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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뜨니 고블린-372화 (372/374)

372화

반격

드란이 마치 식물처럼 바닥에 뿌리를 내리듯이 다리를 꽂아넣었을 때, 루프스와 파인피는 녀석을 견제하기 위해서 움직이느라 다른 장소에 신경을 쓰지 못했다.

그리고 그 덕분에 미세하게 이성이 돌아온 드란이 움직일 시간을 만들어 주는 실책이 되어버렸다.

부상에대한 걱정도, 혹은 죽음에 대한 걱정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드란의 본능은 오로지 루프스와 파인피를 향해, 그리고 고블린들을 향해 무작정 달려들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이미 그것은 본능도 이성도 아닌 기계적인 무언가라고 보는게 맞을지도 모를 정도로 드란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드란은 속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외침을 어길 수 없었고, 무엇보다도 위협당하고 있다고 판단한 그의 미세한 이성은 본능과 합치해 눈 앞에 있는 두 고블린을 향해 계속해서 덤벼들었다.

하지만 이대로 가다가는 결구 이길 수 없음을 드란은 무의식적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일 대 이, 하나와 둘의 싸움이라는 곳에서 끌어왔다.

그렇기에 그의 이성은 아군을 늘려야한다고 외쳤고, 그 외침을 본능이 대부분 지배하고 있음에도 무시하지 않았다.

바닥에 발을 박아넣은 드란은 루프스와 파인피 몰래 몸을 변형시켰다. 당장 그의 아군이 되어줄수 있는 이들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기에 내릴 수 있는 결단이었다.

그 와중에도 바로 코 앞에 있는 두 고블린을 향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루프스와 파인피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함부로 덤벼들지 못하고, 원거리에서 할 수 있는 공격을 날릴 뿐이었다.

그러나 그 대부분의 공격은 효과가 없었고, 그저 시간을 낭비하는 결과가 되었다.

루프스와 파인피 두 고블린이 그 사실을 알아차린 것은 등 뒤에서 고함소리가 들리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루프스가 이끌고 온 고블린들의 무리는 그의 부족 내에서도 최대치의 전력들이었다. 상급 밑으로는 어지간히 특출나거나, 특수한 능력을 지닌 이들이 아니면 존재하지 않으며, 상급 이상의 간부진이라고 말 할 수 있는 고블린들 대부분이 포함되어있기도 했다.

그런 전력만을 모아왔던 만큼 단순히 몰려들 뿐인 식귀들을 막아내는데는 충분하다고 판단하고 있었고, 그렇기에 드란을 상대하면서 뒤쪽은 신경쓰지 않았다. 오히려 파인피라는 가장 강한 전력을 오히려 그가 데려가기까지 했었다.

그렇기에 루프스는 고블린 무리에서부터 들려오는 고함소리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도 그 고함소리에 비명이 섞여있다면 더더욱 신경이 쓰일 수 밖에 없었다.

마침 드란도 꼼짝도 하지 않으니 루프스는 재빠르게 뒤로 돌려 고블린들에게 무슨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확인했다.

"...!"

그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광경은 그가 드란을 상대하면서 슬쩍 확인했을 때와 비교해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단 한가지, 고블린측이 밀리고 있다는 점을 제외한다면 그렇다.

명백하게 고블린들은 식귀들에 의해서 밀리고 있었다. 이전까지 잟 막아내고 처리해왔던 고블린들이었으니, 갑자기 대부분의 인원들이 지쳐서 막아내지 못한다는건 말이 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상대인 식귀들의 힘이 늘어났다는 것 뿐인데 이 단시간에, 그것도 전투중에 힘이 늘어났다는 것은 믿기 힘든 일이었다.

그러던 와중 루프스에게는 떠오르는 사실이 있었다.

다름아닌 지금같은 상황이 벌어진 것은 가까이 있는 드란이 지면에 발을 박아넣고 꼼짝하지 않는 기이한 행동을 벌인 직후 벌어진 일이라는 것이었다. 그 사실을 떠올린 루프스는 재빨리 드란을 향해 시선을 돌렸지만, 그 때는 이미 목적한 바를 이루었다는 듯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는 그의 모습이 있었다.

