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가진 SS급 문방구-14화 (14/202)

#014

퉁!

로봇의 스프링이 풀리며 구슬을 때리는 작은 소리.

진하는 그 소리를 듣는 순간 아주 살짝 가슴이 덜컥했다.

‘불발인가?’

너무나 작은 소리에 그런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그의 생각이 미처 다 끝나기 전에 변화가 일어났다.

스스슥.

처음에는 작은 소리였다.

아주 작게 바람이 모이는 소리.

키이이잉!

그리고 곧이어 느껴지는 격한 떨림.

진하가 떨리는 손을 제어하기 위해 손에 힘을 잔뜩 주었다.

하지만 손의 떨림은 더욱 격해졌고, 로봇에서 들리는 소리는 이제 섬뜩한 소리를 내뱉는 수준이었다.

까드득.

진하가 이를 악물었다.

직감적으로 알았다.

이 한 번이 마지막 기회였다.

로봇에 모인 에너지는 그가 견딜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분명 이번 한 번으로 그의 몸은 박살 난다.

킹―

순간 모든 소리가 멈췄다.

곧이어…….

콰아앙!

굉음과 함께 빨간 선 하나가 진하로부터 대각선으로 그어졌다.

쿵! 우드득.

언데드들을 밀어내며 반대편 벽으로 날아가는 진하.

순식간에 벽에 틀어박힌 그는 뼈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의식이 흐려졌다.

“쿨럭”

‘결……과는……?’

쓰러지더라도 결과를 확인하고 쓰러져야 했다.

하지만 그의 생각과는 달리 한계에 달한 그의 의식은 그대로 끊겨 버렸다.

그리고 앞으로 쓰러지는 진하.

툭.

그 순간 앞으로 쓰러지는 진하를 누군가 붙잡았다.

“고생했다.”

길드장이 기절한 진하를 보며 웃었다.

* * *

“미쳤군.”

구슬이 발사되고 결과물을 본 길드장의 첫 말이었다.

미쳤다, 이 말 외에는 도저히 떠올릴 수 없었다.

처음 진하가 버튼을 누를 때, 그는 뒤에서 느껴지는 커다란 에너지에 저도 모르게 뒤돌아보고 말았다.

그리고 진하의 손에서부터 쏘아져 나오는 한줄기 빨간 선.

핏!

작은 소리와 함께 쏘아진 붉은 선은 그대로 스켈레톤을 관통했다.

이어지는 굉음.

콰아앙!

그가 서 있는 땅 전체가 흔들릴 정도의 충격이 몸을 관통했다.

흔들리는 몸을 바로 세운 길드장은 다급히 고개를 들었다.

아니, 그가 고개를 들기도 전에 결과가 나왔다.

툭, 투툭, 툭.

바로 옆에 있던 언데드들이 무너지기 시작했으니까.

빠르게 무너지는 언데드들.

마치 파도타기를 하듯 순식간에 모든 언데드들이 늪으로 무너졌다.

그 모습에 안도의 한숨을 내쉰 길드장이 구슬이 쏘아진 벽을 바라봤다.

그의 시야에 반대편 벽이 보였다.

“??”

순간 그 모습을 받아들이지 못한 길드장의 뇌가 물음표만을 띄웠다.

하지만 곧이어 들린 목소리가 길드장의 판단을 도왔다.

“벽이 뚫렸어?”

재희의 목소리였다.

그녀의 말대로 벽이 뚫린 채로 반대편 벽이 보였다.

몬스터가 있던 곳은 아예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

“미쳤군.”

길드장은 그리 말할 수밖에 없었다.

벽을 뚫는 게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단단하고 두껍긴 하지만 그도 최대한 힘을 낸다면 부수는 건 가능했다.

하지만 저렇게 크게, 그리고 한 번에 뚫어 내는 건 그도 불가능했다.

정말로 미친 파괴력이었다.

“그러고 보니 진하는?”

뒤늦게 날아간 그가 생각났다.

다급하게 그가 날아간 곳으로 시선을 돌리니 벽에 몸이 틀어박힌 진하가 보였다.

