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가진 SS급 문방구-18화 (18/202)

#018

이대로 넘어가도 되겠지만 작은 경고 정도는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야 달려들더라도 적어도 한두 번 머뭇거릴 테니까.

“그나저나 따님이 참 야무지더군요.”

“무슨 말이신지? 저는 아들밖에 없습니다.”

“그래요? 아, 제가 착각했나 보네요. 아는 지인이랑 헷갈렸어요. 이해하시죠?”

“그럼요, 누구나 실수는 할 수 있죠.”

태연하게 답하는 이도현. 하지만 진하의 눈에는 그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떨리는 게 보였다.

혼외자식인 딸, 아무도 몰랐다고 생각하겠지만 적어도 자신은 알았다.

치명적인 약점은 아니지만 그래도 머릿속이 복잡하겠지.

“제가요, 약간 신기가 있나 봐요.”

“네?”

갑작스러운 진하의 말에 이도현이 당황하며 되물었다.

“그냥 가끔 이상한 꿈을 꾼다고 해야 할까요? 그런데 그 일들이 실제로 일어나더라고요.”+

“김진하 씨의 능력은 신체 강화이신 게…….”

“아뇨, 능력 말고 신기요. 불가사의한 일 말이에요.”

“예?”

“거기서 이사님을 봤거든요. 혹시 제가 거기서 뭘 봤는지 궁금하지 않으세요?”

씨익.

진하가 미소를 지어 주었다.

이것으로 더욱 머리가 복잡해졌을 거다.

이게 뻥인 건지 아님 진짜 미래 예지가 있는 건지, 그것도 아니면 다른 세력으로서의 경고인지 잘 모르겠지.

그래서 더욱 복잡할 거고 어느 쪽으로도 확신할 수 없을 거다.

왜냐하면, 어느 쪽도 자신을 설명할 순 없으니까.

그 어떤 것도 아티팩트와 미래에 대한 정보까지 설명해 주진 않거든.

그리고 아무리 비약을 한다 해도 과연 그가 회귀했다고 생각할까?

아니, 생각해도 상관없었다.

신과 같은 존재에 의해 회귀라는 정보에 잠금이 되어 있는 한 절대 생각할 수 없을 게 분명했다.

“농담이에요. 제가 그런 능력이 어딨겠어요.”

진하의 말에 이도현이 어색하게 웃었다.

“하하하, 참 농담도 진담같이 하시는군요.”

“분위기가 너무 무거워지는 것 같아서 한번 해 봤죠.”

“그렇군요.”

“근데 저는 여기 계속 있어야 하는 건가요?”

“…… 글쎄요.”

“저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서요.”

“일단 귀가 조치하는 걸로 하겠습니다. 제가 사람을 불러드리죠.”

이도현 이사는 그 말을 끝으로 방을 나갔다.

얘기하는 내내 웃는 모습이었지만 아마 속에서는 열불이 날 게 분명했다.

함부로 건들기 꺼림칙하니까.

‘자, 그럼 이제 돌아가야지.’

원하던 상황은 만들어졌다.

그의 정체에 대해 의심할수록 함부로 덤벼들지 못할 것이다.

심지어 그 상황에서 서로 눈치 싸움까지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더욱 망설이겠지.

물론 결국 누군가는 움직이겠지만, 상관없었다.

잠깐의 시간이 지나면 함부로 자신을 건드리지 못할 테니까.

“가시죠. 바로 귀가하시면 됩니다.”

방으로 들어온 협회 직원 한 명이 나와 진하를 안내했다. 진하는 여유로운 마음으로 그를 따라 이동했다.

지금까지 계획대로 모든 게 완벽했다. 다음 계획도 착착 쌓여 있었다.

“ㄴㄹ……ㄴㄹ.ㄴ……ㄹㄷ.”

그때, 직원의 안내를 받아 층을 내려가는 진하의 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이거 많이 들어 본 목소리인데?

“잠시만요.”