그렇게 드러나는 그의 모습은 온 다리를 촉수로 뒤바꾼듯, 마치 문어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그와 대치하면서 루프스는 파인피에게 고블린들에게 돌아가도록 지시했다. 드란을 상대하는것은 어떻게든 일대일이라면 놈을 죽이진 못하더라도 버티는 것 쯤은 충분히 가능했다. 하지만 식귀들을 상대하고 있는 고블린들 쪽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위태로워져 가고 있었다.

프리트가 그 틈에서 고군분투 하고 있지만, 그다지 변하는 사실은 없었으니 그로서는 파인피를 뒤로 돌려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지시를 들은 파인피는 잠깐 멈칫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망설이지 않고 뒤돌아서 움직였다.

그 모습을 확인한 루프스는 고개를 돌렸고, 곧장 자신을 향해 날아들어오는 촉수를 확인해야만 했다.

"흡!"

쉬익-!

빠르게 머리의 측면 허공을 치고나가는 촉수를 보면서 지면을 한바퀴 구른 루프스는 그대로 드란을 향해 달려들었다.

드란은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루프스를 향해 연달아 촉수를 휘둘렀고, 루프스는 그 공격을 피하면서 그에게 환상을 심어주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그리 효과를 보지 못했다. 확실히 환상은 심어진듯, 잘못된 장소를 공격하기도 했지만, 대다수의 공격이 본체인 루프스를 향해 집중되었다. 루프스는 회피하면서도 의아함을 감출 수 없었다.

바로 조금 전 까지 멀쩡히 잘 통했던 능력이 갑자기 먹통이 되었으니 의문이 드는게 당연했다. 그리고 그 때와 지금의 차이를 분석해나가고,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 원인으로 짐작되는 것을 발견 할 수 있었다.

마치 축 늘어진 해파리처럼 지면에서 꿈틀거릴 뿐 루프스를 향해 어떤 위협도 취하지 않는 드란의 촉수였다. 하나 하나가 충분히 그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무기임에도 그를 활용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특히나 힘을 숨긴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는 식귀들에게서는 더더욱 보기 힘든 일이었다.

특히나 본래의 이성을 거의 대부분을 잃어버리는 바람에, 다른 식귀들과 비슷한 행동을 보이는 드란에게서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 자리에 있는 것은 그것만의 특별한 이유가 있음이 분명했다. 그렇기에 당연히 루프스는 바닥에 늘어져 있는 촉수를 노리기 시작했다.

여전히 드란이 주저앉았던 자리에서부터 그를 향해 이어지는 촉수는 마치 뿌리처럼 보이는데다가 마치 뿌리처럼 살짝 꿈틀꿈틀 거릴 뿐 별다른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 만큼 루프스가 노리기 편한 부위이기도 했다.

루프스는 다시 한번 그와 자신의 주변으로 권역을 펼쳐내기 시작했다. 반면 드란은 더 이상 권역을 펼치는 방법을 모르는 듯, 그의 권역은 이 자리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다.

권역을 펼치는데 성공한 루프스는 그대로 분신을 만들듯이 도끼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도끼는 그의 주변을 날아다니면서 그의 지시를 기다렸고, 드란이 다시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모습을 확인한 루프스는 그 공격을 피하면서 도끼들을 그의 촉수를 향해 날려대기 시작했다.

키에에에에에=!

그리고 그 공격에 적중할때 마다 드란은 고통에 겨운 비명을 질러대면서 더욱 격렬하게 루프스를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에 맞춰서 루프스는 공격을 피하면서 드란을 직접 공격하는게 아닌 오로지 그의 촉수만을 노리기 시작했다. 이것만으로 무슨 변화가 생길거라는게 그의 짐작이었다.

그리고 그 성과는 그리 오래지 않아 드러났다.

파인피가 합류하면서 더이상 밀리지는 않았지만, 밀어붙이지도 못하고 있던 고블린들의 움직임이 점점 활발해지고 여유를 되찾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문제는 드란을 향해 집중해있는 루프스에게 그 사실을 알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루프스는 마치 이것만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듯이 오로지 그의 촉수만을 노리고 공격하고, 드란의 공격은 오로지 회피로만 대응했다.

그렇게 싸움을 이어가던 중, 루프스도 드란의 촉수가 줄어들면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직접 실감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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