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가진 SS급 문방구-25화 (25/202)

#025

5시간 동안 다행히도 큰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들이 지나는 암석 지대는 숨을 공간이 없었지만 몬스터에게도 그리 매력적인 공간은 아니었던 건지 몬스터가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물론 아예 나타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전방 1km, 몬스터 둘 오고 있어요. 좌측으로 돌아갑시다.”

“상공에 비행 몬스터 하나, 잠시 대기합니다.”

이기수가 항시 펼치는 감지망으로 인해 손쉽게 그들은 싸움을 피해갈 수 있었다.

그리고 어쩌다 피할 수 없는 위치에 몬스터가 존재하더라도 큰 문제는 되지 않았다.

키리릭!

콰악!

“지금이다!”

파지직! 피슉!

하준수의 방어와 이기수의 전격 창.

둘의 콤보는 생각보다 쉽게 A급 몬스터들을 잡아 나갔다.

“괜찮아요?”

진하가 업혀 있는 이기수에게 물었다.

아주 약간이지만 이기수의 숨소리가 거칠어진 게 느껴졌다.

“아뇨.”

“지쳤네요.”

애초에 환자가 5시간이 넘게 능력을 유지했다는 점이 더 대단했다.

지치는 게 당연했다.

“후우…… 괜찮아요. 아직 더 버틸 수 있어요.”

이기수가 거칠어진 숨을 가다듬으며 말했다.

진하는 그 모습에 잠시 쉴까 했지만,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거의 다 도착한 상황이었다.

여기서 쉬기엔 위험부담이 너무 컸다.

“미안하지만 조금만 더 버텨 주세요.”

“걱정 마세요.”

“그나저나 우리 말 언제 놔요?”

분위기를 좀 풀 겸 진하가 물었다.

“불편…… 한가요?”

“네.”

실제로 무지무지하게 불편했다.

회귀 전까지 반말이 당연했던 동료에게 존댓말을 하는 건 생각보다 고역이었다.

물론 반말을 터야 그와 더 쉽게 가까워질 수 있어서 이렇게 말하는 거기도 했다.

“우리 반말로 하죠?”

“그럴…… 까? 요.”

“요는 빼고.”

“알았어.”

“이제야 좀 낫네.”

진하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거기, 뭔 문제 있나?”

그때 앞서 걷던 하준수가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별거 아니에요. 그나저나 몸은 괜찮아요? 진짜 홀리 포션 안 써도 돼요?”

“그 정도는 아니다.”

하준수가 붉어진 손을 쥐었다 펴며 말했다.

흠, 저 사람도 생각보다 터프하단 말이지.

“그나저나 얼마나 남았나?”

“아, 잠시만요.”

하준수의 말에 이기수가 잠시 눈을 감았다.

파직, 파지직.

가까이 붙은 진하의 귀에 들리는 아주 작은 전격음.

“이제 한 걸어서 30분만 나아가면 돼요.”

탐색을 마친 이기수가 말했다.

“생각보다 빠른데?”

5분의 4지점에서 출발한 걸 생각하면 적어도 8시간은 걸릴 거로 생각했는데.

벌써 3km 정도밖에 안 남았다니.

“완전 직선으로 움직이기도 했고, 지금은 소수잖아.”

“그런가?”

확실히 평소 층을 나아가는 속도의 기준은 많은 사람이 속한 공략대 기준이긴 했다.

“그럼 빠르게 가지.”

“아, 잠깐만요.”

다시 길을 걸으려던 하준수를 이기수가 막아 세웠다.

“1km 앞에 몬스터들이 충돌하고 있어요.”

“돌아가야 하나?”

“아뇨, 그게 돌아가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이기수가 물었다.

“뭐가 문제인 거지?”

“우리가 지나가야 할 협곡 바로 앞에 있어요.”

“다른 곳으로 돌아가는 길은?”

“있지만 여기서 4시간은 더 돌아가야 해요.”

하준수의 물음에 이기수가 고개를 저었다.

진하가 잠시 생각하다 물었다.

“싸움이 끝나길 기다렸다가 지나는 건?”

