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8
진하는 멍하니 눈앞에 보이는 창을 바라봤다.
그리고 갑자기 멍하니 있는 진하의 모습에 하예진이 그를 이상하게 쳐다봤다.
“뭐야, 왜 그래?”
“어, 그게…….”
어색하게 웃는 진하.
그 모습에 하예진의 표정이 험악해졌다.
“설마…… 떴냐?”
“허…… 참, 이게 설마 진짜로 뜨다니…….”
“야! 뒤질래!”
와락!
하예진이 진하에게 헤드록을 걸었다.
“그렇게 쉬운 일을! 지금까지 뭐 했길래 안 했어!”
“켁! 켁! 항복, 항복!”
“그냥 죽어! 죽어 버려!”
진하가 열심히 바둥거리며 예진의 팔을 쳤다.
사실 빠져나오려고 하려면 언제든지 할 수 있지만 그랬다간 더욱 큰 고통이 따라올 것 같아 얌전히 항복만 외쳤다.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헤드록을 푼 예진이 씩씩거리며 말했다.
“당장 읽어.”
“넵!”
진하가 재빠르게 도움말을 열었다.
도움말에는 칭호에서 봤던 내용을 포함한 몇 가지 규칙 및 제한사항 등이 쓰여 있었다.
진하는 빠르게 도움말을 훑어 내려갔다.
그리고 도움말 끄트머리에서 그가 원하던 글을 찾을 수 있었다.
<문방구의 기능을 제한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1. 인식 불가.>
<2. 아티팩트화 해제.>
내용을 확인하자마자 진하가 입을 열었다.
“아티팩트화 해제.”
띠링!
<차원 문방구가 일반 문방구로 변경됩니다. 다음 변환 가능 시간 24:00>
겉으로 변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진하는 옆에 있는 쫀드기를 하나 들었다.
하지만 아무런 문구도 뜨지 않는 쫀드기.
하예진에게 다시 뜯어진 쫀드기를 뺏었다.
“정보 확인.”
<가장 대표적인 불량식품. 매우 단단하고 질긴 게 특징이다.
불에 구워 먹어야 제맛이다. 먹으면 배고프진 않을 것 같다.
주의. 잘못 씹으면 턱이 나갈 수 있다.>
“이미 산 것들은 해제랑 관계 없이 사용할 수 있네.”
“뭔데? 된 거야?”
진하는 아무 말 없이 새 쫀드기를 건넸다.
예진은 쫀드기를 받아 들고 이리저리 살피다가 봉지를 뜯어 먹어 봤다.
“오! 된 거네?”
“응, 됐어.”
“에휴, 너 내가 없었으면 어떻게 될 뻔했냐 진짜.”
“??”
이걸 자기 공으로 한다고?
아니, 물론 얘기하다가 얻어걸린 거긴 한 거지만…….
“그러니까 네가 가진 쫀드기 하나만 내놔.”
하예진이 진하에게서 쫀드기 하나를 뺏어 흔들었다.
“그거? 그걸로 되겠어?”
“어. 이거 괜찮더라. 비상식량으로 딱일 것 같아. 이거 얇게 찢어 먹으면 한 일주일은 버티겠더라.”
“정말로 그걸로 돼?”
“응.”
진하는 아무 말 없이 주머니에 쫀드기를 넣는 하예진을 바라보았다.
피식.
그러고 보니 언제나 이랬다.
생색은 많이 내지만 정작 원하는 건 크게 없는 모습.
사실 이 비밀을 안 시점부터 어떤 수를 써서라도 좋은 아티팩트를 얻으려 하는 게 정상일 텐데.
쫀드기만 가져갔다.
아마 가져간 것도 그냥 생색내려고 가져간 걸 테고.
“아무튼, 고맙다. 덕분에 한시름 놨다.”
“고마우면 잘해. 너 때문에 내일 중요한 던전 공략 있는데도 달려왔다.”
“던전 공략?”
“응, 이번에 새롭게 찾은 C급 던전인데 저번에 같이 팀을 이뤘던 아는 분이 자기 길드 공략팀에 같이 끼워 주겠다 해서 받았지.”
“C급 던전? 너 D급이잖아.”
