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
‘생각해 보면 그 할머니도 이상했어.’
아무리 지친 상태였다지만 B급 헌터인 자신의 감각을 속이고 갑자기 나타난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았다.
심지어 문 열리는 소리도 듣지 못했었다.
하나하나 천천히 기억을 되짚어 보자 수상한 게 한두 개가 아니었다.
그런데 어째서 그걸 인식하지 못했지? 이상하다 못해 수상할 정도였는데.
“여기쯤인데.”
기억을 더듬으며 자신이 들렀던 마을과 비슷한 주택들 사이를 찾아다녔다.
지금은 미래와 달리 사람들이 넘치는 활기찬 모습이긴 했지만 분명 유령 마을이었던 곳이 확실했다.
그렇다면 분명 여기쯤 문방구가 있어야 했다.
딸랑.
순간, 그의 귓가에 작은 종소리가 들렸다.
진하가 재빠르게 종소리가 울린 곳을 향해 뛰어갔다.
그러자 작은 종이 딸랑거리는 건물 하나가 그의 눈앞에 보였다.
<차원 문방구>
오래되어 잘 보이지 않았던 문구가 선명하게 적혀 있는 문방구.
겉모습은 그의 기억 속 그대로였다.
꿀꺽.
진하는 온몸에 도는 긴장감을 털어 내며 문방구로 다가갔다.
이 문을 열면 할머니가 있을 게 분명했다.
그분은 누구지? 신? 외계인?
딸랑― 드르륵.
조심스럽게 열리는 문.
미래의 모습과 똑같은 모습으로 물건들이 펼쳐져 있었다.
자물쇠가 잠긴 냉장고와 장난감 그리고 뽑기까지.
저벅, 저벅.
김진하는 신경을 곤두세우며 천천히 문방구 안으로 진입했다.
아무런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아무도 없는 건가?
아니야, 애초에 그 할머니한테 인기척을 느끼지 못했었어.
“후우…….”
이 건물이 이렇게 길었던가?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아주 천천히 나아가다 보니 눈앞의 카운터에 가는 것조차 오랜 시간이 걸렸다.
카운터가 가까워지자 진하의 눈에 종이 뽑기가 보였다.
카운터 근처에 걸린 아주 깨끗한 모습의 뽑기.
정확하게 딱 두 개만 비어 있었다.
김진하가 뽑았던 바로 그 자리 그대로.
“역시, 꿈이 아니었어.”
다시금 긴장감을 높인 진하가 주변을 훑어보았다.
하지만 아무런 기척도, 사람도 발견되지 않았다.
대신 카운터 위에 못 보던 편지 하나가 곱게 올려져 있었다.
“자리를 비운 건가?”
주변에 숨을 곳은 없어 보였다.
그렇다면 분명 자리를 비운 거겠지.
그때처럼…….
바스락.
채앵!
단검을 빠르게 뽑아 소리가 들리는 곳을 향해 겨눴다.
두근, 두근.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눈앞에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뭐지?
무슨 소리지?
그때 무게를 이기지 못한 건지 걸려 있던 물건이 살짝 내려앉았다.
그와 동시에 울리는 소리.
바스락.
“하아…….”
물건 소리였다.
진하는 안도감을 느끼며 긴장을 살짝 풀었다.
“후우…….”
호흡을 가다듬었다.
어차피 나타날 곳은 입구 하나밖에 없었다.
입구, 입구만 계속 보면 되었다.
그렇게…….
5분.
10분.
30분.
1시간…….
“아악! 왜 안 와!”
오랜 시간에 이미 모든 긴장이 풀린 진하가 몸을 주무르며 입구를 바라봤다.
이미 해가 저물어 깜깜해졌는데도 아무도 오지 않고 있었다.
“하아…… 왜 안 오지?”
시간은 벌써 8시를 향하고 있었다.
이대로면 왠지 12시를 넘어서도 변함이 없을 것 같았다.
도대체 문을 열어 두고 어디로 간 거지? 아티팩트를 두고 이렇게 오랜 시간 건물을 비우다니.
그때, 한숨을 내쉬는 진하의 눈에 편지가 들어왔다.
