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2
4층. B급 몬스터가 출현하기 시작하는 층이자, 아직 완전히 토벌하지 못한 장소의 시작점.
그렇기에 3층과는 달리 4층에 입장하는 헌터들은 모두 항시 긴장하는 것을 제1원칙이라 여긴다.
하지만 그런 원칙조차도 이벤트 중에는 예외였다.
“죽어라, 죽어!”
“이쪽은 내가 맡는다!”
A급과 S급 등 상위 헌터들의 보호 속에 하위 B급과 C급 헌터들이 달려오는 몬스터들을 거침없이 몰아세우고 있었다.
“여기 치료!”
“아드레날린 주사제 남는 사람!”
그리고 그들보다 바쁜 사람들이 치료사들이었다.
아무리 상위 헌터들이 하위 헌터들을 보호해 준다 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목숨의 보전뿐, 다치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미쳐 날뛰는 헌터들이 다쳐서 돌아올 때마다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치료사들이 그들을 치료해 줬다.
“아, 뼈가 부러졌네. 이봐, 뼈 관련 치료제 있는 사람 누구였지?”
“이쪽! 혈액 보충 능력 있으신 분!”
바쁘게 움직이는 치료사들에게서 한 발 떨어진 진하가 옆에 있는 하예진을 밀었다.
“할 일은 알지? 저 사람들을 치료하면 돼.”
“응, 근데 내가 생각한 거랑은 다르네.”
4층부터 매우 어려울 거라 예상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치료되자마자 불나방처럼 다시 몬스터에게 달려드는 헌터나 침착하게 다친 헌터를 치료하는 치료사들까지.
어떻게 보면 광기에 물든 모습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지. 이번 기회만큼 능력치를 올리기 쉬운 것도 없으니까.”
기본적으로 능력은 훈련보다 실전에서 더욱 잘 오른다.
특히, 목숨의 위협을 받는 상황만큼 잘 오르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목숨이 안전한 죽을 위기.
모순 같지만, 이번 이벤트만큼 강해지고, 능력치를 올리기 쉬운 경우는 없었다.
이건 치료사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평소에는 보기 힘든 상처들이 넘치는 상황, 그들에게 이번 이벤트는 최고의 이벤트였다.
“어서 가.”
진하가 주춤거리는 하예진을 밀었다.
이런 모습은 하예진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상황이겠지.
그녀는 아직 초보 헌터였다.
저번에 부패의 미로 던전을 겪었다 하더라도 아직은 우왕좌왕하기 쉬운 초보 헌터.
하지만 그렇기에 그녀에게 더욱 필요했다.
[힘들 땐 서로 돕자, 그리고 비밀은 없기다?]
그녀가 했던 말.
그녀의 말대로 모든 걸 혼자 해결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 또한 지금은 그를 돕지 못한다.
결국, 그를 돕기 위해선 그녀 또한 성장할 필요가 있었다.
“무엇보다 곧 일상이 될 테니까.”
게이트 1차 폭주가 일어나고 난 뒤에는 이런 상황이 애교로 보일 정도로 모든 게 심각해진다.
이렇게 미리 익숙해지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적어도 A급은 찍어야지.”
A급. 적어도 그의 계획을 따르려면 A급이 되어야 했다. 진하 자신이야 애초에 아티팩트를 이용하면 어느 정도 해결 가능했지만 하예진은 아니었다.
다만, 다행인 점은 이미 A급 조건인 스킬을 가지고 있으니 진하 자신처럼 벽에 가로막힐 일은 없다는 거였다.
“문제는 저쪽인데 말이야.”
진하의 눈에 두 사람이 들어왔다.
한 명은 미친 듯이 싸우는 길드장이었고, 또 한 명은 멀리서 손가락으로 전격을 튕기며 사람들의 목숨을 구하고 있는 이기수였다.
“쯧, 저런다고 스킬이 얻어지는 건 아닌데.”
스킬을 얻겠다고 한 명은 미친 듯이 몸을 굴리고 한 명은 계속해서 고민만 하고 있었다.
저렇게 한쪽으로만 과한 수련이나 실전은 스킬을 얻기 어려웠다
[중요한 건 신념을 가지는 거야.]
예전에 만났던 SS급 능력자가 해줬던 말이었다.
스킬을 얻는 방법은 자신을 이해하고 새로운 신념을 가지는 것.
그게 지름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저 둘은 전혀 그러지 못하고 있었다.
우선 길드장, 리미트 브레이커는 몸을 부술수록 성장하는 능력은 맞았지만 그렇다고 저렇게 무턱대고 싸운다고 스킬을 얻을 수 없었다.
아마도 지금까지 그런 식으로 능력을 성장시켜 왔겠지만, 그의 예상대로라면 그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의 힘이 쓰일 방향성을 찾는 것이다.
그리고 이기수, 이미 스킬을 두 가지나 가지고 있는 S급 능력자, 저놈은 반대로 머릿속에 생각이 너무 많아 3번째 스킬을 얻지 못하고 있었다.