“쿨럭!”

피를 토하는 진하.

길드장이 다급히 달려가 쓰러지려는 그를 붙잡았다.

이미 의식을 잃었는지 거친 숨을 얕게 몰아쉬고 있었다.

“고생했다.”

길드장은 그 한마디를 한 채 그를 조심스레 눕혔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였다.

하지만 그가 손으로 그의 몸을 만져 보니 온몸의 뼈가 부서져 있었다.

“전신 골절이군.”

아까 내뱉은 피는 부러진 뼈가 위장을 뚫은 것 때문인가?

다행히 그것 외에는 위험한 장기를 찌른 것 같진 않았다.

목숨에는 지장이 없는 상태, 하지만 이 던전을 나갈 때까지 전투는 불가능해 보였다.

길드장이 허리춤에서 하얀색 액체 한 병을 꺼내 들었다.

“길드장님 그건…….”

자리에 주저앉아 치료제를 마시고, 몸을 치료하고 있던 길드원들이 놀라 길드장을 쳐다보았다.

길드장이 들고 있는 액체는 무려 홀리 포션이었다.

딱 두 모금인 50ml에 2억이나 하는 최상급 치료제.

물론 그중에서도 하급이긴 했지만 홀리 포션이라는 점에서 이미 기존 치료제와는 궤를 달리했다.

일반 치료제가 출혈 정지와 회복력 촉진이라면, 홀리 포션은 먹은 즉시 곧바로 상처가 치료되는 효능을 가졌으니까.

쪼로록!

길드장은 그렇게 비싼 홀리 포션의 2/3를 조심스레 진하의 입에 부은 뒤, 나머지도 자신의 입에 털어 넣었다.

“이번 공략은 완전 나가리군.”

길드장은 괴사되었다가 다시 조금씩 색을 되찾아 가는 오른팔을 보며 말했다.

비상용으로 가진 홀리 포션 4병 중 1병을 여기서 쓸 줄이야.

죽는 것보단 낫지만, 이번 던전에서 얻은 손해가 너무나 심했다.

“뭐 사는 것 자체에 감사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애초에 이 던전에서 손해를 따지는 것 자체가 바보 같은 일이긴 했다.

살기만 해도 감사하다고 땅에 입을 맞춰도 모자란 상황이었으니까.

길드장은 호흡이 안정된 진하를 바라봤다.

진하가 없었으면 과연 어디까지 나아갔을까.

아마 여기서 전멸했겠지.

“고맙다.”

길드장이 나지막하게 말한 뒤 몸을 일으켰다.

이제 본대로 돌아가야 했다.

뒷수습을 해야 했으니까.

“자, 가자.”

* * *

“ㄴㄹ……ㄴㅇㄹ…….”

“ㄴ런ㅇ라;ㅣㄴ!!”

“으음…….”

주변의 시끄러운 소리에 진하는 인상을 찌푸리며 눈을 떴다.

‘여기가 어디지?’

보이는 것은 텐트의 천장, 눈을 깜빡이며 천천히 기억을 되살려 보았다.

그러자 점차 되살아나는 기억들.

완전히 기억이 되살아나자 진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구슬을 발사하는 것을 끝으로 기억이 없지만, 현재 상황을 보면 다행히 좋게 끝난 모양이었다.

‘이번에도 침상인가?’

과거에는 안 그랬던 것 같은데, 요즘은 툭하면 침상이었다.

회귀 전에는 기절한 게 손에 꼽혔는데 툭하면 쓰러지다니,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띠링!

<신체 강화의 능력이 오릅니다. 지속된 상처와 회복을 겪어 자연 치유력이 올라갑니다.>

마치 놀리듯 떠오르는 메시지창.

내용을 읽은 진하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가장 오르기 힘든 자연 치유력이 올랐다.

그만큼 많이 다쳤다는 소리이기도 했다.

시스템창을 눈짓으로 치운 진하가 몸에 조심스레 힘을 주었다.

통증이 느껴지진 않았지만 진통제 때문일 수도 있었다.

얼마나 다쳤는지 감이 오질 않았다.

