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가진 SS급 문방구-9화 (9/202)

#009

“초반부터 철저하네.”

진하는 길을 따라 보이는 몬스터의 시체들을 지나며 길드의 성격을 추측했다.

거의 갈린 듯 난도질당한 사체.

D급 몬스터에게 협공한 흔적이었다.

D급에게까지 협공을 한 거로 보아 안전 지향을 추구하는 길드인 듯싶었다.

나쁘지 않은, 아니 진하의 입장에서는 좋은 길드였다.

그만큼 천천히 나아갔을 테니, 따라잡기 어렵지 않을 듯싶었다.

그러는 한편, 사체들을 모두 확인한 그는 혀를 찼다.

“에휴, 이러니 난이도를 착각하지.”

던전의 난이도를 결정하는 요소는 총 3가지였다.

초입부에서 나타나는 몬스터의 종류와 숫자, 등급.

3시간 거리에 해당하는 몬스터가 대부분 C급이면 C급부터 시작, 그 후 나타나는 숫자와 종류에 따라 최대 한 단계 위의 등급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진하의 눈에 보이는 몬스터들은 거의 다 D급 중위, 숫자는 적음.

이것만 봐도 던전의 난이도는 아무리 높게 잡아도 C급 중위였다.

‘C급 하위라 판단할 만하네.’

가뭄에 콩 나듯 보이는 C급 몬스터 빈도까지 생각하면 누구나 C급 하위라고 판단할 수밖에 없는 던전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이 던전의 급수는 C급 최상위, 기아라는 요소까지 포함하면 B급 중위로 봐도 무방했다.

진하는 몬스터 사체들을 뒤로한 채 계속해서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한참을 걷다 보니 갈림길이 나타났다.

왼쪽과 오른쪽으로 갈라진 통로, 왼쪽 통로 벽에 표식이 그려져 있었다.

“전형적인 방법이네.”

딱 봐도 좌선법을 행하려 하는 것 같았다.

전형적이고 일반적인 미로에서 쓰기 좋은 방법.

그만큼 안 통하는 미로도 있긴 하겠지만 나쁘지 않은 방법이었다.

가장 안정적으로 던전을 공략하면서 많은 몬스터의 사체와 마석을 수확할 수 있는 방법이니까.

“다만 여기서는 최악이고.”

모든 음식물이 부패하는 이곳에서는 이 방법은 최악이었다.

이곳의 공략 방법은 최단 거리를 통한 속공법이었다.

비록 그게 패스파인더를 혹사하는 결과를 내더라도 어쩔 수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절대 공략하지 못하니까.

키륵, 키륵.

그때, 오른쪽 통로에서 몬스터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아마 피 냄새를 맡고 온 몬스터인 듯했다.

스르릉.

진하는 철제 환도를 꺼냈다.

시험 때 무기가 부서지고 새로 구입한 무기.

그냥 보급형 무기였지만 나쁘지 않았다.

어차피 무기에 의존하는 타입도 아니었으니까.

“노움이네.”

곧이어 나타난 난쟁이들.

타락한 흙의 요정이라 불리는 노움이었다.

특징은 완력. 요정이라는 이름과 다르게 마법을 쓰진 못하지만, 완력은 C급에 준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만큼 약점 또한 존재했다.

타닷!

진하가 빠르게 노움을 향해 달렸다.

가각!

가가각!

순식간에 칼이 노움 두 마리의 목을 베며 지나갔다.

그 모습에 순간 멈칫한 나머지 노움들.

“느려.”

퍼퍽!

노움이 반응하기도 전에 짧은소리와 함께 노움의 머리에 하나씩 단검이 꽂혔다.

“후우…….”

서걱!

짧은 전투를 끝낸 진하가 단검이 박힌 노움들의 목을 자른 뒤 몸속의 마석을 회수했다.

“스피드와 반사신경 C, 나머지 D.”

게이트 입장 후 능력치 상승까지 포함한 현재의 능력 수준이었다.

입맛이 썼다.

나름대로 훈련을 했는데 아직도 이 정도라니.

진하가 손을 쥐었다 폈다.

