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0
짜악!
찰진 소리가 등짝에 울려 퍼졌다.
“다 됐어.”
하예진이 치료에 쓰인 붕대를 치우며 말했다.
“쓰읍, 조금 친절하게 치료해 주면 안 되냐?”
찌릿.
진하의 말에 하예진이 그를 노려봤다.
하지만 진하는 그녀의 시선을 무시하며 말을 이어 갔다.
“근데 완전히 치료는 안 된 것 같다?”
뭔가 어설프게 된 느낌이었다.
움직일 순 있지만 딱 움직이는 것만 가능한 정도였다.
잘못 움직이면 상처가 터질 것 같은 느낌?
“그거 일부러 그랬어.”
“어? 왜?”
진하의 물음에 하예진이 더욱 강하게 그를 노려봤다.
“정말 몰라서 그래?”
“하하, 다친 건 어쩔 수 없었던 거야. 내가 미안하다니까?”
“후우…… 그럼 이번에는 왜 다친 건데?”
“…….”
진하가 입을 다물었다.
굳이 그녀가 알 필요 없는 정보였다.
“후우…….”
하예진이 한숨을 쉬었다.
“나가.”
“어?”
“나가라고.”
“에이, 친구끼리 왜 그러냐. 응?”
“친구? 친구라고?”
“어? 그치 친구지.”
뭔가 잘못된 느낌이 들었다.
진하가 몸을 똑바로 했다.
그러자마자 터져 나오는 그녀의 목소리.
“야이, XXX야! 진짜 XX해서 XX으로 줘 버릴 놈아!”
어우, 그건 좀…….
“친구우? 친구 좋아하시네. 내가 네 전용 힐러냐!”
“아니, 그게 아니란 거 알잖아.”
“그걸 아는 놈이 맨날 다치고 돌아와서 뭐? 치료해 줘? 치료오?”
“아니…….”
“X발! 치료라도 받을 거면 왜 다쳤는지 말이라도 하든가!”
“…….”
진하는 가만히 입을 다물었다.
지금 이 상태로는 뭘 말해도 소용없을 것 같았다.
“그래, 사람마다 사생활이라는 게 있으니까, 비밀? 그런 거 있을 수 있어. 근데 그거 기억 안 나?”
‘그거? 그게 뭐지?’
진하가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하지만 하예진이 뭘 말하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네가 나한테 헌터 입학할 때 했던 말 진짜 기억 안 나?”
“응…….”
기억날 리 없었다.
무려 4년이 넘었다. 아니, 교육 시작까지 생각하면 근 5년이었다.
그녀로서는 기껏해야 반년이 좀 넘은 거겠지만 진하 입장에선 까마득한 기억이었다.
회귀하기 전에도 그녀에 대한 기억은 일부러 묻어 두기까지 했는데 그게 기억날 리 없지 않은가.
“에라이 뒤져라, 이XX야!”
“자, 잠깐만! 힌트 좀!”
진하가 손을 모아 빌자 그녀가 한심한 듯 그를 보며 말했다.
“헌터, 공유, 약속.”
단어를 하나씩, 하나씩 씹어 먹듯 내뱉는 그녀.
그녀의 말에 진하는 기억 저 멀리 묻어 두었던 어떠한 말 하나를 기억해 냈다.
[우리 같이 힘내서 헌터 되고, 힘들 땐 항상 돕자. 그리고 우리 사이에 비밀은 없기다?]
자신이 했던 말이었다.
서로 같이 부모를 잃고 같이 크면서 또, 같이 각성하게 되어 헌터 교육생이 된 첫날.
어떠한 일이 있어도 서로만은 믿고 의지하자는 뜻에서 하예진에게 진하가 했던 말.
“이제 기억났어?”
진하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런 약속을 했지만 솔직히 다 말할 거라고 기대는 1도 안 했어.”
“응.”
“그래도 다쳐서 온 뒤에 입 다무는 건 너무하지 않아?”
“미안해, 근데 조금 위험한 일이라.”
진하의 말에 하예진이 한숨을 내쉬었다.
“너, 내가 갔던 던전에 왜 왔어.”
“네가 위험해서…….”
“거기서 너 얼마나 다쳤어.”
오른팔 절단, 왼손 절단, 온몸에 자상과 열상 등등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다쳤다.
“너, 네가 혼자서 보스를 상대하러 간다 했을 때 내가 어떤 기분이었는지 알아?”
알았다. 모를 리 없었다.
진하를 따로 불러내서 화내고 매달리고 하며 말리던 게 하예진이었다.
“내가 그런데도 그때 널 보낸 건 널 믿어서야.”
“알아.”
“내가 아는 너는 적어도 허튼소리는 하지 않으니까. 적어도 목숨을 헛되이 버리는 놈은 아니니까.”
“미안해.”
“근데 넌 날 못 믿어? 내가 위험해질까 봐? 그게 얼마나 나를 무시하는 말인 줄 알아!”
그녀의 호흡이 거칠어지는 게 느껴졌다.
진하는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다 맞는 말이었으니까.
“미안해.”
