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가진 SS급 문방구-4화 (4/202)

#004

<색다른 맛으로 미각이 예민해졌습니다. 일시적으로 맛을 좀 더 잘 느낄 수 있습니다.>

“에이 씨!”

타악!

다 먹고 남은 꽁다리를 집어던진 진하는 빡침이 오는 걸 느꼈다.

고작 늘어난 게 미각 증가라니, 이래선 이딴 짓을 하는 의미가 없었다.

“후우, 후우, 진정하자. 다른 게 또 있겠지.”

암, 첫술부터 배부르면 그건 사기꾼이었다.

겨우 마음을 다스린 진하는 다시 한번 자세를 취한 뒤 막대 과자를 빨았다.

쪼오옥!

맨 처음보다는 쉽게 빨려 오는 내용물.

띠링!

<올바른 자세로 섭취했습니다. 일시적으로 기억력과 지능이 좋아집니다.>

상태 알림음이 울리기 무섭게 그의 머릿속에 한 가지 사실이 떠올랐다.

“어라? 그러고 보니 여기에 숨겨진 던전이 하나 있었지?”

미래에 1차 폭주가 일어나기 직전에 발견된 숨겨진 던전, 하지만 곧바로 일어난 게이트 폭주로 인해 크게 이슈가 되지 않았던 사실이었다.

진하도 그저 무심코 흘려 들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뿐만 아니었다.

진하가 살면서 듣거나 겪었지만 잊었던 기억들이 하나둘 떠오르기 시작했다.

“저, 적을 거!”

진하는 재빠르게 핸드폰을 꺼냈다.

그리고 메모장 어플을 켜 미래의 일들을 날짜별로 적기 시작했다.

이번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됐다.

지금처럼 세세하게 미래를 기억하고 있을 때 최대한 모든 것을 적어 놔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과거로 돌아왔다 해도 그가 바꿀 수 있는 건 한정적인 사건밖에 없을 테니까.

“3개월 뒤에 이 사건이 있었고, 그리고 4개월 뒤에는 누가 비리를 터뜨렸고…….”

진하는 시간을 들여 자신에게 도움이 될 만한 기록들을 적어 나갔다.

모든 걸 세세히 적을 수는 없어, 되도록 짧게, 하지만 보고 대략적인 것은 모두 기억할 수 있을 정도로 메모장을 채워 나갔다.

그렇게 한참의 시간을 들여 떠오르는 모든 것을 기록한 진하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띠링!

<미각이 원래대로 돌아옵니다. 기억력과 지능이 다시 낮아집니다.>

타이밍 좋게 사라지는 버프.

진하는 자신이 적은 내용을 바라봤다.

이걸 이용한다면 좀 더 쉽게 미래를 바꿀 수 있을 게 분명했다.

물론 정리가 좀 필요하겠지만.

그리고 이 계획의 가장 첫 시작은.

“자, 그럼 던전 보상을 가지러 가 볼까?”

처음 생각났던 던전의 보상을 가지러 가는 것이었다.

진하는 신나는 마음으로 2층 통로를 향해 걸어갔다.

1층의 끝, 2층 통로에는 존재하는 숨겨진 던전.

정확히는 함정을 통해 들어갈 수 있는 던전이었다.

심지어 1층 최초의 최하급 C급 던전이어서 뉴스에까지 실렸던 던전.

그만큼 1층과 2층에서 활동하는 D급 헌터들에게는 지옥 같은 던전이라 판단된 곳이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처음 상태라면 그렇다는 거지만.’

너무 많은 헌터를 잡아먹어서일까?

발견 당시 이미 공략된 던전이라는 게 또 다른 특징이기도 했다.

심지어 보스는 헌터에게 죽은 게 아니라 상처의 악화로 앓다가 죽었다.

즉, 지금의 진하는 끽해야 죽어 가고 있는 보스 한 마리만 상대하면 되는 거였다.

“흐음…… 여기 어디쯤일 텐데?”

2층 통로 근처에 다다른 진하가 주변을 샅샅이 훑어보았다.

분명 그가 기억하기로는 이 근처 어딘가에 함정이 존재했다.

하지만 아무리 둘러봐도 일반적인 게이트의 모습일 뿐 던전으로 들어가는 입구처럼 보이는 곳은 없었다.

“하긴, 쉽게 발견되면 숨겨진 던전이 아니지.”

