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6
치이익!
하준수가 달리던 발걸음을 멈춰 세웠다.
뒤로 돌아서자 보이는 몬스터의 이빨.
우드득!
콰앙!
이빨을 들이미는 하이드의 얼굴에 주먹을 꽂았다.
주먹에 느낌이 왔다.
죽지는 않겠지만 이 정도면 뼈에 금은 갔다는 확신이 들었다.
가가각!
주먹을 내뻗는 그 틈을 이용해 날아가는 하이드의 사이로 파고든 다른 놈들이 날카로운 발톱을 휘둘렀다.
하준수가 급히 몸을 뒤로 물리며 긁힌 곳을 확인했다.
다행히 발톱이 방어구만 살짝 스치고 지나갔다.
‘들어갔나?’
달려드는 몬스터를 쳐내는 하준수의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는 생각.
마음 같아서는 당장 고개라도 돌려 확인하고 싶었지만 조금이라도 빈틈을 보이는 순간 끝이었다.
깨갱!
또 한 마리를 날려 버리는 동시에 포탈 쪽으로 청력을 집중시켰다.
“…….”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들리는 소리는 오직 어느새 뒤쪽까지 자신을 둘러싼 몬스터들의 괴음뿐.
‘됐다.’
보지는 않았지만 두 사람 모두 들어갔다는 확신이 들었다.
만약 들어가지 않았다면 분명 싸우는 소리가 들렸을 테니까.
이제 남은 건 하준수 혼자.
‘들어갈 수 있나?’
사방이 하이드와 타이드로 둘러싸여 있는 상황이었다.
이대로라면 완벽하게 죽었다고 봐야 했다.
‘기어를 올린다.’
하준수가 아주 약간 한계를 풀었다.
반드시 상대한다는 가정하에 그는 반드시 죽는다.
반대로 상대하지 않고 도망간다면 그는 살 수 있었다.
물론 어디 한 군데를 잃어야 하겠지만.
콰직!
또 한 마리의 머리를 짓이긴 하준수가 몸을 돌렸다.
찌직!
근육의 일부가 찢어졌지만 무시했다.
콰앙!
커다란 땅 파임과 함께 하준수의 몸이 빠르게 앞으로 나아갔다.
그에 맞춰 뒤에 있던 몬스터들이 하준수에게 달려들었다.
촤악! 촥!
순식간에 발톱 자국으로 가득해진 하준수.
하지만 하준수는 통증을 애써 무시하며 앞으로 달려 나갔다.
‘조금만 더 가면 된다!’
그 순간.
콰드득!
“커억!”
갑작스러운 충격에 하준수의 몸이 옆으로 튕겨 나갔다.
몇 번이나 몸이 튕기고 나서야 겨우 몸을 수습한 하준수는 다급히 날아올지 모르는 공격을 대비했다.
하지만 공격은커녕 몬스터들은 그의 곁으로 아무도 다가오지 않았다.
크롹!
작게 울리는 울음소리.
그제야 하준수는 자신을 공격했던 몬스터의 정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베어른, 아까 앞을 가로막았었던 몬스터였다.
‘망했군.’
부서진 갑옷을 털어 내며 하준수가 쓰게 웃었다.
아까 아티팩트를 사용해 뒤로 떨궜던 몬스터가 어느새 하준수를 막고 있었다.
심지어 포탈 바로 앞을 가로막고 있는 상태, 하준수는 의욕이 사라지는 걸 느꼈다.
‘베어른 한 마리에 하이드와 타이드 무리.’
100% 죽음이었다.
당장 하이드와 타이드만 있어도 죽음을 각오해야 탈출할까 말까였다.
하지만 베어른까지 그의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어설프게 A급 판정을 받은 두 무리와는 다르게 오로지 한 개체로서 A급 판정을 받은 베어른.
이 몬스터는 절대 이길 수도 뚫을 수도 없었다.
크롹!
그때 베어른이 작게 소리치며 주저앉았다.
베어른의 소리에 맞춰 하이드와 타이드가 천천히 하준수를 포위해 나갔다.
‘영악한 놈.’
하준수의 목표를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본인은 포탈 앞에 주저앉아 그를 막으면서 하이드와 타이드를 이용해 그를 포위했다.
