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가진 SS급 문방구-34화 (34/202)

#034

어깨를 토닥이는 남자.

진하의 두 번째 동료이자 친구였던 이진하였다.

“야, 점심 다 됐대. 가자.”

그와 같은 이름을 가진 동료.

하예진을 잃고 하루짜리 공략대를 돌아다니며 떠돌던 진하를 잡아 준 존재.

그리고 지금 이곳에서 목숨을 잃은 내 친구.

“잠깐만!”

진하가 다급하게 이진하를 불렀다.

“왜? 늦으면 양 부족한 거 몰라?”

이진하가 진하를 보며 물었다.

“이곳에서 나가야 돼.”

진하의 말에 이진하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게 무슨 말이야? 너 뭐 잘못 먹었냐?”

그의 말에 진하가 대답하기도 전에 우웅― 우웅― 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이미 늦은 상태였다.

진하는 다급하게 이진하의 팔을 붙잡고 이끌었다.

하지만 완강하게 버티는 이진하.

“뭐야, 너 진짜 왜 그래?”

“뒤를 봐!”

진하가 이진하의 뒤쪽을 가리켰다.

그리고 보이는 풍경.

점심 식사가 마련된 장소로 허니비 무리가 달려들고 있었다.

“뛰어!”

진하가 소리쳤다.

그제야 입구 포탈 쪽으로 달리기 시작하는 이진하.

“뭐야! 저것들이 왜 여기에 있어? 둥지는 보스 룸 앞이었잖아.”

“냄새! 냄새 때문에 달려든 거야!”

“냄새 차단제 뿌렸잖아!”

진하가 이를 갈았다.

그래, 뿌리긴 했었다.

다만 불량품이 섞여 있어 제대로 차단되지 못한 게 문제였다.

“더 빨리 달려!”

진하가 이진하를 재촉했다.

이미 다른 동료들은 공격당해 죽어 가고 있었다.

그리고 일부가 따라오고 있는 상황.

그때와 똑같은 상황이었다.

“젠장, 이대로는 따라잡혀.”

이진하가 점차 가까워지는 허니비 무리를 보며 말했다.

진하는 다급히 방법을 찾아보려 했지만 도저히 방법을 찾을 수 없었다.

“내가 남을게.”

“닥쳐!”

이진하의 말을 진하가 부정했다.

“너도 알잖아. 둘 중에 허니비를 막을 수 있는 건 나밖에 없다는 거.”

“아니, 죽어도 같이 죽을 거야.”

그때처럼 친구를 버린 채 도망갈 순 없었다.

진하는 그대로 몸을 틀어 허니비에게 달려들었다.

죽더라도 이번에는 절대 도망칠 생각은 없었다.

위이잉―

하지만 허니비들은 진하를 그대로 통과했다.

그가 휘두르는 칼날에 몇 마리가 죽든 그것을 무시한 채로 이진하를 향해 달려드는 허니비.

허니비에 의해 빼곡히 휩싸이는 이진하가 보였다.

“이진하!”

진하가 허니비들을 옆으로 치우며 비죽 나와 있는 그의 팔을 붙잡았다.

그 순간 또다시 풍경이 변화했다.

“진하야…….”

그리고 보이는 또 다른 사람.

그의 연인이었던 신혜.

“그만! 그만해!”

진하가 허공을 향해 소리쳤다.

도대체 이딴 걸 계속해서 보여 주는 이유를 진하는 알 수 없었다.

“사…… 랑…….”

중독되어 죽어 가는 그녀.

그와 동시에 또다시 바뀌는 풍경.

진하는 계속해서 바뀌는 풍경과 죽어 가는 동료들을 보며 이를 악물었다.

누군가는 중독되어, 누군가는 사지가 찢겨져, 누군가는 몬스터에게 먹히며.

그렇게 그의 눈앞에서 차례대로 한 명, 한 명씩 죽어 갔다.

그리고 마지막.

“인상 펴 새끼야.”

이기수까지.

진하는 그대로 주저앉은 채 허탈한 웃음소리를 내었다.

그래도 끝났다.

이 지옥 같은 악몽이 끝을 고하고 있었다.

그렇게 생각했다.

“자, 이제 보스 룸을 공략하자!”

진하의 눈에 보스 룸을 여는 팀장이 나타났다.

악몽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 * *

얼마나 지났을까?

수십, 수백의 죽음을 목격한 진하는 멍하니 동료들이 죽는 모습을 바라봤다.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몬스터는 죽여도 또다시 나타났고, 그는 장식물인 양 아무리 공격해도 몬스터는 그를 공격하지 않았다.

“원하는 게 뭐야…….”

환상?

환상이라는 건 이미 시작부터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진하는 이 장면들이 익숙해질 수 없었다.

계속해서 눈물이 흘렀고, 정신은 찢어질 것 같았다.

꿈에서라도 보고 싶지 않은 장면.

그 장면을 보면 볼수록 진하는 더욱 두려워졌다.