하는 수 없이 진하는 2층 통로를 기준으로 벽을 더듬으며 주변을 수색했다.

분명 함정이라면 만지거나 밟아서 발동하는 조건일 게 분명했다.

진하는 주변을 훑으며 2층 통로를 한 걸음씩 나아갔다.

매우 수상한 움직임이기는 했지만, 다행히도 주변에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덕분에 진하는 더욱 편하게 던전을 수색해 나갔다.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지나, 진하도 점차 지쳐 가기 시작할 때쯤

틱.

“어?”

갑자기 진하의 시야가 반전되었다.

갑자기 바뀐 시야와 함께 떠오른 메시지창을 보며 진하는 환호성을 내뱉었다.

무엇을 건드렸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던전에 입성할 수 있게 되었다.

“흐음…… 많이 죽긴 했네.”

게이트 입구를 살펴보며 진하가 짧게 평했다.

죽은 지 오래되어 보이는 시체부터 얼마 되지 않아 보이는 시체까지.

다양한 시체들이 사방에 널브러져 있었다.

아마도 던전을 공략하지 못한 채 닫힌 입구에서 서성이다가 죽은 거겠지.

“좋은 곳에 가세요.”

가볍게 묵념을 한 진하는 일자로 나 있는 굴을 천천히 걸어갔다.

길을 따라 부서진 함정과 몬스터의 시체들이 썩어 가고 있었다.

“역시나, 이미 다 파괴됐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리며 죽어 갔을까?

절대 안전하리라 여겼던 1층에서 죽은 사람들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이제 막 헌터일을 시작했거나 준비하던 사람들을 잡아먹은 던전.

역시 게이트와 던전은 철저하게 없애야 하는 악이었다.

철컥!

“음?”

진하가 본능적으로 재빠르게 머리를 숙였다.

피잉!

화살 한 대가 그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모두 파괴된 거 아니었어?”

보스 또한 장시간에 걸쳐 상처의 악화로 죽었다는 걸 생각하면 함정은 이미 모두 파괴되어야 옳았다.

그렇다고 고작 최하급 C급 던전, 그것도 소형 던전에 영구적인 함정이 있다는 건 더욱 말이 안 됐고.

“아 미친, 계산이 좀 다른 건가?”

지금은 던전이 밝혀지기 약 1년 전이었다.

아무래도 진하가 계산한 상태보다 더욱 멀쩡한 듯싶었다.

“아…… 망했다.”

기껏해야 죽어 가기 시작하는 보스만 있으리라 생각했다.

근데 함정이 멀쩡하다는 것은 보스와 다른 몬스터 또한 멀쩡할 가능성이 높다는 거였다.

“후…… 이렇게 빡셀 거라곤 생각 안 했는데.”

계산 외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불가능은 아니었다.

좀 더 힘들어질 뿐.

진하가 몸에 긴장도를 높이며 손을 탈탈 털었다.

“후우…… 흡!”

타다다닥!

촤아악!

피빙! 핑!

철컹!

재빠르게 달리는 진하의 움직임에 맞춰 함정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머리 위에서는 독 가루가 떨어지고, 아래에서는 화살이, 옆에서는 창이 그를 노리며 쏘아졌다.

덜컥!

쿠르르!

아슬아슬하게 피하는 진하의 뒤쪽으로 커다란 돌소리가 들렸다.

‘젠장!’

생각보다 함정들이 빡셌다.

재빠르게 눈과 귀로 계속해서 쏟아지는 함정을 피하고 있긴 했지만, 생각보다 벅찼다.

그리고 회귀한 지 하루도 되지 않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던 게 하나 더 있었다.

지금 진하의 몸은 D급이었다.

‘체크 포인트!’

함정을 피하며 달리던 진하의 눈에 벽 옆으로 난 공터가 보였다.

몬스터의 서식지 중 하나인 체크 포인트라니, 소형 던전에 있을 거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진하가 땅에 떨어진 돌을 집어 공터를 향해 던졌다.

돌은 공터 안쪽으로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 쏙 하고 사라졌다.

퍽!

“키륵?”

안쪽에서 들려오는 몬스터의 소리.

곧이어 고블린 세 마리가 공터에서 튀어나왔다.

진하는 달리던 속력을 이용하여 점프하며 가장 앞에 서 있던 고블린의 머리를 무릎으로 찍었다.

