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7화
반격
드란은 조금씩 계속해서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인간들을 바라보았다. 본래라면 그에게 있어서 손짓 몇번만에 해치울수 있는 놈들이었지만, 지금의 그에게는 힘든 일이었다. 그렇기에 부하들인 식귀들에게 맡겨두었었지만, 그의 생각보다도 멍청한 놈들은 그저 인간들에게 그냥 숫자로 꼴아박을 뿐이었다. 결국 놈들에게 피해를 주는데는 성공했지만 여기까지 도달하지 못하게 막는데는 실패했다.
그렇기에 드란은 짜증이 났다. 그가 멀쩡한 상태였다면 손짓 몇번으로 저들을 치울 수 있다. 그리고 그건 당장도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드란은 이곳으로 다가오는 루프스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자신이 심어놓은 병력을 뚫고 점점 접근해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드란에게 있어서 루프스는 지금으로서는 강적이라고 부를 수 있는 적이었다. 부상때문에 힘이 깎여나가지 않았다면 그의 우세가 분명하지만, 회복에 전념하고 있는 지금으로서는 그를 이기기는 커녕 잘못 마주쳤다가는 그가 꺾여버릴 것이다.
그 때문에 그를 막기 위해서 최대한 강한 놈들을 배치했었지만, 앞서 다가오는 인간놈들을 보니 그것도 실수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그 짧은 순간에도 인간들은 점점 그에게 접근하고 있었다. 그리고 루프스와의 싸움에 대비해서 회복에 전념하고 있어야했던 그도 이제 더 이상 그들을 무시할수 없었다.
그렇기에 그는 지금 이 순간 가장 효과적이라고 생각되는 방책을 내놓아야만 했다.
부릅-!
드란은 단번에 눈을 크게 뜨고는 다가오는 인간들을 노려보았다. 그저 노려보는 것 만으로는 그 어떤 피해를 주지 못해야하는게 정상이었지만, 일어난 사태는 전혀 정상적이지 못했다.
"커헉-!"
"끕"
선두에서 방패로 그를 압박하듯이 들이밀면서 들어오던 이들이 드란이 눈을 부릅뜨는 순간 절로 무릎이 꺾여버렸다.
그리고 마치 도미노가 쓰러지듯이 점점 많은 수의 인간들이 바닥으로 무릎을 꿇어야만했다. 드란은 힘을 사용했고, 그게 제대로 먹혀드는 모습이었다.
드란의 가까이까지 접근한 노인은 그를 바라보았다. 그와 마찬가지로 눈을 홉떴지만, 동시에 희망을 가졌다.
'예상대로 놈은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야. 저런 부상을 달고도 멀쩡하다면 무서운 일이겠지만, 그 정도로 괴물은 아닌 모양이군'
노인은 굽혀지려는 무릎으로 간신히 버티면서 생각했다.
'아까도 그렇지만 힘을 제대로 조절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 아군인 저 놈들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거겠지'
노인은 그들과 마찬가지로 바닥에 무릎 꿇고 움직이지 못하는 식귀들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보면 그들보다도 더욱 심한 상태로 보일정도로 놈들은 그야말로 바닥에 납작 엎드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에게서 시선을 돌린 그는 한껏 힘을 쓰고 있는 드란을 바라보았다.
'무엇보다도 놈에게서 뿜어지는 기세가 불안정하게 흔들리는게 그 증거다'
시시각각 변하는 압력을 버텨내며 이를 악문 노인은 그에게 가해지는 압력과 마찬가지로 들쭉날쭉한 드란의 기세를 느끼면서 확신했다.
'조금만! 조금만 더 버티면!'
노인은 희망을 가지고 놈을 바라보았다. 그의 생각대로 놈은 제대로 조절되지 않는 힘에 짜증이 났는지 머리를 벅벅 긁어대면서 으르렁 거렸다.
문제는 노인의 생각이 반만 맞았다는 점이었다.
드란은 쿠알론에게 입은 상처로 제대로 힘을 쏟지 못하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회복과 힘의 방출을 겸하니 그 제어능력이 불안정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압박을 주는 대상을 특정 할 수 없었고 본래보다도 힘이 크게 줄어있었다. 그렇기에 노인은 드란을 바라보면서 생각을 이어갈 수 있었으며, 조금씩이나마 움직이는 것이 가능했다.
그가 힘을 펼치고 있는것은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아직까지도 옥좌에 앉아있는 모습만 보아도 그가 직접 움직일 여력이 없음은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다.
