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가진 SS급 문방구-30화 (30/202)

#030

죄악의 리치를 만난 시점부터 모든 게 꼬여 버렸다.

이런 가정은 진하의 머릿속에 전혀 들어 있지 않았으니까.

진하가 상태창을 가시화시켜 둘에게 보여 주었다.

<칭호: 문방구 알바>

<남은 가용 시간/체류 시간=1일/2분.>

“이게 뭐야?”

“내가 탈출할 방법.”

진하의 말에도 이기수는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가 가진 아티팩트들은 이 칭호 덕분에 얻을 수 있는 거야. 그리고 이 칭호 덕에 탈출할 수도 있는 거고. 일단은 그렇게만 알아 둬.”

“흠, 그 사실 숨기려던 거 아니었나?”

하준수의 말에 김진하가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이기수한테는 밝힐 생각이었고, 길드장 당신도 우리 때문에 목숨을 걸었던 사람이잖아. 그 정도면 신뢰는 줘야겠지. 그리고 어차피 얼마 지나지 않아 밝혀질 거고.”

이미 거대 길드 이상은 다 암암리에 알고 있는 상황이다.

그저 정확하게 어떻게 아티팩트를 가진 건지, 얼마나 있고 무엇이 있는지만 모를 뿐.

“그러니까 이참에 부탁 하나만 하자.”

진하가 이기수를 바라봤다.

이기수는 진하의 말에 그가 무엇인가를 바라고 있다는 걸 알았다.

“바람막이가 좀 되어 줘라.”

“바람막이?”

“너도 알지? 아티팩트가 얼마나 귀한 건지.”

“거대 길드를 막아 달라는 거야?”

이기수의 말에 진하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협회를 막아 줘.”

거대 길드는 협회가 있는 한 눈치밖에 볼 수 없었다.

아니, 그게 아니더라도 처음에는 친화적으로 다가올 게 분명했다.

왜냐면 아티팩트와 정보가 있다는 것만 알지 정확히 어떻게 얻었는지 모르니까.

하지만 협회는 달랐다.

“알고 있을지 모르지만 협회는 이미 썩을 대로 썩었어.”

“뭐, 그건 나도 조금은 알고 있어.”

이기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협회가 어느 정도 썩은 것은 알고 있었다.

다만 그것보다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게 더 크기에 딱히 상관하지 않은 것뿐이었다.

애초에 그가 나선다고 해도 협회를 정화시킬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S급일 때도 협회는 너를 함부로 못 건드렸어. 근데 SS급이면 어떨 것 같아?”

전 세계적으로 얼마 없는 SS급이었다.

그리고 대한민국에는 오직 한 명뿐인 헌터였고.

그 뜻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헌터라는 소리와 다를 바 없었다.

“네가 해 줄 거는 나가자마자 나를 멘티로 삼는 거야.”

멘토, 멘티 시스템.

일종의 스승과 제자 시스템이다.

같은 종류의 능력이 겹치는 경우가 많기에 초보 헌터를 키워 주기 위해 만들어진 시스템.

하지만 그렇기에 거의 쓰이지 않는 제도였다.

말이 좋아 스승과 제자지, 멘티가 저지르는 모든 일은 멘토가 책임져야 했고, 멘티의 입장에서는 멘토는 법정 대리인과 비슷한 것이기 때문에 모든 행동이 멘토에게 제약 받을 수 있었다.

즉, 거의 가족 같은 관계, 아니 그런 관계라도 사용하지 않는 제도였다.

“일단 네가 내 멘토가 되면 협회에서도 함부로 날 건들지 못해.”

이기수가 존재하는 이상 적어도 습격은 없을 것이고, 오만한 협회도 일단은 섣부르게 직접 건들지는 않을 것이다.

“협회에 협조하지 않는 이상, 그게 언제까지나 되지는 않는다는 건 알지?”

이기수조차 협회에는 최대한 협조하는 편이었다.