<뽑기 총각에게.>
편지 겉 부분 구석에 아주 작게 쓰여 있는 글.
“뽑기……?”
‘나를 말하는 건가?’
진하는 다급히 편지를 뜯어 펼쳐 보았다.
-흘흘, 회귀는 잘했어, 젊은이?
머릿속에 울려 퍼지는 목소리.
첫 문장을 읽자마자 김진하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편지를 떨궜다.
“뭐야! 어디야!”
깜짝 놀라 소리치며 주변을 훑어보았지만 아무도 존재하지 않았다.
아무도 존재하지 않는데 목소리가 들린다고?
“편…… 지?”
진하는 조심스레 땅에 떨어진 편지를 집어 들었다.
그러자 다시 들리기 시작한 목소리.
-놀란 건 아니지? 이게 그 뭣이여, 음성녹음이라 생각하면 편할 거여.
“하……하…….”
이제는 놀랄 힘도 없었다.
설마 편지조차 아티팩트라니…….
“후우……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신비한 힘이 담긴 물건이 고작 편지라니…….
마음을 다잡은 진하가 계속해서 편지를 읽어 갔다.
-내가 편지를 남긴 건 다름이 아니라 자네한테 부탁할 게 있어서 그려. 회귀하고 할 일 없지? 그럼 딱 회귀하는 날까지만 문방구 관리 좀 해야겄어. 나는 휴가 좀 다녀올 테니까.
아, 대신 물건 사고파는 건 네 맘대로 하고?
띠링!
<칭호 문방구 알바를 얻었습니다.>
“하아?”
* * *
“우웅…… 수울…….”
진하는 취한 채로 업힌 예진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문방구에서의 일을 마치고 뒤늦게 뒤풀이에 갔다가 본 풍경을 생각하면 머리가 절로 아팠다.
술 취해서 난리 치는 팀원들에, 그 한가운데서 술병을 들고 졸고 있는 하예진까지…….
[우와! 진하다! 왜 늦게 왔어! 벌주 마셔!]
[마셔라! 마셔라! 마셔라! 마셔라! 술이 들어간다. 쭉쭉쭉쭉!!]
징그러운 놈들 맞춰 주면서 예진을 빼내느라 생각한 고생을 하면 절로 한숨이 나왔다.
뭐 사실 술자리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헌터 시험 뒷풀이란 건 진하의 생의 처음이었으니까.
하지만 때가 너무 안 좋았다.
“하아…….”
진하가 한숨을 내쉬며 상태창을 열었다.
<이름: 김진하
능력: 신체 강화
칭호: 문방구 알바
상태: 이상 없음.>
랭커 중에서도 소수의 사람만이 얻을 수 있다는 칭호.
진하는 칭호를 두들겼다.
<문방구 알바: 문방구 자산과 물품의 가격을 알 수 있다. 물건을 팔거나 살 수 있다. 문방구 규칙을 볼 수 있다. 문방구에 입장이 가능하다.
문방구 규칙
1. 모든 물품은 포인트로 계산된다.
2. 포인트의 최소 단위는 10포인트이다.
3. 부족한 포인트는 수명으로 바꿀 수 있다. ―1년에 2포인트.>
<포인트: 0 포인트.>
“미친, 이런 게 칭호라니…….”
세상에 이런 칭호가 어디 있을까 싶었다.
거기다가 수명 1년당 2포인트라니, 회귀 직전에 의식을 잃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뽑기에 필요한 포인트가 정확히 얼마인지는 몰라도 엄청 많은 포인트가 필요할 것이다.
그런데 2포인트당 1년이면 도대체 얼마나 되는 수명을 바친 건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그러니 나오자마자 쓰러지지.
만약 ‘회귀’를 뽑지 못했다면 아마 그 자리에서 죽었을 게 분명했다.
“우에…….”
뒤에서 웅얼거리는 하예진.
“하아…… 이걸 좋다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죽을 뻔했지만, 과거를 바꿨다.
그 덕분에 하예진을 살릴 수 있었다.
그가 가장 처음으로 잃었던 친구인 하예진을…….
