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가진 SS급 문방구-1화 (1/202)

#001

쏴아아.

하늘에서 구멍이라도 뚫린 듯 비가 미친 듯이 쏟아졌다.

찰팍, 찰팍.

“지랄맞게도 많이 오네.”

비를 맞으며 멍하니 걷던 김진하가 인상을 찌푸렸다.

차가운 비가 진하의 몸을 타고 내려가며 몬스터의 찐득한 피를 씻겨 주는 게 느껴졌다.

평소였다면 좋아했겠지만, 지금은 너무나 싫었다.

이런 우중충한 날씨 따위…….

-다음 속보입니다. 오늘 16시 25분을 기점으로 한국에서 발생한 게이트 폭주가 모두 진압되었습니다. 한편 한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는 아직 게이트 폭주를 진압하지 못해 많은 인명 피해가 발생…….

옆 가게 TV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한편, SS급 헌터였던…….

까득!

[하……. 야, 나 죽는 거냐?]

[치료사! 치료사 어딨어!]

[보스는? 보스는 죽었어?]

[씨발, 지금 그런 거 물을 때야?!]

덜덜덜.

몇 시간 전 있었던 일을 생각하자 손이 떨리는 게 느껴졌다.

느껴질 리 없는 그 녀석의 온기가 아직도 느껴졌다.

내가 조금만 강했다면, 조금만 더 어리석게 굴지 않았다면…….

“엄마! 헌터 아저씨다!”

갑작스러운 소리에 덜덜 떨리는 손을 부여잡은 채 서 있던 진하가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작은 아이 한 명이 엄마의 손을 잡은 채로 그를 가리키고 있었다.

“헌터 아저씨 만나면 어떻게 하라고 했지?”

“감사합니다! 하랬어.”

아이가 그 말과 함께 진하에게 고개를 숙였다.

엄마로 보이는 여인 또한 진하를 향해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아마도 게이트 폭주가 끝났다는 뉴스에 방공호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듯했다.

도도도도.

그때 진하를 바라보던 아이가 진하에게 다가왔다.

진하가 한 발자국 살짝 뒤로 물러났다.

“지켜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말과 함께 아이가 손 하나를 내밀었다.

아이의 손에는 아주 작은 사탕 하나가 놓여 있었다.

“나 주는 거니?”

“네! 제가 제일 아끼는 사탕이에요. 근데 영웅 아저씨니까 드리는 거예요.”

“그래? 하지만 괜찮단다. 나 말고 네가 먹는 게 아저씨는 더 힘이 나는걸?”

게이트 폭주로 식량이 조금 귀해진 시점이다.

당연하게도 군것질거리도 구하기 힘든 상황.

이런 걸 아이에게 받을 수 없었다.

“그래도 아저씨 생각해 줘서 고마워.”

진하가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려다 멈췄다.

비에 씻겨지긴 했지만, 피를 한가득 머금었던 손이었다.

괜히 만지면 아이에게 부정 탈지도 몰랐다.

진하는 뻗으려는 손을 다시 안쪽으로 끌어당겼다.

“예지야, 이제 가야지.”

“네, 엄마. 그럼 영웅 아저씨 안녕!”

김진하가 손 흔들며 멀어져 가는 아이에게 똑같이 손을 흔들어 주었다.

“영웅이라…….”

자신을 영웅이라 부를 수 있을까?

사람들을 위해 항상 앞에 나섰던 친구들과 다르게 자신은 영웅심 따위 없었다.

그저 친구들에게 힘이 되기 위해서 나선 거지 사람들을 구하겠다는 사명 같은 건 생각해 본 적 없었다.

물론 그런 이유마저도 이젠 모두 사라졌지만…….

“그냥 은퇴나 할까?”

아직 한창의 나이이지만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더는 몬스터를 사냥할 이유도 없었고, 같이 싸울 친구도 더는 없었다.

이젠 철저하게 혼자였다.

“진짜 은퇴…… 해야겠네.”

갑작스러운 생각이었지만 은퇴를 생각하니까 몸이 확 무거워졌다.

확실히 너무 지쳤다는 걸 깨달았다. 너무 많은 걸 잃었고 많은 모습을 눈에 담아 버렸다.

“은퇴하면 그냥 집에서 푹 쉴까, 어디 가지도 말고.”

그만둔다 하면 협회에서 잡기는 할 것이다.

B급 최상위 헌터 중 동급의 몬스터를 죽일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으니까.

하지만 상관없었다.