“D급도 심심찮게 나오는 안전한 하위 던전이래. 나야 C급 던전도 경험하고 좋은 거지. 아 맞다 너 던전에 대한 정보 알고 있다 했지?”
“던전 이름이 뭔데?”
“C―11922 던전. 이름은 아직 안 붙었어.”
“으음. 그걸로는 모르겠는데. 공략 길드 이름은?”
“사족오 길드.”
못 들어 본 길드였다. 아마도 소형 길드이거나 갓 만들어진 신생 길드인 듯싶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생각나는 던전이 없었다.
이름이 아닌 번호가 붙은 상태라 기억하는 게 더 이상하기도 했다.
‘공략 길드도 소형인 거 보면 딱히 신경 안 써도 되나?’
그가 모든 걸 알고 있는 건 아니었으니까.
그래도 기억에 없는 걸 보면 그냥 무난한 던전인 듯싶었다.
정말 쉽게 공략할 수 있는 던전이라.
하예진에게는 좋은 기회였다.
D급이 자주 나온다 해도 C급 던전을 공략해 본다는 것만큼 좋은 기회는 없으니까.
“그럼 지금 여기 있으면 안 되는 거 아냐?”
“안 그래도 저녁 6시에 던전 공략 브리핑 있어.”
“어? 그럼 이제 곧 가야 하네?”
현재 시각이 오후 3시인 걸 생각하면 길어도 2시간 뒤에는 가야 했다.
“그럼 뭐 커피라도 마실래? 요 앞에 새틀벅스 생겼던데.”
“콜, 좋아. 근데 거기 커피 맛없지 않냐?”
“아메리카노만 맛없어. 다른 건 맛있다.”
“오케이 케이크까지 쏴라.”
“콜.”
* * *
띠띠띠띠!
띠띠띠띠!
“으음…….”
탁!
알람을 끄고 시간을 보니 오후 12시였다.
긁적긁적.
“으…… 머리 아파.”
어제 확인해 보겠다고 맥주 사탕을 먹는 게 아니었다.
불안감도 풀렸겠다 그냥 미친 척하고 두 개를 모조리 먹었더니 숙취가 장난 아니었다.
설마 사탕 두 개로 숙취가 올 정도로 취할 줄이야.
심지어 맛도 달달해서 끝없이 들어가 버렸다.
“하~암! 점심은 짬뽕이나 시켜 먹을까.”
가장 먼저 핸드폰을 열고, 자는 사이에 온 메시지와 알람을 확인했다.
십여 개의 알람으로 가득 찬 핸드폰.
가장 먼저 게임 알람 등을 걸러냈다.
그러자 남은 건 총 3가지 알람.
공과금 납부 알림, 헌터 북 어플 정보 알람, 마지막으로 하예진의 메시지.
가장 먼저 하예진의 메시지를 열어 봤다.
<야, 나 이제 들어간다? 누나 다녀올 테니 맛난 거 준비해 놔!>
“나한테 돈 맡겨 놨나. 맨날 다녀오면 맛난 거 사래.”
시간을 보니 이미 던전에 들어가고도 남은 시간이었다.
전파가 닿지 않을 테니 답장은 보내도 소용없겠고…….
다음으로 헌터 북 어플을 열었다.
<신규 던전 및 아티팩트가 업데이트됐습니다.>
하루마다 정기적으로 시행되는 업데이트였다.
헌터 협회에 등록된 정식 아티팩트와 던전에 대해 정리해 놓은 어플.
이번 업데이트는 던전 이름에 대한 업데이트뿐이었다.
아티팩트가 업데이트됐다면 평소처럼 구경이라도 할 텐데.
딱히 들여다볼 것도 없어 진하는 어플 종료 버튼으로 손을 가져갔다.
“아니다, 그거나 확인해 볼까?”
갑작스럽게 든 생각.
하예진이 들어간다던 던전이 생각났다.
알아서 잘하고 오겠지만 혹시 몰랐다.
던전은 둘째치고 길드 중에는 질이 나쁜 길드가 있는 경우도 있었다.
어제 하예진이 괜찮은 길드라고 얘기하긴 했지만, 혹시 몰랐다.