아직도 머리와 몸의 괴리감이 심했다.

그래도 어느 정도는 나아졌지만, 아직도 몸을 움직일 때 답답한 느낌이 강했다.

느리기로 유명한 노움들을 한 번에 겨우 2마리밖에 못 베다니.

회귀 전이라면 한 번에 5마리 모두 벨 수 있었을 텐데…….

“아, 안 되는 거 괜히 생각하지 말자.”

신체 능력이야 능력을 키우다 보면 점차 늘어나게 돼 있었다.

지금 급한 건 공략팀을 쫓아가는 것이었다.

진하는 칼에 묻은 모래를 털고 꽂은 뒤 다시 걸음을 재촉했다.

* * *

“이제 어떻게 할 거야!”

한 남자가 소리쳤다.

그 남자의 반대편에 서 있던 남자, 길드장이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예상외의 문제이긴 하지만 괜찮습니다.”

“식량이 썩는데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야!”

“던전 입구로 식량 조달팀 보냈습니다. 물은 정화하면 마실 수 있고요.”

“그 소리가 아니잖아! 내가 불편하다고, 내가!”

“죄송합니다.”

“후우, 똑바로 해. 제대로 하지 않으면 아버지한테 말할 줄 알아.”

숨을 몰아쉰 남자가 자신의 텐트로 들어갔다.

남자가 들어가고 멀리서 그 모습을 바라보던 부길드장이 길드장에게 다가갔다.

“길드장, 괜찮으세요?”

“괜찮다.”

“죄송합니다. 제가 괜한 짓을 해서…….”

“아냐, 나뿐만 아니라 모든 길드원들이 동의했던 일이기도 해.”

길드장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 문제는 부길드장의 잘못이 아니었다.

그는 그저 대기업의 의뢰를 받아 온 것뿐, 공략에 참가하는 길드원들 모두 동의했던 일이었다.

다만, 텐트에 들어간 남자, 한태성의 인성이 문제였던 걸 몰랐을 뿐이었다.

“그것보다 식량은 어떻게 됐나?”

“아직 건조 제품은 멀쩡합니다. 하지만 그 외는 모두 먹을 수 없을 정도로 썩었습니다.”

“건조식품은 언제까지 버틸 것 같나?”

“속도로 봐선 길어야 2시간입니다.”

“일단은 모조리 먹으라 해, 어차피 버릴 거 빠르게 먹는 게 나아.”

“네.”

“그리고 패스파인더에겐 미안하지만 조금 무리하더라도 지름길을 찾아달라고 부탁하고.”

원래 목적은 미로 전체를 싹 훑는 게 목적이었지만 이렇게 된 이상 그냥 최단 거리를 찾아 공략하는 게 나을 듯했다.

수입이 줄어들긴 하겠지만 어차피 의뢰비가 두둑하니까 아주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었다.

“그럼 1시간 뒤에 팀장 회의를 하도록 하지.”

“예.”

길드장은 그 말을 끝으로 자신의 짐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길드장이 떠나고 남은 부길드장이 멀리서 지켜보고 있던 팀장들에게 눈짓했다.

멀리서 몰래 지켜보고 있던 팀장들이 고개를 끄덕이곤 각자의 팀원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모든 명령을 내린 부길드장은 저 멀리 짐꾼들과 함께 있는 하예진에게 다가갔다.

“예진 씨.”

“부길드장님.”

“못난 꼴 보여드려서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여러분 잘못이 아니잖아요.”

하예진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런 던전에서 갑질하는 저 남자가 이상한 거지, 길드장이나 부길드장의 잘못이 아니었다.

“그래도 미안해요. 공략도 쉬운 거라고 말했는데.”

“아뇨, 저 진짜 편해요! 부길드장님이 많이 배려해 주시고 계시잖아요.”

“하하,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감사하네요.”

부길드장이 멋쩍은 듯 머리를 긁었다.

“예진 씨도 건조된 식품부터 어서 드세요. 식량 조달이 다시 오긴 하겠지만 아마 하루 정도는 굶어야 할 수도 있어요.”