단순히 대기하는 게 좋은 건 아니지만 나쁘지 않은 방법이었다.

억지로 뚫거나 돌아가는 방법보다는 훨씬 좋은 방법이었다.

“안 돼.”

“왜?”

“대규모 충돌 같아. 한두 마리면 모를까, 총합이 100여 마리가 넘어.”

“망했군.”

“망했네.”

이기수의 말에 하준수와 진하가 한숨을 내쉬었다.

몬스터들의 대규모 충돌이면 한두 시간 내로 끝날 리 없었다.

그렇다고 대규모 몬스터들의 충돌을 뚫고 나가는 건 자살행위였고.

‘진짜 돌아가야 하나?’

아마 충돌이 한 번에 끝나지 않을 가능성도 있었다.

보통은 대규모 충돌의 경우 몇 번의 소강을 거쳐 끝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거기다 시체의 피 냄새를 맡고 다가오는 하이에나와 같은 몬스터들도 생각하면 뚫거나 기다리는 건 거의 불가능이었다.

“하아…… 돌아가는 길로 가자.”

“잠깐만 내가 확인해 볼게.”

이기수가 눈을 감고 감지망을 더욱 넓게 펼쳤다.

파직, 파지직.

소리로만 들렸던 작은 정전기가 진하의 피부를 따갑게 태우는 게 느껴졌다.

진하는 아무 말 하지 않은 채 묵묵히 이기수가 모든 걸 탐지하길 기다렸다

“안 될 것 같아. 반대편 길에 몬스터들이 몰려 있어.”

“거긴 또 왜 몬스터들이 몰린 거야?”

“그 외에 다른 길은 하루 이상이 걸려.”

“끄응…….”

너무 멀었다.

돌아갈 수도, 그렇다고 뚫고 갈 수도 없는 상황.

“뚫고 가지.”

“네?”

“뭐라고요?”

하준수의 말에 진하와 이기수가 되물었다.

“이기수, 여기서 통로까지 남은 거리 걸어서 30분 맞나?”

“예.”

“그럼 뛰어서 가면 얼마 안 걸리겠군.”

확실히 남은 거리가 얼마 남지 않은 건 맞았다.

뛰어간다고 가정하면 그들의 신체 능력으로 몇 분조차 걸리지 않는 거리였다.

몬스터들이 부딪치는 곳에서부터 생각하면 더욱 얼마 안 걸리겠지.

하지만 그건 이론일 뿐이었다.

“우리보다 더 빠른 A급 몬스터가 있으면 어떡하려고요?”

진하가 물었다.

기본적으로 서로 적대적인 몬스터라도 우선순위는 인간이었다.

자기들끼리 싸우더라도 인간을 발견하면 인간부터 죽이는 본능을 가졌다.

그런 상황에서 뚫고 가는 건 무리수였다.

“네가 말한 그 스크롤 던전, 10층 통로에서 먼가?”

“아니 근처예요. 그냥 10층 통로 바로 근처에 있다고 생각하면 돼요.”

“들어가는 데 특별한 절차가 필요한가?”

“아뇨, 10층 바로 왼쪽에 이상하게 커다란 나무가 하나 있을 거예요. 그걸 무너뜨리면 보라색 던전이 생성되고, 그냥 들어가면 돼요.”

“그럼 뚫지, 내가 막겠다.”

“그게 무슨 소리에요?”

B급 혼자서 A급 몬스터를 막겠다고? 그건 말이 안 되는 소리였다.

하준수가 할 수 있는 건 어디까지나 A급 몬스터를 상대로 버티는 것까지였다.

그가 막겠다는 건 목숨을 버리겠다는 소리밖에 안 됐다.

이기수도 같은 생각을 했는지 고개를 저었다.

“안 됩니다.”

“그럼 다른 방법이 있나?”

“…….”

“돌아가는 것도 안 되고, 결국 남은 건 뚫는 것뿐이지 않나? 설마 돌아가는 길이나 기다리는 시간이 지금까지처럼 평온할 거라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아뇨, 그렇게는 생각하지 않아요.”

