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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뜨니 고블린-368화 (368/374)

368화

반격

지하통로에 도착한 루프스와 고블린들이 드란이 있는 장소에 도착했을 때는 노인이 드란의 바로 앞에 도달했을 때였다.

드란이 있는 방에 입장하면서 루프스가 본 광경은 드란의 손에 머리가 터져나가는 한 인간의 모습과, 팔을 내뻗던 관성에 의해서 머리가 터지는 동시에 드란의 복부를 그대로 꿰뚫어버리는 메이스의 모습이었다.

뭉툭한 메이스의 머리끝이 그대로 드란의 허약해진 그리고 한창 회복중인 복부를 관통해서 반대쪽으로 튀어나왔다.

커헉-

루프스는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도 드란이 고통에 헛바람을 토해내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 했다. 실제로 드란은 적의 머리를 날려버리기 위해서 일어나 어정쩡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는데, 복부를 다시 한번 꿰뚫린 그가 피를 토해내면서 바닥으로 무릎을 꿇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런 드란의 모습에 루프스는 드란의 복부에 상처를 넓혀놓은 노인과 같은 감상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이라면...!'

이미 한차례 쿠알론과 싸운 전적이 있는 루프스로서는 드란이 지니고 있는 힘을 단편적으로나마 눈치 챌 수 있었다. 트레이에게서 그와 쿠알론을 그렇게 만든 것이 다름아닌 드란이라는 사실을 들었다. 그리고 그런 둘을 부려먹던 드란의 수준이 그 둘보다 낮을리가 없다는게 그의 판단이었다.

무엇보다 셋 모두 그의 아들들이었고, 그의 능력에 영향을 받고 있었다. 지금이야 그와 그들 사이의 영향력의 끈이 완전히 끊어진듯 하지만 저들이 마지막으로 영향을 받았을 때라면 아마 최상급 몬스터로서의 힘을 지니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한단계의 등급을 올리기란 매우 어려우니 쿠알론과 동급 혹은 그보다 한단계 높은 수준으로 예상했다. 루프스의 예상은 그리 틀리지 않았다. 이전에 느꼈던 바도 있으며, 그가 옥좌랍시고 앉아있는 자리에서 내뿜는 기세가 쿠알론과 엇비슷하니 중상임을 감안한다면 분명 그보다 한단계 급이 더 높다는걸 유추할수 있었다.

'그런 놈이 어째서 저런 중상을 입었는지는 의문이다만...'

루프스로서는 그렇게 강한 놈이 어째서 저 정도로 큰 부상을 입었는지 의문이었다. 특히나 이 일대에는 그들보다 강한 이들도 거의 없었기 때문에 더더욱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지만 지금 생각해야할 것은 그가 입은 중상에 대해서가 아니었다. 확실히 또 다른 위협이 있다면 그것대로 신경써야하겠지만, 당장 닥쳐온 위협은 눈 앞에 있는 드란이었기에 그의 정신은 오로지 그를 향해 집중되어 있었다.

그렇게 루프스가 드란을 노려보면서 생각을 정리하는 사이 고블린들은 쐐기형으로 진형을 바꾸었다. 그들도 루프스가 바라보는 곳을 보았고, 그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보았다. 그러니 루프스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는 금세 알아차릴 수 있었다.

쐐기진형으로 바꾼 고블린들은 일제히 돌격하기 시작했다. 뒤에서 쫒아오는 식귀들도 정면에서 온몸을 들이밀고 있는 녀석들도 모두 무시하고 일점 돌파를 실시했다.

고블린들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그 중앙에 있던 루프스도 그들과 함께 움직였다. 그에게는 지금이야말로 절호의 기회이고, 앞서 보내준 인간들의 시기적절한 서포트()에 호응해야하는 시기라고 보았다.

///

드란은 눈 앞으로 다가오는 한 늙은 인간을 바라보면서 인상을 찌푸렸다. 지금의 그로서는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기껏해야 그만의 권역을 펼쳐 상대에게 강한 위압감을 심어주어 마치 직접적인 압력을 받는듯한 느낌을 들도록 만드는 정도 밖에 하지 못한다.

본래라면 그 위압감만으로 찌부러트릴 수 있는 상대였지만, 지금의 그에게는 요원한 일이었다. 그렇기에 달려오는 노인의 모습이 멀쩡하다는 사실을 드란은 잘 알고 있었다.

다시 한번 자신에게 이런 상처를 주고 간 쿠알론을 향해 이를 한번 갈고는 드란은 주먹을 굳게 쥐었다.