애초에 지금까지 얻은 스킬이 다 운이 좋아서 얻은 게 문제였다.
“길드장은 내가 건드릴 방법이 없고, 이기수는 어찌해야 하나.”
길드장은 도와줄 방법이 없었다.
애초에 리미트 브레이커가 A등급인 경우는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거기다 신념이란 건 누구에게 함부로 정해 줄 수 없는 거였다.
그렇기에 미래를 알고 있는 진하라 해도 도와줄 방법은 없었다.
반대로 이기수는 달랐다.
이미 스킬을 두 개나 얻어 S급인 상황, 결국 그에게 필요한 건 신념이 무엇인지 인지하게만 해 주면 되는 거였다.
‘그걸 과거에 내가 해 주긴 했는데 말이야.’
게이트 1차 폭주 당시 그를 각성시켜 준 건 진하였다.
그때야 그저 우연히 내뱉은 말이었지만 그로 인해 각성하게 된 이기수.
둘은 그 계기로 친구가 되었다.
‘바보 같은 놈.’
그리고 진하와 헌터들을 살리려다 죽은 친구이기도 했다.
그러니 적어도 그와 같은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선 그를 더욱 빠르게 각성시켜야 했다.
물론 지금 상태로는 이야기는커녕 다가가기도 어려웠다.
파직, 파지직.
손가락을 튕겨 가며 생각하는 그가 자신의 말을 길게 담아 들을 리 없을 테니까.
그렇기에 7층까지 내려갈 필요가 있었다.
유일한 약체가 되어야만 그의 보호를 받으며 얘기를 나눌 수 있으니까.
우득, 우드득.
“그럼 일단은 나도 사냥이나 할까.”
7층까지 내려갈 동안 가만히 놀 생각은 없었다.
이번 이벤트는 진하에게도 좋은 기회였으니까.
* * *
“자, 이제 7층이네요.”
3일에 걸쳐 층을 내려온 이기수가 뻐근한 목을 주무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제 남은 건 모두 상위 B급 헌터들.
‘아니, 그건 아닌가?’
이기수의 눈에 유일하게 빛나고 있는 노란색 완장이 보였다.
하위 B급 헌터들도 떠나간 상황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C급 헌터였다.
“빠질 생각 없어요? 다음 층부터는 모든 연락이 끊길 거야. C급치고도 많이 내려왔잖아요?”
아무리 중계기를 설치를 했다 해도 7층부터는 모든 연락이 끊긴다.
즉, 다음 층부터는 아무런 지원도 받을 수 없는 진짜 위험 지역이란 소리였다.
물론 저 C급 헌터의 능력치가 웬만한 B급 헌터들 뺨치는 능력치를 보여 주긴 했지만 그렇다 해도 다음 층에서는 별 소용이 없을 게 분명했다.
“빠질 생각 없습니다.”
이기수의 눈길을 받은 진하가 고개를 저었다.
다음 층부터는 진짜 위험 지역이라는 건 그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빠질 이유는 없었다.
“흠…… 알겠어요. 그럼 내려가죠.”
반대할 명분은 없었다.
7층까지는 헌터인 이상 누구나 내려갈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으니까.
“내 곁에 바싹 붙어 다녀요.”
이기수는 당부와 함께 계단을 내려갔다.
통로를 기준으로 그를 따라 7층을 내려가는 인원들과 다시 위로 올라가는 인원들로 나누어지기 시작했다.
당연히 층을 내려가는 진하는 재빠르게 이기수의 옆으로 붙었다.
그리고 그런 그를 바라보는 B급 헌터들의 뜨끈한 시선이 느껴지긴 했지만 진하는 그 시선들을 무시했다.
당장 이기수의 옆에 붙을 수 있다는 게 제일 중요하니까.
그렇게 모든 인원이 나뉘고 한참이 지나 계단을 내려가 통로의 끝에 다 와 가자 옆에 있던 이기수가 말했다.
“놀라지 마세요. 이론에서 배웠던 것보다 더한 곳이니까.”
“네.”
진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7층부터는 완전히 별세계라 봐도 좋았다.
이윽고 통로가 끝나고 환한 빛이 진하의 망막에 맺혔다.
어두웠던 6층과 달리 빛나는 7층, 그리고 저 멀리 떠 있는 구름과 해까지.
도저히 지하라고 볼 수 없는 풍경이었다.
“미친…….”
“이게 지하라고?”
“들판이라니…….”
처음으로 7층에 진입한 B급 헌터들은 처음 보는 환경에 저마다 감탄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진짜 말 그대로 별세계였으니까.
마치, 내려가는 게 아니라 다른 공간을 뚝 떼어 놓은 것처럼 7층은 완벽하게 숲과 들판을 형성하고 있었다.
“다들 정신 차려요. 액션캠 전원 켜고요.”
이기수가 말했다.
그의 말에 다들 정신을 차리며 몸에 달린 액션캠을 켜기 시작했다.
이후 이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모두 녹화되고 편집되어 던전 공략과 홍보용 영상으로 쓰일 테니까.