“그럼 뭐가 문제지?”

하준수의 말에 답할 수 없었다.

모두 맞는 말이니까.

그걸 이기수나 진하라고 모르는 게 아니었다.

“차라리 제가 막을게요.”

진하의 말에 하준수가 고개를 저었다.

“죽겠다는 게 아니다. 아주 잠깐만 막겠다는 거다. 던전에 입성만 하면 되지 않나. 그리고 너로는 시간 못 끌어.”

틀린 말은 아니었다.

진하의 실력으론 끌 수 있는 시간이 너무 짧았다.

그리고 던전에 입성만 하면 되는 것도 맞았다.

몬스터는 던전의 포탈을 넘지 못한다.

세 명 다 그걸 알아서 하루를 보낼 베이스캠프를 던전 안으로 선정하기까지 했으니까.

“너희도 알지 않나. 이게 가장 확률이 높다.”

빠르게 이동할 수 없는 이기수나 하준수보다 능력치가 낮은 진하는 안 됐다.

결국, 가장 확률이 높은 건 하준수였다.

“알겠어요. 그럼 이거 받아요.”

진하가 하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파우치에서 물건 하나를 꺼냈다.

<새알 탄. 안에 작은 화약이 들어 있다. 던지면 누구나 깜짝하고 놀란다. 이걸로 친구들을 놀려 보는 건 어떨까?>

“원래 쫓길 때 쓰려고 파우치에 넣어 두었던 거예요. 사용 방법은 알겠죠?”

“이걸로 확률이 더 올라가겠군.”

하준수가 뚜껑을 열어 보았다.

다섯 개의 새알 탄이 들어 있었다.

“아주 잠깐 멈칫하는 게 다일 거예요.”

“그거면 충분하다. 그리고 존대 말고 반말로 해라. 전투 중엔 짧은 게 낫다.”

“후우, 알았어. 근데 진짜 살아라? 죽으면 지옥까지 쫓아가서 죽일 거니까.”

진하의 말에 하준수가 쓰게 웃었다.

“자, 결정됐으면 가자.”

결론을 내렸다면 빠르게 행동하는 게 나았다.

괜히 주저하면 더 행동하기 어려워진다.

빠르게 결론을 내린 셋은 조심스럽게 이동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충돌로 인해 주변의 몬스터들이 잠시 자리를 피한 건지 가는 동안 몬스터를 만나진 않았다.

“하아…… 하이드 무리랑 타이드 무리네요.”

충돌하는 곳에 도착한 이기수가 한숨을 내쉬었다.

좋기도, 나쁘기도 한 몬스터들 이었다.

둘 다 A급 최하위 몬스터.

가진 힘 자체는 B급 최상급이지만, 무리 지어 다닌다는 점 때문에 A급으로 기록된 몬스터였다.

그 점에서는 좋긴 했지만, 문제라면 속도가 매우 빠르다는 점?

일행의 속도로 절대 따돌릴 수 없는 몬스터였다.

“1차 충돌이 끝나고 멀어지면 바로 출발하자.”

진하의 말에 둘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돌파하면 바로 사망이었다.

차라리 좀 소강되는 때를 노려 돌파하는 게 나았다.

그때가 되면 온갖 썩은 내와 노린내로 인한 진하 일행의 냄새도 가려질 테니까.

“싸우는 걸 보아하니 곧 소강상태겠네요.”

이기수의 말대로 확실히 소강상태가 될 것 같았다.

왜냐하면, 우두머리의 싸움이 끝나 가기 때문이다.

아마도 한 번 쉬었다가 또다시 붙겠지.

“벗어난다.”

하준수가 말했다.

그의 말대로 우두머리 싸움이 끝난 두 무리가 조금씩 거리를 벌리는 게 보였다.

“잘하면 바로 통과되겠는데?”

생각보다 물러나는 속도가 빨랐다.

벌써 꽤 많은 거리가 벌어졌다.

이대로라면 그들이 달릴 때 절대 잡히지 않을 게 분명해진다.

후욱!

