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
하예진이 손을 흔들며 진하에게 다가왔다.
진하는 그녀를 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서 와, 오느라 힘들었지?”
“아니? 우리 집에서 크게 먼 곳도 아니어서 그리 힘들지 않았어. 근데 왜 불렀어?”
그녀의 말에 진하가 입맛을 다셨다.
이걸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말해야 할까.
과연 그녀가 자신의 말을 믿어 줄지 걱정됐다.
하지만…….
‘예진이가 아니라면 아무도 믿을 수 없어.’
게이트가 생긴 그날, 동시에 가족을 잃고 같이 커 온 그녀였다. 누구보다도 소중하고 가족 같은 사람이었다.
그랬기에 그녀가 헌터가 되겠다고 했을 때 진하는 그녀를 따라 헌터를 지망했다.
누구보다도 믿을 수 있고, 그녀가 하는 말이라면 어떤 말이든 자신 또한 믿을 자신이 있었다.
그런 그녀가 자신을 믿지 못한다?
그렇다면 그녀 이후로 다른 사람에게 이런 사실을 말한다 해도 믿을 사람은 없다는 뜻이나 다름없었다.
“어, 그래. 근데 진짜 문방구네? 너 헌터 때려치우게?”
“그것도 들어가서 이야기해 줄게.”
진하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런 진하의 모습에 하예진은 고개를 갸웃했다.
던전에 들어가서 다쳐서 돌아오더니 문방구로 이사를 하지 않나, 심각한 표정을 짓지 않나. 평소에 그녀가 알던 진하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진짜 무슨 일 있나?’
생각해 보면 진하가 항상 그녀를 부를 때면 고민이 있거나 힘든 일이 있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기쁜 일이 있을 때도 부르긴 했지만 지금 표정을 보아하니 그건 아니었다.
오히려 밝지만 묘하게 기분이 가라앉아 보였다.
마치 뭔가를 고민하고 생각하는 듯한 표정.
‘큰일은 아니어야 할 텐데.’
드르륵.
문을 열고 들어가는 진하의 뒷모습을 보며 하예진은 마음을 다잡았다.
무슨 말을 하더라도 다 들어주기로.
문방구 안으로 진하가 들어가고 곧이어 하예진이 따라 들어왔다.
진하는 곧바로 뒤돌아서서 그녀를 바라봤다.
“예진아.”
“말해.”
“어, 어?”
“네 표정만 봐도 알겠다. 무슨 고민인데?”
그녀의 말에 진하가 얼굴을 매만졌다.
그렇게 티가 나나?
“어, 그게 그러니까 놀라지 않아야 해?”
“알겠어. 걱정 말고 이야기해.”
“진짜 헛소리하는 거 아니고, 믿어 줘야 한다?”
“알겠다니까? 도대체 무슨 일이길래 이렇게 뜸을 들이는 거야?”
진하가 숨을 크게 들이켰다.
그리고 한마디 한마디 또박또박 말했다.
“여기 있는 거 다 아티팩트야.”
“……응?”
“여기 있는 거 다 아티팩트라고.”
하예진이 고개를 갸웃했다.
아티팩트? 내가 아는 그 아티팩트?
툭.
“흠…… 열은 없는데.”
진하의 이마에 손을 가져다 대고 열을 체크했지만 멀쩡했다.
겉으로 보기에도 멀쩡해 보였고, 그렇다면 다친 거로 인한 후유증은 아닐 가능성이 높았다.
뭐라도 잘못 먹었나?
“아씨! 진지하게 들어 준다며.”
진하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 말에 하예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 지금 진지해. 네가 어디 아픈 건지 아니면 문제가 있는 건지 찾는 거 안 보여?”
“아, 진짜라니까?”
진하가 소리치며 말하자 하예진이 한숨을 내쉬었다.
“하, 여기 있는 게 다 아티팩트라고? 말이 된다고 생각하니? 좋아 그건 믿는다고 쳐. 그럼 이건 그냥 가져다 쓰면 되는 거야?”
