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4
벌떡.
“왜 그러세요?”
“뭐지?”
갑작스러운 진하의 행동에 둘은 진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진하의 굳은 표정을 본 둘은 재빨리 진하의 시선이 향하는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결계를 기준으로 낡은 로브를 쓴 해골 하나가 빨간 눈동자를 밝히며 서 있었다.
“리치!”
이기수가 소리쳤다.
S급 몬스터 중 하나인 리치가 이곳에 나타나다니.
10층에서나 어쩌다 한번 볼 수 있는 존재가 7층에 나타나서는 안 됐다.
“아뇨, 그냥 리치가 아니에요.”
진하가 식은땀을 흘리며 리치를 바라봤다.
겉모양은 일반적인 리치지만 일반 리치와는 다르게 쇠사슬을 목에 걸고 있었다.
죄악의 리치였다.
‘젠장, 차라리 일반 리치면 나았을 텐데.’
진하가 이기수에게 물었다.
“여기 확실하게 안 보이고 안 들리는 거 맞죠?”
“예, 10층에서도 통하는 아티팩트예요. 설사 공격당해도 방어기능까지 있어요.”
이기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가만히 있어 봐요.”
스륵, 스르륵.
진하가 아주 조심스럽게 몸을 모닥불 옆으로 뺐다.
그에 따라 움직이는 리치의 눈동자.
‘보인다!’
“당장 공격해!”
진하가 소리쳤다.
“네?”
“뭐?”
진하의 갑작스러운 외침에 둘은 당황하며 진하를 바라봤다.
갑자기 달려들라니?
타닥!
진하가 리치에게 달려들었다.
그 모습에 잠시 멈칫하던 둘이 진하를 따라 몸을 날렸다.
리치를 공격하려는 진하를 막기 위해서.
그때, 가만히 그들을 바라보던 리치가 손을 들어 올렸다.
그 행동을 누구보다 잘 아는 진하가 이를 악물었다.
“젠장!”
그와 동시에 시야가 뒤집혔다.
* * *
투둑…….
머리카락 위로 떨어지는 돌 부스러기의 느낌에 진하가 눈을 떴다.
‘잠깐 기절한 건가?’
시야가 반전됨과 동시에 잠시 의식을 잃었던 것 같았다.
“일어났군.”
“괜찮아요?”
옆에서 하준수와 이기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같이 휘말린 건가?’
차라리 혼자 휘말리는 게 나았을 텐데.
진하가 한탄했다.
혼자면 어떻게든 빠져나갈 방법이 있었지만 다른 사람까지 휘말려 버렸다.
어깨가 무거웠다.
“네, 괜찮…….”
몸을 일으키며 대답하려던 진하는 눈앞에 보이는 이기수의 모습에 할 말을 잃었다.
“하하, 놀랐죠? 애매하게 걸쳐졌나 봐요.”
웃으며 대답하는 이기수의 모습은 정상이 아니었다.
왼팔은 팔꿈치 아래로 존재하지 않았고, 오른발 또한 발목 아래로는 잘려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응급 치료가 되어 있다는 점?
“네가 깨어나길 기다렸다. 일단 여기는 안전한 것 같으니 얘기부터 좀 하지.”
“맞아요, 진하 씨는 그 리치에 대해서 뭔가 알았죠? 그래서 달려간 거고요.”
둘의 말에 진하가 마른세수를 했다.
설상가상, 가장 큰 전력이 거의 전투 불능이었다.
모습을 보아하니 홀리 포션을 먹은 듯했지만 팔, 다리가 잘린 이상 전투력 급감은 확정이었다.
이곳의 위치조차 감이 안 잡히는 상태라 머리는 더욱 복잡해졌다.
“그 전에 물어볼 게 있어요. 이기수 씨, 혹시 이곳이 어딘지 짐작 가요?”
게이트 폭주 전의 환경이라 진하로서는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았다.
“정확한 위치는 모르지만, 이 공간의 암석과 공기의 습도를 생각하면 아마 9층 같아요.”
이기수의 말에 진하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최악의 경우의 수는 벗어났다.