그만큼 부담되는 기관이라는 뜻.

아무리 이기수가 SS급이 된다 하더라도 그건 어디까지나 이기수 혼자에게만 해당되는 상황이었다.

언제까지나 그를 보호해 줄 수 없었다.

“그건 나도 알아. 그러니까 넌 나가면 나를 멘티로 등록하고 나서 헌터 강사 중에 송준하라는 사람과 접촉해 줘.”

“송준하?”

“어, 그 사람을 네 편으로 만들어. 일단 그 정도까지만 하면 돼.”

나머지는 나가서 김진하가 천천히 행동하면 되는 상황이었다.

일단 그 정도만 해도 베스트였다.

원래는 이기수를 각성시키고 그걸 빌미로 멘토, 멘티를 하려고 했는데 어째 상황이 더 좋게 변했다.

“그럼 나는 뭘 하지?”

옆에서 듣고 있던 하준수가 물었다.

“음…….”

하준수의 말에 김진하가 잠시 고민했다.

왜냐하면 하준수는 예상외의 사람이었으니까.

원래 김진하의 입장에서 하준수는 그저 나쁘지 않은 헌터, 적당히 어울리면 좋은 헌터 정도였다.

그의 동료로 만들 생각도 없었고, 그렇게 믿음을 주려는 생각도 딱히 없었다.

하지만 그는 목숨을 걸어 동료를 지켰다.

그게 정말 힘든 일이라는 건 오랫동안 헌터를 해 왔던 김진하가 제일 잘 알았다.

그래서 거리낌 없이 능력을 밝힌 것이었고.

“세력.”

한참을 고민하던 김진하가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목숨이 끊어지더라도 배신하지 않는 사람을 구해 주세요.”

“그거면 되는 건가?”

“쉽지 않을 거예요. 저는 그저 협회나 길드로부터 아티팩트를 지킬 게 아니라 그들을 뒤집을 때에도 배신하지 않아야 하는 사람을 찾는 거니까요.”

“하나만 묻지.”

하준수가 진득하게 김진하를 바라봤다.

“그것들을 뒤집으면 몬스터를 더 많이 죽일 수 있나?”

하준수의 말에서 김진하는 묘한 살의를 느꼈다.

‘뭔가 바뀌었어.’

그전에도 몬스터를 무척이나 혐오하긴 했지만 지금은 그걸 넘어 강렬한 적의가 느껴졌다.

매사에 침착하려 하는 모습을 보였던 하준수를 생각하면 조금 이상했다.

‘하지만 오히려 좋아.’

몬스터에게 적개심을 가질수록 진하의 입장에선 더 좋았다.

“사람들을 더 많이 지키고, 몬스터를 더 많이 죽일 수 있을 거예요. 그건 제 목숨을 걸고 장담하죠.”

씨익.

“그거면 됐다. 나가자마자 사람들을 끌어모으도록 하지.”

대략적으로 모든 정리가 끝난 걸 느낀 김진하가 하준수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하준수가 들고 있던 스크롤을 넘겼다.

“그럼 두 분 잘 부탁해요.”

“무사히 돌아오도록”

“이틀 안에 모든 일 끝내 놓을게.”

김진하가 심호흡을 한 뒤 스크롤을 붙잡았다.

<옵션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옵션 1번.”

지이익!

옵션을 선택함과 동시에 스크롤을 찢자 새하얀 빛이 빛나더니 곧이어 두 사람이 사라졌다.

빛이 잦아들고 두 사람이 사라진 장소를 바라보며 진하가 한숨을 내쉬었다.

“정신없네…….”

털썩.

그대로 드러누운 김진하.

진하는 온몸에 긴장이 풀리는 걸 느꼈다.

결과적으로 그가 계획한 대로, 아니 그것보다 더 좋게 풀렸다.

하지만 그 과정은 전혀 계획과는 동떨어지게 진행되었다.