꿈틀.

“어라?”

몸이 잘 움직였다.

둔중한 통증이 느껴지는 거로 보아 진통제도 쓰지 않은 상황.

‘이럴 리 없는데?’

치료제와 치유 마법을 사용했다 하더라도 이 정도로 마무리되는 건 말이 안 됐다.

시계를 들어 날짜와 시간을 확인해 보았지만, 아직 5시간밖에 지나지 않았다.

긁적긁적.

“뭐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좋은 게 좋은 거였다.

심하게 다친 게 아니라면 조심스럽게 움직일 필요도 없겠지.

몸을 일으킨 진하가 스트레칭을 했다.

역시나 경상 정도의 통증만이 느껴졌다.

“근데 밖은 왜 저리 시끄러운 거지?”

무슨 일이 있나?

의문을 느낀 진하가 천막을 걷으며 나왔다.

그러자 가장 먼저 보인 것은 휘젠이 모닥불 앞에서 크게 소리치는 모습이었다.

“진짜 진하가 비드 파이트! 이러면서 쐈다니까?”

“에이, 설마 그랬으려고?”

“팩트라니까? 내가 재희한테 확실히 들었어. 근데 솔직히 좀 쪽팔리지 않냐? 나였으면 절대 못 말했다.”

진하를 과장되게 흉내 내고 있는 휘젠과 그를 보며 웃고 있는 사람들.

주변을 보니 그뿐만 아니라 몇몇 모닥불에서도 신나게 떠드는 게 보였다.

“오! 주인공 나왔다!”

그때 마침 천막에서 나오는 진하를 발견한 휘젠이 외쳤다.

그러자 그에게 모이는 시선들.

휘젠은 재빠르게 진하에게 다가가 들고 있던 수통을 마이크 삼아 물었다.

“자! 우리의 영웅 진하 씨. 처음 비드 파이트를 외칠 때 어떤 심정이셨나요?”

순간 진하의 말문이 턱 막혔다.

“비드 파이트는 너무했다. 차라리 흑염룡을 하지!”

“큭큭큭, 솔직히 완전 중2병 발언 아니냐?”

“주인공! 뭐라 말 좀 해 봐라!”

“주인공! 주인공!”

사방에서 들리는 놀림들.

그 소리의 정점은 휘젠이 찍었다.

“뭐야, 뭐야, 왜 말이 없어? 설마 진짜 멋있을 줄 알고 내뱉은 거야?”

“…….”

“응? 응?”

“크아아악!”

진하가 휘젠에게 달려들었다.

재빠르게 몸을 내빼며 외치는 휘젠.

“진하가 폭주했다! 흑염룡이 나온다!”

도망치면서까지 진하를 놀리는 그의 모습에 모두들 폭소했다.

“잡히기만 해 봐!”

“으아악! 흑염룡이 폭주한다아!”

그의 말에 더더욱 커지는 웃음소리.

진하는 계속해서 도망 다니는 휘젠을 따라가며 온 캠프를 휘저었다.

그리고 잠시 뒤,

“헉, 헉 진짜 나중에 두고 보자.”

거친 숨을 몰아쉬며 진하가 저 멀리 사라지는 휘젠을 쏘아보았다.

저 인간은 뭘 처먹은 건지 도망 하나는 일품이었다.

“후우!”

겨우 숨을 정리한 진하가 캠프를 둘러보았다.

하나같이 이야기를 하거나 쫀드기를 구워 먹는 사람들.

눈대중으로 보아도 숫자가 꽤 줄어 있었다.

역시 그가 짐작한 게 맞았다.

“응?”

그때, 진하의 눈에 구석진 곳 앉아 이곳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하예진이 보였다.

그녀도 진하를 본 건지 작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진하가 그녀에게 다가가며 물었다.

“거기서 뭐 하고 있어?”

“음…… 그냥?”

작게 웃으며 말하는 그녀.

진하는 그녀의 옆에 앉았다.

“뭘 그리 또 우울해하냐.”

딱 보면 알았다.

