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가진 SS급 문방구-29화 (29/202)

#029

‘나는 뭐 하는 거지?’

진하가 멀어지는 모습을 보며 이기수는 자괴감에 휩싸였다.

이런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자신이 남을 지키면 지켰지, 이렇게 지킴을 받는다니.

너무나도 수치스러웠다.

‘일어나야 해.’

일어나서 문을 붙잡는 진하를 도와야 했다.

이대로라면 진하는 100% 죽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런 이기수의 생각과는 달리 그의 몸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일…… 어나!’

움직이지 않는 몸을 독촉해 보았지만 전혀 미동도 없는 몸.

오히려 진탕된 내부로 인해 머리가 핑 돌기만 했다.

그렇게 한참을 움직이며 버둥거리던 이기수는 이내 움직이는 걸 포기했다.

콰앙!

저 멀리서 폭발음이 들렸다.

전투가 시작된 듯했다.

‘젠장.’

이기수는 아무것도 못 하는 자신에게 극도의 혐오감을 느꼈다.

C급이었던 김진하와 함께 7층으로 내려가지 말았어야 했다.

아티팩트를 믿고 캠프에서 완전히 마음을 놓고 있지 말아야 했다.

모두 다 그의 잘못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의 잘못이었다.

‘조금만 더 강했다면.’

그가 강했다면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강했다면 그 어떤 몬스터가 있었어도 잡았을 것이고.

자신을 대신하여 하준수나 김진하가 희생하는 일은 생기지도 않았을 것이다.

[너의 신념은 지키는 거야.]

몸을 일으키며 진하가 했던 말.

이기수는 그 말에 동감할 수 없었다.

정말로 자신의 신념이 지키는 거라면 스킬을 각성했어야 했다.

그래서 이렇게 누워 있는 게 아니라 진하를 구하기 위해 보스룸의 문을 열어젖히고 있어야 했다.

‘한심해.’

이렇게 누워 있는 것도, 지금 할 수 있는 게 겨우 생각뿐이라는 것도 너무나 한심하고 한심했다.

뭐가 국내 1위의 헌터고, 뭐가 S급 헌터란 말인가.

결국, 그는 중요한 순간에 주변 사람 하나 구하지 못하고 보호나 받는 사람일 뿐이었다.

그것도 사람의 목숨을 담보로 살아남는 최악의 인간.

까득!

파지직!

미약한 전기가 그의 몸 위로 튀어 올랐다.

그리고 스파크가 튀어 오를 때마다 그의 몸이 조금씩 움찔거리기 시작했다.

‘정말 내 신념이 지키는 거라면.’

파직, 파지직!

손가락이 펴졌다.

근육이 전기신호에 따라 조금씩 꿈틀거리는 게 느껴졌다.

‘움직여.’

전기를 쪼개고 쪼갠다.

아주 미약하게, 생체신호 수준으로.

그리고 그걸 근육으로 보내 강제로 근육을 움직인다.

스르륵.

손이 천천히 올라갔다.

그리고 스파크에 따라 근육이 수축하며 다리가 접혀진다.

‘더 빨리, 더 정교하게.’

근육을 한 개씩 움직여서는 제대로 움직일 수 없다.

동시에, 그리고 더 정교하게 전기신호를 보내야 했다.

지지직…….

미쳐 컨트롤하지 못한 전격이 몸을 태우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오히려 좋았다.

고통으로 인해 그의 신경이 더욱 날카로워져 흐릿한 정신이 맑아졌다.

터억.

손이 바위를 붙잡는다.

지이익.

다리가 끌리며 바닥으로부터 몸을 밀어낸다.

우뚝.

그리고 온몸의 근육에 힘이 들어가며 몸이 일어난다.

‘가자.’

죽더라도 같이 죽고, 이기더라도 같이 이겨야 했다.

지키다 죽을지언정 보호 받을 순 없었다.

그게 이기수 자신이었고, 그가 헌터가 된 이유였다.

<스킬, 회광반조가 생성되었습니다.>

<신체 제한이 풀립니다. 체력이 소폭 회복됩니다.>

<신체 능력이 향상됩니다.>

<회광반조: 극한의 빈사 상태에서 발동. 최상의 전투 능력 상태로 회복. 지속 시간: 30분. 지속 시간 종료 후 완전 회복까지 동면 상태로 변환, 동면 시 회복률 500% 증가.>

“하아―”

움직이지 않던 입이 움직였다.

굳이 전기신호로 몸을 움직이지 않아도 자연스레 몸이 움직여졌다.

곤죽이 된 느낌이었던 내부도 아무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

“가자.”

몸이 회복된 걸 느끼며 이기수가 발을 박찼다.

그러자 순식간에 그의 몸이 보스 룸 앞으로 이동되었다.

보스 룸에선 더 이상 전투 소리가 들리지 않고 있었다.

끼이익.

문을 밀자 문이 열리며 내부의 풍경이 드러났다.

사방에 뿌려진 피, 얼굴에 가시가 박혀 있는 앨리게이터 터틀.