그 짧은 시간에 서열 확립과 포위까지 하는 걸 보며 하준수는 혀를 찼다.
크롸락!
베어른의 소리에 하이드 한 마리가 홀로 튀어나왔다.
그리고 곧바로 하준수를 향해 달려드는 하이드.
촤아악! 콰직!
방어는 무시한 채 하이드를 내리찍은 하준수가 몸을 일으켰다.
끼이잉…….
콰직!
쓰러진 하이드의 목뼈를 발로 밟아 부순 하준수.
까득!
그가 이를 갈았다.
지금 이 행위가 무엇을 뜻하는지 너무나 잘 알았으니까.
베어른은 지금 하준수를 가지고 놀고 있었다.
‘오냐, 죽어도 쉽게는 안 죽는다.’
퐁!
꿀꺽.
하준수가 허리춤에서 남아 있는 홀리 포션을 꺼내 모조리 마셨다.
치이익!
우드득!
급속도로 치유되는 몸, 그와 동시에 몸이 다시 급속도로 붉어지기 시작했다.
―리미트 브레이크, 해제.
하준수가 억제하고 있던 능력의 최대 한계치를 풀어 넘겼다.
우득, 드드득!
순식간에 그의 몸이 조금씩 부서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만큼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한 파워가 그의 몸에서 솟아났다.
쿠아악!
그 기세를 느낀 걸까?
베어른이 크게 소리쳤다.
그러자 하준수를 포위하던 몬스터들이 그 즉시 하준수를 향해 달려들었다.
“하압!”
하준수가 기합과 함께 달려드는 몬스터들을 향해 몸을 던졌다.
콰직!
가장 먼저 달려든 몬스터의 안면이 부서졌다. 즉사였다.
그와 동시에 그의 주먹 뼈가 분쇄된다.
그 틈을 이용해 또 다른 몬스터들이 위와 아래쪽에서 파고들었다.
‘피할까?’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하준수는 이내 무시하며 위쪽으로 달려드는 몬스터를 붙잡아 땅바닥에 내리꽂았다.
쾅!
콰직!
땅에 내리꽂음과 동시에 타이드가 그의 허벅지를 물었다.
하준수는 그대로 물린 다리를 크게 휘둘렀다.
후드득.
원심력에 의해 살 한 움큼과 함께 떨어지는 타이드.
상처를 신경 쓸 시간도 없이 한 마리가 얼굴에 이빨을 들이민다.
터억! 쫘아악!
몬스터의 아가리를 붙잡아 찢어 버린 뒤 사체로 달려드는 몬스터를 후려친다.
“허억! 허억!”
‘몇 초가 지났지? 상태는?’
계산이 되지 않았다.
고작 십몇 초, 몇 마리를 죽였을 뿐인데 몸이 뜨겁고 머리가 멍해졌다.
온몸이 아팠다.
그가 처음으로 제한을 하지 않고 푼 능력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피곤해.’
온몸의 뼈는 성한 곳이 없었고 근육도 절반 이상이 찢어져 있었다.
그만큼 아직도 강한 힘이 용솟음쳤지만 움직여지기는커녕 서 있기도 힘들었다.
그걸 눈치챘는지 달려들지 않는 몬스터들.
‘왜 이렇게 싸워야 하지?’
순간 그런 의문이 들었다.
죽는 건 확정, 지킬 상대도 없었다.
몬스터를 죽인다? 굳이 죽여 봤자 티도 안 날 정도의 숫자였다.
‘그런데 왜…….’
부들부들.
‘일어나 있는 거지?’
그저 힘만 풀면 된다.
그럼 이미 무너지고 있는 몸은 자연스레 누울 것이다.
근데 어째서인지 하준수의 의지와 다르게 몸은 계속해서 쓰러지는 걸 거부하고 있었다.
―오빠.
순간 터져 버린 고막 사이로 환청이 들렸다.
어디선가 들었던 목소리.
덜컥!
오른 다리의 뼈와 근육이 모조리 찢어지며 자연스레 몸이 기울어진다.
앞도 보이지 않았다.
이제 그에게 남은 건 죽음뿐이었다.
―오빠!
