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가진 SS급 문방구-21화 (21/202)

#021

타악!

마지막 줄넘기 소리와 함께 진하가 그대로 주저앉았다.

띠링!

<격렬한 운동으로 능력이 향상되었습니다. 체력이 증가합니다.>

“허억, 허억!”

거칠게 숨을 내쉰 진하는 옆에 있던 물병을 벌컥, 벌컥 마셨다.

“크아! 죽겠다.”

한 번에 500ml 병을 모두 비운 그가 줄넘기에 표시된 숫자를 바라봤다.

<200>

드디어 백 번씩 두 번, 200개를 달성했다.

처음 목표로 삼았던 200개를 계획 당일이 돼서야 겨우 도달하다니…….

확실히 체력이 너무 약했다.

“후우, 그래도 많이 나아지긴 했지.”

숨을 고른 진하가 몸을 체크하며 생각했다.

20일 전 그녀가 했던 아티팩트에 의존하지 말라는 말.

그 말을 듣고 문방구를 다시 뒤져 보았다.

그리고 시야가 좁아 발견하지 못했던, 아니 의도적으로 무시했던 물건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대표적으로 이 줄넘기.

<온몸을 운동시키는 데 좋은 줄넘기. 생긴 것과 달리 한 바퀴 돌릴 때마다 미친 듯이 힘이 든다. X자 넘기, 2단 뛰기 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줄을 넘어 보자.>

이 줄넘기는 한 번을 돌리는 순간 체력이 미친 듯이 빠져나가는 아티팩트였다.

즉, 체력을 키우기 좋은 훈련 도구라는 거였다.

이것뿐만 아니었다. 악력기, 배드민턴 등등 생각보다 많은 도구가 문방구에 숨겨져 있었다.

‘살 수 있던 건 가판대에 있던 이 줄넘기 하나뿐이지만.’

그래도 이것 하나만으로도 많은 능력의 향상을 이루었다.

김이 나고 있는 진하의 육체가 그걸 증명했다.

체력뿐이지만 거의 B급 최하위 수준의 능력치를 단기간 안에 찍었다.

만약 다른 물품도 쓸 수 있다면 과거 찍었던 B급 최상위는 반년도 안 걸릴 것 같았다.

“뭐, A급은 또 다른 문제지만.”

그래도 최상급을 빠르게 찍어 놓으면 올라갈 기회가 더 많이 생기겠지.

삐빅, 삐빅.

그때 의자에 내려놨던 핸드폰에서 알람이 울렸다.

아침 7시 반을 뜻하는 알람.

그 알람 소리에 진하가 하던 스트레칭을 멈췄다.

“이제 준비해야겠네.”

핸드폰 알람을 끈 진하는 문방구로 들어가 작은 방에 연결된 작은 화장실에서 들어갔다.

탈탈탈탈.

순식간에 샤워를 마치고 나온 진하는 옷을 가볍게 입은 뒤 배낭 하나를 멘 채 밖으로 나왔다.

그러자 보이는 차 한 대.

“야, 타.”

창문을 내리고 건들거리며 말하는 하예진의 모습에 진하가 피식 웃었다.

“누나, 멋져!”

그녀의 말에 웃으며 호응한 진하가 차에 탔다.

부릉!

힘찬 소리와 함께 출발하는 차량.

진하는 게이트를 향해 나아가는 풍경을 바라보며 물었다.

“너도 신청했지?”

“당연한 거 아냐? 그때도 말했지만 나도 도울 수 있을 만큼은 도울 거야.”

“그래, 도와줘. 하지만 오늘 네가 할 일은 뭐다?”

“능력을 미친 듯이 올리는 거.”

“그래, 그거야.”

진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의 그녀는 아무리 좋게 봐 줘도 이제 C급 하위 수준.

능력이 아무리 좋아도 게이트 폭주 이후로 그 정도는 필요조차 없었다.

그래서 진하는 그녀에게 과제를 하나 내렸다.

‘이번 이벤트에서 랭크를 올릴 것.’

그게 그녀의 과제였다.

그녀의 능력의 경우 능력이 상승할 때마다 조금씩이지만 신체 능력도 자동으로 상승한다.

즉, 많이 치료할수록 능력과 신체 둘 다 자연스럽게 강해진다는 뜻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통합 게이트 공략은 그녀를 위한 것이었다.

싸우지 않고 빠르게 강해질 수 있으니까.

아무리 안전하게, 이벤트성으로 공략한다 해도 공략은 공략이었다.

3층이면 모를까 4층부터는 무조건 부상자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능력은 무엇일까?

답은 치료 능력이었다.

그렇기에 그녀에게 이번 이벤트야말로 쉽게 강해질 수 있는 최고의 상황.

여기서 랭크를 올리지 못한다면 앞으로도 기대하기 힘들었다.

“괜히 무리한다고 너무 아래까진 따라오진 말고.”

“알았어.”

진하의 당부에 운전하는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너는 7층까지 내려가는 거야?”

“응. 나는 거기까지 내려가야지.”

이번 이벤트의 최종 층수는 7층, 진하는 하예진과 다르게 무조건 그곳까지 내려가야 했다.