하예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당초에 얘기했던 거랑 다르게 아마 빠르게 던전을 공략할 거예요. 그래서 아마 예진 씨가 나서는 것도 적어질 듯싶네요.”

“괜찮아요, 저는 신경 안 쓰셔도 돼요. 애초에 D급인 저를 C급 던전에 끼워 주신 것만 해도 감사한 일이에요.”

“그렇게 말해 줘서 고마워요. 그럼 저는 준비해야 할 게 있어서 먼저 가도록 할게요.”

“네.”

부길드장이 멀어지고 혼자 남은 하예진이 육포를 꺼내 물어뜯었다.

식량이 모조리 썩어 버리기 전에 먹어 치워야 했다.

아니면 쫄쫄 굶을 테니까.

“아, 그건 아닌가?”

파우치에 있는 쫀드기를 생각하면 굶지는 않을 듯했다.

식량 체크를 할 때 쫀드기는 썩지 않는 걸 확인했으니까.

아마 아티팩트라서 썩지 않는 듯한데, 그걸 생각하면 크게 굶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래도 조금 미안한데…….”

양이 얼마 안 돼서 남이랑 나누기도 어려웠고 아티팩트라 알릴 수도 없었다.

혼자 먹는 게 양심에 찔리긴 했지만 어쩌겠는가.

방법이 없었다.

“진하한테는 나가면 맛난 거나 사 줘야겠네.”

하예진이 쫀드기를 뺏었던 진하의 머리를 상상 속에서 쓰다듬으며 질겅질겅 마저 육포를 씹었다.

“근데 왜 이렇게 시끄럽지?”

하예진이 저 멀리 뭉쳐 있는 사람들에게 시선을 던졌다.

아까부터 한두 사람씩 몰리더니 지금은 거의 떼거리로 몰려 있었다.

“또 무슨 일 생겼나?”

호기심에 하예진이 사람들이 모인 곳으로 다가갔다.

웅성웅성.

가까이 갈수록 커지는 목소리.

“야, 쟤들 왜 벌써 오냐?”

“무슨 일 난 거 아냐?”

심각한 표정으로 얘기하는 길드원들을 보며 하예진이 고개를 갸웃했다.

심지어 어떤 길드원은 길드장 쪽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뭐지?’

하예진은 시야를 가로막는 사람들을 헤치며 지나갔다.

겨우겨우 사람들 사이로 빠져나오자마자 보인 것은 식량을 조달하러 떠났던 조달팀이었다.

“벌써 왔어?”

가만히 서 있는 그들을 보며 하예진이 경악했다.

아직 조달팀이 떠난 지 1시간밖에 안 됐는데 돌아오다니…….

“저, 저기 무슨 문제 생긴 거예요?”

하예진이 조달팀 중 한 명에게 물었다.

무슨 특별한 일이 생긴 게 아니라면 벌써 돌아올 리 없었다.

중간에 미로가 바뀌거나 몬스터들이 가로막은 게 아닌 이상 돌아올 사람들도 아니었다.

온갖 부정적인 생각들이 머릿속을 헤집어 놨다.

“그게…….”

“여어~!”

입을 열려는 조달팀 뒤로 팔 하나가 튀어나왔다.

열심히 흔드는 팔.

툭.

하예진이 씹던 육포를 떨어트렸다.

“네가 왜 여기서 나와?”

그녀가 멍하니 손을 흔드는 진하를 바라봤다.

‘저놈이 왜 여기에 있지? 문방구에 있어야 하는 거 아냐?’

“뭐야, 보자마자 하는 말이 그게 다야? 안 반가워?”

씨익 웃으며 다가오는 진하.

그 모습에 그녀가 다시 한번 물었다.

“아니, 네가 왜 여깄냐니까?”

“그야 네가 있으니까.”

실없이 대답한 진하.

그의 말에 하예진은 뒤통수가 당기는 걸 느꼈다.

허락되지 않은 외부인이 던전에 들어오면 극심한 처벌을 받는다.

그런데 저놈은 그것도 모르고 지금 헤실거리고 있었다.

“야 이……!”

터업!

진하가 소리치려는 하예진의 입을 막았다.

