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3
“그게 무슨 소리죠?”
이기수는 진하의 말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말 그대로예요. 왜 강해지려 하냐는 거예요.”
“말씀드렸잖아요. 더 강해질 수 있으면 더 강해져야죠.”
“왜요? 굳이 더 강해져야 해요? 지금에 만족하면 안 돼요?”
“무슨 소리를 하는 거죠?”
헌터가 더 강해지고 싶지 않다니 그게 무슨 소리인가?
“그럼 반대로 물어볼게요. 첫 번째 스킬 어떻게 얻었어요?”
“모르셔도 됩니다.”
“친했던 동료가 죽는 걸 보고 얻지 않았어요?”
“그만하시죠.”
“그럼 두 번째 스킬은요?”
“그만하시라고 말했습니다.”
순간 감정이 울컥했다.
이기수는 이런 질문을 계속해서 묻는 진하의 의도를 도저히 알 수 없었다.
단순히 기분을 망치게 하고 싶은 건지, 아니면 진짜 뭘 말하고 싶은 건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아니, 그전에 난 이 사람 말을 왜 깊게 듣고 있는 거지?’
“두 번째 스킬은 어쩌다 얻은 거냐고 물었어요.”
“그만해요, 전투나 참관하죠.”
이기수가 진하에게 시선을 돌렸다.
“인지도 못 하는 사이에 동료의 목이 떨어지는 걸 보고 얻지 않았나요?”
헌터들에게로 시선을 돌린 이기수를 향해 진하가 말했다.
그의 말에 이기수가 인상을 찌푸렸다.
“지금 싸우자는 건가요?”
“인터뷰에서 죽을 뻔한 동료를 살리기 위해 싸우셨다고 말했죠.”
이기수의 말을 무시한 채 진하가 말을 이어 갔다.
파지직, 파직!
“적당히 하시죠. 더 이상 선을 넘으시면 저도 참지는 않아요.”
“그럼 마지막으로 하나만 말할게요. 이번에는 왜 강해지고 싶어요?”
이기수가 진하를 노려봤다.
으쓱.
“뭐 제 말은 여기까지예요.”
까득!
“앞으로 선 넘지 마세요.”
이기수가 손에 피어오른 전격을 꺼뜨렸다.
“하아…….”
‘C급을 상대로 지금 내가 뭘 하는 거지.’
이기수는 뭔가 상대를 힘으로 찍어누른 것 같아서 살짝 입맛이 썼다.
“근데 저건 도와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진하가 손가락으로 한쪽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문신한 사이클롭스 한 마리가 달려오고 있었다.
“사이클롭스 전사.”
A등급 몬스터.
같은 A등급 사이클롭스의 상위 몬스터로 8층에서나 출현하는 몬스터였다.
“여기서 기다려요.”
이기수는 주변에 몬스터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 사이클롭스를 향해 달려갔다.
“흠…… 잘 안 되네.”
진하는 이기수가 달려가는 모습을 보며 혀를 찼다.
한번 찔러 봤는데 반응이 격렬했다.
겨우 이 정도 말에 격렬하게 반응해서야 언제 각성할는지.
과거였다면 그래도 이미 신뢰가 쌓여 무슨 말을 하든 진지하게 받아들일 텐데 지금은 완전히 생판 남이라 그런지 경계부터 한다.
그렇다고 당장 그와 신뢰를 주고받을 방법도 없었다.
그 당시 이기수와 신뢰가 쌓였던 것은 어디까지나 게이트 폭주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같이 싸웠기 때문이었으니까.
파지지직!
저 멀리 사이클롭스 전사를 향해 전격의 창을 날리는 이기수가 보였다.
역시나 S급답게 몬스터를 압도하고 있었다.
“근데 사이클롭스가 나왔었던가?”
진하의 기억 속에 게이트 통합 공략에서 사이클롭스 전사가 나왔다는 기억은 없었다.
애초에 8층 몬스터가 7층에 나오는 게 말이 되는 상황이 아니었으니까.
“내가 기억을 못 하는 건가?”
게이트의 이상 현상은 이미 시작된 상태였다.
그렇다면 이런 일이 벌어졌다 해도 어찌 보면 당연한 거겠지.
“문제가 있을 리도 없고.”
아무리 이상 현상이 일어나도 이렇게 많은 헌터들이 모인 상태에서는 크게 문제가 있을 리 없었다.
쿠웅!
잠시 생각하는 사이 사이클롭스 전사가 땅바닥에 몸을 뉘었다.
“후우…… 자, 이제 다시 진행하죠.”
가볍게 몬스터를 압도한 이기수가 손에 묻은 피를 털어 내며 말했다.
“역시 S급…….”
“정신 팔지 말고 다시 한번 싸워 봅시다.”
“아, 나는 스킬 각성 언제 하냐.”
“넌 A급 상위부터 찍어야 하지 않을까?”
헌터들이 부산 떨며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김진하 씨, 참고되셨나요?”
“예…… 뭐…….”