그래야 사람들이 줄고, 이기수를 만날 수 있을 테니까.

“근데 진짜 방법 있어? 아무리 네가 7층까지 내려가서 말을 붙일 수 있게 된다 해도 그 사람이 너의 편이 된다는 법은 없잖아.”

“있어. 그러니까 그건 걱정하지 마.”

“이번에는 위험한 거 아니지?”

“진짜로 아니야.”

혹여나 또 속는 건 아닐까 되묻는 하예진을 달랬다.

실제로 이번에는 그리 위험한 일은 없다.

그저 7층까지 따라붙어서 이기수에게 말을 붙이는 것, 그것 하나면 되는 상황이었다.

“도착이네.”

말을 나누다 보니 차가 어느새 게이트 근처까지 도착했다.

그리고 거의 도착한 게이트 앞은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내려, 나는 차 대고 올게.”

“오케이.”

하예진의 말에 진하가 차에서 내렸다.

부르릉.

차가 떠나고 혼자 남은 진하가 게이트 입구를 향해 걸어갔다.

곳곳에서 노점상들이 물건을 팔고 있었으며 헌터로 보이는 사람들 또한 눈에 보였다.

그리고 곳곳에 설치된 커다란 전광판에서는 한창 게이트 안에서 연설 중인 사람이 보였다.

-이번 게이트 공략을 통해 협회는 여러분의 안전을…….

뻔하디뻔한 연설.

진하는 전광판에서 고개를 돌렸다.

“진하 씨!”

그때 누군가가 그를 불렀다.

‘누구지?’

자신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을 텐데?

“정말 오랜만이에요!”

고개를 돌려보니 한 여자가 반갑게 인사하며 진하에게 다가왔다.

“아, 오랜만이네요. 재희 씨.”

던전을 같이 공략했던 재희였다.

그녀뿐만 아니라 그녀 뒤로 길드장과 부길드장 또한 서 있는 게 보였다.

“진하 씨도 이번 이벤트에 참가하는 거예요?”

“네, 그럼 그쪽도?”

“예! 우리도 이번에 참여할 거예요.”

진하가 그들을 바라봤다.

단순하게 3명으로 이루어진 팀. 다른 사람이 없다는 건 길드 단위가 아니라 개인 자격으로 참가했다는 뜻이었다.

“개인으로 참가하시나요? 길드로 참여하는 게 더 낫지 않아요?”

“아, 그게…….”

진하의 질문에 그녀가 우물쭈물했다.

“길드는 해체했다.”

우물쭈물하는 그녀 대신 뒤에 서 있던 길드장이 말했다.

“해체요?”

“그래, 사족오 길드를 해체하고 이렇게 3명이서 팀을 이룬 채로 활동하고 있다.”

“언제부터…….”

진하의 물음에 부길드장이 답했다.

“일주일 전부터 그랬어요.”

“아하…….”

대충 이유는 감이 왔다.

아마도 재정이 버티지 못해서 파산한 거겠지.

‘내가 일조한 것 같아 조금 찝찝하네.’

“네 탓이 아니다.”

진하의 생각을 읽은 건지 길드장이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맞아요. 진하 씨 덕분에 우리가 살았는걸요?”

“어차피 해체 직전이었답니다.”

그 뒤로 차례대로 말하는 재희와 부길드장.

진하는 그들의 배려 섞인 말에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진하 씨는 이렇게 천천히 가도 돼요? D급, C급이 제일 먼저 나설 텐데 지금 안 가면 이득 없잖아요?”

부길드장이 전광판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곳에선 어느새 연설을 마친 사람들이 게이트 안으로 들어갈 채비를 마치고 있었다.

“예, 저는 그게 목표가 아니라서요.”

일반인에게 할당된 구역은 3층까지. 보통은 D급과 C급이 상위 랭크의 비호하에 몬스터를 편하게 사냥한 뒤 몇몇 B급와 함께 보호 라인을 구축한다.

그리고 협회는 보호 라인을 구축한 헌터들에게 시간당 보상을 해 준다.

하지만 단순한 이득을 보러 온 게 아닌 최하위층을 내려가려는 진하로서는 괜히 지금부터 나서는 건 힘만 빼는 행위였다.

“여러분은 보호 라인 구축이신가요?”

“아뇨! 저희도 하위 층계 구경이요!”

재희가 대표로 대답했다.

“몇 층까지 가시게요?”

“음…… 길드장! 우리 몇 층까지 가요?”

“길드장 아니다. 나는 7층까지 갈 거다.”

길드장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A급 라인까지 내려가시네요.”

6층까지는 B급 라인이라 불렸다.

7층부터가 A급 라인, B급이 거기까지 따라간다는 건 대부분 단 하나를 뜻했다.

“A급에 도전하시려고요?”

헌터의 수준을 가르는 가장 극명한 벽, A급.

그 안에서는 하위와 상위 오로지 두 가지로만 나뉠 정도로 기존의 헌터와는 다른 세상이었다.

아마 길드장은 그런 A급에 도전하기 위해서 내려가려는 거일 터였다.

조금의 힌트라도 필요하니까.