“아니, 구매해야 돼.”
“구매? 그럼 그냥 이렇게 꺼내서 쓰면?”
하예진이 옆에 있던 불량식품을 몇 개 집어 들었다.
그와 동시에 진하의 눈앞에 떠오르는 메시지 하나.
<하예진 고객이 아폴로 한 개, 맥주 사탕 두 개, 쫀드기 두 개를 구매하려 합니다.>
<포인트가 부족합니다.>
<대리 지불하시겠습니까? 거절 시 수명을 사용하여 포인트를 지불합니다.>
“대리 지불!”
진하가 다급하게 외쳤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고 하예진이 황당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지만 진하는 그런 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문방구 알바 김진하가 하예진의 포인트를 대리 지불하였습니다.>
<포인트가 감소합니다.>
<남은 포인트: 1,850>
순식간에 마석을 팔아 얻은 포인트 중 500포인트가 줄어버렸다.
“하아…… 멋대로 들면 어떡해!”
“아니, 왜 화를 내고 그…….”
띠링!
그 순간 하예진의 눈에 메시지창 하나가 떠올랐다.
<정보를 확인하시겠습니까?>
“어?”
그녀의 반응에 진하는 메시지창이 떠올랐음을 감지하고 말했다.
“내가 말했지, 진짜라고. 아무거나 하나 확인해 봐.”
“저, 정보 확인.”
하예진이 쫀드기 하나를 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내뱉었다.
그러자 작은 알림음과 함께 창 하나가 떠올랐다.
<가장 대표적인 불량식품. 매우 단단하고 질긴 게 특징이다.
불에 구워 먹어야 제맛이다. 먹으면 하루 종일 배고프진 않을 것 같다.
주의, 잘못 씹으면 턱이 나갈 수 있다.>
빠르게 좌우로 왔다 갔다 하며 창을 읽는 그녀의 눈.
모든 글을 읽은 그녀가 허탈한 표정으로 진하를 바라봤다.
“진짜였어?”
“그럼 진짜지, 거짓말이겠어? 그것들 다 줘 봐. 나도 뭔지 궁금하다.”
하예진이 넋 나간 표정으로 그에게 모든 불량식품을 넘겨주었다.
쫀드기 두 개, 아폴로 한 개, 맥주 사탕 두 개였다.
진하는 설명 창을 빠르게 훑은 뒤 입을 열었다.
“쫀드기는 식량이네.”
세 개 다 설명이 애매하긴 했지만 해석은 가능했다.
아폴로야 원래 알던 거고, 쫀드기는 식량인 것 같았다.
그리고 맥주 사탕.
<술 먹고 취하고 싶은 원념이 만들어 낸 괴작. 먹으면 탄산의 톡톡 쏘이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이걸 먹으면 진짜로 취할까?>
이건 진짜로 취하는 게 특징이겠지.
이런 특징을 가진 아티팩트까지 있을 줄이야.
진하는 확인도 할 겸 우선 쫀드기 하나를 먹어 보기로 했다.
찌익!
봉지를 뜯어 쫀드기의 일부분을 잡고 먹었다.
그러자 배고픔이 사라졌다.
‘이건 대규모 공략이나 장기 공략할 때 식량 대용으로 좋겠네.’
공략하면서 가장 힘든 점 중의 하나가 식량인데 이렇게 가볍고 간단하게 쓸 수 있는 식량이 있다면 공략이 더 쉬워질 듯했다.
대충 봐도 가판대에 몇 박스가 넘게 올려져 있었다.
이 정도면 몇 명이나 먹을 수 있는 양이야?
진하가 감탄하며 아직도 넋이 나가 있는 하예진의 얼굴 앞에서 손을 튕겼다.
딱! 딱!
“정신 좀 차려.”
“어? 어.”
진하의 말에 정신을 차린 하예진이 진하에게서 쫀드기를 뺏어 한 움큼 물어뜯었다.