그리고 사지가 기형적으로 뒤틀려 있는 김진하.

“여, 왔어?”

땅바닥에 누워 있는 김진하가 열린 문 사이로 서 있는 이기수를 반겨 주었다.

“0.01%를 뚫었네.”

알 수 없는 말을 하는 진하를 보며 이기수가 쓰게 웃었다.

“늦어서 미안.”

크롸락!

이기수를 발견한 앨리게이터 터틀이 이기수를 향해 달려들었다.

따악!

파지직!

이기수가 손가락을 튕기자 튀어 나간 전격이 앨리게이터 터틀을 경직시켰다.

따악, 딱, 딱!

그가 손가락을 튕길 때마다 생성되는 전격.

그렇게 생성된 전격은 자동으로 앨리게이터 터틀을 향해 날아갔다.

꽈악!

파지직!

그리고 그가 손을 움켜쥐자 생기는 커다란 전격의 창.

휘익!

이기수가 무심하게 전격의 창을 던졌다.

콰르릉!

커다란 소리를 내며 앨리게이터 터틀에게 박히는 창.

이기수는 새카맣게 익어 가는 앨리게이터 터틀을 잠시 바라본 후 진하에게 다가갔다.

“괜찮냐?”

이기수가 다가가자 진하가 물었다.

“그건 내가 할 말 아니야?”

“뭐 나야 보이는 대로지.”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진하가 눈을 찡긋했다.

그의 몸은 이미 죽어 가고 있었다.

“미안하다.”

“아니, 내 예상보다 빨리 왔어.”

죽기 전에 이기수가 도착했다.

진하는 그걸로 만족했다.

적어도 자신의 마지막을 이기수가 봐주고, 그가 살아 나가는 것을 확인한 것만으로 만족했다.

“나가면 하예진이라는 C급 헌터 있을 거야. 걔 좀 잘 다독여 줘라.”

“아, 그때 그…… 여친?”

이기수의 머릿속에 5층까지 진하와 함께 내려왔었던 여자가 떠올랐다.

“여친 아냐, 그냥 친구지.”

“그래, 마지막은 잘 전달해 주마.”

“아니, 마지막이 아니다.”

갑작스럽게 들리는 제삼의 목소리.

그 목소리에 둘의 시선이 목소리가 울린 쪽으로 쏠렸다.

“아주 늦지는 않은 모양이군.”

그곳에는 하준수가 서 있었다.

“살아 있었어요?”

이기수가 황당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뭐, 운이 좋았지.”

가볍게 말하는 하준수.

“이런 미친!”

진하가 하준수를 보며 소리쳤다.

“이기수! 빨리 스크롤 가져와!”

“뭐?”

갑작스럽게 외치는 진하의 말에 이기수가 진하를 쳐다봤다.

“빨리!”

피를 토해 내면서까지 외치는 진하.

그의 말에 이기수가 어느새 죽어 있는 앨리게이터 터틀 앞에 생긴 상자를 바라봤다.

“어서!”

진하의 말에 주춤주춤 움직이며 상자로 다가가는 이기수.

이기수는 상자를 열어 그 속에 담긴 스크롤 하나를 꺼냈다.

“어서 나한테 줘!”

“뭐?”

알 수 없는 말을 내뱉는 김진하.

그사이 진하 곁으로 다가온 하준수가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치료부터 해라.”

치유액을 꺼내는 하준수.

진하는 그런 하준수에게 말했다.

“그런 거로 치료 안 되니까, 어서 스크롤을 줘!”

“조용히 해.”

하준수는 그 말과 함께 자신의 팔에 칼을 그었다.

그러자 피가 후두둑 대량으로 떨어졌다.

곧바로 하준수는 떨어지는 피를 김진하의 입 안으로 떨궜다.

“컥, 뭐 하는 거야.”

“잔말 말고 먹어라.”

상처에 치유액을 뿌리며 하준수는 피를 억지로 김진하에게 먹였다.

우득, 으드득.

그러자 뒤틀렸던 김진하의 몸이 조금씩 원상태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새하얗던 혈색이 돌아왔고, 박살 났던 뼈와 근육도 붙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한참 피를 먹이던 하준수가 팔을 뗐다.

“이 정도면 죽지는 않을 거다.”

“너…… 각성했어?”

거동이 가능할 정도로 몸이 회복된 걸 느끼며 김진하가 묘한 표정으로 하준수를 바라봤다.

그러고 보니 전투를 했을 게 분명한 하준수의 몸이 멀쩡했다.

“운이 좋았지.”

짧게 긍정하는 하준수.

하준수는 그대로 스킬을 해제했다.

“하, 하하.”

진하는 멍하니 있다가 이내 허탈하게 웃었다.

그만큼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다.

세 명 모두 각성하는 건 벼락을 세 번 연속으로 맞을 확률보다도 낮은 확률이었다.

그런데 모두 각성했다.

그나마 이기수야 원래 각성할 수 있는 놈이었다지만 나머지 둘은 아니었다.

