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가진 SS급 문방구-11화 (11/202)

#011

제일 먼저 달려든 사람은 진하의 뒤쪽에 서 있는 호위였다.

주먹을 휘두르는 그.

아마도 얕보는 거겠지.

날아오는 주먹을 보며 속으로 읊조린 진하는 몸을 회전시키며 모닥불을 발로 찼다.

촤아악!

앞에 있는 헌터들을 향해 퍼지는 불똥, 하지만 그들은 침착하게 팔로 불똥을 치워 냈다.

그 틈을 이용해 몸을 돌린 진하가 달려들던 사람의 품속으로 깊게 파고들었다.

칼을 주먹이 날아오는 위쪽으로 세우며 들어가자 주먹을 내리꽂던 남자가 순간 주춤했다.

서걱!

그대로 몸을 더욱 낮춘 진하가 발목을 순식간에 베어 냈다.

“크흑!”

발목이 베이며 앞으로 고꾸라지는 남자.

진하가 쓰러지는 남자를 잡아 넘어지는 반동 그대로 뒤로 넘겼다.

퍼억!

그와 동시에 남자에게 꽂히는 전격.

진하의 등을 향해 전격을 쏜 남자가 그 모습에 당황했다.

“죽어!”

불똥을 모두 치워 낸 3명이 빈틈이 드러난 진하를 향해 검을 내리쳤다.

피식.

‘멍청하네.’

진하는 그대로 앞으로 굴렀다.

후웅!

차례대로 허공을 지나가는 그들의 검.

셋은 빗나간 검을 재빠르게 당기며 물러났다.

촤악!

그 순간 진하가 모래를 흩뿌렸다.

그로 인해 그들이 눈을 감아 버린 순간.

사악!

진하의 검이 가로로 베어졌다.

하지만 썩어도 준치라고 나름 베테랑인 그들은 어느새 진하의 검을 한 끗 차이로 피한 상태였다.

공격이 실패하자마자 진하가 몸을 위로 날렸다.

파지지직!

몸을 날리자마자 쏟아지는 전격.

진하가 허공에서 재빠르게 무엇인가를 호위들에게 던졌다.

채재쟁!

반사적으로 물건을 쳐내는 호위들.

아무런 힘도 담겨 있지 않은 것을 깨달은 그들이 던져진 물품을 확인했다.

구슬이었다.

“후! 역시 한가락 하네.”

그 틈을 이용해 땅에 내려선 진하가 키득거렸다.

덥썩!

“넌 이제 뒤졌다.”

아래를 보니 발목이 베이고 전격에 지져졌던 남자가 그의 발을 부여잡은 채 씨익 웃으며 진하를 바라봤다.

진하도 그를 보며 씨익 웃어 줬다.

투욱.

“알고 있었는데?”

진하가 떨어진 구슬을 그대로 환도로 내리쳤다.

콰직!

촤아아아!

유리구슬이 깨짐과 동시에 퍼지는 작은 독연.

독연이 바로 앞에 있던 호위의 콧속으로 사정없이 파고들었다.

“크아악!”

얼굴을 감싸며 남자가 땅바닥을 뒹굴었다.

“그냥 둘 거야? 저대로 두면 죽는다?”

남자의 속박에서 풀린 진하가 곧바로 남자를 찼다.

멀리 날아가는 남자.

호위들 중 한 명이 혀를 차며 그를 향해 달려갔다.

‘지금!’

휘익!

파지직!

진하가 몸을 날리자마자 날아드는 전격.

하지만 전격은 진하에게 닿기도 전에 진하가 몸을 날리며 먼저 던진 단검에 흡수됐다.

“죽어!”

“이얏!”

좌우에 있던 둘의 검이 진하를 향해 나아갔다.

각각 상, 하단으로 파고드는 검.

푸푹!

검이 진하의 팔, 다리에 꽂혔다.

그 모습에 둘은 미소를 지었다.

“그러니까 안 되는 거야.”

아직도 생포할 생각을 하다니.

어느새 환도를 놓은 진하의 두 손이 둘의 얼굴을 붙잡았다.

파직, 파직!

각 손에서 유리 깨지는 소리와 함께 화염과 한기가 뿜어져 나왔다.

얼굴을 감싸며 쓰러지는 둘.

툭툭.

상처 입은 손을 털며 진하가 앞을 바라봤다.