몬스터를 상대로 화풀이한 뒤로 응어리가 좀 풀렸는지 아까 싸우러 갈 때와는 달리 한결 부드러워진 말투로 이기수가 물었다.
진하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다른 생각을 하느라 제대로 보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고개를 저을 순 없으니까.
“언젠가 김진하 씨도 스킬을 각성하면 이렇게 싸우실 수 있을 거예요.”
“말씀만이라도 감사해요.”
“아뇨, 이건 진심으로 하는 말이에요. 신체 강화 능력자들이 A급부터는 더욱 치고 나온다는 거 아시죠?”
“알죠.”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한 능력답게 A급으로 각성하긴 힘들지만, 그 무엇보다 성장 잠재력이 높은 게 이 능력이었다.
다른 능력자들의 능력 상승치가 신체 1, 능력 0.5 형태로 늘어난다고 가정하면 패시브 신체 강화의 성장 폭은 신체만 1.5였다.
그러니 각성해서 스킬이 생기면 더욱 포텐셜이 높아질 수밖에.
‘그 각성이 매우 어려워서 문제지만.’
그게 안 돼서 진하의 랭크는 과거 B급이었다.
이번 생은 좀 더 나아 A급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반대로 안 될 가능성 또한 높았다.
“뭐, 우선은 B가 우선이니까요. 그나저나 우리 7층 끝까지 나아가는 건가요?”
“아뇨, 7층 중간까지만 내려갈 겁니다. 끝까지 일직선으로 걷기만 해도 하루나 걸리는데 거기까진 갈 수 없죠.”
“대충 1박 2일 코스겠네요.”
몬스터를 잡으면서 갈 것을 생각하면 그 정도 걸릴 것 같았다.
오늘 중간 지점을 찍고, 내일 돌아가는 거겠지.
“네, 괜찮겠어요?”
이기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본인이 원해서 내려오긴 했지만 1박 2일 동안 뒤에서 지켜보는 건 꽤 지루한 일이었으니까.
“괜찮아요. 모르고 온 것도 아니고.”
“그럼 다행이고요.”
“그나저나 역시 삭막하네요.”
진하가 주변을 돌아보며 말했다.
푸르른 들판과 숲이 존재하는 곳, 하지만 마치 그림처럼 그 이외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기분 나쁜 곳이었다.
“그래도 이 정도면 나은 편이에요.”
이기수의 말에 진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 아래층은 내려갈수록 더욱 기분 나쁜 모습을 하고 있긴 했다.
“저기 사이클롭스 더 와요.”
진하가 저 멀리 보이는 몬스터를 손가락질했다.
“하아, 오늘따라 왜 이러지?”
이기수가 계속해서 나타나는 이상 현상에 얼굴을 찌푸렸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이기수는 그 말과 함께 바람처럼 사라졌다.
* * *
늦은 밤, 모든 공략을 마치고 모두가 잠든 시간.
진하는 잠을 자지 않고 불타는 모닥불을 보며 멍하니 시간을 보냈다.
“아직 안 주무세요?”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 돌아보니 이기수가 모닥불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그러는 헌터님은 안 주무세요?”
“저는 잠이 잘 안 와서요. 드실래요?”
“저야 고맙죠.”
이기수가 내민 믹스커피를 받은 진하가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달콤한 맛이 들어오며 멍한 정신이 조금은 맑아졌다.
“어때요. 할 만해요?”
이기수의 질문에 진하가 피식 웃었다.
“저야 지켜보는 것밖에 더 있나요. 고생은 이기수 씨가 다했죠.”
“저도 뭐 어려운 일을 하는 건 아닌걸요.”
이기수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렇게 말하긴 했지만 진하는 그게 쉬운 일이 아니란 걸 알았다.
아무리 A급 몬스터밖에 없다지만 잡는 것과 별개로 사람을 보호하는 건 피곤한 일이니까.
‘흠, 어떻게 각성을 시킨다.’
진하는 자신처럼 멍하니 모닥불을 바라보는 이기수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자신의 이야기를 잘만 듣는다면 각성이 어려운 일은 아닐 텐데 막상 하려니 그게 쉽지는 않았다.
‘다시 한번 이야기를 꺼내 볼까?’
마침 모두 잠든 시간이었다.
협회에서 제공한 아티팩트로 인해 몬스터의 기습을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어쩌면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기엔 이것보다 더 좋은 상황은 없을 듯했다.
진하는 혀로 입술을 적신 후 입을 열었다.
“저기…….”
“저기…….”
동시에 입을 연 진하와 이기수.
“먼저 말하세요.”
“아뇨, 먼저 말하세요.”
이기수가 양보하자 진하는 고개를 저으며 다시 양보했다.
자신의 이야기는 좀 더 늦게 해도 늦지 않는다.
우선은 이기수의 말을 들어 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진짜 괜찮으니까 먼저 말하세요.”
진하가 다시 한번 말하자 이기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저기 낮에 날카롭게 군 거 미안해요.”
“날카롭게요?”
“그 스킬 얘기할 때 있잖아요.”