“흠…… 사족오 길드였지?”
진하는 사족오 길드를 검색했다.
다행히 신생 길드는 아닌지 정보가 다양했다.
내용을 살펴본 진하는 결론을 내렸다.
“평범하네.”
적당히 욕과 칭찬이 있는 길드였다.
혹시나 전리품이 떼인 경우가 있나 싶었지만 욕한 경우도 별거 없었다.
심한 문제가 생긴 경우가 아예 없는 건 아니었지만 그 주범으로 지목된 헌터들도 이미 퇴출된 상태였다.
소형 길드라 그런지 던전 공략 횟수가 낮은 건 흠이긴 했지만 이건 어떤 소형 길드도 마찬가지라서 패스했다.
“그러고 보니 오늘 공략한다는 던전 이름 붙었나?”
진하는 사족오 길드가 오늘 공략하는 던전을 찾아봤다.
다행히 딱 하나만 공략 정보에 써 있었다.
“이런 미친!”
진하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부패의 미로, 6개월이나 공략되지 않은 최악 중 하나인 대형 C급 던전.
그곳의 가장 무서운 점은 몬스터도, 함정도 아니었다.
기아였다.
부패의 미로의 특성은 특정 지역을 들어서면서 시작되는 부패 현상이다.
그로 인해 음식과 물이 썩어서 섭취가 불가능해진다.
설상가상 부패 지역에 발을 디디면 던전 포탈에도 락이 걸려 출입도 불가능해진다.
미래에서는 다섯 개의 길드를 잡아먹은 최악의 던전.
진하는 빠르게 핸드폰을 들었다가 내려놓았다.
“아, 미치겠네. 이걸 어떡하지?”
협회에 전화해 봤자 믿어 줄 리 없었다.
그렇다고 회귀에 대해 까놓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아씨 왜 이걸 기억하지 못했지?’
진하는 제자리에서 왔다 갔다 하며 머리를 굴렸다.
‘그때 공략이 어떻게 진행됐더라?’
분명 A급 이상의 헌터들이 모여 공략했던 거로 기억한다.
식량이 부족해서 속공으로 던전을 돌파했고, 그나마 물은 정화 능력을 이용해 섭취했다고 들었다.
아니, 미끼용 저주가 걸린 식량이나 버프 음식 같은 경우는 잘 안 썩었다고 기억한다.
“쫀드기!”
기억이 맞다면 쫀드기는 썩지 않는다.
아티팩트는 마법이 걸린 물품이니까.
진하가 재빠르게 창을 열었다.
삐빅.
<차원 문방구 변경 가능까지 남은 시간 2:42>
“아씨! 급해 죽겠는데.”
출입구가 언제 닫힐지 몰랐다.
그런데 변경까지 2시간 42분이라니!
“후우, 진정하자. 진정. 릴렉스.”
아직 길드가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게이트가 닫히려면 아직 시간은 많이 남았다.
그렇다면 지금 해야 할 일은 할 수 있는 모든 준비를 해야 하는 거였다.
진하가 전화를 들었다.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대부업체로 전화하는 거였다.
* * *
다다다닥!
“비켜요, 비켜!”
진하가 자신 앞에 서 있는 남녀에게 소리쳤다.
둘은 그 소리에 깜짝 놀라 급히 좌우로 몸을 피했다.
“죄송합니다아!”
재빠르게 벌어진 공간을 통과한 진하는 2층을 향해 미친 듯이 돌진했다.
벌써 시간은 5시가 넘었다.
길드가 들어간 지 5시간이라는 소리였다.
몬스터를 처치하면서 천천히 들어갔다 하더라도 이미 꽤 많이 나아갔을 게 분명했다.
과거 부패의 미로가 입장하고 반나절에서 한나절 안에 닫혔다는 걸 생각하면 지금도 아슬아슬했다.
‘C―11922, C―11922’
2층에 도착한 진하가 미친 듯이 달리며 던전 앞에 걸린 팻말들을 살펴봤다.
아직 바뀐 지 하루도 안 됐으니까 이름보단 번호로 팻말이 걸려 있을 게 분명했다.
“찾았다!”