진하의 성장은 이미 막힌 거나 다름없었으니까.

지난 1년이 그걸 증명했다.

그러니 게이트 폭주 시 동원된다는 사인만 한다면 협회에서도 놓아줄 게 분명했다.

“마당에 강아지 한 마리도 키우는 거야. 이름은 똘이가 좋겠지?”

진하는 계속해서 은퇴 후 할 일을 중얼거리며 거리를 걸었다.

더 이상 거리에서 울리는 뉴스가 들리지 않게, 다른 생각이 들지 않게…….

오직 은퇴 후만 생각할 수 있게 계속해서 머릿속에 생각을 꽉 채워 나갔다.

딸랑―

그때, 그의 귓가에 작은 종소리가 들렸다.

진하는 푹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여기가 어디지?”

너무 깊게 생각했던 걸까?

닿는 대로 발걸음을 옮기던 진하의 시야에 익숙하지 않은 건물들이 보였다.

오래된 집들과 인기척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골목길.

게이트 폭주로 인해 유령 동네가 되어 버린 곳이었다.

“너무 멍 때렸나?”

아무리 깊게 생각했다 해도 이런 곳까지 흘러들어 오다니.

긁적긁적.

딸랑―

그 순간 진하의 귓가에 다시 한번 종소리가 들려왔다.

소리를 따라 시선을 옮겨 보니 작은 풍경 하나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 문방구.>

오래되어 지워진 것인지 앞 글자가 보이지 않는 문방구가 보였다.

‘요즘도 저런 문방구가 있나?’

아주 어릴 때나 보던 오래된 문방구였다.

이것저것 팔던 만물상 같았던 문방구.

꿀꺽.

갑자기 목이 탔다.

생각해 보니 게이트 폭주가 끝난 직후부터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했다.

‘분명 저런 문방구도 마실 걸 팔았었지?’

아마 팔았던 거로 기억했다.

주변을 살펴보았지만, 편의점은커녕 자판기조차 보이지 않았다.

오직 눈앞에 보이는 문방구 하나만이 불 켜져 있었다.

김진하는 걸음을 옮겨 문방구에 다가갔다.

딸랑― 드르륵.

문을 열자 종이 작게 울렸다.

“실례합니다.”

아무런 답변이 들려오지 않았다.

“실례합니다!”

좀 더 소리높여 불러 보았지만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다.

‘그냥 불 켜 놓고 방공호를 간 건가?’

하지만 그렇다고 보기엔 문방구 안은 따뜻한 공기로 가득했다.

아무래도 잠시 자리를 비운 듯싶었다.

진하는 주인을 잠시 기다릴 겸, 주변을 훑어봤다.

장난감, 불량식품 등등 많은 물품이 걸려 있었다.

“오, 냉장고.”

구석에 끄트머리에 음료가 가득 찬 냉장고가 보였다.

진하는 곧바로 냉장고로 다가갔다.

우선 갈증부터 해결하는 게 우선이었다.

돈이야 나중에 내도 될 테니까.

“아…….”

냉장고로 다가간 진하가 탄식했다.

냉장고가 자물쇠로 잠겨 있었다.

자물쇠를 부술까? 잠시 고민하던 진하는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그건 도둑질이나 다름없었다.

“언제 오시려나…….”

아직 1분도 지나지 않았지만 지루했다.

비를 맞을 때는 몰랐지만 젖은 옷이 그를 잡아당기고 있었고, 축축한 느낌은 너무나 찝찝했다.

‘그냥 갈까?’

갈증이야 잠깐 참으면 됐다.

집까지 돌아가는 데 오래 걸리긴 하겠지만 그렇다고 언제 올지 모르는 주인을 기다리는 것도 바보 같았다.

툭.

집에 가기 위해 돌아선 진하의 손에 무엇인가가 부딪치며 떨어졌다.

떨어진 물품을 확인해 보니 옛날에 하던 뽑기였다.

<회귀>

<부활>

.

.

.

다소 유치해 보이는 문구가 적혀 있는 뽑기.

“그러고 보니 옛날에 이런 거 많이 했었지. 근데 상품이 딱히 안 적혀 있네?”

적혀 있는 문구가 상품인가? 그런데 그럼 회귀와 부활은 뭐지?

“뽑아 볼 텨?”

“으악!”

갑작스러운 목소리에 진하가 놀라며 뒤로 물러났다.

어느새 그의 손은 허리춤의 단검에 가 있었다.

목소리가 들린 곳에는 할머니 한 분이 서 있었다.