아래층으로 간 것도, 스킬을 각성한 것도, 하준수를 동료로 영입한 것도.

모든 게 그의 뜻과는 별개로 이루어진 결과였다.

“그나저나 이 스킬은 도대체 뭘까.”

김진하가 스킬창을 열었다.

<과거의 후회: 후회는 되돌릴 수 없다. 하지만 만회할 기회가 생긴다면 과거는 당신을 도울 것이다.>

<현재 저장된 과거: 2045년 6월 11일>

다른 스킬 설명과는 동떨어진 스킬이었다.

제대로 된 설명도 없었고, 제한 시간이나 효과도 부정확했다.

“과거의 후회라.”

회귀를 하지 않는 이상 얻을 수 없는 스킬.

마치 신이 실시간으로 그를 지켜보는 것 같았다.

“어이 할머니, 보고 있어요?”

진하가 허공에 말을 걸어 보았지만 역시나 대답이 돌아올 리 없었다.

“그나저나 이제 뭘 어떻게 한다.”

그가 알기론 이 던전은 일회용 던전이었다.

그렇다면 분명.

띠링!

<던전 소멸까지: 24hr.>

던전 소멸을 생각하기 무섭게 생겨나는 타이머.

“아, 모르겠다. 일단은 그냥 자자.”

몸도 하준수 덕분에 거동이 가능할 정도로 회복되었고, 이제부터는 진짜 시간을 보내기만 하면 되었다.

‘그러고 보니까 하준수의 스킬이 뭐지?’

상황이 너무나 휙휙 바뀌어서 물어본다는 게 미처 물어보지 못했다.

‘뭐 돌아가서 물어보면 되니까.’

일단은 휴식, 그것만 생각하기로 했다.

* * *

“으음…….”

차가운 냉기를 느끼며 김진하가 슬며시 눈을 떴다.

그러자마자 보이는 창 하나.

<던전 소멸까지: 3hr>

거의 20시간은 넘게 잠들었다.

하지만 그만큼 잔 덕분일까?

잠들기 전보다는 상태가 더 좋았다.

“후, 이제 뭘 한다.”

문방구 페널티도 이제 약 세 시간 정도 남았다.

세 시간 동안 멍하니 있자니 시간이 아깝고, 그렇다고 뭘 하자니 딱히 할 게 없었다.

“아 저 등갑이라도 가져갈 수 있음 참 좋은데.”

진하가 죽어 있는 앨리게이터 터틀을 바라보며 입맛을 다셨다.

진하의 공격과 이기수의 전격에도 흠집밖에 가지 않은 앨리게이터 터틀의 등갑.

저것만 가져가도 꽤 좋은 무기를 만들 수 있지만 너무나도 컸다.

그렇다고 부술 수도 없었고.

“아, 마석.”

순간 진하의 머릿속에 마석이 생각났다.

생존을 위해 던전을 돌파하다 보니 까먹었었는데 몬스터를 죽이고 마석을 그대로 두고 왔었다.

앨리게이터 터틀이야 크고 거죽도 단단해서 마석을 가져갈 수 없다지만 다른 몬스터들은 아니었다.

“오케이 일단 마석부터 챙기자.”

* * *

그렇게 다짐하고 약 두 시간이라는 시간이 지나갔다.

두 시간 동안 진하는 챙길 수 있는 마석이란 마석은 모두 챙겼다.

애초에 파우치는 텅텅 비어 있는 상태여서 마석을 챙길 공간도 넉넉했다.

“이걸로 마지막.”

처음 머물렀던 체크포인트의 땅을 뒤집어 마석을 챙긴 진하가 몸을 일으켰다.

이제는 진짜 이 던전을 나갈 시간이었다.

<던전 소멸까지: 10분.>

<남은 가용 시간: 12분.>

던전이 소멸될 때 안에 있던 사람은 어떻게 되는지 밝혀진 게 없었다.

던전이 소멸되고 살아나온 사람이 아무도 없었으니까.