혼자 남은 전격 능력자가 진하를 보며 주춤주춤 물러났다.

“아까의 기세는 어디 갔어?”

“미친놈!”

누가 상처를 입어 가면서 싸운단 말인가.

싸움의 기초는 상처 입지 않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놈은 전혀 반대로 하고 있었다.

“아무튼, 요즘 놈들은 깡다구가 없어요.”

라떼는 두 팔이 부러져도 입으로 마물을 물어뜯어 먹으면서 싸웠는데 말이야.

“죽어!”

남자가 있는 힘을 다해 전격을 날렸다.

그와 동시에 어느새 다가와 뒤쪽에서 검을 내리꽂는 호위 한 명.

카앙!

파지지직!

진하가 땅에 떨어진 환도를 발로 참과 동시에 옆으로 몸을 뉘었다.

날아간 환도가 그대로 전격 능력자의 복부에 꽂혔다.

휘익!

몸을 눕혀 검과 전격을 피한 상태로 뒤로 구슬을 던지는 진하.

뒤에서 검을 휘두르던 남자가 흠칫하며 얼굴을 향해 날아오는 구슬을 쳐냈다.

“바보.”

챙그랑!

퍼엉!

구슬이 터지며 남자를 휩쓸었다.

휘익!

파지직!

진하가 빈틈을 노리며 또 한 번 날아오는 전격을 향해 단검을 던졌다.

그러고는 재빠르게 몸을 일으켰다.

“이제 끝?”

셋은 전투 불능, 전격 능력자도 중상, 뒤에 있는 놈은 경상.

까득!

앞뒤로 포위한 호위들이 이를 가는 게 보였다.

“흐음…… 그냥 포기하지.”

진하가 허벅지에서 단검을 꺼내 앞, 뒤로 날렸다.

다급히 방어하는 호위들.

하지만 단검은 그들이 아닌 그들의 발밑을 향해 날아갔다.

챙그랑!

파지지직!

“땅 밑을 잘 확인해야지.”

전격과 함께 쓰러지는 호위들.

진하는 멍하니 자신을 쳐다보는 한태성을 바라보며 땅에 떨어져 있는 구슬 하나를 집어 들었다.

“왜, 이길 것 같았어?”

틀린 생각은 아니었다.

보통은 C급 1명과 5명이 붙으면 5명의 손을 들어 줄 테니까.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보통의 이야기.

진하의 경험과 기술은 B급, 그것도 전쟁통에서 얻은 경험을 가진 헌터였다.

그런 사람을 안전하게 몬스터를 잡으며 차곡차곡 랭크를 올린 헌터가 이길 리 없었다.

무엇보다 인간을 상대하는 데 어설프기까지 한 헌터라면 말할 필요도 없었다.

‘하기야, 블랙 길드 아닌 이상 인간을 상대할 일이 없구나.’

범죄 헌터 집단, 블랙 길드.

그들이 아닌 이상 확실히 인간을 상대할 일이 없긴 했다.

제대로 된 인간형 몬스터는 B급부터 나오니까.

“너, 너! 이러고도 무사할 줄 알아!”

“그럼 넌 지금 무사할 줄 아니?”

피를 뚝뚝 흘리며 한태성을 향해 다가가는 진하.

“거기까지 하지.”

어느새 나타난 길드장이 그들 사이를 막아섰다.

마찬가지로 한태성과 진하의 사이를 막아선 부길드장과 팀장들.

“저놈! 저놈을 잡아! 그럼 내가 아버지에게 말해서 계약금을 두 배로 줄게!”

“도련님도 그만하시지요.”

“뭐?”

길드장이 몸을 돌려 한태성을 바라봤다.

무표정한 얼굴을 한 그의 얼굴.

“지금은 생존의 문제입니다. 더 이상의 분란은 곤란합니다.”

“이익…….!”

한태성이 거친 숨소리를 내쉬다가 몸을 휙 돌렸다.

그리고 그대로 텐트로 들어가는 그.

길드장은 작게 한숨을 내쉰 뒤 진하를 바라봤다.

“자네도 이 정도로 참아 주게.”

“말로만?”

“항암 그룹이네. 그와 싸우면 자네만 손해야.”

“나는 척을 져도 되고?”

진하의 말에 길드장이 침음을 흘렸다.

