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가진 SS급 문방구-27화 (27/202)

#027

“미안, 내가 정신을 좀 놓았어.”

김진하가 체크포인트의 몬스터들을 묻은 땅을 다지며 말했다.

하지 말아야 할 짓을 하고 말았다.

게이트 내에서 죽은 자에 대해 절망하고 말았다.

“괜찮아, 넌 아직 헌터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잖아. 죽음이 낯설 만해.”

이해한다는 듯한 이기수의 말에 김진하가 쓴웃음을 지었다.

그런 게 아니었지만, 뭐라 설명할 방법이 없어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정신을 부여잡자.’

이런 경우를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다만 생각대로 어느 정도 움직이는 미래와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던 실패가 진하의 긴장을 풀리 게 만들었다.

아무리 어렵더라도 가장 근처의 사람은 지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젠장.’

지키지 못했다.

그것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 사실이, 단순히 지키지 못했다는 게 아니라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그를 너무나 괴롭게 했다.

회귀 전의 그날처럼, 친우의 죽음을 담보로 살아났단 사실이 너무나 혐오스러웠다.

바뀐 건 아무것도 없었다.

“몇 시간만 쉬다가 출발하자.”

모든 뒤처리를 마친 이기수는 주저앉아 벽에 기댄 채 숨을 몰아쉬었다.

거친 숨을 내쉬는 게 상태가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꽈악.

김진하가 입술을 깨물었다.

상처가 덧나기 시작한 게 분명했다.

모든 공격을 중상자인 이기수가 다 했으니까.

아무리 홀리 포션을 사용했어도 그게 완치를 해 주는 건 아니었다.

그 상태로 공략을 했으니 그건 마치 딱지가 얹어진 상처를 계속해서 뜯는 것과 같은 행위를 하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털썩.

진하는 주저앉은 채로 한숨을 내쉬었다.

‘살려야 해.’

자신으로 인해 미래가 안 좋게 변했다.

그것도 더 안 좋은 미래로.

‘살려야 해. 적어도 이기수는 살려야 해.’

김진하는 그리 다짐하며 눈을 감았다.

적어도 그를 살리려면 조금이라도 힘을 비축해야 했으니까.

한편, 김진하가 머리를 기댄 채 눈을 감는 걸 보며 이기수가 쓰게 웃었다.

‘지켜야 해.’

이미 하준수가 죽어 버렸다.

명색이 S급이라는 헌터가 A급도 되지 못한 B급 헌터에게 목숨을 구원받았다.

그리고 지금은 C급 헌터에게 짐이 되고 있었다.

꽈악.

‘이제 회복이 거의 안 돼.’

팔, 다리가 잘리고 진탕된 속을 치료하긴 했지만 게이트와 던전을 공략하면서 다시 덧나기 시작했다.

기력도 떨어지고 체력조차 떨어지기 시작했다.

어쩌면 던전의 끝에 다다르기 전에 지쳐 쓰러질지도 몰랐다.

‘그래도 지켜야 돼.’

다행히 던전에 나오는 몬스터들은 방어형 몬스터였다.

즉, 공격력이 매우 낮아 김진하가 한 방에 죽을 일은 없다는 소리였다.

그만큼 공격하는 입장에선 더욱 부담되긴 하지만 그래도 지켜야 될 대상은 쉽게 죽지 않는다.

이 사실이 이기수는 너무나 감사했다.

‘목숨을 내놓는다.’

힘이 있는데도 무력하게 주변 사람을 잃는 건 절대로 사양이었다.

꿀꺽.

이기수는 그리 다짐하며 속에서 올라오는 피를 삼키며 눈을 감았다.

* * *

6시간 뒤.

어느 정도 휴식을 마친 둘은 다시 던전을 나아갔다.

하준수가 하던 역할은 김진하가 맡았으며 이기수는 뒤에서 최대한 빠르게 몬스터를 격멸했다.