“다른 친구들도 구할 수 있을까?”
문방구의 주인이 악마일지 천사일지는 모르지만 정말로 과거로 돌아왔다면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더 나아가 그 이상을 해낼 수 있을 게 분명했다.
왜냐하면, 뽑기에 분명 ‘부활’도 있었으니까.
처음 과거를 바꿨을 때 느껴졌던 그 느낌이 아직도 잊히지 않았다.
친구들을 구할 수 있다.
그리고 잘하면 부모님도 살릴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니 맘과 몸이 뜨끈해지는 게 느껴졌다.
‘잠깐 뜨끈해져?’
“우에엑…….”
등 뒤로 느껴지는 뜨끈함…….
“야!!”
* * *
털썩.
소파에 앉은 진하는 진이 빠진 표정으로 침대에 누워 있는 하예진을 바라봤다.
편한 표정으로 잠들어 있는 그녀.
“어우, 저 화상.”
그녀가 죽은 이후에는 좋았던 기억만 생각났었는데 생각해 보니 이렇게 덜렁거린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문득 피식 웃음이 났다.
진하가 느끼는 이 짜증, 기쁨, 그리고 그녀의 온기까지 다시 못 느낄 거라 생각했던 거였으니까.
“잘 자라, 내일을 기대하고.”
진하는 내일 일어나 당황해할 하예진을 생각하며 키득거리며 빨래한 옷을 널어놓고 밖으로 나왔다.
<01:00>
시간을 확인해 보니 벌써 날이 넘어갔다.
진하는 찌뿌둥한 몸을 풀며 중앙 게이트를 향해 걸어갔다.
다행히도 뒤풀이 장소가 게이트 근처여서 조금만 걸어가면 되었다.
멀리 보이는 게이트에서 뒤늦게 빠져나오는 사람들이 보였다.
피투성이로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
쓸쓸해 보이지만 그래도 평화롭게 돌아가는 그들을 보니 다시 한번 확실히 과거로 돌아왔음을 느꼈다.
“하긴, 생각해 보면 지금은 영웅이라고도 불리지도 않네.”
게이트 폭주 이후에 영웅이라 칭해졌지, 사실 헌터는 능력을 각성한 자들이 선택 가능한 특수한 직종 중 하나일 뿐이었다.
아니, 오히려 그리 좋게 보지 않았다.
여럿이 들어가 혼자 나오는, 항상 피와 함께 살아가는 직종이었으니까.
몬스터가 게이트에 갇히고 위협이 없어진 세상에서는 생명을 죽이고 쉽게 죽을 수 있는 직업이란 건 그저 기피 직업일 뿐이었다.
그나마 장점이 있다면 고수익이라는 점 정도?
그래서 이 시대의 헌터란 그저 돈이 많이 필요한 사람이 하는 고위험 육체노동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협회 덕에 이미지가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만약 게이트를 관리하고 안전하게 사람들을 보호하는 슬로건을 내건 협회가 아니었다면 아마 지금보다도 더 못한 취급을 받지 않았을까 예상되기도 했다.
그나저나 이렇게 미래와 현재가 극명하게 차이 나는 모습을 보니까 이제는 확실하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두 번, 세 번 확신해도 의심했던 사실, 자신은 확실하게 회귀했다.
“어서 오세요.”
길을 걷다 보니 어느새 게이트 입구에 도달했다.
진하는 하던 생각을 멈추고 눈앞에서 웃고 있는 사람에게 헌터증을 내밀었다.
“어라? 어제 발급된 거네요? 지금 들어가시려고요?”
“네.”
“저…… 참견일 수도 있지만 게이트는 팀을 이루고 들어가는 게 좋습니다. 하물며 갓 졸업한 D급 헌터면…….”
한심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는 직원.
“사냥하러 들어가는 거 아니에요. 1층만 둘러보려 하는 거지.”
“아하…….”
그제야 이해가 된다는 듯 직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진하와 비슷한 사람이 없는 건 아니었다.
갖은 고생을 해서 헌터가 되고 감회에 젖어 안전지대인 1층을 둘러보는 사람들.