사실 이렇게까지 진하가 잘 싸울 거라곤 그도 생각하지 못했다.

원래대로라면 싸우는 그들 사이에서 가장 이득을 봐야 했던 건 길드장 자신이었다.

싸움을 통해 진하의 아티팩트도 확인하고, 항암 그룹의 자제도 달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노렸었다.

그랬기에 모른 척 했던 거고.

힐끗.

5대 1이었다.

그런데도 진하는 겨우 저 정도 상처로 다른 호위들을 무력화시켰다.

거기다가 제대로 된 아티팩트도 사용하지 않은 상태로.

그저 여러 속성의 구슬만 사용해서 얻은 승리.

꾸벅.

“내가 고개 숙여 사과하지.”

“속아 주는 것도 이번만이에요,”

화를 푼 진하는 그 말을 마치고 하예진에게 갔다.

진하가 멀어지고서야 허리를 편 길드장.

“호위들을 치료하게.”

“고개를 숙일 필요까진 없었습니다.”

“아니, 그는 단순한 신입 헌터가 아냐.”

무기에 의존하지 않는 전투와 상처를 두려워하지 않는 과감함, 저건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갓 B급에 올라선 헌터들조차 태반이 무기 의존도가 높은 걸 생각하면 경험과 기술 자체만 봐서는 C급 이상이라는 소리였다.

거기다 아무리 생포 목적으로 달려들었다고 하나 5명을 제압했다.

이는 사람과의 싸움에도 익숙하다는 뜻.

아무리 생각해도 갓 C급에 올라섰다고 생각할 수 없었다.

‘아티팩트가 없어도 적어도 B 최하급.’

그런 결론이 났다.

추후에 어디까지 클지 모르는 상대에게 이 정도면 싸게 먹힌 거였다.

한편, 하예진에게 돌아간 진하는 맹렬하게 혼나고 있었다.

“너! 누가 몸을 함부로 쓰래! 이 상처들 어떡할 거야!”

인상을 쓰며 그를 치료하는 예진.

진하는 허허 웃으며 말했다.

“이 정도는 별거 아닌데.”

“뭐가 별거 아냐! 어떻게 이렇게 큰 상처를 입으면 어떡하냐고.”

긁적긁적

고작 자상 두 개가 큰 상처라니, 확실히 아직 하예진이 경험이 부족하긴 한 듯했다.

급소도 아닌 곳의 상처로 이렇게 호들갑 떨어서야…….

‘뭐, 사실 지금이 상처에 대해 더 엄격하기도 하지만.’

미래는 움직일 수만 있으면 경상 취급했으니까.

“그나저나 그 구슬은 뭐야? 아티팩트지?”

“아, 구슬?”

진하가 파우치에서 구슬을 꺼내 넘겨주었다.

작고 투명한 유리구슬.

<어디서나 흔히 보이는 유리구슬. 묶음으로 판다. 예쁜 것 외에는 쓸모가 없어 보인다. 구슬 안의 색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을까?>

“랜덤 속성 구슬이야.”

“너 포인트 거의 없지 않았어? 그러고 보니 쫀드기는 어떻게 산 거야?”

허, 그걸 이제야 묻네.

포인트 생각만 하면 아직도 속이 쓰린데.

급하게 마석을 마련하느라 무려 복리 10%의 대출을 받아 버렸다.

그것도 월이 아닌 주 단위.

“그런 게 있다. 넌 몰라도 돼.”

“무리한 거 아니지?”

“무리 안 했어. 그리고 쫀드기 값 받으면 나 부자다?”

덕분에 좋은 사실 하나도 알았다.

연속적으로 같은 몬스터의 마석을 판매하면 포인트 가격이 내려갔다.

그것도 심각하게 팍팍 깎였다.

이게 다시 회복되는 건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것은 하나.

단순 저급 마석 앵벌이로 포인트 수급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었다.

‘하아, 산 넘어 산이구먼.’

* * *

다음 날 텐트에서 몸을 일으킨 진하는 옆에 누운 하예진을 바라봤다.

어제 늦게까지 치료하겠다고 달라붙어서 능력을 사용하다가 그대로 자 버린 그녀.

덕분에 상처는 완벽하게 완치되었다.

심지어 오히려 활력까지 느껴지는 상태.

“흠, 역시 사기 능력.”