“차라리 죽여 줘.”

더는 잃고 싶지 않았다.

더는 자신만 살아남고 싶지 않았다.

그냥 죽어 버리고 싶었다.

“기분이 어때?”

누군가가 말을 걸어왔다.

‘이번에는 누구지?’

진하는 이번에 죽을 친구를 보기 위해 멍하니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그곳에는 진하의 친구 대신 다른 사람이 서 있었다.

바로 진하 자신.

“여보세요? 정신이 아예 나간 거야?”

자신의 얼굴로 물음표를 던지는 존재.

주변을 보니 어느새 모든 풍경이 사라지고 다시 하얀 풍경으로 돌아와 있었다.

“너는 누구?”

“나? 보면 모르겠어?”

진하와 같은 모습을 한 존재가 두 팔을 벌리며 빙그르르 돌았다.

“난 너야. 봐 봐, 똑같잖아?”

“거짓말.”

진하는 그를 부정했다.

그는 저렇게 쾌활한 모습을 하지 않으니까.

그것도 모든 동료가 죽은 뒤에는 더욱.

“왜? 아닌 것 같아? 친구들의 죽음 앞에서 너는 웃는 존재가 아닌 것 같아?”

무릎을 굽혀 주저앉아 있는 진하와 눈높이를 맞추는 존재.

“거짓말하지 마. 너, 죄책감 하나도 없잖아.”

그 존재는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진하를 비웃었다.

“닥쳐.”

“아니야? 막 기쁘고 그러지 않았어?”

“함부로 말하지 마. 넌 누구야?”

“난 너라니까? 누구보다도 널 잘 아는 너 자신.”

진하는 화가 치미는 걸 느꼈다.

당장이라도 주먹을 뻗어 버리고 싶었다.

“에이, 네 얼굴인데 왜 이리 화내냐?”

어느새 뻗었던 걸까?

진하가 무의식적으로 내뻗었던 주먹이 그의 손에 붙잡혀 있었다.

“우리 좀 솔직해져 보자고.”

“죽여 버리겠어.”

그의 말에 진하가 으르렁거렸다.

“처음에 예진이가 죽었을 때, 솔직히 구조대 오고 나서 안도감을 느끼지 않았어?”

휘익, 턱!

내뻗은 반대 손도 손쉽게 그에게 잡혔다.

“이진하가 죽었을 때 포탈을 넘으면서 느낀 건 살았다.”

“닥쳐!”

“그 밖에 다른 친구들이 죽을 때도 넌 항상 안도감과 살았다라는 감정을 느꼈잖아?”

그가 진하의 손을 놓아주었다.

진하는 그가 손을 놓자마자 달려들었지만, 그는 어느새 사라졌고 진하의 주먹은 허공을 갈랐다.

“왜 화내는 거지? 사람이 살아서 기쁨을 느끼는 건 당연한 거잖아?”

어느새 진하의 뒤쪽에 서서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는 그.

“살아남은 게 창피해? 뭐 어때 이건 본능이야.”

“닥치라고!”

진하가 다시 그에게 달려들었지만, 그는 계속해서 사라졌다 나타나기를 반복했다.

“있잖아. 나 실망한 거 알아? 고작 회귀했더니 어쩜 그렇게 무식하게 행동해?”

콰직!

허공에서 나타나 진하를 내리찍는 그.

그는 쓰러진 진하를 짓밟은 채로 말했다.

“고작 한 명을 지키겠다고 냉정하게 판단하지도 못하는 병신 같은 새끼.”

“네가 뭘 알아!”

“내가 너라니까? 너는 차라리 회귀 전이 나았어. 그땐 적어도 스스로 죽겠다고 바보짓은 안 했잖아?”

그가 진하의 머리채를 붙잡아 당겼다.

“불쌍한 놈, 감정에 휘둘려 아무것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바보.”

툭.

머리채를 놓고 발을 치운 채 그가 뒤로 물러났다.

그러곤 몸을 일으키는 진하를 보며 말했다.

“날 죽이고 싶지? 그럼 한번 덤벼 봐.”

몸을 일으킨 진하가 그를 노려봤다.

‘승산이 없어.’

화가 미친 듯이 치밀어 올랐지만 그렇다고 아예 정신을 놓은 건 아니었다.

스킬도 쓸 수 없는 다친 상태의 초기화 된 몸으로는 잡을 수 없었다.

“뭐야, 눈치 못 챘어? 여긴 네 정신 속이야. 다친 게 영향을 줄 리 없잖아?”

그의 말을 듣자마자 진하는 몸이 가벼워지는 걸 느꼈다.

“봐 봐, 말해 주기 전까진 인식조차 못 하고. 너 정말 어떻게 살아남았냐? 아, 친구들 목숨으로 살았지?”

진하가 곧바로 달려들었다.

확실히 처음보단 빠른 속도.

하지만 그는 진하가 손을 내뻗기 무섭게 사라졌다.