다행이라 생각한 진하가 입을 열었다.
“일단 짧게 요약하자면 우리는 죄악의 리치의 함정에 빠졌어요.”
“죄악의 리치?”
“네, 우리가 봤던 리치, 그놈이 죄악의 리치예요.”
11층에서 처음 발견된 돌연변이 S급 몬스터.
전투 능력은 A급 하위라 알려졌지만, 언제나 최악으로 꼽히는 몬스터 중 하나였다.
그 이유는 아래층으로 상대를 랜덤하게 이동시킨다는 점 때문이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는 점은 이동되는 곳은 항상 안전한 곳이라는 거?
‘겨우 3마리 밖에 없는 게 여기서 나타날 줄이야.’
미래에 공식적으로 집계된 죄악의 리치는 총 3마리였다.
애초에 잘 나타나지도 않았고, 잡은 숫자가 3마리라 그렇게 알려졌을 뿐이지만.
‘분명 10층 이하에서만 발견되었는데.’
게이트 폭주로 등급이 뒤섞인 상황에서도 죄악의 리치는 항상 10층 이하에서 발견됐다.
진하가 알고 있는 미래와는 동떨어진 상황이었다.
“게이트 아래층으로 랜덤 이동시키는 몬스터예요. 그나마 우리는 9층이라 다행이네요.”
생존자의 기록상 수치는 14층까지였다.
아마 더 아래도 있겠지만 그 아래는 아마도 모두 죽었겠지.
“진하 씨는 그걸 어떻게 알죠? 아니, 그 전에 그럼 캠프의 인원들이 위험한 거 아닌가요?”
“괜찮을 거예요. 죄악의 리치는 항상 나타나서 한 번만 텔레포트 시키니까요.”
이것도 지금은 확신할 순 없지만 일단 그의 정보로는 그랬다.
“물어봐도 이번에도 노코멘트냐?”
하준수의 말에 진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려 주는 게 너무 애매했다. 신뢰는 둘째치고 믿어 줄지도 의문이고.
“묻고 싶은 건 많지만 저도 일단은 넘기죠. 어쨌든 이렇게 안다는 건 탈출하는 방법도 아신다는 거겠죠?”
이기수가 진하에게 물었다.
유일하게 몬스터의 정보를 안다면 그 대처 방법 또한 모르진 않을 거다.
만약 그에게 대처 방법이 없다면 그들이 죽는 건 거의 기정사실이었다.
현재 이기수의 전투력은 겨우 A급, 파괴력 문제가 아니라 전투 지속 문제로 겨우 A급 상위 수준이었다.
이 정도로는 3명이서 7층까지 다시 올라가는 것은 거의 자살행위였다.
“방법이 있긴 하죠.”
진하가 손가락 세 개를 폈다.
“첫째, 버티기. 둘째, 탈출. 셋째, 던전 공략.”
진하의 말에 두 사람이 3가지 방법을 곱씹었다.
“첫째, 이대로 버티는 거. 다행히도 이곳은 그 어떤 곳보다 안전합니다. 이곳으로 몬스터가 오지 않아요. 그러니 구출을 기다리는 거죠.”
“하지만 저희가 여기 있는 걸 누가 알죠?”
“그게 문제죠. 구출대도 여기가 어딘지 모른다는 거. 운에 기대야 합니다.”
근처를 지나가면 그들이 나가면 되겠지만 이 넓은 공간에서 그럴 확률은 희박했다.
무엇보다 사망 판정돼서 애초에 구출대가 안 내려올 수도 있었고.
“다른 방법은요?”
진하는 손가락 하나를 접었다.
“둘째, 돌파. 말 그대로 7층까지 뚫고 가는 거예요. 만약 여기의 위치가 8층 통로 근처라면 실질적으로 우리가 올라가야 할 층수는 겨우 한 개예요.”
“아뇨, 그건 넘어가죠.”
이기수가 고개를 저었다.
진하의 뜻이 무엇인지 알았지만 너무 위험부담이 컸다.
단순히 8층만 뚫고 나가는 것만 해도 매우 위험했다.
