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가진 SS급 문방구-17화 (17/202)

#017

다가온 사내의 단검이 진하의 가슴을 꿰뚫었다.

그리고 단검을 뽑았다가 다시 한번 휘두르는 남자.

퍼억!

챙그랑!

다행히도 두 번째 시도는 불발이었다.

옆에 있던 하예진이 그를 발로 차 버렸기 때문이다.

“이런 미친!”

“뭐, 뭐야!”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길드원들이 놀라 진하에게 다가왔다.

“다가오지 마!”

하예진이 길드원을 경계하며 소리쳤다.

그녀의 외침에 주춤거리는 길드원들.

눈치 빠른 몇몇 길드원은 그녀에게 다가가지 않고 진하를 공격한 길드원을 제압해 묶었다.

―리저렉션

하예진이 길드원을 경계하며 상처 부위로 힘을 집중시켰다.

이미 기력이 거의 다해 치유 자체는 약했지만, 다행히 피를 멈추게 하는 정도는 가능했다.

진하의 목숨이 무사한 것을 확인한 길드장이 제압당한 길드원에게 다가갔다.

콰악!

“이게 무슨 짓이지?”

길드장이 화난 얼굴로 말했다.

자신들의 목숨을 살려 준 은인이었다.

은혜를 갚아도 모자랄 망정 단검으로 그를 찌르다니!

길드장뿐만 아니라 다른 길드원도 그를 노려봤다.

“당장 말하지 못해!”

길드장이 그를 보며 으르렁거렸다.

하지만 남자는 입을 꾸욱 다물 뿐이었다.

[어차피 망할 길드야. 설마 영원히 작은 길드에 있으려는 건 아니지?]

[그냥 내 말만 따르면 돼, 돈? 얼마든지 줄 수 있어.]

[명심해, 이건 네 독단으로 한 짓이 되어야 해.]

[아니면 너의 가족이 어떻게 될지 몰라.]

남자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말.

이 순간만 넘기면 되었다.

그분이라면 감옥에 갇혀도 자신을 금방 빼내 줄 능력이 있었다.

까득!

길드장이 이를 갈았다.

남자가 말하지 않았지만 그가 모를 리 없었다.

저 멀리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한태성이 범인이겠지.

하지만 그를 건드릴 수는 없었다.

대기업의 아들이니까.

“거, 그만하죠.”

뒤에서 진하의 목소리가 들렸다.

응급 처치를 끝낸 진하가 길드장을 보며 말했다.

“미안하다.”

고개를 숙이며 사과하는 길드장.

진하는 그런 모습에 덤덤하게 말을 이어 갔다.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아요.”

진하는 그가 한 사과에 담긴 뜻을 읽었다.

진하도 범인이 누군지는 알았다.

대놓고 혼자 다른 표정을 짓고 있는데 모를 리 없었다.

그리고 그를 길드장은 건들지 못한다.

“그 사람은 협회에 넘기세요. 그리고 이제부터 저희는 남남입니다.”

진하의 말에 길드장이 당황했다.

물론 길드에서 잘못한 거긴 했지만 이렇게 단호하게 인연을 끊는다고?

당황한 길드장이 진하에게 할 말을 고르는 사이 진하가 스스로 몸을 일으켰다.

옆에서 하예진이 만류했지만 괜찮다는 표정을 지은 진하가 걸음을 옮겼다.

까득.

‘병신같은 새끼, 그거 하나 못 해서.’

진하가 향하는 곳에 서 있던 한태성이 이를 악물었다.

중상을 당한 사람 한 명 찌르는 게 뭐 그리 어렵다고 실패한단 말인가.

진하가 다가오는 게 보였지만 한태성은 당당했다.

어차피 물증도 없었다.

아무리 김진하라고 해도 물증 없이 자신을 건들지는 못할 게 분명했다.

자신은 항암 그룹의 오너 일가였으니까.

‘저 새끼는 집으로 돌아가서 살인 청부를 해야겠어.’

진하를 죽이는 거야 다음 기회도 있었다.

아쉽긴 하지만 어쩌겠는가.

저 머저리가 실패한 것을.

“뭐지?”

한태성이 다가온 진하를 바라봤다.

온몸이 피투성이인 진하.

자신도 멀쩡하진 않았지만 김진하는 그가 봐도 중상이었다.