그러니 소멸이 되기 전에 나가야 할 필요가 있었다.

“설마 나가자마자 몬스터가 있는 건 아니겠지?”

포탈 앞에 선 김진하가 들어올 때를 생각하며 몸서리쳤다.

물론 있다고 해도 크게 상관은 없었다.

스킬이 생긴 이상 그냥 쓰고 도망치면 10분 정도는 버틸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힘든 건 힘든 거였다.

“일단 나가고 보자.”

몸을 긴장시킨 진하가 포탈로 발을 내디뎠다.

그러자 뒤죽박죽 변하는 시야.

곧이어 시야가 정상으로 돌아왔다.

포탈 밖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흠…… 괜한 걱정이었나?”

안도의 한숨을 내쉰 김진하가 몸에서 긴장을 풀었다.

그래도 혹시 몬스터를 만날지 몰라 진하는 서둘러 10층 통로로 걸음을 옮겼다.

통로는 일직선이라 습격을 당할 일도 없었고, 몬스터들도 거의 올라오는 경우가 없었으니까.

5분 만에 빠르게 통로 앞에 도달한 진하가 통로로 들어갔다.

아니, 들어가려고 했었다.

“하, 젠장.”

통로에서 올라오는 리치 하나.

“어쩐지 운수가 좋더라니.”

회귀 전만 해도 그렇게 보기 힘들다고 알려진 죄악의 리치가 그의 앞에 서 있었다.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이상하게 좋게 풀린 일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아니, 좋은 건가?’

어찌 됐든 결국에는 죄악의 리치일 뿐이었다.

공격한다면 버티면 되는 것이고, 이동을 시킨다면 안전한 공간에서 편하게 있다가 탈출하면 되는 거였다.

우웅―

주변의 공간이 일그러지는 게 느껴졌다.

공간이동이었다.

‘그럼 그렇지.’

예상했던 대로 공간 이동이었다.

곧이어 순식간에 뒤집히기 시작하는 공간.

진하는 의식을 잃지 않기 위해 정신을 강하게 부여잡았다.

‘과거의 후회.’

공간이 완전히 뒤집히기 전에 발동한 스킬.

그러자 공간이 뒤집히는 순간부터 흔들리던 정신이 안정화되는 게 느껴졌다.

잠시 후, 뒤죽박죽 섞인 물감처럼 어그러졌던 공간이 정상으로 돌아오고, 끝까지 정신을 부여잡았던 진하는 어지러운 정신을 수습했다.

‘밝은데?’

이동된 공간이 밝았다.

저번과 같이 공간이었다면 빛 하나 없는 갇힌 공간이어야 했는데 밝았다.

일렁―

그것도 진하가 보고 있는 땅바닥에서 빛이 일렁이는 게 보였다.

마치 촛불에 일렁이는 빛처럼.

“흐음, 너는 누구지?”

진하의 귓가에 권태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그 목소리를 들은 순간 진하는 압도적인 불길함을 느꼈다.

몬스터 중 생각이라는 지성이 존재하는 건 B급 최상위부터.

그리고 온전하게 인간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건 A급 상위 극소수부터였다.

‘후, 침착하자.’

진하가 천천히 고개를 들며 남은 시간을 확인했다.

<남은 가용 시간: 2분 30초>

2분 30초였다, 겨우 2분 30초.

이 정도라면 괜찮았다.

기본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등급의 몬스터들은 인간에게 적의를 가진다 하여도 이성을 잃고 마구잡이로 달려들진 않았다.

진하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다시 한번 말해야 하나?”

그리고 다시 한번 들리는 목소리.

천천히 올라가는 진하의 시야에 계단과 함께 옥좌, 그리고 그곳에 앉아 있는 사람 한 명이 보였다.

사람, 아니 몬스터를 확인한 진하의 동공이 흔들렸다.

뱀파이어 대공 이슬라, 그가 진하를 바라보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