전투와 병행하면 얼마나 걸릴지도 미지수고, 제일 강한 그도 오래 싸우지 못한다.
“나도 그건 아니라 생각한다. 그건 자살행위와 다름없어.”
하준수도 이기수의 말에 동의했다.
“그럴 것 같았어요. 그럼 마지막 방법으로 하죠.”
진하가 손가락 하나를 더 접었다. 이제 남은 손가락은 한 개.
“던전을 공략하는 거예요.”
“던전?”
“네, 일명 스크롤 던전. 그걸 공략하면 탈출할 수 있어요.”
게이트에는 7층 이후로 층마다 딱 하나씩 존재하는 던전이 있었다.
공략 시 보상으로 스크롤이 나오는데 그 스크롤은 사용자가 인식한 모든 범위의 사람들을 이동시키는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도 안 돼요. 9층 던전의 보스는 S급입니다.”
“나도 반대. 그리고 어디에 있는 던전인지도 모르고 얼마나 걸릴지도 모른다.”
그들의 말에 진하가 쓴웃음을 지었다.
“다행히도 그 던전은 A급 최하위입니다. 보스도 A급이죠. 그리고 위치도 제가 알고요.”
모든 스크롤 던전의 위치는 각 층의 끝이었다.
심지어 어째서인지 12층 전까지의 모든 보스는 A급 보스, 심지어 보스 룸의 버프도 없는 일반 몬스터였다.
마치 도망갈 기회를 주는, 자비를 베푸는 모습을 한 던전.
‘모두가 그 부분을 의아하게 생각했지만 끝내 이유를 밝히진 못했지.’
하긴 게이트가 생기고 능력자가 생긴 것 자체가 수수께끼인데 밝혀지는 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너의 말대로라면 그게 가장 나아 보이는데 어째서 마지막에 이야기한 거지?”
하준수가 물었다. 진하의 말을 들어 보면 결국 방법은 그것 한 가지밖에 없었다.
돌파는 0%라고 봐도 될 정도의 난이도였고, 여기서 구조를 기다리는 것조차 높은 확률은 아니었다.
결국 선택지는 하나밖에 없는 거였다.
“일단 모든 방법을 알긴 해야 하니까요.”
하준수의 말처럼 그냥 마지막 방법만 말해도 상관은 없었다.
하지만 진하의 입장에선 3가지 방법을 모두 말해 주고 싶었다.
이왕이면 그 상황에서 다 같이 찬성하는 쪽이 더 좋았기 때문이다.
‘생존 여부 자체도 불투명하고.’
부상자인 이기수는 현재 싸울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첫 번째가 아닌 이상 몬스터와 부딪칠 게 분명하기에 애초에 생존율 자체가 극악이었다.
어느 쪽을 선택하든 결국 극악이니 그저 선택권을 주는 것뿐이었다.
통통.
진하가 자신이 등진 벽을 두들겼다.
“얇은 벽이지만 마법적 처리가 되어 있어 안전해요. 만약 부순다면 여기서 버티는 건 불가능해져요. 무슨 소린지 알겠어요?”
“결국 선택은 딱 한 번이라는 거군.”
“결국은 운에 맡길 건지 아니면 일단 도전할 건지 선택해야 하는 거네요.”
그들의 말에 진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전 첫 번째 방법은 별로네요. 헌터가 운에 맡기는 건 좀 아니지 않나요?”
“나도 그건 반대하지.”
“그럼 세 번째라는 거죠?”
진하의 말에 둘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진하도 같은 생각이었다.
첫 번째도 너무 극악이었고, 그도 운에 자신의 운명을 맡기고 싶진 않았다.
“그럼 이 벽을 부수는 건 3일 뒤로 하죠. 이기수 씨가 회복할 시간이 필요할 테니까요.”
“좋다. 나는 상관없어.”
“저도요.”
“그럼 일단은 좀 쉬죠.”
진하는 그 말을 하곤 곧바로 눈을 감았다.
마지막 휴식일지도 모르는 이 순간을 즐기기 위해.