그 순간 진하 일행 쪽으로 불던 바람의 방향이 바뀌었다.

진하 일행 쪽에서 진하 일행의 등 쪽으로.

“뛰어!”

기겁한 이기수가 소리쳤다.

타다닥!

그의 외침에 진하와 하준수가 빠르게 뛰쳐나갔다.

멈칫―

뒤로 물러나던 두 몬스터들이 멈칫하는 게 보였다.

역시나 순풍으로 부는 바람으로 인해 그들의 냄새를 맡은 거였다.

아구우!

크롸락!

양쪽에서 울부짖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와 동시에 일행에게 달려드는 몬스터들.

아직 일행이 격전지 중간을 지나고 있던 순간이었다.

“던져!”

진하가 소리쳤다.

그의 말에 하준수가 들고 있던 새알 탄을 두 개 꺼내 양쪽으로 던졌다.

펑! 펑!

굉음을 내며 터지는 새알 탄.

그 소리에 몬스터들이 놀라며 급히 멈췄다.

다다다다.

그사이를 이용하여 협곡으로 들어서는 셋.

빠르게 정신을 차린 몬스터들이 셋을 쫓아갔다.

그리고 순식간에 좁혀지는 거리.

펑!

다시 한번 새알 탄이 터지면서 거리가 벌어졌다.

이제 남은 새알 탄은 두 발.

“더 빨리 달려라!”

하준수가 뒤에서 다그쳤다.

“나도 알아!”

진하가 있는 힘껏 다리를 놀렸다.

기껏해야 1.5km였다. 2분도 안 돼서 도착할 수 있는 거리였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 거리가 너무나 멀게 느껴졌다.

멀어졌던 몬스터와의 거리가 다시 좁혀지기 시작했다.

퍼엉!

몬스터가 가까이 다가오자 다시 한번 내던져지는 새알 탄.

이제 한 발밖에 남지 않았다.

“통로다!”

협곡을 벗어난 진하가 소리쳤다.

그들의 눈앞에 협곡이 끝나고 나타난 숲과 그 사이에 있는 10층 통로가 보였다.

그리고 그 옆에 서 있는 커다란 나무 하나.

이 정도면 잘하면 통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크륵?

그 순간 그들의 중간에서 튀어나오는 몬스터 한 마리.

몬스터는 일행을 발견하자마자 그들에게 달려들었다.

‘젠장!’

앞, 뒤로 포위된 형태였다.

이대로라면 몬스터에게 둘러싸일 상황이었다.

진하가 입술을 깨물었다.

그 순간.

“그냥 지나가!”

휘익!

하준수의 목소리와 함께 뒤에서 하얀색 물체가 앞으로 날아갔다.

달려드는 몬스터의 발밑으로 떨어지는 작은 물체.

퍼엉!

새알 탄이었다.

진하는 이를 악물며 있는 힘껏 다리를 놀려 멈칫하는 몬스터를 지나쳤다.

새알 탄으로 인해 다행히 포위상황은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위험이 끝난 건 아니었다.

다시 좁혀진 몬스터와의 거리는 이제 거의 0에 수렴해 갔다.

그에 반해 던전까지 남은 거리는 약 50m.

‘잡힌다.’

이 생각이 들었다.

“던져!”

휘익!

파지지직!

하준수의 외침에 업힌 이기수가 전격의 창을 던져 나무를 부쉈다.

위이잉!

그와 동시에 생겨나는 보라색 포탈.

치이익!

뒤에서 멈춰 서는 소리가 들렸다.

까득!

진하는 애써 뒤돌아보지 않은 채 열린 보라색 게이트를 향해 몸을 던졌다.

반전되는 시야.

던전으로 들어온 진하가 재빠르게 뒤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뒤에 있는 게이트는 그저 일렁거릴 뿐이었다.

“제발, 제발!”

진하가 간절히 기도했지만 한참의 시간이 지나도 포탈은 아무 반응이 없었다.

툭.

진하의 손이 결국 힘없이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하준수가 죽었다.

그렇게 또 한 번 동료를 잃어버렸다.

“으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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