“이건 말도 안 돼.”
허기가 사라지는 걸 느끼며 하예진이 중얼거렸다.
어떤 물품이라도 부르는 게 값인 게 아티팩트였다.
그런데 이렇게 쉽게 구할 수 있다니.
“이런 미친…….”
진하는 다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에게서 쫀드기를 받았다.
“그, 그럼 그때 그 끈끈이도?”
“어, 여기 물품이야.”
“하아…… 그럼 아까 소리친 건 뭐야? 대리 지불이라고 외쳤는데 그건 또 무슨 뜻이고.”
“안 그래도 그것도 설명하려 했어.”
진하가 긴장 때문에 젖은 손을 탁탁 털었다.
가장 큰 고비는 넘겼다.
이제부터 무슨 말을 하든 하예진은 웬만해서는 자신의 말을 믿을 게 분명했다.
“자, 처음부터 설명할 테니까 잘 들어. 그리고 설명 끊지 말고.”
“알았어. 얘기해 봐.”
“그게 어떻게 된 거냐면…….”
진하는 아주 천천히 말을 풀어 나갔다.
자신이 어떻게 과거로 돌아왔는지, 그리고 어떤 식으로 문방구를 맡게 되었는지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설명했다.
중간에 하예진이 뭔가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려는 모습이 보이기도 했지만, 그녀도 일단은 모두 듣고 얘기하려는 건지 다행히도 말을 끊지는 않았다.
그렇게 거의 30분에 걸쳐 진하가 모든 이야기를 다 털어놓자, 하예진이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머리를 부여잡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다 알아듣지는 못하겠지만 일단 정리하자면 너는 어떤 할머니가 이 문방구를 맡겨서 문방구 알바가 됐다?”
“응.”
“거기다가 뽑기로 끈끈이를 얻었고, 그걸 사려면 포인트나 수명이 필요하다는 거지?”
“맞아.”
“마지막으로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게이트에 존재하는 던전들에 대한 정보도 대략적으로 알고 있는 거고.”
하예진의 말에 진하가 고개를 갸웃했다.
왜인지 모른다고? 분명 어째서 던전 정보를 아는지 말하지 않았나?
“그건 말해 줬잖아.”
“뭘?”
“내가 던전에 대한 정보를 아는 이유, 과거에서 돌아와서 알게 됐다고.”
“그 정말 미안한데, 진하야. 이상하게 말하지 말고 똑바로 말해 줄래?”
“무슨 소리야. 나 회귀했다고.”
“아니, 한국어로 말하라고.”
그녀의 말에 진하가 눈을 껌벅였다.
진하의 모습에 그녀도 무언가를 눈치챘는지 입을 열었다.
“너, 나한테 하려 했던 말 다시 해 봐.”
“회귀.”
“@%@$%#라고 들려. 이상한 외계어 같아.”
그녀가 억지로 흉내 내는 음성을 들으며 진하는 혼란에 빠졌다.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이상한 언어가 그녀에게서 나왔다.
“잠깐만 그럼 이건?”
진하가 펜과 종이를 꺼내서 회귀에 대한 단어를 적었다.
그리고 혹시나 해서 과거로 돌아왔다는 걸 알릴 만한 단어, 돌려 말하기 등등 모든 걸 다 적어 보았다.
“미안한데 무슨 뜻인지 모르겠어. 전혀 모르는 글자야.”
그녀의 말에 진하가 이번에는 스무고개를 하듯 그녀에게 회귀를 떠올릴 수 있는 모든 말을 해 가며 그녀에게 설명하려 했다.
하지만 그녀는 전혀 진하의 설명을 이해하지 못했고, 회귀라는 단어 자체를 떠올리지도 못했다.
“하아…… 이게 뭔 일이야.”
뒤통수가 얼얼했다.
회귀와 관련된 모든 단어가 막혔다.
심지어 어떻게든 돌려서라도 설명하려고 했지만, 그녀는 아무것도 예상하지도 떠올리지도 못했다.