“하아…… 안녕하세요.”

진하가 한숨을 쉬며 자세를 풀었다.

“안녕하지. 근데 뽑으려고?”

할머니가 땅에 떨어진 뽑기를 제자리에 걸며 물었다.

“아뇨, 그저 음료수나 좀 사려고요.”

진하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러자 할머니가 진하를 지나쳐 계산대에서 무엇인가를 꺼냈다.

물과 수건이었다.

“왜 그리 비에 젖은 생쥐처럼 있어? 이거나 마시고 몸도 좀 닦아.”

“감사합니다.”

할머니의 친절에 진하가 수건을 받아 머리에 있는 물기를 털어 냈다.

그러곤 물을 받아 단숨에 마셨다.

꿀꺽, 꿀꺽, 꿀꺽.

알 수 없는 청량감이 진하의 몸을 채웠다.

“푸하! 와, 이거 뭐예요? 차 같은 건가요? 진짜 맛있어요.”

“뭐긴 뭐야, 그냥 맹물이지.”

할머니의 말에 김진하가 머리를 긁적였다.

갈증 때문에 맛있다고 느껴진 건가?

“갈증은 풀렸어?”

“아, 네! 이거 수건 값이랑 해서 얼마인가요?”

“됐어.”

할머니가 손을 내저었다.

‘그래도 그냥 가기는 좀 그런데…….’

툭.

그때, 진하의 움직임에 뽑기가 또 떨어졌다.

“아, 죄송합니다.”

김진하는 땅에 떨어진 뽑기를 고리에 걸며 사과했다.

분명 제대로 걸린 것 같은데 왜 이렇게 잘 떨어지지?

“거, 할 거 없으면 그거나 한번 뽑아 봐.”

“예? 아뇨, 괜찮아요.”

“거, 한번 뽑아 보라니까?”

할머니의 권유에 진하가 뺨을 긁적였다.

이 나이에 뽑기라니.

단호한 할머니의 얼굴을 보자니 계속 거절하기에도 애매했다.

‘아, 뽑기 하고 이걸 빌미로 사례금을 드리면 되겠다.’

생각을 마친 진하가 뽑기에 손을 가져다 댔다.

투둑.

장갑에 걸린 것인지 한 개를 잡고 뽑았는데 두 개가 떨어졌다.

“아, 저기…….”

“됐고, 내놔 봐.”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할머니가 손을 내밀었다.

진하는 종이를 할머니에게 넘겨줬고 할머니가 종이 하나를 열어 보았다.

<끈끈이>

“잠깐만 기다려 봐.”

“아뇨, 할머니. 안 주셔도 됩니다.”

김진하가 할머니를 재빨리 말렸다.

돈을 드리기 위해 뽑은 거지, 굳이 장난감을 받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할머니는 그 말을 무시하고 계산대에서 끈끈이 하나를 꺼내 진하의 손에 쥐여 주었다.

진하가 머리를 긁적이며 주머니에 끈끈이를 넣었다.

그사이 할머니가 다른 종이 하나를 펼쳤다.

<회귀>

“회귀?”

“자네 운이 좋구먼. 다른 거랑 달리 이건 뽑기에서 하나밖에 없는 건데.”

“오, 1등인가요? 뭔데요?”

진하가 할머니를 바라보았다.

할머니도 진하를 빤히 바라보았다.

“어…… 뭐 주시는 거 아니었어요?”

“다 줬잖아.”

1등이 아니라 꽝인 건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할머니를 바라봤지만, 할머니는 여전히 멀뚱히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역시나 꽝이었다.

막상 꽝이 나오자 기분이 묘했다. 뭔가 아쉬운 느낌이랄까?

“할머니, 잠시만요.”

꽝은 꽝이고 드려야 할 건 드려야 했다.

빌미도 생겼겠다, 진하가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냈다.

“됐어, 이미 값은 치렀으니까.”

“네?”

진하가 얼빠진 소리를 냈다.

값을 치렀다고?

“됐으니까 어서 나가! 네가 흘린 물 때문에 바닥이 온통 물바다야!”

갑자기 할머니가 호통을 치며 진하를 밀어냈다.

“어? 어? 할머니 자, 잠깐만요.”

진하가 할머니에게 밀려 문방구 밖으로 쫓겨났다.

긁적긁적.

“도대체 뭐지?”

시원한 물에 수건까지 주시다가 갑자기 내쫓다니…….

친절한 것인지 불친절한 것인지 영 종잡을 수 없었다.