‘그냥 지금 죽일까?’

순간 그런 유혹이 들었다.

까짓것 잠깐 빵에 들어갔다 나오면 되었다.

한태성이 진하를 보며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진하가 그에게 말했다.

“이 악물어.”

“뭐?”

퍼억!

촤아악!

진하의 발차기에 날아가는 한태성.

진하는 날아가는 한태성을 쫓아가 그의 얼굴을 발로 그대로 내리찍었다.

쾅!

땅바닥에 머리가 처박힌 한태성을 진하가 가만히 바라봤다.

움직임이 없는 게 기절한 듯했다.

“저 안 말려요?”

진하가 멍 때리는 길드장을 보며 말했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길드장이 진하에게 다가가 그의 왼팔을 잡았다.

“고맙고 미안하다.”

진하의 말이 어떤 뜻인지 모를 리 없었다.

길드를 제외한 모든 걸 진하가 뒤집어쓰려는 속셈이었다.

물론 눈 가리고 아웅이지만 어쨌든 변명거리가 생긴 셈이다.

“저 녀석 알아서 챙겨 가세요.”

보니까 호위도 모두 죽은 상태라 저놈을 챙길 사람은 길드밖에 없었다.

길드장은 고개를 끄덕이고 길드원 한 명에게 손짓했다.

“네.”

명령을 받은 길드원이 한태성을 짐짝 들 듯 둘러멨다.

‘저렇게 들어도 되나?’

진하는 한태성이 포탈로 끌려 나가는 모습에 그런 생각을 했지만 이내 고개를 으쓱했다.

길드원 나름의 화풀이겠지.

“자, 이제 가죠?”

진하의 말에 어수선한 장내가 다시 정리되기 시작했다.

모든 정리를 마친 길드원들이 하나둘 포탈을 타며 던전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잠깐만.”

포탈을 나가려던 진하는 부축하던 하예진을 잠시 멈춰 세우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격한 전투가 벌어졌던 공동은 썩은 내와 부러진 무기들이 가득했다.

그리고 간간이 보이는 핏자국과 살점들.

그런 공간 속에서 부서지지 않은 채로 멀쩡하게 있는 두 개의 옥좌가 진하의 눈에 들어왔다.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이구나.’

이제부터였다.

기존의 15년간 쌓였던 게이트의 상식이 무너지는 최초의 시점이었다.

그리고 그 정점이 바로 게이트 폭주.

아마 게이트 폭주가 시작되면 저 두 개의 옥좌에도 다시 좀비 프린스와 스켈레톤 프린스가 앉겠지.

과연 나는 그 속에서 살아남고, 동료들의 목숨까지 구할 수 있을까?

문득 그런 의문이 들었다.

절레절레.

진하가 고개를 저었다.

그런 생각은 나중에 해도 됐다.

지금은 그저 이곳에서 살아나가고 이 던전을 끝냈다는 사실에 만족하기로 했다.

어찌 됐든 또 하나의 과거를 바꿨으니까.

“가자.”

하예진과 진하가 포탈을 넘었다.

잠깐의 암전이 일어나고 익숙한 암벽이 나타났다.

게이트 안이었다.

“확실히 돌아왔네.”

완전히 긴장이 풀린 진하가 실실 웃었다.

집으로 이제 진짜 돌아갈 수 있었다.

물론 병원부터 가야 하겠지만.

그런데 왜 이렇게 앞으로 안 나가지?

진하는 밖을 향해 나가지 않고 앞을 가로막는 길드원들의 등을 바라봤다.

무슨 문제라도 있나?

진하의 의문에 대답이라도 하듯 길드원들이 옆으로 물러나며 길이 트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트인 길을 따라 걸어 들어오는 사람.

익숙한 얼굴이었다.

“또 보네요.”

“그러게요, 하하.”

검은색 정장을 입은 이준식이 그를 보며 웃었다.

“당신을 게이트 법령 제3조 6항 불법 침입 및 2조 2항 특수 폭력 혐의로 구속합니다. 이의 있으신가요?”

“음…… 아뇨.”

그러고 보니 해결해야 할 일이 하나 더 있었다.

* * *

쾅!

“진짜 아무 말 안 하실 겁니까?”