* * *
3일이란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갔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 시간 동안 무언가 변한 것도 없었다.
“이기수 씨, 몸은 어때요?”
붕붕.
“나쁘지 않아요.”
새로 간 붕대에 휘감긴 팔을 휘두르며 건강함을 과시했다.
“홀리 포션이 하준수 씨 파우치에 있어서 다행이었어요.”
파우치에 홀리 포션을 가지고 다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애초에 너무 비쌌으니까.
진하는 당연히 없었고, 이기수는 배낭에 넣고 다니는 타입이었다.
오로지 하준수만 파우치에 홀리 포션을 가지고 다녔다.
‘아마도 능력 때문이겠지만.’
그의 능력상 꼭 필요한 물품이라 가지고 다닐 만했다.
파우치에 꺼냈던 물품을 모두 정리한 진하가 다른 둘을 바라봤다.
이미 모든 준비를 마친 둘도 진하를 바라봤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 아시죠?”
“안다. 몬스터가 있는지 확인.”
“이곳이 어디인지 확인하는 것.”
차례대로 하준수와 이기수가 말했다.
“그리고 알겠지만, 치료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세요.”
현재 남은 의약품은 치료제 두 병과 홀리 포션 한 개, 그리고 해독제와 약간의 약품뿐이었다.
“이미 알고 있다.”
“하준수 씨가 제일 문제니까 그렇죠, 홀리 포션도 한 개밖에 없으니까요.”
“정말 이기수 씨에게 나머지 다 쓰지 않아도 되나? 컨디션을 완전히 회복시키는 게 나았을 것 같은데…….”
하준수의 물음에 진하가 고개를 저었다.
“홀리 포션을 다 쓴다고 잃어버린 신체가 돌아오진 않아요. 멀리 오래가는 게 목표인 우리에겐 이게 더 효율적이에요.”
이기수는 여기서 더 다치지만 않으면 됐다.
지금 필요한 것은 공격하는 검을 보호해 줄 방패, 하준수였다.
하지만 그의 능력이 필히 상처가 따라오므로 홀리 포션을 아끼는 게 가장 베스트였다.
“진하 씨의 말이 맞아요. 여기서 더 마셔도 크게 좋아지지 않을 거예요.”
이기수가 진하의 말을 거들었다.
그 역시 진하와 같은 생각이었다.
지금 자신에게 쓰는 건 낭비였다.
“알겠다.”
“자, 그럼 가죠.”
완벽하게 준비가 된 것을 확인한 진하가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얇은 벽을 향해 주먹을 내뻗었다.
쿵!
우르르르.
짧은 충격음과 함께 무너지는 벽.
휘익!
가장 먼저 뚫린 구멍으로 하준수가 빠져나갔다.
그리고 그의 뒤를 이어 이기수와 진하가 차례대로 구멍을 빠져나왔다.
“주변에 느껴지는 몬스터는 없다”
“이기수 씨, 여기 어딘지 알 것 같아요?”
“잠시만요.”
안전이 확보되자마자 진하가 이기수에게 물었다.
이미 눈을 감은 채 감지망을 펼치고 있던 이기수는 잠시 집중을 하다가 말했다.
“9층 5분의 4지점이네요.”
“10층 통로로 가야겠네요.”
10층으로 가는 길이 가장 가까웠다.
“자, 가죠. 안내는 이기수 씨가 조금 수고해 주세요.”
“네, 일단은 여기서 2시 방향으로 가면 될 것 같아요.”
이기수의 말에 하준수가 몸을 긴장시키며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이기수 씨는 제게 업히세요.”
“아뇨, 혼자서 갈 수 있어요.”
“고집부리지 말아요. 외발로 하루 종일 가게요?”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진하의 말에 하는 수 없이 이기수가 등에 업혔다.
“이기수 씨, 힘들겠지만 계속해서 감지망 가능하죠?”
“네.”
“그럼 부탁드릴게요.”
“네.”
그 말을 끝으로 둘의 대화는 단절됐다.
아니, 하준수까지 셋 모두 다 말없이 길을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5시간이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