“에휴, 집에나 가자.”

돈이야 나중에 주면 되겠지.

진하가 집으로 가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 순간,

핑글.

머리가 핑 돌며 시야가 흔들렸다.

‘어라?’

그리고 그대로 어둠이 찾아왔다.

* * *

“야, 일어나, 야!”

“헉!”

뺨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진하가 몸을 일으켰다.

누군가가 그의 뺨을 두들기고 있었다.

“여긴…… 어디?”

“팀장님, 진하 일어났어요. 멀쩡한 것 같아요.”

“그래? 그럼 5분 뒤에 바로 보스 방에 입장하자, 다들 휴식.”

팀장이라 불린 이가 그 말과 함께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의 말에 다른 사람들 또한 그대로 주저앉았다.

그를 깨운 여자가 진하를 보며 물었다.

“물이라도 줘?”

“예진……?”

진하에게 묻는 여자, 하예진이 그의 눈앞에 있었다.

‘예진이는 4년 전에 죽었는데?’

“저승인가?”

“뭔 개소리야, 어서 물이나 먹고 정신 차려.”

하예진이 물을 건넸다.

진하는 그녀가 건넨 물을 마시며 눈을 깜박였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꿈인가?”

“어쭈? 이젠 꿈 타령까지, 그렇게 몬스터 주먹이 아팠냐?”

하예진이 피식 웃으며 물었다.

지금 보니 그녀가 입은 방어구는 교육생용 갑옷이었다.

이게 꿈이 아니면 게이트 폭주가 꿈인 건가?

하지만 그렇다기엔 그의 기억이 너무나 생생했다.

부스럭.

그때 그의 주머니에 무엇인가가 느껴졌다.

주머니에서 꺼내 보니 끈끈이가 있었다.

“야! 그런 걸 여기에 가져오면 어떡해!”

끈끈이를 확인한 하예진이 소리쳤다.

“뭐야, 거기 무슨 일 있어?”

소리가 너무 컸던 걸까? 쉬고 있던 팀장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진하가 아직 넋 놓길래요.”

“그래? 어디 다친 거 아냐?”

“그건 아니에요. 아직 정신을 덜 차린 것뿐이에요.”

“그럼 다행이고.”

몸을 일으키려던 팀장이 다시 자리에 앉았다.

하예진은 그 모습에 한숨을 내쉬며 진하에게 속삭였다.

“야, 이 밥팅아, 이런 거 가져오면 감점인 거 몰라? 수료 안 할 거야?”

“아니…….”

“그거 잘 숨겨, 알겠어?”

하예진이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홀로 남은 진하가 끈끈이를 주머니에 다시 넣으며 생각했다.

‘끈끈이가 주머니에 있다고? 미래가 꿈이 아니라고? 그럼 여긴 뭐지?’

그때 그의 뇌리에 스치는 기억이 하나 있었다.

<회귀>

종이에 쓰여 있던 단어.

단 하나밖에 없다고 얘기했던 할머니.

‘미친, 진짜 과거로 돌아왔다고?’

“자, 다들 일어나라. 보스 공략하자.”

어느새 5분이 지났는지 팀장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잠깐만, 진짜로 과거로 돌아왔다면…….’

진하의 머릿속에 수많은 단어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떠올랐다.

헌터 테스트, 보스, 하예진, 죽음.

‘아, 안돼!’

보스 방이 열려선 안 됐다.

그랬다간 과거의 일이 반복되고 만다.

하예진이 죽었던, 진하의 머릿속에 강렬히 남아 버린 그 사건이.

진하가 다급히 팀장을 불렀다.

“팀장님!”

“뭐지?”

“그…… 굳이 들어가야 하나요?”

“뭐야, 상태가 많이 안 좋아? 힘들면 넌 안 들어가도 되는데, 대신 점수 깎이는 건 알지?”

팀장의 말에 김진하가 답답함을 느꼈다.

말릴 명분이 없었다.

진하가 여기서 말리거나 날뛴다고 안 들어갈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사실을 말해도 그들은 진하를 그저 미친놈 취급할 게 뻔했다

“자, 들어간다! 다들 준비해!”

모두 준비를 마치자 팀장이 문에 손을 가져다 댔다.

그 모습에 김진하는 하는 수 없이 다급하게 달려가 팀장을 밀쳤다.

“무슨 짓이야!”

밀쳐진 팀장이 눈을 휘둥그레 뜨며 진하를 보았다.

그 순간 열린 문틈 사이로 무엇인가가 튀어나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