다행히 몬스터들의 랭크는 밖보다 오히려 매우 떨어졌기에 나아감에 있어서 큰 차질은 없었다.

콰앙!

“허억, 허억.”

김진하가 숨을 몰아쉬며 쓰러진 마지막 몬스터를 바라봤다.

혹여나 싶어 주의 깊게 살펴봤지만 다행히도 숨결은 느껴지지 않았다.

“괜찮아?”

이기수가 뒤에서 다가왔다.

그는 만신창이로 피를 흘리는 김진하를 바라보았다.

한눈에 보기에도 멀쩡하지 않았다.

“괜찮아.”

후드득.

몸을 털자 한 무더기의 피가 쏟아졌다.

모두 김진하의 피였다.

몸이 만신창이긴 했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양호했다.

방어형이 아니었다면 애초에 지금까지 서 있지도 못했을 테니까.

“너야말로 괜찮아?”

김진하는 오히려 이기수가 걱정이었다.

겉으로 만신창이인 김진하도 문제였지만 이기수는 거의 죽어 가기 직전처럼 보였다.

그의 몸은 너무나 새하얗게 질려 버렸으며 감추려 했지만 몸에서는 식은땀이 연신 떨어지고 있었다.

“버틸 만해.”

‘거짓말.’

김진하는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입을 꾹 다물었다.

어차피 말한다 해서 바뀌는 건 없었으니까.

여전히 몬스터를 죽일 방법은 이기수의 공격밖에 없었고 억지로 쉬게 해봤자 의미도 없었다.

쉬어서 나을 상황이었다면 이기수가 먼저 말했을 테니까.

‘그래도 마지막이다.’

방금 쓰러뜨린 몬스터가 마지막이었다.

이제 그들을 가로막고 있는 건 눈앞에 보이는 커다란 문 하나뿐이었다.

보스 몬스터만 잡으면 이 고생도 모두 끝이었다.

“가자.”

진하가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한 마리, 딱 한 마리만 잡으면 된다.’

그런 생각을 하며 진하가 손으로 문을 밀었다.

끼이익.

천천히 열리는 문.

그리고 보이는 커다란 몬스터 한 마리.

자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몬스터를 보며 진하가 쓰게 웃었다.

“앨리게이터 터틀.”

뒤늦게 다가온 이기수가 읊조렸다.

그의 말대로 보스룸에서 자고 있는 몬스터는 앨리게이터 터틀이었다.

직역하면 악어 거북.

지구상에 존재하는 악어거북과 똑같이 생긴, 하지만 덩치는 그와 다르게 심각하게 거대한 몬스터였다.

“이걸 좋아해야 하나?”

진하가 이기수에게 물었다.

앨리게이터 터틀은 몇 없는 비 선공 몬스터에 공격력도 B급 상위 수준밖에 안 되는 몬스터였다.

그런 점에서는 매우 좋은 몬스터였다.

기동력 또한 매우 느리고 속성도 없는 그저 육탄 공격만 가능한 몬스터.

하지만 그래서 문제이기도 했다.

그만큼 반대로 체력과 방어력만은 A급 1위를 찍는 몬스터였으니까.

“그래도 다른 A급보단 낫잖아? 장, 단점이 뚜렷하기도 하고.”

“앨리게이터 터틀에 대해선 당연히 알 테고…… 잡을 수 있어?”

공략이랄게 딱히 없는 몬스터였다. 단순하니까.

다만, 평소의 이기수조차 근 2분 가까이 두들겨야 죽일 수 있는 몬스터라는 게 문제였다.

즉, 지금 상태로는 모든 게 미지수였다.

“안 돼도 되게 해야지.”

그 말을 마친 이기수가 손에 전격을 모았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진하 또한 자세를 잡았다.

그의 말이 맞았다.

어차피 되든 안 되든 잡아야 하는 몬스터였다.

이렇게 시간을 끌면서 걱정할 시간에 직접 부딪치는 게 나았다.