“자, 인원도 적어졌겠다 여기서부터는 팀을 나누죠?”
이기수가 주변에 있는 A급들에게 말했다.
이곳까지 내려온 B급들은 그리 숫자가 많지 않았다.
그냥 다 같이 지키는 것보단 팀을 나누는 게 더욱 효율적이었다.
“상위 A급 한 분, 하위 한 분씩 해서 B급 한 명씩 맡는 거로 해요.”
A급 헌터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숫자를 세 보니 대략 맞는 수치였으니까.
“이분은 저 혼자서 지킬게요.”
이기수가 진하의 어깨를 툭툭 두들기며 말했다.
이로써 모두 완벽히 배정이 마무리되자, A급 헌터들이 근처에 있는 사람들과 팀을 이루기 시작했다.
“자, 그럼 우리 둘만 남았는데 당연히 몬스터를 잡으실 건 아니죠?”
이곳은 A와 B등급 사이의 몬스터가 나오는 구간이었다.
C급 헌터인 김진하는 구경만 하는 게 옳았다.
“물론이죠. 저도 그냥 구경만 할 겁니다.”
애초에 진하에게 가장 큰 목적은 이기수와 같이 있는 거였으니까.
“그럼 잘 부탁드릴게요.”
“저도요.”
진하와 이기수가 서로 고개를 까딱였다.
그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완전하게 팀을 이룬 사람들이 대열을 이룬 채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 가죠?”
이기수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그의 말에 헌터들이 앞으로 나아가며 주변에 있는 몬스터들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지금 헌터님 수준에서는 동물형 몬스터 계열이 나으니까 그 계열이 나오면 한번 싸워 보세요.”
“헌터님이 지금 가장 고쳐야 할 점은 중간에 멈칫하는 겁니다.”
서로 멘티, 멘토가 되어 들판을 나아가는 사람들. 이기수는 그 모습을 보며 하품을 내쉬었다.
다른 사람들이 바쁜 것에 비해 그는 딱히 할 일이 없었다.
“저는 충고 같은 거 안 해 주시나요?”
진하의 물음에 이기수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충분히 잘 싸우시던데요? 움직임 자체는 흠잡을 곳이 없어요. 신체 능력만 부족해서 그렇지 B급 헌터 상위권이랑 비교해도 괜찮을 거예요.”
“A급과 비교하면요?”
“A급이라…… 아시잖아요. A급부터는 스킬에 따라 나뉘어서 단순 전투력으로 나누기 어렵다는 거요.”
“그렇긴 하죠. 부럽네요, 스킬을 가진 사람들이.”
“진하 씨는 정확히 능력이 뭐예요?”
“저는 패시브형 신체 강화요.”
“아…….”
진하의 말에 이기수가 말을 아꼈다.
패시브 신체 강화. 모든 능력자의 30%를 차지할 정도로 흔하고 평범한 능력.
그리고 스킬을 얻기도 매우 어려운 능력이었다.
“이기수 씨는 스킬이 두 개죠?”
“네, 두 개예요. 전격이랑 반사신경.”
“부럽네요. 그런데 둘 다 패시브 스킬이네요?”
“특이하죠? 근데 전 차라리 패시브인데 다행이라 생각되더라고요. 큰 한 방은 없어도 응용하는 폭이 넓거든요.”
“한 방도 다른 헌터들에 비해 밀리지 않는 것 같은걸요?”
“그거야 능력이 전류니까요. 같은 전기 계열 패시브 두 개를 얻어서 더 그렇게 느껴지시는 거예요.”
“그럼 응용 폭도 넓고, 한 방도 괜찮으신 거네요?”
“하하, 그렇죠.”
“근데 왜 그런 표정을 지어요?”
“예?”
진하의 말에 들판을 걷던 이기수의 걸음이 멈춰졌다.
진하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마저 말을 이었다.
“이미 S급에 스킬도 좋은 거로 두 개나 되시는데 뭘 고민하냐는 거예요.”
“많이 티 나요?”
이기수가 자신의 얼굴을 만지며 물어보았다.
고민을 밖으로 내보인 적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렇게나 티가 났던 걸까?
“그렇다기보단 제가 눈썰미가 좋은 거로 하죠.”
“진하 씨 말대로예요. 요즘 들어 고민이 많거든요.”
“스킬 고민이죠?”
“족집게네요. 맞아요. 세 번째 스킬을 얻을락 말락 하거든요. 느낌은 오는데 손에 잡히지는 않네요.”
이기수의 말에 진하가 물었다.
“지금도 충분히 강하잖아요?”
“더 강해져야죠. 더 강해질 기회가 있다면요. 그리고 전 충분히 강하지도 않고요.”
게이트 최심부인 10층에서 느꼈던 감정이 되살아났다.
뭐든지 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과 정반대였던 탐사.
힘이 부족하다고 느꼈던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저는 더 강해지고 싶어요.”
이기수가 주먹을 꽉 쥐며 말했다.
그의 말에 진하가 잠시 그를 빤히 바라봤다.
그리고 한 마디를 내뱉었다.
“왜 강해지려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