진하는 직원을 멈춰 세운 뒤, 목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다가갔다.

누군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정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진하는 조심스럽게 문에 난 창문 사이로 방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곳에서는 한창 헌터 교육을 하고 있는 건지 수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한 명 한 명 집중하는 학생들, 그리고 그들을 가르치는 선생.

‘어쩐지 익숙한 목소리더라.’

진하는 선생의 얼굴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설마 이곳에 미래의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한 명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선생, 송준하.

협회의 말단 직원에서 시작해 게이트 폭주를 계기로 협회장까지 오른 인물.

“하, 여기 있었단 말이지.”

협회의 말단 직원이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설마 예비 헌터들을 가르치는 선생을 하고 있을 줄이야…….

진작 알았으면 회귀하자마자 협회 선생 명단부터 찾아서 그와 만났을 텐데.

“이렇게라도 알게 된 게 다행인가.”

그와 만나는 건 포기했던 부분이었다. 거대한 협회에서 이름과 얼굴만 아는 사람을 찾는 건 힘들었으니까. 무엇보다 그럴 시간도 없었기도 했다.

“자, 요약하자면 마석은 현재 전기 생산 외에는 사용처가 불분명한 물품입니다. 물론 고위 등급의 마석이 원전을 대신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무공해 친환경 에너지이기는 하지만 헌터들이 목숨을 걸고 얻는 것에 비해 쓸모가 있다고는 할 수 없지요. 오늘 진도는 여기까지로 하고 다음 시간에는 등급에 따른 대표적 몬스터와 그 부산물, 그리고 용도에 대해 진도를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혹시 질문 있는 분? 수업과 관련 없는 것이더라도 상관없습니다.”

문 너머로 송준하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무래도 수업이 거의 끝난 듯했다.

이대로 그냥 지나칠 순 없고, 작은 연이라도 만들어야 하는데…….

“저요, 질문 있어요.”

유리창 너머 수업을 듣던 사람 중 한 명이 손을 드는 게 보였다.

여고생으로 보이는 나이. 헌터 지망생치고 이른 나이였다.

“뭔가요?”

“이번 뉴스에 뜬 C급 던전이 궁금합니다. 최초의 쌍둥이 보스라는데 다른 보스와 차이점이 뭔가요?”

그녀의 말에 다른 사람들 또한 내색하진 않았지만 궁금해하는 눈치였다.

“하하, 글쎄요. 저도 그건 모르겠네요. 아직 협회에서 나온 말이 없거든요.”

‘기회다.’

진하는 속으로 환호성을 내질렀다.

그리고 속으로 여고생을 매우 칭찬해 줬다.

아직은 그와 사족오 길드밖에 모르는 정보였기 때문이다.

아니, 협회도 알긴 하려나?

“에이…… 뭐야, 협회 직원인데 아는 게 하나도 없네…….”

나이스 타이밍으로 터지는 여고생의 혼잣말.

진하는 식은땀을 흘리는 송준하를 보며 싸가지 없는 여고생의 인성을 칭찬하고 또 칭찬했다.

‘여기서 내가 들어가면 되겠지?’

똑똑.

진하가 조심스레 노크했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협회 직원이 놀라 진하를 바라봤다.

‘뭐 어쩌라고?’

진하는 협회 직원을 무시한 채 문을 조심스레 열었다.

문이 열리자 수업을 듣던 모든 이들의 시선이 쏠렸다.

“실례합니다.”

“누구시죠?”

고개를 갸웃하는 송하준.

“아, 저는…….”

“로봇 헌터다!”

진하의 말을 자르며 외치는 싸가지 없는 여자 교육생.

로봇 헌터라니, 저 싸가지가.

진하는 어색하게 미소 지으며 말을 이어 갔다.

“흠, 흠. 로봇 헌터는 아니고, 쌍둥이 보스를 공략했던 사람 중 한 명입니다.”

“아, 예.”

