진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생수의 복용을 완료하였습니다.>

<업적 제삼의 길을 달성하였습니다.>

<포인트 1만 점을 획득하였습니다.>

<스킬: 과거의 후회가 업데이트 되었습니다.>

<정신의 정화로 정신력이 대폭 증가하였습니다.>

<생수의 효과로 정신적 디버프에 강한 저항력을 가지게 됩니다.>

수없이 떠오르는 메시지.

진하는 멍한 정신을 털어 내기 위해 고개를 가로저었다.

“해 뜨네.”

저 멀리서 해가 뜨는 게 보였다.

생수를 마실 때가 밤이었으니 거의 반나절이나 잠들었다는 말이었다.

“운이 좋았네.”

정신 속에서 있던 일을 생각하면 정말 운이 좋았다.

신체의 문제와 정신의 문제, 두 개의 문제 중 정신의 문제가 걸린 게 다행이었다.

만약 신체가 걸렸다면 성치 않은 몸 상태로 어떻게 됐을지 상상하기 어려웠다.

“그래도 얻은 게 많아.”

결과론이지만 얻은 게 많았다.

정신 저항력에 스킬의 향상.

특히 정신 저항력은 나중에 윗 등급의 몬스터를 상대할 때 꼭 필요한 능력이었다.

그리고 스킬.

<과거의 후회: 후회는 되돌릴 수 없다. 하지만 만회할 기회가 생긴다면 과거는 당신을 도울 것이다.>

<현재 저장된 과거: 2045년 6월 11일/2041년 6월 28일>

저장된 과거가 늘어났다.

하나는 회귀 직전의 자신,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회귀 직후의 자신.

이것만 봐서는 고작 D급 능력치라 큰 의미가 없었다.

하지만.

‘겹칠 수 있어.’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과거를 겹칠 수 있었다.

두 번, 세 번.

그렇다는 건 앞으로 몇 번이고 저장된 과거가 늘어날수록 겹칠 수 있는 과거 또한 늘어난다는 소리였다.

[더 이상의 스킬 각성은 없어.]

정신 속의 자신이 했던 말이 생각났다.

만약 그게 진짜라면 이 스킬이 마지막이라는 거였다.

S급을 찍을 수 없다는 소리.

하지만 상관없었다.

순전히 스킬 숫자로 보면 A급이겠지만 이 스킬은 특별했다.

‘한계가 없어.’

저장된 과거가 늘어날수록 강해진다.

다른 스킬들이 어느 정도부터 성장이 막히는 것과는 달랐다.

“내 자신이라…….”

진하가 문방구에 걸려 있는 거울을 바라보았다.

거울에 비친 진하 자신의 얼굴이 보였다.

[하나는 틀렸어. 난 후회지만 후회가 아냐.]

알 수 없는 말을 남긴 그 존재.

후회가 아니었다면 무엇이었을까.

“뭔지는 몰라도 나에게 도움이 됐다면 된 거겠지.”

진하는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 존재가 후회이든, 슬픔이든, 죄책감이든 결국 진하가 이겼다.

이겼다는 말을 하기에는 조금 이상했지만 어찌 됐든 이겼다.

그거면 되는 거였다.

“일단은 자자.”

진하는 땅바닥에 어지럽혀진 문구들을 바라봤다.

정리하긴 해야 했지만 지금은 너무나 피곤했다.

몸에 피로는 없었지만 대신 정신적 피로가 너무 심했다.

“인식 불가 모드.”

<문방구가 인식 불가 모드로 전환됩니다.>

혹시 누군가가 들어올지 몰라 인식 불가 모드로 전환한 진하가 작은 방으로 들어가 그대로 이불로 다이빙했다.

더 이상 무슨 생각을 하기엔 너무나 피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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