꿈틀.

앞에서 모이는 에너지를 느낀 건지 앨리게이터 터틀이 눈을 뜨기 시작했다.

“죽지 마.”

전격을 모으는 이기수가 진하에게 말했다.

진하는 뒤돌아보지 않은 채로 말했다.

“그런 쓸데없는 걱정하지 말아, 안 죽어.”

앨리게이터 터틀이 일어나는 게 보였다.

그리고 이미 뜨여진 눈동자에서 조금씩 경계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지금!”

이기수가 외치며 전격을 던졌다.

파지직!

빠르게 날아간 전격의 창이 몬스터를 두들겼다.

움찔.

눈을 감으며 고통스러워하는 앨리게이터 터틀.

진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빠르게 쏘아져 나갔다.

‘시선을 끌어야 해.’

현재 진하의 능력으로는 흠집 하나 내기 힘든 몬스터였다.

그리고 그 말은 몬스터의 어그로를 끌 수 없다는 말이기도 했다.

이 상태로는 2대 1이 아닌 1대 1의 싸움이 될 뿐이었다.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

앨리게이터 터틀의 어그로를 끌 수 있는 유일한 방법.

휘릭!

진하가 단검을 꽉 잡았다.

어느새 코앞에서 보이는 터틀의 눈이 슬며시 떠지는 게 보였다.

푸욱!

단검이 막 눈을 뜨는 터틀의 눈 깊숙이 파고들었다.

크롸락!

진하가 재빠르게 몸을 뒤로 물렸다.

“딱 한 번이야!”

“알아!”

진하의 외침에 이기수가 대답했다.

전투가 시작되자마자 재빨리 몸을 뒤로 물려 문 뒤쪽으로 몸을 숨기는 이기수.

그는 몸을 숨기자마자 손안에 전격을 축적하기 시작했다.

주르륵.

까득!

이기수는 한 손을 피를 훔치며 후들거리는 몸에 힘을 주었다.

이번이 마지막이었다.

저 몬스터만 잡으면 이곳에서 탈출할 수 있다.

그러니까.

‘버티자.’

여기서 쓰러지면 아무도 지킬 수 없게 된다.

심지어 C급 헌터인 진하조차 만신창이로 몬스터의 어그로를 끌고 있는데 대한민국 최고의 헌터인 그가 쓰러질 순 없었다.

파지지직!

‘빨리, 더 빨리!’

전격을 빠르게 모아 내뻗는 것. 지금은 그것만 생각해야 했다.

한편, 고통을 떨어내며 몸을 일으킨 앨리게이터 터틀을 보며 진하가 이마에 흐르는 피를 훔쳤다.

피를 흘리며 한쪽 눈이 감은 채로 진하를 바라보는 앨리게이터 터틀.

‘역시.’

완벽하게 어그로가 끌리진 않았다.

어그로가 끌려 이성을 잃었다면 바로 달려들었을 텐데, 오히려 주변을 경계하고 있었다.

그만큼 첫 발의 이기수의 공격이 강했던 거기도 했고, 진하의 공격이 부족했다는 뜻이기도 했다.

‘달려든다.’

진하만을 바라보게 만들어 이기수라는 존재를 인식하지 않게 만들어야 했다.

타닥!

진하가 달리며 단검 두 개를 앨리게이터 터틀의 눈을 향해 흩뿌리며 달려들었다.

티딩!

단검이 눈꺼풀에 부딪히며 튕겨 나갔다.

한번 당했던 공격은 다시 당하지 않는 모습을 보며 진하는 하나 남은 단검을 꽉 쥐었다.

다행히 이번 공격은 신경을 거슬리게는 했는지 앨리게이터 터틀의 시선이 진하를 향해 틀어졌다.

가가각!

진하의 단검이 다리를 긁고 지나갔다.

‘역시나…….’

흠집 하나 나지 않았다.

쿵!

그 순간 진하가 지나간 공간으로 다리 하나가 내리찍혔다.