취조를 진행하는 협회 직원이 이를 갈았다.

벌써 3일째였다, 집에 못 들어간 지 3일째!

얼른 빠르게 끝내고 집에 들어가고 싶은데 취조 대상이 협조를 안 했다.

“그러는 협회가 환자에게 이래도 되는 겁니까?”

취조를 받던 진하가 어깨를 으쓱였다.

던전 복귀 3일 차, 급한 치료를 마친 진하는 곧바로 이곳으로 끌려왔다.

취조를 받을 수 없는 3일 동안은 길드원들을 조사한 건지 질문 하나하나가 날카로웠다.

‘뭐, 이득이 없는 건 아니지만.’

취조를 위해 홀리 포션부터 고급 치료까지 받아 멀쩡하게 돌아다닐 수 있게 된 점은 좋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치료받자마자 끌려온 게 기분 좋다는 건 아니었다.

‘이래서 협회 인간들이란…….’

“지금 뭐라 하셨습니까?”

“네? 저는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만?”

진하가 다시 한번 어깨를 으쓱였다.

쳇, 촉은 좋아 가지고.

“아무튼, 다시 한번 묻겠습니다. 어째서 던전을 들어갔고, 아티팩트들은 어디서 난 것이며, 던전의 정보는 어떻게 아셨습니까?”

“첫째, 던전은 친구가 걱정돼서. 둘째, 아티팩트에 대한 건 필수적으로 고지할 의무가 없다. 셋째, 노코멘트.”

“아악! 진짜 이러실 겁니까? 누가 친구가 걱정된다고 불법을 저지릅니까!”

“여기 있지.”

진하의 말에 머리를 쥐어뜯는 협회 직원, 진하는 그 모습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 직원이 불쌍하긴 하지만 절대 지금의 협회에 말해 줄 생각은 없었다.

던전 1차 폭주 후라면 모를까, 지금의 협회는 의무는 없는 그저 거대한 권력 덩어리일 뿐이었으니까.

끼익!

그때 누군가 들어왔다.

“이사님!”

“고생이 많네.”

“아닙니다!”

인자한 인상의 사내가 직원의 어깨를 두들겼다.

긴장했는지 직원은 말없이 꼿꼿이 서 있었다.

“자네는 이만 들어가 쉬게. 여긴 내가 맡지.”

“예? 하지만…….”

“벌써 이틀 넘게 집에 못 들어갔다지? 내가 이미 다 절차 밟아 놨으니까 걱정 말고 가게.”

“예, 알겠습니다.”

이사의 말에 직원이 떨떠름하게 대답하고는 나갔다.

그리고 둘만 남은 공간, 이사라 불린 사내가 협회 직원이 앉았던 의자에 앉았다.

직원이 나가고 이사라고 불린 사내가 진하의 건너편 의자에 앉았다.

“안녕하세요, 이도현 이사라 합니다. 몸은 좀 괜찮으신가요?”

“아, 예. 협회 덕분에 괜찮아졌어요.”

“협회는 언제나 헌터분들의 건강을 우선시한답니다.”

빙긋 웃는 사내. 진하는 그 모습에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그냥 내가 가진 던전에 대한 정보랑 아티팩트가 탐이 나는 거겠지.’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자신의 앞에 있는 놈은 절대 헌터를 걱정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미래에 드러난 협회의 썩은 부위 중 하나니까.

그리고 던전 1차 폭주 당시 뒤에서 헌터들을 몰아넣은 개새끼였고.

“그나저나 이사씩이나 되는 분이 여긴 어쩐 일로?”

“하하, 아무래도 치료를 받으시느라 모르시나 보군요. 지금 진하 씨는 그 누구보다도 유명합니다.”

이도현이 그 말과 함께 핸드폰을 만지더니 화면을 보여 주었다.

<2층에서 발견된 첫 던전 폐쇄. 2층도 안전하지 않다?>

<던전을 공략한 사족오 길드. ‘모든 공은 김진하 헌터에게 있다.’>

<떠오르는 신성? 김진하 헌터는 누구인가?>

<의문의 아티팩트. 그 출처는?>

화면을 본 진하가 인상을 찌푸렸다.

벌써 뉴스가 퍼졌다고?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그가 한 뉴스를 클릭한 뒤 영상을 재생했다.