덥썩!

그와 동시에 오른쪽에 있던 고블린의 목을 붙잡았다.

뿌득!

켁!

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고블린의 목이 비틀렸다.

키에엑!

그 순간 가장 뒤에 있던 고블린이 진하를 향해 달려들었다.

툭.

진하는 자신에게 날아드는 단검을 피하며 고블린의 발을 걸었다.

키륵?

균형을 잃고 앞으로 넘어지는 고블린.

진하가 살짝 뒤로 물러났다.

쿠르릉.

콰직, 콰지직.

섬뜩한 소리를 내며 짓눌리는 고블린.

진하는 단검으로 쓰러진 나머지 고블린의 목을 그은 후 털썩 주저앉았다.

“후우…… 빡세네.”

고블린 세 마리가 쓰던 공간이라 그런지 좀 좁긴 했지만 간단하게 휴식하기에는 나쁘지 않았다.

“흐음…… 세 마리밖에 남지 않아서 새로 굴을 판 건가?”

흙이 아직 축축한 게 아마도 대부분의 몬스터가 죽고 남은 몬스터끼리 새로 만든 것 같았다.

보통 이런 소형 던전은 이렇게 따로 만드는 경우는 없는데 오랫동안 공략이 지지부진하면서 생긴 특이한 현상인 듯했다.

“으…… 쓰라려라.”

고블린의 시체를 통로로 던진 진하가 인상을 찌푸렸다.

독 가루를 뒤집어써서 얼굴이 따끔따끔했다.

허리에서 수통을 꺼내 얼굴에 묻은 독을 닦아 냈다.

그러자 조금씩 가라앉는 통증.

피슉!

진하가 파우치에서 작은 해독제 하나를 꺼내 허벅지에 주사했다.

“으…… 이거 비싼 건데.”

협회에서 파는 응급키트.

효과가 좋긴 했지만, 너무나 비싼 제품이었다.

“그나저나 확실히 C급은 C급인가?”

대부분이 파괴되고 끽해야 저급 함정만이 존재하는 상태인데도 생각보다 빡셌다.

아마 최상의 상태였다면 공략하기에 매우 어려웠을 것 같았다.

“후…… 그래도 거의 다 끝났나 보네.”

고전적인 함정인 바위가 굴려졌다는 것은 함정이나 길이 거의 끝이라는 거였다.

보통 함정형 던전의 경우 바위 함정은 마지막에 쓰인다.

자칫 잘못해서 다른 함정을 건드리면 다른 함정들이 모조리 날아가 버리니까.

그러니 앞으로 있는 건 끽해야 몬스터 몇 마리가 다일 게 분명했다.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조금 이상한데?”

생각보다 할 만했다.

물론, 이미 파괴된 상태를 겪은 거긴 했지만 그래서 더욱 이해가 되지 않았다.

미약한 해독 효과가 있는 헌터증을 물고 죽은 C급 헌터.

이 정도 던전에 그런 독이 있다는 것도 이해되지 않았고, 해독제를 두고 헌터증까지 사용한 C급 헌터는 더욱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물며 부패도도 적은 거로 보아 던전에 들어선 것도 최근인 것 같았는데 아직까지 그런 독이 남아 있다고?

난이도와 진행도를 생각하면 앞뒤가 안 맞았다.

“흠…… 일단 끝에 가 봐야 알 수 있나?”

진하의 의문은 통로를 나와 얼마 걷지 않아 밝혀졌다.

통로를 나와 펼쳐진 커다란 공동에는 수많은 고블린의 시체와 보스 방 바로 앞에 놓인 수십 병의 병이 늘어져 있었다.

입구에는 헌터로 보이는 해골들이 즐비했다.

“흠…… 함정을 통과한 사람들은 여기서 몬스터랑 공멸했구나.”

그리고 진하의 눈앞에 보이는 수십 개의 병.

책상 위에는 다음과 같은 설명이 쓰여 있었다.

<이 중 하나만이 독이 아니다. 정답을 고를 시 특정 내성이 생긴다.>

<다음은 독이 아닌 것에 대한 힌트이다.>

<1. 맨 끝과 맨 앞의 액체는 서로 다른 성질을 가졌다. 2. 가장 중앙의 액체는…….>

“C급은 여기서 죽은 거구나.”