“그러는 너는 몇 층까지 가지?”

“7층이요.”

“결국, 너도 같은 생각 아닌가?”

길드장의 말에 진하가 쓴웃음을 지었다.

과거 진하가 내려갔던 최하 층수는 12층.

A급과 S급들의 싸움은 질리도록 보았다.

A급이 될 수 있었다면 과거에 벌써 이뤘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결국 그의 랭크는 B급이었다.

“저는 글쎄요…….”

A급부터는 노력으로 갈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다.

천운도 따라야 했다.

물론 아주 포기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딱히 이번에 오를 거라고 기대하지도 않았다.

“아무튼, 세 분 모두 얻어 가는 게 있었으면 좋겠네요.”

“가시는 겁니까?”

부길드장의 질문에 진하가 한쪽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차를 주차하고 진하가 있는 쪽으로 다가오는 하예진이 있었다.

“일행이 도착해서요.”

* * *

삐익―!

“100M 앞 몬스터 전멸 확인! 헌터님들께서는 구축 선을 만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협회원의 말에 대기하고 있던 협회 직원들과 헌터들이 구축 선을 만들기 시작했다.

구축 선이 모두 만들어지자, 2층에 대기하고 있던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람들 사이에서 확성기를 든 협회원들이 소리쳤다.

“다시 한번 알려드립니다. 구축선 밖으로는 나가시면 안 됩니다. 이곳은 1, 2층과 다르게 아직 모든 몬스터가 박멸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면서 3층을 구경하기 바빴다.

“쯧, 좀 말 좀 듣지.”

그 모습을 바라보는 이기수가 혀를 찼다.

아무리 저층이라지만 저러다 사고라도 나면 어쩌려고 그러는지 이해가 안 됐다.

물론 현재 상주 중인 헌터들을 생각하면 대규모 웨이브가 일어나지 않는 이상 문제가 일어나진 않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협회에서 협조 요청이 들어와서 하긴 했지만, 그는 이런 이벤트가 절대 이해되지 않았다.

놀이동산도 아니고 게이트에 일반인을 들여놓는 게 말이 되는가?

“하하, 다들 오지 못하던 곳에 와 봤다는 신기함 때문에 그런 겁니다. 그래도 규칙은 다 잘 지키잖아요?”

옆에 있던 협회원이 사람들을 가리켰다.

확실히 그의 말대로 사람들은 헌터들이 만든 구축 선을 넘어가는 바보 같은 짓은 하지 않고 있었다.

“아, 모르겠고 빠르게 내려가죠? 그냥 제가 다 잡으면 안 돼요?”

“답답한 건 아는데 참아 주세요. 이기수 씨가 나서면 다른 랭크의 헌터들이 경험을 쌓을 기회를 놓치게 됩니다.”

“경험은 개뿔.”

높은 랭크의 보호 아래 싸우는 게 경험이라니, 그런 경험은 크게 쓸모없었다.

그렇게 해 봐야 올라설 수 있는 건 겨우 A급 최하급.

실제로 자신뿐만 아니라 A급 중위 이상부터는 다들 별로 기분이 좋지 않았다.

협회의 부탁이라 어쩔 수 없이 들어주고 있는 것뿐이지.

“하아, 이럴 시간에 수련이나 해야 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뭐 하는 건지 모르겠다.

“4층 공략대 출발하겠습니다.”

저 멀리서 4층 공략대가 출발하는 모습이 보였다.

공략대 대부분이 B급을 뜻하는 파란색 완장을 차고 있었다.

“머저리들.”

C급은 거의 보이지 않는 공략대.

이래서는 어설픈 경험도 의미가 없었다.

떠먹여 주려 해도 먹을 놈이 없는데 어떻게 하란 말인가?

당장 저 공략대도 7층으로 내려갈 땐 B급이 얼마나 내려갈지 뻔히 보였다.

“그래도 몇몇은 생각이 있네.”

그의 눈에 노란색 완장을 찬 C급 헌터들 몇몇이 보였다.

그나마 나은 사람들, 앞으로 정진할 마음이 있는 헌터들이었다.

“근데 너무 긴장했어.”

4층은 처음이라 매우 긴장하는 게 눈에 보였다.

저래서 4층에서 조금이라도 배울 수나 있을는지…….

“오호?”

그때 그의 눈에 노란색 완장을 찬 한 쌍의 남녀가 보였다.

다른 C급들과 달리 긴장하지 않은 한 쌍, 아니 정확히는 긴장하지 않은 남자가 여자를 다독이고 있었다.

“저 사람은 가능성 있네.”

랭크가 오르려면 저 사람처럼 배짱과 도전정신이 있어야 하는 법이었다.

한편 이기수의 시선을 받은 한 쌍의 남녀, 진하는 긴장하는 하예진을 달래고 있었다.

“긴장하지 마. 네가 싸우는 거 아냐. 네가 할 일은 뭐다?”

“치료!”

“그래, 치료만 생각하면 돼. 알겠지?”

“응!”

“그럼 가자.”

진하는 하예진의 손을 붙잡은 채 먼저 출발한 공략대를 따라 4층으로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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