‘여기가 내 정신 속이라면!’

진하가 단검을 머릿속에 그려 넣었다.

그러자 진하의 손에 생기는 단검.

진하는 곧바로 멀리서 생겨나는 그를 향해 단검을 집어 던졌다.

챙!

“오, 그래도 아예 바보는 아니네?”

똑같이 단검을 생성해 날아오는 단검을 쳐낸 그가 감탄했다.

진하는 그가 감탄하든 말든 곧바로 단검을 쉼 없이 던지며 달려들었다.

‘이제 사라지지 못해.’

날아간 단검을 단검으로 쳐냈다.

그렇다는 건 연속으로 사라지지는 못한다는 거였다.

단검으로 견제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었다.

챙, 채쟁!

순식간에 가까이 붙은 진하가 급소를 노리며 검을 휘둘렀다.

‘더 빠르게, 더!’

진하가 자신의 원래 몸놀림을 상상하며 단검을 내리그었다.

“그래, 이제야 좀 헌터 같네.”

그가 내리꽂히는 단검을 흘리며 웃었다.

쉽게 단검을 흘리는 모습을 보며 진하가 다리에 힘을 줬다.

훌쩍.

“그건 판단 미스.”

진하가 뒤로 물러나자 그가 득달같이 진하에게 달려들었다.

“그럴 줄 알았어.”

그와 동시에 단검이 환도로 변했다.

진하는 순식간에 길어진 검신을 그에게 휘둘렀다.

“죽일 거야?”

그 말과 동시에 그의 얼굴이 하예진의 모습으로 변했다.

멈칫―

콰앙!

“바보네.”

진하에게 파고들어 걷어찬 그가 혀를 찼다.

“언제까지 과거에 얽매일 거야?”

비틀.

진하가 몸을 일으켰다.

‘아파.’

이미 고통은 이골이 났을 텐데 너무나도 아팠다.

하지만 이대로 물러날 수 없는 진하는 이를 악물었다.

‘상상하자, 내가 가장 강했던 그 순간을.’

“과거의 후회.”

진하가 스킬을 상상하며 스킬을 발동시켰다.

그러자 처음과 달리 발동되기 시작하는 스킬.

“과거의 후회.”

둘의 몸 위로 작은 환상이 깃들었다.

“왜? 놀랐어? 말했지, 난 너라고.”

진하가 흠칫 놀란 걸 확인한 그가 피식 웃었다.

“난 너야. 네가 할 수 있는 건 모두 다 할 수 있어.”

이번에는 그가 달려들었다.

채쟁!

두 자루의 환도가 불똥을 튀기며 부딪쳤다.

“이상하지 않았어? 이 스킬을 각성한 게.”

챙! 채재쟁!

“어중간한 설명이 있는 게 정말 스킬일까?”

진하가 뒷걸음질 쳤다.

“그럼 뭔데!”

아무리 설명이 이상해도 그건 자신의 스킬이었다.

시스템도 증명해 준 자신의 스킬이고 자신의 신념이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해?”

진하의 마음을 안다는 듯 중얼거리는 그.

“후회는 신념이 될 수 없어. 그것도 이미 지나가 버린 것에 대한 후회라면 더욱더.”

“닥쳐!”

진하가 몸을 숙이며 발목을 베었다.

하지만 알고 있다는 듯 가볍게 점프하는 그.

진하는 반대 손으로 단검을 생성해 그의 얼굴에 던졌다.

채챙!

그가 똑같이 생성해 던진 단검이 진하가 던진 단검과 마주 부딪쳤다.

“이제 인정하지?”

촤아악!

뒤로 물러난 그가 거친 호흡을 내뱉는 진하에게 말했다.

“네가 어떻게 생각하든 나는 다 알아. 왜냐고? 난 너니까.”

‘거짓말.’

진하는 그 말이 거짓말이라는 걸 알았다.

아니라면 애초에 단검을 환도로 변환시킬 때 함정에 걸리지 말았어야 했다.

하지만.

‘나와 같아.’

같은 전투 스타일에, 같은 스펙, 같은 스킬, 모든 게 같았다.

심지어 진하가 고민했던 스킬에 대한 의문까지.

“후우, 넌 뭘 아는 거지?”

진하가 잠시 전투 자세를 풀었다.

“벌써 끝이야?”

그의 도발에도 진하는 묵묵히 그를 바라봤다.

뜨거웠던 머리가 식었다. 이제는 어느 정도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었다.

만약 그가 진짜 자신이라면 분명 이유 없이 전투를 진행하지는 않을 것이다.

진하는 전투를 그리 좋아하지 않으니까.

휘익!

그가 검을 삭제했다.

“아무튼, 이런 쪽으론 약았다니까.”

너스레를 떤 그가 진하를 진지하게 보았다.

“선택해.”

“무엇을?”

“미래를 바꿀 것인지, 아니면 친구를 살릴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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