<비드 파이트!>

<콰앙!>

그곳에는 진하가 부패의 지역에서 거미 스켈레톤을 향해 구슬을 쏘아 내는 장면이 편집되어 나오고 있었다.

―와…… 저 아티팩트 미쳤네.

―엌!! 근데 비드 파이트는 뭐냐? 중2병임?

ㄴ 조건 아닐까? 원래 강력한 아티팩트에 제한 걸려 있다 하지 않음?

―저거 어디서 구함?

ㄴ 너는 평생 못 구함.

그리고 그 아래 달린 수많은 댓글.

진하는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언론에 영상을 뿌리셨나 보네요?”

던전 진입 시 착용하게 되는 보디캠은 오로지 길드와 협회만 열람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영상이 찍혔던 당시에 있던 사람 중에 진하에게 독이 될만한 짓을 할 사람은 없으니 결국 협회밖에 없었다.

“허허, 2층에서 일어난 첫 게이트 폐쇄이다 보니까 다들 많이들 궁금해하시더군요. 국민들의 알 권리를 위해 어쩔 수 없었습니다.”

개소리하네.

진하가 영상을 올린 이유를 모를 리 없었다.

댓글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진하의 아티팩트에 대한 관심은 미친 듯이 높아져 있었다.

여론을 등에 업고 압박하는 같잖은 수작.

“그래서 정말 알려 주지 않으실 건가요?”

“법적으로 문제 있나요?”

“물론 문제는 없습니다. 근데 괜찮으시겠습니까?”

말끝을 흐리며 걱정하는 이도현.

“무슨 말씀이죠?”

“아뇨, 지금은 괜찮더라도 나중에 위험할 수도 있어서요. 잘 모르시겠지만 헌터의 세계가 마냥 깨끗한 건 아닙니다.”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를 리 없었다.

헌터의 세계가 더러운 건 진하 자신도 봤으니까.

미래에서는 지금과 달리 적나라하게 펼쳐지기까지 했다.

지금 이도현은 자신에게 협상하는 거였다.

블랙 길드와 대기업, 그리고 길드 사이에서 지켜 줄 테니까 모든 정보와 아티팩트를 토해 내라고 말이다.

역시 협회도 뼛속까지 썩어 있긴 마찬가지였다.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애초에 진하가 그걸 모르고 던전에 진입한 게 아니었다.

설마 해결할 방법 하나 없을까.

“흐음…… 알겠습니다. 일단 넘어가도록 하죠. 근데 던전에 대한 정보로 인해 도는 지라시는 어쩌실 겁니까?”

“지라시요?”

이도현이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이번 던전에 대한 정보와 진하에 대한 정보, 그리고 지하 10층에 대한 정보였다.

“지금까지 탐사대가 가장 깊이 들어간 10층에 대한 정보입니다.”

“그런데요?”

“인간의 말을 할 수 있는 개체가 발견되었더군요.”

“뭐가 문제죠?”

“당신이 아는 던전에 대한 정보, 그리고 깊이 들어갈수록 나오는 지능적인 존재들. 뭔가 연관성이 있다고 생각하시지 않나요?”

“지금 무슨 소리 하는지 모르겠는데요?”

“물론 말이 안 되지만 이런 말이 돌고 있어요. 혹시 당신이 몬스터와 내통하는 건 아닐까 하는 이야기지요.”

“풋, 말도 안 되네요.”

“최근에 텔레포트로 게이트 밖으로 이동된 적 있죠?”

“네.”

“누군가 그러더군요. 혹시 지하 깊숙이 이동했다가 게이트 밖으로 이동된 거 아니냐고.”

“비약이 심하네요.”

“비약이어야 하겠죠?”

이도현이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역시 그다웠다. 여론을 업은 압박, 협회의 권력을 이용한 회유, 거짓 정보로 협박하는 것까지, 미래에 알려진 그대로였다.

보통은 여기서 모두 무너졌겠지.

협회라는 거대 단체를 혼자 이기는 건 거의 불가능하니까.

하지만 말이야.

“저는 아무것도 모르겠네요.”

그건 미래를 모르는 사람에게나 통하는 수였다.

진하에겐 통하지 않는 수였다.

그나저나 계속 협박만 당하니까 기분이 조금 나쁘네?

‘작은 경고나 해 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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