“지나가다가 던전 이야기를 하는 게 들려서요.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제가 조금 설명해 드려도 될까요?”

“아, 물론이죠!”

송준하가 반색하며 말했다.

기뻐하는 모습을 보아하니 아마도 송준하도 많이 궁금해하던 정보인가?

그나저나 이렇게 시선이 몰리니 뻘쭘하긴 하네.

진하가 머리를 긁적이며 교탁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그럼 부탁드릴게요.”

진하가 교탁 앞까지 오자 송준하가 옆으로 물러나며 말했다.

진하는 고개를 끄덕인 뒤 교탁에 섰다.

“우선 갑작스럽게 수업에 참여하게 돼서 죄송합니다. 헌터 김진하라고 합니다.”

“아니에요!”

“괜찮습니다.”

진하의 말을 부정하며 미소 짓는 사람들.

진하는 그 모습에 미소 지으며 말을 이어 갔다.

“자, 그럼 궁금한 게 쌍둥이 보스에 대한 정보겠죠?”

“네!”

“어차피 협회에서 풀 내용이지만 제가 조금 더 빠르게 알려드리도록 할게요. 사실 쌍둥이 보스란 건 그냥 보스를 둘로 나눈 거라 생각하면 돼요.”

진하가 칠판에 커다란 원을 그린 후 그것을 반으로 잘랐다.

“보스가 가져야 할 강력함을 두 개로 나눈 것뿐이죠. 그 덕에 처음에는 버프도 없다시피 하죠.”

“그럼 좋은 거 아닌가요?”

누군가의 질문에 진하가 고개를 저었다.

“이것만 보면 좋은 게 맞습니다. 하지만 쌍둥이로 나눈 만큼 그걸 상쇄하는 극악의 장점이 있어요.”

“그게 뭔가요?”

가장 앞에 있던 교육생이 물었다.

“쌍둥이 보스는 링크라는, 서로를 보완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는 게 특징이지요.”+

“링크요?”

송준하가 물었다.

그뿐만 아니라 교실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머리에 물음표가 떴다.

아차, 이건 미래에 정해진 호칭이었지.

“링크란 건 제가 그냥 임의로 붙인 거예요. 아까 각 개체가 서로를 보완한다고 했죠?”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 진하는 원을 가른 선에 ‘=’ 기호를 적은 후 위로 향하는 화살표를 그렸다.

“쌍둥이 타입은 서로 돕는다는 점에서 보완이기도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강해진다는 특성이 있습니다. 즉, 길게 싸울수록 더욱 잡기 힘들어지죠.”

“아! 그럼 빠른 시간 안에 둘 다 잡아야 하나요?”

“아뇨, 가장 좋은 공략 방법은 한쪽을 빠르게 잡는 거예요. 한쪽만 잡아도 이 링크는 끊어지거든요.”

“근데 헌터님은 그걸 어떻게 아세요?”

“맞아요! 그리고 그 로봇 아티팩트는 뭔가요?”

누군가의 말을 시작으로 질문들이 터지기 시작했다.

단순히 던전뿐만 아니라 진하의 아티팩트에 대한 이야기까지, 뉴스를 보며 들었던 의문점들을 마구 쏟아 냈다.

탕탕.

가볍게 교탁을 쳐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진하가 말했다.

“자, 질문에 대답해 드릴게요. 그러니까 잠시 조용히 해 주시겠어요?”

그의 말에 교실이 급속도로 조용해졌다.

같이 듣던 협회 직원과 송준하도 침을 삼키며 진하에게 집중했다.

그 모습에 속으로 웃으며 진하가 말했다.

“모든 걸 알리지 마세요. 헌터라는 직종은 알려질수록 그만큼 목숨을 내놓는 직종입니다. 알겠죠?”

한마디로 말해 줄 수 없다는 소리.

그 소리를 알아들은 교육생들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자자! 오늘 교육은 이것으로 마치도록 할게요.”

송준하가 다급히 수업을 종료시켰다.