몸에 부담과 부작용이 없는 치료 능력.

역시 사기급 능력이었다.

‘그러니 온갖 길드에서 러브 콜이 오는 거지만.’

부작용 없는 치료 능력은 희귀하니까.

진하는 겉옷을 챙겨 텐트를 나왔다.

이미 대부분 일어났는지 몸을 풀고 있었다.

“여! 뜨거운 밤 보냈어?”

지나가던 헌터 한 명이 능글거리는 표정으로 말을 걸었다.

아무 일 없다는 걸 알면서도 놀리는 그에게 진하가 씨익 웃어 주었다.

“글쎄요, 아주 따뜻한 밤을 보내긴 했죠.”

휘익, 휘익!

진하의 말에 사방에서 울려 퍼지는 휘파람 소리.

쿡, 쿡!

“어엉! 누군 옆구리 시린데 누군 따뜻하고 아주 부럽구먼.”

“휘젠 씨도 머리만 있음 될 텐데.”

가볍게 날아가는 잽 한방.

“크하하! 맞지, 맞아. 너 내가 공짜 밝히면 머리 벗겨진다고 했잖냐. 큭큭큭.”

“너무 놀리지 마. 우리 휘젠은 반짝이는 머리가 매력인걸?”

진하가 더 말할 필요도 없이 사방에서 쏟아지는 훅과 스트레이트.

주변 사람들에게 말로 얻어맞은 휘젠이 가볍게 침몰했다.

마지막 마무리까지 날린 진하는 길드원 한 명이 건네준 물병을 받았다.

부스럭, 부스럭.

밖이 너무 시끄러웠을까?

텐트에서 까치머리를 한 하예진이 하품을 하며 나왔다.

“예진이가 왜 거기서 나와?”

“진하는 어땠어, 어?”

“크, 피부 뽀얀 거 봐라. 얼마나 좋았길래.”

그녀가 나오자마자 신고식처럼 놀려 대는 길드원들.

예진은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여기가 자기 좋더라고요.”

“글쎄요? 쟤두 아저씨보단 컸던 것 같기도 하고?”

“어머, 언니. 피부는 언니가 더 좋아졌죠. 어제 대승 오빠랑 잠깐 사라지던데 혹시?”

가볍게 장난을 건 길드원을 침몰시킨 하예진이 진하가 마시던 물을 뺏었다.

“하암~ 너는 부럽다. 혼자 텐트 써서, 엄청 편하던데? 우린 4명이 쓰는데.”

“그럼 계속 같이 쓰든가.”

“됐네요.”

물을 마신 후 눈곱을 뗀 그녀가 몸을 스트레칭했다.

“그나저나 이 던전은 언제 끝나려나.”

벌써 5일째인데 끝이 보이질 않았다.

“긴장 풀지 말아라.”

아무리 가장 큰 문제인 식량이 해결되고 몬스터가 C, D급만 나와도 던전은 던전이었다.

고작 이런 거로 끝날 거였으면 최악의 C급이라 불릴 리 없었으니까.

‘그러니까 이제 확실히 말해 둬야지.’

진하는 하예진을 둔 채 길드장을 찾아갔다.

그는 이미 일찌감치 일어났는지 완전무장을 한 채로 패스파인더와 말을 나누고 있었다.

“똑똑.”

진하가 입으로 노크 소리를 내며 길드장을 불렀다.

“잠시 이야기 좀 하죠?”

“그러지.”

길드장이 패스파인더를 내보냈다.

“왜 그러지?”

“오늘부터는 대형 구조를 좀 바꾸죠?”

“어떻게 말이지?”

갑작스러운 그의 말에 인상이 찌푸려지긴 했지만 길드장은 일단 이유를 물었다.

이유 없이 그렇게 말할 리 없었으니까.

“각 직군끼리 뭉쳐 있지 말고 모두 섞으세요. 이왕이면 근거리에 원소 계열을 1대 1로.”

“그럼 효율이 좋지 않아.”

진하의 말대로라면 각 직군의 능력을 살릴 수 없었다.

심지어 전술적으로도 잘 취하지 않는 대형이었다.

“그건 아는데, 아마 오늘이나 내일 중으로 필요한 대형이거든요.”

진하의 기억이 제대로라면 아마 곧 그 지역에 도달할 때가 되었다.

진짜 부패된 지역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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