생각보다 느린 움직임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진하가 이를 악물었다.

공격이 느리다는 건 그만큼 아직도 주변을 경계한다는 뜻이었으니까.

캉! 카캉!

연신 진하가 앨리게이터 터틀의 껍질 위를 돌아다니며 단검을 그어 댔다.

통하길 바라며 한 공격은 아니었다.

그저 이렇게 시끄럽게 소리라도 내서 괴롭히려는 의도였다.

귓가를 괴롭히는 모깃소리가 실제로 물리는 것보다 괴로운 것처럼.

크롹!

어느 정도 의도가 먹혔는지 진하를 공격하는 움직임이 점차 빨라지기 시작했다.

신경이 몰리기 시작했단 소리였다.

그리고 그 대가로 진하의 회피 또한 점차 아슬해지기 시작했다.

앨리게이터 터틀이 휘두르는 공격은 겨우 피할 정도로 빨라졌고, 진하가 밟는 등갑에서는 사정없이 그를 노리며 뾰족하게 가시가 튀어나왔다.

피픽!

고개를 비틀어 가시를 피한 진하가 되돌아가는 가시의 등갑 틈 사이로 단검을 꽂았다.

그러자 체액이 뿜어져 나오며 옅은 피가 보였다.

촤악!

그 순간 다른 곳에서 솟아난 가시가 다시금 진하를 노리며 날아들었다.

재빨리 등갑을 박차 공격을 피한 진하가 땅바닥을 구르며 떨어져 있는 단검을 집어 들었다.

후웅!

그 순간 진하를 노리며 발이 휘둘러졌다.

몸을 일으킨 진하가 다시 한번 몸을 공중으로 날렸다.

콰직!

한 끗 차이로 공격이 진하의 발끝을 스치고 지나갔다.

발목이 부러지며 진하의 몸이 크게 흔들렸다.

진하가 입술을 꽉 깨물며 파우치에서 영롱한 구슬 하나를 던졌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또다시 휘둘러지는 몬스터의 공격.

쨍그랑, 퍼엉!

진하가 던진 구슬이 등갑에 꽂혀 있던 단검에 맞아 깨지며 폭발했다.

그러자 움찔하며 순간 느려지는 공격.

그 틈을 이용해 착지한 진하는 공격 범위 밖으로 빠르게 후퇴했다.

‘아직 멀었나?’

다시금 날아드는 공격을 피하며 진하가 생각했다.

체감상 1분 정도의 시간이 지났다.

이 정도라면 어느 정도 준비가 끝났어야 했다.

게이트와 던전을 돌파하면서 이기수가 준비하던 전격의 충전 시간은 길어야 30초.

1분 정도면 거의 끝마쳐야 했었다.

“조금만 더!”

진하의 생각을 알아챈 걸까?

이기수의 목소리가 진하의 귓가에 들렸다.

‘미친!’

진하가 속으로 소리쳤다.

말하지 않아도 진하는 언제까지고 어그로를 끌 생각이었다.

그런데 방금 낸 소리로 인해 몬스터가 그를 인식해 버리고 말았다.

안 그래도 모으던 전격으로 인해 언제 관심이 돌아갈지 모르는 상황에서 소리까지 치다니.

너무나 어리석은 행동이었다.

“아아악!”

진하가 시선을 끌기 위해 소리를 지르며 달려들었다.

“여길 봐!”

진하가 단검을 눈으로 던지고 주먹으로 몬스터를 공격했다.

하지만 이미 몬스터의 시선은 진하를 보지 않았다.

‘들켰어.’

아직 위치를 정확히 특정하진 못한 듯했지만, 이제는 확실히 거대한 에너지 덩어리를 인식한 건지 주변을 훑어보고 있었다.

쿵, 쿵!

잠시 후 몸을 움직이기 시작하는 앨리케이터 터틀.

움직이는 방향은 이기수가 있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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