각성하기 매우 힘든 능력들.

특히 하준수의 경우는 그가 알기로 리미터 브레이커라는 능력 중 최초였다.

“이런 미친.”

“저기, 얘기 중에 미안한데, 일단 나가면 안 될까?”

가만히 바라보고 있던 이기수가 말했다.

그의 말에 진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이기수의 능력은 시간제한이 있었다.

보아하니 회귀 전과 같은 능력을 각성한 것 같으니 빨리 나가는 게 확실히 나았다.

“그래, 일단 이야기는 나간 다음에 해야지. 스크롤 줘.”

김진하가 몸을 일으키며 이기수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때, 옆에 있던 하준수가 손을 내밀었다.

“그 스크롤 나한테 내놔라.”

“뭐?”

갑작스런 행동에 진하가 놀란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 스크롤 내가 찢지. 왜 문제 있나?”

하준수의 말에 김진하가 그를 빤히 쳐다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문제는 없어. 근데 이게 사용하는 방법이 좀 특별해서 내가 사용할게.”

“나한테 설명해 줘라, 내가 하지.”

“아니, 그럴 거면 그냥 내가 한다니까?”

김진하의 말에 하준수가 진하를 빤히 쳐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이기수, 그 스크롤 감정해 봐.”

하준수의 행동에 묘한 기류를 느낀 이기수가 스크롤을 확인했다.

<던전 탈출 스크롤: 게이트 1층으로 이동한다.>

<옵션1: 사용자가 인식한 범위의 모든 사람이 이동한다.(사용자 제외)>

<옵션2: 사용자만 이동한다.>

정보를 확인한 이기수가 묘한 표정으로 김진하를 바라봤다.

“이게 뭐야?”

이기수의 말에 김진하가 입술을 깨물었다.

하준수도 이기수에게 스크롤을 넘겨받아 정보를 확인했다.

“살짝 이상했었다. 나를 보자마자 사색이 되더니 스크롤을 찾더군.”

“아, 확실히 이상하기는 했죠.”

“그런 너의 행동을 보니까 뭔가 이상했지. 그리고 너를 치료하면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내가 중요한 걸 하나 잊고 있었더군, 던전은 인간에게 친절하지 않다는 걸.”

하준수가 아는 던전은 인간을 죽이기 위한 악마의 소굴 같은 느낌이었다.

아무리 게이트가 몬스터가 출몰한 날 모든 몬스터를 빨아들인 신의 선물이라는 별명이 붙어 있더라도 그건 어디까지나 일반인 사이에서였다.

헌터의 입장에서는 게이트나 던전은 인간을 죽이기 위한 악의로 가득 찬 곳일 뿐이었다.

물론 던전을 공략하면 아티팩트가 들어 있는 알 수 없는 상자가 생성된다.

그런 걸 보면 분명 어떤 면에서는 신의 선한 의지가 깃들었다고 말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이렇게까지 친절하다는 건 그의 헌터 생활을 부정하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무슨 생각이었던 거지? 그렇게 희생하면 우리가 좋아할 것 같았나?”

하준수의 말에 진하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거 아냐.”

“그럼 무슨 뜻인 거지?”

“무슨 뜻인지 나에게도 알려 줄래?”

둘의 시선이 김진하에게 쏠렸다.

“너희 말대로 아무리 친절하더라도 던전은 던전, 당연히 무작정 친절하진 않지.”

스크롤 던전이 도망갈 기회를 주는, 자비를 베푼다는 건 맞았다.

더 이상 내려갈 수도, 올라갈 수도 없는 상태의 헌터들에게는 마지막 보루였으니까.

다만, 모두가 살아 돌아갈 수 있는 건 아니었다.

한 명이 희생하든가 아니면 한 명을 제외한 모두가 희생해야 하는 아이템.

그게 탈출 스크롤의 정체였다.

“그렇다고 내가 너희를 위해 희생한다는 건 잘못된 생각이야.”

애초에 진하에게는 탈출할 방법이 하나 더 있었다.

그렇기에 그가 사용해서 둘을 탈출시키고 자신도 탈출하려고 했었다.

문방구에 대해 말할 생각이 없었으니 그냥 그 사실을 숨긴 것뿐이었다.

“너희는 모르겠지만 나는 혼자서 탈출할 방법이 있어. 그래서 내가 쓰겠다고 한 거야.”

“그럼 어째서 혼자서 탈출하지 않은 거지?”

“그럼 너는 어째서 우리를 먼저 보내고 몬스터를 막았던 거야?”

진하의 대답에 하준수가 입을 다물었다.

“결국, 같은 거야. 미련하게도 동료를 못 버린다는 거, 오직 그거 하나뿐인 거지.”

“정말 탈출할 방법이 있는 거야?”

이기수의 말에 진하가 한숨을 내쉬었다.

원래는 이기수와 신뢰가 쌓인 상황에서 천천히 밝힐 생각이었다.

거기에 하준수는 당연히 들어 있지 않았고.

“하아, 이젠 나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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