이제야 C급 헌터가 죽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아마도 앞으로 함정에 걸려 던전에 들어올 운명이었던 헌터들도 여기서 죽었을 게 분명했다.

어이없게도 굳이 통과해야 할 함정이 아니지만, 필수가 되어 버린 함정이니까.

실제로도 몇 개의 병들은 깨져서 땅에 나뒹굴고 있었다.

“아…… 이러면 나가리인데…….”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극독이 있는 대신 헌터에게 도움이 되는 영약을 얻을 수 있는 적은 확률로 나타나는 함정.

심지어 영약은 해당 던전의 보스를 공략하는 데 꼭 필요한 내성이나 능력이 들어 있어 필수로 파훼해야 할 함정이었다.

보통은 영약과 공격에 쓸 수 있는 극독은 귀하기 때문에 공략 시 마시지 않고 공략 후 밖으로 가지고 나가는 게 정석이었다.

하지만 함정에 빠져, 그것도 혼자 보스를 공략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꼭 마실 수밖에 없는 함정이기도 했다.

동급이나 상위 단계의 몬스터를 아무 도움 없이 혼자 잡는 건 거의 불가능하니까.

결국, 여기서 죽거나 보스에게 죽거나 매한가지이기에 빠질 수밖에 없는 함정이었다.

“그리고 이놈이 보험이라 생각했을 거고.”

파우치에서 해독제를 꺼냈다.

웬만한 독은 모조리 중화시키는 해독제. 유혹이 커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모조리 사망, 땅바닥에 떨어져 있는 다 쓴 해독제가 그 증거였다.

“너무 성급하게 왔나?”

적어도 무기라도 완벽하게 재정비하고 올 걸 그랬다.

쉽게 생각하고 왔는데 갈수록 뭔가 빡셌다.

가벼운 마음으로 왔는데 개고생하다 갈 것 같았다.

“흠…… 일단 이거라도 써 볼까?”

진하는 곧바로 보스를 공략해도 상관없긴 하다.

어차피 B급 최상위였던 그의 입장에선 매우 힘이 들지언정 불가능이 아니었으니까.

실제로 미래에선 양팔이 잘린 상태로 한 단계 아래의 동급 몬스터를 잡은 경험도 있었다.

다만 그렇게 고생하기 전에 한 가지 해 볼 만한 수단이 존재했다.

공략은 더 안전하게, 쉽게 하는 게 옳으니까.

진하는 주머니에서 아폴로를 꺼냈다.

신체 버프 또는 해독제를 찾을 수 있는 지능 버프 둘 중 아무거나 나오기만 하면 된다.

부스럭.

쪼그려 앉아 막대를 하나 입에 물었다.

<올바른 자세로 섭취했습니다. 일시적으로 힘이 약간 강해집니다.>

첫 번째부터 좋은 게 뽑혔다.

운수가 나쁘지 않은 편인 건가?

그렇다면 다음은…….

쪼오옥.

<머릿결이 일시적으로 좋아집니다.>

“후…… 다음!”

<충치가 제거됩니다.>

<목소리가 일시적으로 좋아…….>

<정력이…….>

<…….>

“썅!”

진하는 빈 껍질들을 땅에 내리쳤다.

첫 끗발이 개끗발이라고, 처음을 제외하곤 쓸 만한 게 없었다.

“후우…… 천지신명이시여.”

진하가 하나만 남은 막대를 보며 기도했다.

다른 건 안 바란다. 제발 지능! 지능 나와라! 그것도 아니면 신체 능력!

쪼오옥.

<올바른 자세로 섭취했습니다. 효과가 발휘됩니다.>

<일시적으로 후각이 매우 뛰어나 집니다. 특별한 냄새를 맡을 수 있습니다.>

“젠장…….”

한숨이 절로 나왔다.

온갖 버프 중에서 겨우 얻은 거라곤 고작 힘 증가뿐이라니…….

이걸로 보스를 잡는 데 개고생할 게 확정됐다.

“하아…… 할 수 없지 이대로 도전하는 수밖에.”

그는 한숨을 내쉬며 물약을 지나쳐 갔다.

찌릿-

그때, 온갖 향들이 그의 코를 찔렀다.

매운 냄새, 썩은 냄새, 신 냄새 등등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향이 맡아졌다.

“이게 뭔 냄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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