진하가 다시 한번 사과했다.
“그럼 약속해.”
“어떤 걸?”
“숨기지 않기. 못 말하는 건 있어도 절대 안 말하는 건 없기.”
손가락을 내미는 하예진.
진하는 그녀의 손가락을 빤히 바라보았다.
‘끌어들여도 되는 걸까?’
진하조차 버거워하는 일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하예진을 끌어들이는 건 어쩌면 잘못된 선택일 수도 있었다.
진하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덥썩!
하예진이 진하의 손을 붙잡았다.
그리고 억지로 진하의 손가락을 펼쳐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넌 너무 고민이 많아! 이걸로 약속한 거다.”
피식.
그녀의 모습에 웃음이 났다.
‘그래, 네가 아니면 누굴 믿겠어.’
자신은 주인공이 아니라고, 만반의 준비를 하고 같이 해결해야 한다고 이미 한 번 결론 냈는데 또 고민하는 것도 우스웠다.
결국, 언젠가 동료를 만들어야 한다면 가장 믿을 수 있는 그녀를 뺄 순 없으니까.
“정말 괜찮아? 죽을 수도 있어.”
“그건 헌터 일 하면서 내려놓은 지 오래야.”
당차게 말하는 그녀.
진하는 그녀를 도저히 이길 수 없음을 느꼈다.
“후우…… 그럼 내가 말해 줄 수 있는 최대한을 말해 줄게.”
진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미 알고 있는 아티팩트와 게이트에 대한 것부터 현재의 계획까지 천천히 그녀에게 풀어놓았다.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지나 모든 설명이 끝나자 하예진이 진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왜 그렇게 물끄러미 봐?”
“하나만 물어볼게. 그러니까 비리 장부를 찾으러 비밀 장소에 갔다고?”
“응.”
“거기서 비밀 장부를 가지고 나오다가 칼침 맞은 거고?”
“응.”
“그리고 그건 이미 예상하고 한 일이고?”
“응.”
어차피 혼자 가지고 있어 봤자 쓸 수 있는 폭이 제한된 물품이었다.
감시하던 인원에게 넘기든가, 뺏으려 하면 넘기려고 했었다.
물론 거의 죽일 듯이 습격하는 것까지는 예상하지 못했지만.
따악!
하예진이 진하에게 꿀밤을 먹였다.
“미쳤어?!”
“아, 왜!”
진하가 머리를 부여잡으며 물었다.
“네가 뭐라고 그 위험한 곳에 혼자 가!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야?”
“아니, 예상하고 갔다니까?”
따악!
“악!”
“예상한 놈이 칼침 맞고 돌아오냐? 이거 지금 보니까 아주 정신이 나갔네?”
“아니! 이게 가장 효율적이잖아!”
따악!
“효율? 어, 그래. 너 오늘 한 번 효율적으로 맞아 보자.”
“아악! 그만 좀 때려, 상처 터진다!”
하예진이 한숨을 내쉬며 손을 내렸다.
“하아…… 진짜 어디서부터 얘기해야 할지 감이 안 잡히네.”
“뭘 말해?”
“네 정신머리요.”
“??”
하예진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래, 네가 행한 이유는 이해하겠어. 근데 그걸 꼭 해야 했던 거야? 처음에는 그런 계획 안 했다며.”
“하지만 할 수 있는 방법이 생겼으니까?”
“그걸 너 혼자서?”
“그럼 누구랑 해? 당장 급한 상황이었는데.”
“성치 않은 몸으로?”
“그래서 안 싸우고 잠입했잖아.”
“그래서 네 몸은?”
“…….”
따악!
“이 미친놈아. 진짜 죽으려고 환장했어?”
“아니, 또 뭐가 문제인데.”
“보통 사람은 다친 상황에서 꼭 해야 하는 일이 아니면 그런 거 안 하거든?”
“아니…….”
“셧, 업! 그리고 너 안 그래도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네 몸 안 챙겨?”
“나?”
“어, 너 심각하게 네 몸을 생각 안 해. 목적을 이루면 죽어도 상관없다는 느낌이야.”
하예진의 말에 진하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내가 그랬나?’
그저 효율적으로 움직일 뿐이었다.
꼭 필요한 일이었으니까.
“필요한 일이었어.”
“대신 네 한계치 이상으로 무리도 했고.”
“어쩔 수 없잖아?”
“그럼 훈련이라도 똑바로 하든가.”
“훈련?”
“너 까놓고 수료 이후에 제대로 수련한 적 없지?”
“아마도?”
기억을 더듬어 보니 요즘 통 수련을 안 하긴 했다.
바쁘기도 했지만, 그것보단 문방구 제한을 푸는 방법과 아티팩트 활용법에 대해서 더 고민했다.
“아티팩트를 이용하는 건 좋은데 훈련도 좀 해. 교육 때 기억 안 나? 결국, 믿을 건 자신의 능력뿐이다.”
“기억은 하지. 근데 이미 빠르게 오르고 있잖아.”
그의 기억이 맞다면 회귀 전 이맘때보다 지금이 더 능력치가 많이 오른 상태였다.