또다시 울리는 목소리.
‘그래, 동생아.’
무의식적으로 하준수가 대답했다.
그리고 그제야 생각났다.
이 목소리의 정체가, 그리고 그가 쓰러지지 못했던 이유까지.
‘까먹고 있었어.’
그가 이딴 쓰레기 능력으로 헌터를 했던 이유, 너무나 오래전이어서 흐려졌던 마음가짐.
단 하나였다.
대재앙의 날 자신 앞에서 여동생을 먹던 몬스터를 죽이기 위해서였다.
―쓰러져 있을 거야?
환청 속 여동생이 묻는다.
‘하지만 이젠 싸울 수 없어.’
이미 모든 몸이 무너졌다.
싸우기는커녕 숨이 붙어 있는 것조차 신기한 몸 상태였다.
―도망자, 비겁자, 쓰레기.
‘그래, 난 그런 놈이지.’
동생이 먹히는 순간 아무것도 못 한 쓰레기.
홀로 남은 비겁자.
―그러니까 죽여.
‘뭘?’
―몬스터를. 그리고 속죄해. 죽여서 용서를 빌어.
‘못해.’
그러기엔 이미 늦었다.
―거짓말. 그냥 나약해져서잖아.
‘나약?’
―좋았어? 소중한 사람을 만들어서, 그 사람들과 웃고 떠들어서. 나 따위는 완전히 잊었지.
아니다, 잊지 않았다.
처음 헌터를 한 이유를 까먹었을지언정, 소중한 사람들을 만들었을지언정, 여동생을 한 번도 잊은 적은 없었다.
―그럼 죽여.
여동생이 속삭인다.
―죽여 버려. 날 죽인 것들을 모두 다.
‘모두?’
―응, 죽여, 죽여, 죽여, 죽여! 죽여 버려!
으득!
남은 근육을 움직인다.
부서진 뼈를 어떻게든 부여잡아 힘을 준다.
으득, 으드득!
몸속에서 부러진 뼈가 요동친다.
몇몇 뼈들이 장기를 찌르지만 괜찮다.
오히려 통증이 그의 정신을 일깨워 줬다.
으득, 으드득!
아주 천천히 몸을 일으키는 하준수.
온몸의 구멍에서 피가 흐르는 그의 모습은 시체 그 자체였다.
“퉤!”
입 안에서 부서진 이빨을 뱉는다.
“ㅈ…… ㅇ…….”
하준수의 눈이 번들거렸다.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동안 쌓았던 인간관계도, 소중했던 기억들도 모두 사라진다.
그리고 한 가지만 오롯이 그의 머릿속에 새겨졌다.
‘죽인다.’
시체가 가루가 돼서라도 죽인다.
영혼이 불타 사라져서라도 죽인다.
죽인다, 오로지 죽인다.
―죽여!
으득, 으드득!
치이익!
그 순간 하준수의 몸에서 하얀 연기가 치솟기 시작했다.
찢어진 근육이 아물고 부서진 뼈가 붙기 시작했다.
띠링!
<스킬을 각성했습니다.>
<신체 제한이 풀립니다. 신체 능력이 소폭 상승합니다.>
<스킬: 버서크가 생성되었습니다.>
<버서크: 1시간 동안 모든 상처가 그 즉시 치료된다. 죽지 않는다. 정신을 잃지 않는다.>
<재사용 시간 : 1시간.>
“하아…….”
어느새 완벽히 치료된 하준수가 조용히 숨을 내뱉었다.
스킬의 각성.
그가 염원했던 스킬을 각성했지만, 그의 눈에는 시스템 창이 보이지 않았다.
‘죽인다.’
오로지 몬스터만 보였다.
죽여야 했다.
모든 몬스터는 죽여서 갈기갈기 찢어야 했다.
으드득!
몸이 부서지면서 강화가 됐다.
‘부족해.’
이 정도론 베어른을 찢어 죽일 수 없었다.
고작해야 하이드, 타이드 정도만 죽일 수 있었다.
더 큰 힘이 필요했다.
‘더 강하게, 더, 더, 더!’
초 단위로 몸이 서서히 부서지는 정도로는 안 된다.