키키키키키-
후들거리는 다리를 진정시키면서 조금씩 다른 병사들을 북돋아서 조금씩, 이전보다 월등하게 느려진 속도였지만 그래도 꾸준히 움직이던 노인의 귓가에 섬뜩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촤악-
끼기기키키키
그리고 그가 들었던 것이 환청이 아니라는 듯 소리가 가까워지듯이 커지더니 가장 앞에있던 방패병 중 하나의 목을 하나의 촉수가 꿰뚫어버렸다.
"뭣!"
압박감에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면서도 저도 모르게 헛바람이 튀어나올정도로 노인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병사의 목을 뚫고 나타난 촉수는 그에게 익숙한 형태였지만, 동시에 익숙치 못한 형태이기도 했다.
기분나쁜 꿈틀거림은 다른 식귀들이 내지르던 촉수와 비슷했지만, 그 재질은 마치 돌로되어 육탄전을 주로 하던 식귀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하나의 특징만으로도 귀찮은 녀석들이 한번에 합쳐져있으니 그가 놀라지 않을수가 없었다.
게다가 노인이 더욱 놀랄 수 밖에 없는것은 병사의 목을 꿰뚫은 식귀가 아무렇지도 않게 움직이고 있다는 점이었다. 완전히 멀쩡하지는 않은 듯 본래 거침없었을 발걸음에 움찔움찔 제동이 걸리는 모습도 보였지만, 거의 영향이 없다고 할 정도로 멀쩡히 움직였다.
인간측, 즉 노인과 병사들은 현재 한걸음 내딛는것 조차도 힘겨운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 전혀 아랑곳 하지 않는 놈의 등장은 그들에게 날벼락과도 같았다.
식귀는 계속해서 움직이면서 병사들의 급소를 꿰둟으면서 점점 접근해왔다. 우연히 방패로 촉수를 가로막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들을 여태 굳건히 지켜두전 방패도 단단한 갑주를 입고 있는 몸통도 촉수를 이겨내지 못하고 단번에 꿰뚫려버렸다.
그야말로 반항 할 수 없는 강대한 적의 등장은 그들에게 절망감을 심어주었다. 그리고 그것은 이곳까지 오는데 성공한 노인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지금 이 자리에서 모두가 전멸하고 말거라고 확신했다. 그리고 동시에 눈 앞의 적도 그리고 그 너머의 적을 향해서도 더 이상의 반항은 발악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모든것을 포기해야하는 상황이 다가오면서 노인은 허탈감을 느꼈고, 동시에 분노가 몸 속에서부터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는 나름대로 평안하게 살아왔었다. 국경지대에서의 삶은 빈번한 국지전의 연속이었지만 그 덕분에 그는 상당한 힘을 손에 넣고 지금까지 호의호식하면서 살아왔다.
그런데 그런 그만의 평화를 깨트린 것은 눈 앞의 고블린의 모습을 하고 있는 식귀 놈들이었다. 놈들에 의해서 그만의 평온을 깨고 이곳으로 와야했으며, 지금은 이 놈들에 의해서 그는 목숨을 잃어야하는 상황까지 오게 되었다.
그리고 저들의 손에 의해서 지금까지 동고동락했던 동료들은 물론이요. 자주 만나지는 않았지만 여러번 전장에 같이 섰던 전우들도 대부분을 잃어야만 했다.
그것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거기까지 생각하자 노인은 이제 바로 코 앞이라고 해도 좋을 위치에 있는 드란의 모습이 참으로 고까워졌다.
그의 불행의 근원이라는 생각이 끊임없이 들기 시작하자 지금까지의 침착하게 병사들을 지휘하던 그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이성을 잃기 시작했다.
"흐으으으으!"
노인은 입으로 괴성을 흘리면서 달리기 시작했다. 그의 주변에서 그의 전 동료 혹은 전우가 당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그저 앞으로 달렸다. 그저 바로 앞에 있는 식귀를 향해서 몸을 내던졌다. 그런 노인의 모습에 주변에 있던 다른 병사들도 그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의도라기보다는 발악에 가까웠지만 그의 목적을 눈치채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병사들은 그를 돕기 위해서 그들의 몸을 쑤셔버리는 촉수의 주인인 식귀를 향해 일부러 몸을 내던졌다. 식귀는 발목이 잡혔고, 노인은 당황해하는 놈을 지나쳐서 옥좌에 앉아있는 드란을 향해 빠르게 다가갔다.
마치 모두가 드란의 속박이 통하지 않는것처럼움직였고, 병사들이 식귀의 발걸음을 막는 사이 노인은 빠르게 달려서 금세 드란의 지척에 다다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