“아…….”
어떤 말을 하는지 이해했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진하는 웃음을 터뜨렸다.
“왜, 왜 웃으세요?”
“큼, 큼. 웃어서 죄송해요. 설마 그걸 말할 줄은 몰랐거든요.”
잊고 있었다. 자신의 동료가 소심하다는 걸.
확실히 과거가 됐든 현재가 됐든 이기수는 이기수였다.
만사가 귀찮은 듯 행동해도 사람들을 지키고 배려하는 소심한 자신의 친구였다.
“후우, 저도 미안해요. 너무 심하게 말했죠?”
진하의 말에 이기수는 고개를 저었다.
그 모습에 진하는 자신이 알던 이기수를 보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평소처럼 그를 놀려 볼까도 싶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그때와 같은 그런 사이가 아니었으니까.
“저도 다시 한번 사과할게요. 기분 나쁘게 하려는 의도는 아니었어요.”
“그럴 거라 생각했어요. 의도적으로 그런 말을 하려는 사람처럼 안 보였고 진지했으니까요.”
“다행이네요. 음…… 그런데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제가 한마디만 해도 될까요?”
“무슨 이야기죠?”
“스킬에 대한 이야기예요.”
진하의 말에 이기수의 인상이 미미하게 찡그려지는 게 느껴졌다.
“잠깐만요. 무슨 생각하는지 아는데 낮의 이야기 아니에요. 그저 SS급 능력자에게 들었던 말을 전달하려는 겁니다.
“SS급 능력자요?”
“네, 예전에 그에게 스킬에 관해 물어본 적이 있거든요.”
“으음…… 우리나라에 SS급 헌터가 방문한 적이 있었나요?”
당연히 방문한 적 없었다. 한 나라의 핵폭탄 같은 존재들인데 함부로 돌아다니면 당연히 모를 리 없었다.
애초에 진하가 하려는 이야기는 미래에 한국에 생겨난 SS급 헌터들에게 들은 이야기이기도 했으니까.
“그분의 말을 들려드리는 거예요. 그의 말이 모든 게 맞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도움은 될 거로 생각하거든요.”
“으음…… 뭔데요?”
“그건…….”
“그거 나도 듣고 싶은데?”
이기수의 뒤쪽에서 한 남자가 걸어 나왔다.
“아, 길드장.”
“이제는 길드장 아니다. 이름으로 불러라.”
“이름이 뭔데요?”
“……하준수다.”
그 말과 함께 하준수가 이기수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래서 네가 들었다는 스킬에 대한 이야기는 뭐지?”
“두 분 아는 사이세요?”
“아, 같이 던전을 공략한 적 있어요.”
진하가 이기수에게 간단히 설명한 뒤에 말을 이었다.
“잘됐네요. 길드장도 일단 들어 두면 도움 될 거예요.”
“하준수다.”
“아무튼요. 제 말은 요점부터 설명해 드릴게요. 여러분이 강해지려는 이유가 뭔가요?”
“이유?”
이기수와 하준수가 동시에 되물었다.
“네, 그분이 그랬어요. 스킬이란 사람의 신념과 같다고. 그래서 강해지려는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요.”
“으음…… 신념이라면 있다만?”
“저는 스킬 두 개를 가지고 있지만, 신념이 없는데요?”
둘의 말에 진하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언뜻 들으면 맞는 말이지만 틀린 말이었다.
길드장이 가진 신념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신념 수준은 아닐 게 분명했고, 이기수 같은 경우는 위급한 순간에 각성한 탓에 본인이 자각을 못 하고 있는 거였다.
“한 분씩 설명해 드릴게요. 우선 길드장.”
“하준수…… 아니다, 말해라.”
“제가 말하는 신념이란 인생에 있어서 평생 지키고 살 거라 맹세하는 그런 강한 거예요. 그리고 그 신념은 단순히 이거다가 아니라 목적성을 띠어야 해요.”
“목적성?”
“네, 지금 길드장은 스킬 얻으려고 그냥 능력을 혹사하기만 하죠? 그때 무슨 생각으로 싸우셨어요?”
“…….”
“아무 생각 없이 싸웠죠? 그러니까 안 생기는 거예요. 그리고 이기수 씨.”
“네.”
“이기수 씨는 신념을 찾아야 해요. 본인이 원래 가지고 있던 신념을요.”
“가지고 있던 신념이요?”
“네, 스킬이란 능력은 땅에서 솟아난 나무와 같아요. 그렇기에 모든 스킬은 그걸 관통하는 신념이 있어요.”
“관통하는 신념…….”
“그러니까 이기수 씨는 이미 스킬을 얻었던 두 상황에서 생각했던 자신의 신념을 찾고 그걸 바탕으로 또 다른 스킬을 개화해야 하죠.”
진하의 말에 둘이 상념에 빠졌다.
진하는 갑자기 너무 진지한 상황에 머리를 긁적였다.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그리고 당장 찾을 수…….”
그때 진하의 시선에 한 쌍의 붉은 눈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