우울할 때마다 구석진 곳에서 멍하니 있는 게 그녀의 습관이니까.

“그냥…….”

“죽은 사람들 때문에 그래?”

진하의 말에 예진이 몸을 움찔했다.

하아, 그럼 그렇지…….

“친한 사람이 죽었어?”

절레절레.

“그럼 왜 그러는데?”

“그냥, 신기해서 그래. 오늘 동료들이 죽었는데도 다들 아무렇지 않구나 하고.”

웃고 신나게 떠드는 사람들.

그녀에게 그 모습은 너무나 이질적이었다.

헌터인 이상 죽음은 당연한 거라고 배웠지만, 정작 직접 목격한 죽음은 그녀의 마음을 무겁게 했다.

그런데 정작 엄청 친하게 지냈을 것 같은 사람들이 제일 아무렇지 않다니…….

“아무렇지 않을 리 없잖아.”

진하의 말에 그녀가 그를 쳐다봤다.

진하가 손가락으로 휘젠을 가리켰다.

주변 모닥불을 돌면서 장난을 치는 그.

“휘젠뿐만이 아니야.”

진하가 가리키는 곳에는 하나같이 과하게 웃으며 떠드는 사람들이 보였다.

“지금 내가 가리킨 사람들, 아마 죽은 사람들이랑 친했던 사람일 거야.”

그 말에 예진이 진하가 가리켰던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확실히 던전을 공략하면서 죽었던 이들과 자주 얘기하던 사람들이 얼핏 몇몇 보였다.

“죽은 사람을 보내는 게 이번이 처음이라 몰랐겠지만, 너도 알아 두는 게 좋아. 게이트에서 동료가 죽으면 절대 슬퍼해선 안 돼.”

“……왜?”

“죽은 동료들이 볼 수 있으니까. 그리고 한을 만들어 주면 안 되니까.”

헌터들 사이에서 이어지는 암묵적인 룰이다.

동료의 죽음은 웃음으로 추모할 것, 그리고 시체는 무조건 태울 것.

“한이 생긴다고?”

“미신이야. 한이 남은 동료가 몬스터가 될지도 모른다는 미신.”

몬스터가 존재하고 마법과 초능력이 존재하는 세상이었다.

그리고 몬스터 중에는 유령 계열 몬스터도 존재했다.

그렇기에 내 동료가 다시 몬스터로 되살아나지 않을 거란 보장도 없었다.

“그래서 시체도 태우는 거야. 신체는 언데드로 살아나지 말고, 영혼은 유령이 되지 말라는 거지.”

“그럼 슬퍼하면 안 되는 거야? 절대로?”

“적어도 게이트 내에선, 밖은 상관없어.”

진하의 말에 그녀가 다시 사람들이 모여 있는 캠프를 바라보았다.

그 어느 때보다 신나게 웃고 떠드는 사람들.

그 모습을 보며 그녀는 사실 조금 실망했다.

자신이 되려 했던 헌터들이 이렇게 이기적이구나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그게 아니었구나.

“근데 너는 그걸 어떻게 알아?”

교육소에서도 배운 적 없는 지식이었다.

근데 같이 수료한 진하는 그걸 어떻게 아는 거지?

“아는 사람한테 들었어.”

“너, 나랑 헌터 교육 동기인데?”

“있어, 너는 모르는 그런 사람.”

뭔가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는 진하였다.

하지만 그녀는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아티팩트부터 던전 정보까지 뭔가 그녀가 아는 진하와 다르긴 했지만 진하는 진하였으니까.

“자, 그럼 네가 이제 뭘 해야 하는지 알지?”

진하가 그녀의 등을 살짝 밀었다.

“응! 알 것 같아. 나 다녀올게!”

그녀가 진하에게 손을 흔들고 사람들에게 달려갔다.

“아무튼, 맘은 여려서.”

진하가 기지개를 켰다.

그도 헌터만의 추모식을 위해 바쁘게 움직여야 했으니까.

그의 눈에 캠프에서 떠드는 휘젠이 보였다.

“오늘 다 뒤졌어.”

진하도 사람들을 향해 뛰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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