“워워, 너랑 얘기는 잠깐 뒤에 하자고.”

진하는 그렇게 말하고 하예진의 뒤를 바라봤다.

그곳에는 언제 왔는지 길드장이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자네는 누구지?”

차갑게 묻는 길드장.

진하는 그를 보며 살갑게 말했다.

“반갑습니다, 예진이 친구 김진하라고 합니다.”

“지금 그런 걸 물은 게 아닐 텐데?”

길드장이 딱딱한 표정으로 말을 했다.

현재 이곳은 던전의 안이었다.

심지어 공략 중인 곳이었다. 그런 곳에 허락받지 않은 외부인이 들어오다니, 이건 공격받아도 할 말이 없는 사건이었다.

“그리고 자네들은 뭘 한 건가?”

길드장이 뒤에 서 있는 조달팀을 쏘아봤다.

식량을 구하라고 보냈더니 외부인과 같이 돌아왔다.

외부인을 발견했으면 제압을 하든, 얘기하든 해서 던전 입구로 돌려보냈어야지 같이 돌아오다니 뭐 하는 짓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너무 뭐라 하지 마세요, 이분들도 어쩔 수 없었으니까요.”

진하가 그들을 변호하며 말했다.

“자네는 잠시 빠지게. 자네에 대한 처우는 나중에 얘기하도록 하지.”

길드장이 조달팀을 바라봤다.

길드장의 시선을 받은 조달팀 중 한 명이 겨우겨우 입을 열었다.

“길드장님…… 게이트 입구가 폐쇄되었습니다.”

“거짓말을 할 생각은 말아라.”

여기서 던전 입구까지 직선으로 최소 2시간 이상 걸리는 거리였다.

1시간 만에 돌아온 조달팀이 아무리 빨리 달려 갔다 와도 불가능한 거리였다.

“진짜예요.”

옆에 있던 진하가 말을 거들었다.

“자네는 빠지라고 했을 텐데?”

“우선 이것부터 좀 보시죠?”

진하가 어느새 꺼내 든 핸드폰의 영상을 재생했다.

그곳에는 진하가 던전 포탈을 두드리는 모습이 나왔다.

<둥, 둥, 둥~>

마치 막이라도 씐 듯 출렁이는 포탈, 심지어 빨간색으로 변해 있었다.

“참고로 이건 헌터 북 어플로 찍은 영상이에요. 조작 불가능한 거 아시죠?”

“게이트 폐쇄…….”

길드장이 신음 소리를 냈다.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에 머리가 아팠다.

‘여기가 C급 상위 던전이라고? 잠깐 그럼 식량 조달은?’

온갖 생각이 휘몰아쳤다.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

“부길드장, 당장 회의한다. 팀장들에게 모이라고 해.”

“네.”

“잠깐만요.”

진하가 움직이려는 둘을 붙잡았다.

“자네는……. 하아, 일단 친구랑 같이 있게. 얘기는 나중에 하지.”

“회의해서 어떻게 하시려고요?”

“뭐?”

진하의 말에 길드장이 황당한 표정으로 진하를 바라봤다.

현재 진하의 신분은 무단 침입자였다

하지만 당장 급한 일도 아니기에 넘어갈 뿐.

당사자도 그걸 알 텐데 뭐 하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게이트 폐쇄가 무슨 뜻인지 모르지 않잖아요. 결국, 회의해 봐도 던전 공략이랑 식량 문제 아니에요?”

길드장이 조달팀을 쏘아봤다.

진하가 이걸 안다는 것은 조달팀이 사정을 얘기했다는 소리였다.

“네, 생각하는 그거 아니고요. 저 스스로 알아냈습니다.”

길드장의 생각을 읽은 진하가 말했다.

“그래서 뭐 하자는 거지?”

안 그래도 짜증 난 길드장의 이마에 핏줄이 돋아났다.

참을성이 바닥나는 게 느껴졌다.

지금 죽고 싶어서 저러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의 생각과는 달리 진하는 아주 여유로운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다른 건 모르겠는데 식량 문제, 그건 제가 해결해 드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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