전형적인 초보자의 모습 중 하나였다.
혹시나 객기를 부리는 초보자인가 싶었는데 다행히 침착한 얼굴을 보니 그것까지는 아닌 듯싶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통과하시면 됩니다.”
직원이 헌터증을 기계에 찍은 후 로커 열쇠를 주었다.
진하는 직원에게 로커 열쇠를 받은 후 검색대를 통과했다.
“이런 취급도 신선한데?”
경험으로는 베테랑 축에 속하던 그가 초보자 취급을 받다니.
진하는 헛웃음을 지으며 로커에서 자신의 여벌 방어구와 무기를 착용한 뒤 게이트로 입장했다.
게이트를 입장하자 느껴지는 텁텁한 공기.
그리고 어서 오라는 듯 일자로 커다랗게 뚫린 굴과 사방에 가지를 친 작은 굴들.
익숙한 게이트 안 풍경이었다.
“자, 이번 수업은 야간 탐사입니다. 모두 준비됐나요?”
“네!”
마침 야간 수업을 하는 예비 헌터들이 작은 굴로 들어가는 게 보였다.
‘저기가 아마…… 1―5 던전이던가?’
옛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과거 게이트 폭주 전까지만 해도 1층은 예비 헌터들의 교육의 장이었다.
모든 몬스터는 소탕되었고, 던전 또한 모두 공략되었기에 헌터 교육하기 가장 안성맞춤인 공간.
오히려 몬스터를 끌고 와 던전에 집어넣기도 하는 판이니 그 안전성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물론 게이트 폭주 전까지 이야기지만.’
1차 게이트 폭주 이후로 1층은 다시 몬스터들의 서식지가 되었으니까.
그런 미래를 겪어서 그런지 이렇게 평화로운 모습이 참 색다르고 신기했다.
“후…… 과거 회상은 그만. 이제 할 일을 해야지.”
겨우 정신을 차린 진하가 발걸음을 옮겨 구석진 곳으로 다가갔다.
이 야심한 시간에 굳이 그가 이곳에 온 이유는 단 하나.
문방구에서 산 물품의 힘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아폴로>
<정보를 확인하시겠습니까?>
그의 손에 쥐어진 불량식품을 보며 진하는 헛웃음을 지었다.
유일하게 가지고 있던 몬스터의 마석을 팔아 얻은 100포인트로 산 불량식품.
판매한 마석이 시가로 10만 원이란 걸 생각하면 속이 쓰렸다.
“제발 제값을 했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정보 확인”
<문방구에서 흔히 보이는 불량식품. 색깔이 다양한 막대 식품이다.
그중에서도 최하품으로 건강에 좋아 보이진 않는다. 하지만 구름 과자 흉내를 내기 좋다.
먹으면 다양한 느낌을 받을 것 같다.>
진하는 몇 개 들어 있지 않은 막대를 꺼내 입에 물었다.
그러곤 끝을 잡은 후 안에 들어 있는 식품을 이빨로 끌어당겼다.
지이익.
이빨에 눌리며 입 안으로 들어오는 불량식품.
포도 맛이었다.
띠링!
<요구하는 자세로 섭취하지 않아 효과가 발휘되지 않습니다.>
“뭐?”
진하는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메시지창을 바라보았다.
먹는 거면 먹는 거지 요구하는 자세는 또 뭔데?
진하는 다시 한번 정보를 확인했다.
“설마……?”
그의 눈에 보이는 한 문구.
<구름 과자 흉내를 내기 좋다.>
“하아, 이런 미친…….”
순간 현타가 왔다.
고작 정보 하나 확인하려고 이런 자세를 취해야 하는 건가?
잠시 고민하던 진하는 한숨을 푹 쉬었다.
“후우, 한다, 해.”
진하는 담배를 피우듯 손가락으로 막대를 잡은 채 막대 과자를 입에 물었다.
이빨로는 긁어 먹을 수 없는 상황.
쪼오옥.
온 힘을 다해 막대 과자를 빨아들이자 아주 조금씩 내용물이 입 안으로 들어왔다.
<정상적인 방법으로 섭취하였습니다. 효과가 발휘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