그리고 애초에 그의 한계는 B급이었다.
하예진도 진하의 생각을 아는지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빠르게 오르는 건 나도 알아. 내가 말하는 건 네 태도를 말하는 거야.”
“태도?”
“내가 아는 김진하는 이러지 않았어. 한계가 있다고 좌절하지 않아.”
“무슨 소리야?”
“안 되면 될 때까지 한다, 그런 게 너 아니었어?”
곰곰이 생각해 보니 확실히 그랬긴 했다.
과거에는 아무것도 모르고 열심히 노력했다. 하지만 현실을 깨닫고 변했을 뿐이다.
“바꾸고 싶다며. 협회랑 길드 썩어 버린 것들.”
진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왜 바꾸려는지 물어보진 않을게. 근데 바꾼다는 놈이 왜 이렇게 비관적이야?”
“비관적이라고?”
“그래, 이루기 힘든 걸 하겠다며 이상적이고 그걸 하는 건 좋아. 그런데 왜 정작 너 스스로한테는 한계를 긋냐는 거야.”
그게 효율적이기 때문에.
진하는 그리 생각했다.
애매하게 오르는 한계가 정해진 능력보다 당장 일을 해결하기 좋은 아티팩트가 더 효율적이고 효과적이었다.
“나중에 아티팩트 못 쓰게 되면 어떻게 하려고?”
“어?”
“생각 안 해 봤지? 문방구 네 거 아니잖아. 나중에 어떻게 할 거냐고.
“글쎄?”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가정이었다.
할머니가 돌아온다는 시기면 이미 게이트 2차 폭주까지 막은 뒤일 테니까.
멀기도 했고 그 이후도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그때가 되면 너만의 힘으로 싸워야 할 거 아니야. 그리고 아티팩트가 무한해? 아니잖아.”
“그건 그렇지.”
가판대도 이번 던전으로 인해 꽤 많이 비워진 상황이었다.
“내가 무슨 말 하는지 알겠지?”
“응.”
“도구는 어디까지나 도구다. 우리가 헌터 교육 첫날에 배운 거야.”
“그렇지.”
하예진의 말에 진하가 진지하게 고민했다.
예상치도 못한 곳에서 한 방 먹어 버렸다.
설마 베테랑이라고 자부하는 자신이 초짜에게 한 방 먹을 줄이야.
그녀의 말은 틀린 말이 하나 없었다.
물건에 의존해서도 안 되고 결국 그걸 사용하는 건 헌터였다.
베이스가 없으면 아무리 좋은 도구도 의미 없었다.
당장 이번에 습격받은 것만 해도 이 말의 증명이 되는 사례였으니까.
“고맙다.”
“알면 됐어. 내가 할 말은 그게 다야.”
“덕분에 정신이 좀 든다.”
“그나저나 그럼 이제 뭘 할 거야?”
하예진이 물었다.
“당연히 다음 계획을 실행해야지.”
“그러니까 그게 뭔데?”
“통합 게이트 공략.”
“통합 게이트 공략?”
“응, 거기에 참가해야 해.”
“하지만 그거 4주도 안 남았잖아. 네 몸 상태로는 못 나가.”
진하가 하예진을 빤히 바라보았다.
당연히 이 상태로는 못 나갔다.
애초에 다친 상태에서 다시 다쳤으니까.
하지만 누군가 계속해서 있는 힘을 다해 치료해 준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아냐, 난 못 해. 절대 못 해.”
눈치를 챈 하예진이 질색하는 표정을 지었다.
“뭐든지 한다며, 돕는다며.”
“아니, 그렇게 말하긴 했지만 온종일 치료하는 게 쉽냐!”
“그럼 돈 내고 부작용 있는 치료 받아? 수명 줄어도 돼?”
“으윽, 그건…….”
하예진이 궁지에 몰린 표정을 지었다.
“좀 도와줘라. 거기에서 그 녀석을 만나야 한단 말이야.”
“그 녀석?”
“응, 그 녀석.”
진하의 최고 뒷배이자 멍청한 놈.
“그게 누군데?”
하예진이 물었다.
“이기수.”
“이기수? 내가 아는 그 이기수?”
“응, 그 사람.”
현시점 대한민국 유일한 S급 헌터 이기수를 만나야 했다.
그가 진하가 세운 계획의 키카드이니까.
* * *
4주 후.
탁, 탁, 탁, 탁.
규칙적인 소리가 문방구 앞에서 울려 퍼졌다.
“후욱, 후욱”
그리고 그에 호응하듯 들리는 거친 숨소리.
줄넘기를 하는 진하는 턱 끝까지 차오르는 숨을 억누르며 계속해서 줄넘기를 돌렸다.
‘10개만 더!’
탁, 탁, 탁
한 번 넘을 때마다 힘이 급속도로 빠졌다.
이미 숨이 거친 건 물론 체력까지 바닥이었다.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는 게 포기하고 싶었다.
하지만 진하는 이를 악물고 줄넘기를 돌렸다.
“97, 98, 99, 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