더 많은 제한을 부셔야 했다.
주르륵.
치이익!
주르륵.
치이익!
실시간으로 새로운 피가 칠공으로 쏟아졌다.
그리고 부서지는 동시에 회복되는 몸.
1초 단위로 온몸이 동시에 부서졌다, 그 즉시 회복된다.
저벅, 저벅.
하준수가 천천히 몬스터들에게 다가갔다.
크앙!
그 순간 포진해 있던 모든 타이드와 하이드가 그에게 달려들었다.
콰직, 콰지직!
순식간에 그의 몸이 걸레가 되었다.
온몸이 난도질 되고 목, 팔, 다리 등 모든 곳을 몬스터가 물어뜯었다.
치이익!
‘아프지 않아.’
아니, 통증이 느껴지지 않았다.
초 단위로 계속 부서지는 통증 덕에 다른 통증 따위 들어올 틈도 없었다.
덥썩!
달려드는 타이드 한 마리의 머리를 잡아챘다.
콰지직!
하준수의 악력에 그대로 머리가 부서져 뜯기는 타이드.
―죽여.
통증으로 가득한 그의 뇌에 또다시 환청이 들렸다.
“아, 아…… 죽여야지. 죽일게, 동생아.”
하준수가 베어른을 향해 똑바로 걸어간다.
주변에서 하이드와 타이드가 달려들었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물리면 물린 놈을, 할퀴면 할퀸 놈을, 그저 손에 잡히는 놈들을 모조리 잡아채 부쉈다.
콰직!
콰앙!
하준수가 날아가 나무 둥치에 부딪쳤다.
앉아 있던 베어른이 어느새 일어나 그를 향해 으르렁거린다.
‘죽인다.’
부서졌던 얼굴이 재생되며 일어나는 하준수.
저벅, 저벅.
그가 다시 베어른을 향해 걸어갔다.
크아악!
베어른의 명령에 몬스터들이 하준수를 향해 달려들었다.
쫘악! 콰직, 쾅!
피가 튀고, 살점이 날아다녔다.
그중 절반이 하준수의 피와 살점이었으며 나머지 절반이 몬스터의 피와 살점이었다.
그렇게 50여 분.
계속해서 밀리며 베어른을 향해 걸어가던 하준수를 막는 건 더 이상 아무것도 없었다.
콰직!
베어른의 발에 머리가 움푹 파였다.
하지만 이번엔 날아가지 않았다.
어느새 땅속 깊숙이 박힌 그의 발이 날아가는 걸 막고 있었다.
덥썩!
하준수가 베어른을 잡았다.
―찢어.
지직, 찌이익!
크와왕!
가죽이 찢어지며 베어른이 비명을 내지른다.
다급히 날린 발에 하준수의 가슴이 움푹 파였다.
하지만 그 즉시 바로 회복되는 하준수.
“죽어.”
크아악!
콰직!
베어른이 다급히 하준수의 머리를 물었다.
콰직, 콰직, 콰직!
그러고는 완전히 씹어 삼키겠다는 듯 재생되는 그의 머리를 계속해서 씹어 댔다.
꿀꺽!
한참을 씹어 저항 없는 하준수를 완전히 삼켜 버린 베어른.
크아앙!
베어른이 승리의 포효를 내질렀다.
그리고.
찌지직!
안쪽에서부터 들리는 찢어지는 소리.
갑작스런 고통에 베어른이 날뛰었지만 고통은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점차 더 빠르게 크게 베어른의 몸속을 찢어 놓았다.
이윽고.
쿠웅!
베어른이 쓰러졌다.
그리고 그 시체를 찢고 나오는 하준수.
그의 주변은 이제 몬스터의 사체만이 가득했다.
―죽여.
“죽여…….”
포탈을 향해 시선을 돌리는 하준수.
그가 천천히 포탈을 향해 걸어갔다.
그 속에 있는 몬스터를 죽이기 위해.
저벅, 저벅.
<스킬이 해제됩니다.>
하준수가 포탈을 넘어가려는 그 순간, 스킬이 해제됐다.
그리고 천천히 무너지는 하준수.
흐려지는 정신 속에서 그의 입술이 자그맣게 열렸다.
‘미…… 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