본래라면 그의 무기를 들어야 했겠지만, 지금 그의 주변에 그의 무기는 없었다. 그리고 눈 앞의 노인을 상대로는 그 무기도 필요없다고 그는 판단했다.

노인은 그와 점점 가까워졌고, 노인이 쥐고 있는 무기도 그를 겨누고 있었다.

어느새 그에게 근접한 노인은 그를 향해 손에 쥐고 있는 메이스를 겨누고는, 온 몸을 내던지면서 찔러들어왔다. 그런 노인의 모습에 드란은 코웃음을 치면서 그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휘둘러 쳐야하는 무기를 찌르는 모습에 멍청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드란은 노인의 머리를 향해 주먹이 휘둘러졌고, 결국 노인의 두개골은 깨부숴지면서 그는 완전히 그 목숨을 잃게 되었다.

그런 노인의 모습에 드란은 머리 꼭대기까지 뻗쳐왔던 열기가 살짝 가시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그것도 길지 못했다. 그는 한가지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머리는 부숴졌지만, 너무 강한 힘은 그를 뒤로 튕겨내지 못하고 자연스럽게 그 머리를 깨부숴버렸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 밑으로 힘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고, 온 몸을 내던진 노인의 머리 잃은 몸은 관성에 따라 메이스로 그를 찔러들어갔다.

드란의 손에 죽을 것이라고 이미 짐작했던 노인은 마지막의 마지막에 적어도 놈에게 한방은 먹이고 싶었다.그리고 그가 선택한 것이 드란의 상처부위를 향해 무기를 찔러넣는 것이었다.

결심한 노인은 온 몸을 던지면서 도박을 걸었고, 그 도박은 대성공이었다.

푸욱-

죽은 몸, 그것도 관성으로만 움직였을 뿐인 노인의 찌르기는 별다른 힘이 실려있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이미 망가진 복부에 노인의 메이스가 틀어박혔다. 그리고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끄르르르륵-

복부의 상처가 헤집어지면서 드란은 절로 입으로 피거품을 내뿜었다. 거의 살짝 닿았다고 말해도 좋은 일격이었고, 실제로 다른 부위를 맞았다면 그는 아무렇지도 않았을 것이다. 문제는 이 일격이 정확하게 부상 부위를 짓눌렀다는 점이었다.

드란의 복부의 상처는 다름아닌 쿠알론에 의해서 생겨난 상처였다. 기껏 저들이 처들어오기 조금 전에 내장의 상처 대부분을 치료하는데 성공하고, 이제 슬슬 속도를 올리고 있던 드란이었다. 그런데 그런 장소를 다시 한번 후벼파니 그에게 극심한 고통은 물론이고 기껏 치료했던 부위는 다시 상처를 입어야만 했다.

그야말로 일순간의 방심이었지만, 그 일순간의 방심은 그에게 큰 대가를 치르게 만들었다. 게다가 엎친데 덮친격으로 드란은 상처를 입은 충격에서 어느정도 벗어난 순간 자신을 향해 달려들고 있는 고블린들의 무리를 발견 할 수 있었다.

"크...크윽...!"

그야말로 뭐 하나 그의 생각대로 돌아가는 바 없는 상황에 이를 악물지 않을 수 없었다.

///

루프스는 고블린들과 함께 드란을 목표로 달렸다. 게다가 그 속도는 상당히 빨랐다. 무엇보다도 본래 그들과 싸우던 식귀들은 외부에서 스콘드와 고블린들이 막아서고 있었다. 그리고 이 자리에 있는 식귀들은 다름아닌 인간들을 상대하고 있던 놈들이었다.

드란이 특별히 강한 녀석들은 대부분 앞서서 고블린들을 상대하기 위해서 보낸 덕분에, 이 자리에 있는 식귀들은 고블린들에게 그 정도는 별다른 장애물이라고 부를 수 없는 놈들이었다. 게다가 가장 선두에서 달리는 파인피는 특출나게 강한 놈이더라도 일순간에 죽이진 못하더라도 치워버리는 것 정도는 가능했다.

그런 고블린들의 틈으로 들려든 루프스가 드란에게 접근하는 것은 그리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고블린들은 그를 드란과 마주하게 하고는, 그들 자신은 뒤쪽에서 달려드는 식귀들을 상대하기 위해서 돌아섰다. 그를 상대하는데는 그만으로 충분하다는 판단이었다.

그 판단을 실망시키지 않겠다는 듯이 루프스는 저벅 저벅 걸어가 드란과 직접 마주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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