안 그러면 수업이 끝나지 않을 기세였으니까.

송준하의 말에도 수업을 듣는 사람들은 쉽사리 엉덩이를 떼지 못했다.

하지만 뒤에 있던 협회 직원이 눈총을 주자 하나, 둘 결국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게 모든 학생들이 나가고…….

“저기…… 감사합니다. 이렇게 귀한 정보를 시간 내셔서 알려 주셔서요.”

송준하가 고개를 숙여 감사함을 표했다.

나중에 알려진다고 해도 귀한 정보였다.

협회가 정리해서 알려 주긴 하겠지만 그것도 아무리 빨라야 1달 뒤. 정보가 곧 목숨인 헌터의 세계에서 이 1달은 매우 귀중한 정보였다.

비록 그게 아직 확실하지 않은 정보라 할지라도.

“아닙니다. 어차피 이건 모두가 알게 될 정보였어요.”

“그래도…….”

“정말 괜찮습니다. 일어나세요.”

진하가 단호히 대답하며 송준하를 일으켜 세웠다.

이 정도 정보로 이렇게까지 감사를 받을 정도는 아니었다.

지나치게 감사해하는 송준하.

역시 그 능력에 그 사람이었다.

“그나저나…… 성함을 여쭤봐도 될까요?”

“아! 저는 송준하라고 합니다. 협회에서 교육생들의 강의를 맡고 있어요.”

송준하가 아차 하는 표정으로 이름을 말해 주었다.

진하는 속으로 미소 지으며 말했다.

“아, 저도 교육받은 지 얼마 안 됐는데 그때가 생각나네요. 진짜 헌터 교육을 해 주시는 강사님들은 대단한 것 같아요. 헌터 일에 강의까지.”

“아닙니다. 별거 없어요. 특히 저는…….”

“왜 그러시죠?”

“저는 헌터 일은 더 이상 안 하거든요.”

“아, 그래도 강의 자체도 대단하신 일이죠.”

어색하게 웃는 송준하, 진하는 그의 말에 고개를 속으로 끄덕였다.

확실히 그의 말대로 그는 지금 헌터 일을 하기 어려울 게 분명했다.

겨우겨우 C급을 딴 헌터였으니까.

실질적 전투 능력은 아마도 D 최상급 정도.

베테랑 헌터치고는 매우 낮은 능력치였다.

그러니까 헌터 일에서 은퇴한 거겠지.

하지만 그건 게이트 폭주를 겪으면 180도 달라지게 된다.

송준하의 능력, 정의관쳘.

자신의 신념을 강하게 믿고 행할수록 크게 성장하는 사기적인 능력이 개화되니까.

‘정말 좋은 능력이지. 다만 그게 하필이면 송준하였단 게 문제였지만.’

정말 좋은 능력이었지만 소심한 그에게는 언뜻 보면 맞지 않기도 했다.

자신의 의견을 함부로 표출하지 못하는 소심한 사람이니까.

하지만 반대로 그이기에 이 능력은 올바른 방향으로 개화하고 증폭되었다.

사람을 살리고 싶다는 능력에서 개화된 능력.

소심했지만 반대로 그렇기에 한번 표출된 그의 신념은 그 무엇보다도 강한 힘을 그에게 주었다.

‘인터뷰에서 그랬었지. 자신이 조금만 더 강단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후회한다고.’

지금 생각해 보니 참으로 불쌍한 인물이기도 했다.

아끼는 사람들의 죽음을 눈앞에서 겪은 후에나 각성한 사람이니까.

“아무튼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다음번에 다시 한번 만났으면 좋겠네요.”

진하가 미소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네, 저도요.”

송준하가 진하의 손을 맞잡았다.

“그럼, 저는 이만.”

진하는 고개를 숙여 인사한 뒤 교실을 나갔다.

“김진하…….”

송준하는 나가는 김진하를 향해 묘한 시선을 던지며 그의 이름을 되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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