마침내 그의 눈에 C―11922라 적힌 팻말이 들어왔다.
그곳으로 향하는 통로는 두 명이 하품하며 보초를 서고 있었다.
사족오 길드원인 듯했다.
진하는 미친 듯이 그곳을 향해 달려갔다.
“어, 어! 뭐야!”
“이봐, 멈춰!”
달려오는 진하를 발견한 두 명이 깜짝 놀라 무기를 꼬나쥐었다.
하지만 진하는 그 말을 무시한 채 그대로 돌진했다.
어차피 소형 길드에서 파견한 보초는 아무리 잘나 봐야 D급.
재치는 것쯤 순식간에 가능했다.
“멈추라고!”
보초를 서던 한 명이 무기를 휘둘렀다.
진하는 재빠르게 슬라이딩하며 무기를 피한 뒤 그대로 보초를 통과했다.
“어딜!”
다른 한 명이 통과하는 그에게 검을 내리쳤다.
스르륵.
재빠르게 단검을 꺼낸 진하가 검을 비틀어 흘린 뒤에 보초에게 돌진했다.
목을 향해 다가오는 단검에 놀란 보초가 소리를 지르며 눈을 감았다.
다다다닷!
하지만 들려오는 건 뒤로 지나가는 진하의 발소리뿐이었다.
“뭐 해! 협회랑 길드에 연락해!”
제일 먼저 공격에 실패했던 보초가 동료에게 윽박지르며 진하를 따라갔다.
이대로 저 침입자를 그냥 보내면 그들의 퇴출은 확정이었다.
심지어 그렇게 퇴출당한다면 다른 길드에서도 받아 주지 않을 게 분명했다.
한편, 진하는 뒤에서 멈추라고 소리치는 남자의 말을 무시하며 계속해서 달렸다.
어차피 설득시킬 방법도 없었다.
뒤처리는 나중에 생각해야 했다.
우우웅!
저 멀리 던전 입구가 보였다.
푸르게 빛나는 포탈.
겉에서부터 서서히 빨갛게 변하고 있었다.
‘입구 폐쇄!’
저 푸른 부분이 완전히 빨갛게 변하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일어난다.
진하는 이를 악물고 다리에 힘을 더했다.
지금도 빠르게 달리고 있었지만 이대로는 시간 내에 도착하지 못한다.
“으아아아!”
더 빠르게, 더 빨리!
다리가 찢어져도 좋았다.
포탈에만 들어갈 수 있으면 된다!
그러자 마법처럼 아주 조금씩 빨라지는 진하.
거의 도착한 진하는 90% 이상 빨갛게 변한 포탈을 향해 몸을 날렸다.
휘익!
아슬아슬하게 진하의 몸이 포탈을 통과했다.
그와 동시에 쿵 소리와 함께 완전히 빨갛게 변한 포탈.
뒤따라오던 보초는 그 모습에 걸음을 멈춰 세웠다.
“이, 이게 뭐야!”
하얗게 안색이 질린 그가 재빠르게 밖으로 뛰쳐나갔다.
협회와 길드에 빠르게 알려야 했으니까.
폐쇄 게이트는 같은 급의 상위 던전임을 알리는 또 다른 표식이기도 했으니까.
* * *
털썩.
“허억! 허억! 허억!”
겨우 게이트 안으로 들어선 진하가 숨을 몰아쉬었다.
아주 조금만 늦었어도 게이트 입장이 불가능할 뻔했었다.
띠링!
<신체 강화가 상승하였습니다. 좀 더 민첩하게 움직일 수 있습니다.>
곧이어 떠오른 메시지.
‘그동안 운동으로는 죽어도 안 오르더니…….’
탁탁!
호흡이 진정된 진하가 바지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며 던전을 바라봤다.
길게 늘어져 있는 길과 사방을 가로막은 벽.
미래에 뉴스에서 알려 주었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이건가?”
그의 눈에 벽에 하얗게 그려진 기호가 보였다.
길드가 미로를 통과하면서 표시한 자국이었다.
이걸 따라가면 예진이가 있을 게 분명했다.
가방을 고쳐 멘 진하는 표식을 따라 몸을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