그녀 스스로도 뭔가 이상하다고는 느끼지만 무엇이 잘못됐는지는 알지 못하는 상태.
마치 채팅창의 금지어 같은 느낌이었다.
절대 말해선 안 되는 이야기.
“진하야, 네가 설명한 그 할머니. 너도 그 정체를 모른다고 했지?”
“응, 몰라. 어떤 존재인지. 어떤 사람인지도 전혀 몰라.”
진하의 말에 하예진이 턱을 쓰다듬었다.
“혹시, 신이 아닐까?”
“신? 하지만 신이라면 어째서 나한테 이런 걸 맡기고 간 걸까? 차라리 악마가 더 맞지 않을까?”
비용을 제대로 지불하지 못하면 수명을 뺏으니까 악마가 더 어울리기는 했다.
“그건 나도 모르겠어. 다만 악마든 신이든 엄청 신비한 존재라는 건 알겠네.”
“그건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리고 당장 여기를 어떻게 할지도 모르겠어.”
“여기?”
“아까 설명했잖아. 사려면 포인트나 수명이 필요하다고, 근데 나를 제외한 사람이 사면 죽을 수도 있어. 문을 안 열 수도 없고.”
“그건 문제긴 하네. 잠깐만 그럼 네가 못 산다는 부분을 내가 살 수 있는 거 아냐?”
예진이 벽에 걸린 물건 하나를 꺼내 들었다.
깜박깜박.
하지만 하예진이 집어 든 물건에는 아무런 창도 뜨지 않았다.
“벌써 며칠째인데 손님이 한 명도 안 왔겠냐?”
불행인지 다행인지 금지된 부분을 다른 사람이 사면 그냥 평범한 물건일 뿐이었다.
“그럼 가판대에 있는 거만 아티팩트 아냐?”
“그건 아냐.”
다른 부분을 잡고 사려고 하면 아직 조건이 안 된다는 메시지창이 뜨는 거로 보아서 분명 아티팩트인 건 맞았다.
“분명 나중에는 가판대 말고도 더 범위가 늘어날 거야. 근데 이걸 일반인이 사면 죽어 버릴 테고.”
“하아…… 답이 없네. 근데 이걸 나보고 해결해 달라는 거야?”
“해결이라기보단 좀 같이 생각하자는 거지.”
진하가 머리를 긁적이면서 말하자 하예진은 머리가 아파 오는 걸 느꼈다.
진하는 꼭 이런 일만 터지면 하예진을 찾고는 했다.
‘어휴, 이 화상. 그나저나 이걸 어떻게 해결하지?’
“잠깐만. 체류 기간은 시스템창으로 바꿀 수 있다며? 이거는?”
“시스템창에 그런 거 없어.”
“야, 이 밥팅아. 그건 당연하고. 다른 거 말하는 키워드 같은 거 없어? 설정이나 도움말이나.”
“야, 그게 말이 되냐? 아무리 시스템창이 있다지만 이게 무슨 게임도 아니고 그런 게 있을 리 없잖아.”
아무리 미쳐 돌아가는 세상이라지만 진짜 게임처럼 도움말 따위가 있진 않았다.
오로지 인류에게 허락된 건 상태창과 아티팩트 정보창 하나.
그런 게 있었다면 게이트 등급을 오판하는 일 자체가 생길 리 없었다.
물론 이 문방구가 그 예외이긴 하지만.
하예진도 그걸 알기에 진하를 빤히 바라봤다.
당장 시도하라는 무언의 압박.
그 모습에 진하는 하는 수 없이 말을 내뱉었다.
“설정, 매뉴얼, 인벤토리, 메뉴창, 알바 지침서, 도움말, 도와줘요, X빵맨.”
따악!
“제대로 안 해?”
“야, 솔직히 이게 말이 되…….”
띠링!
<문방구 도움말을 확인하시겠습니까?>
“냐?”
어라?
진하가 머리를 긁적였다.
긁적긁적.
이게 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