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6화
반격
고블린들은 식귀들을 뚫어내면서 영주성으로 진입했다. 그런 고블린들의 뒤를 외부에 남겨진 식귀들이 쫒아갔다.
루프스는 그들의 접근을 알고 있었지만, 달리면서 놈들을 상대하지 않았다. 저들을 상대해 보았자 시간만 끌릴 뿐이며, 무엇보다도 놈들을 처치하기에는 지금처럼 넓은 공간은 적합하지 못하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그건 루프스의 경우일 뿐이고 다른 고블린들은 놈들의 접근에 불안감을 지니고 있었다. 그렇기에 놈들을 막고 싶어했지만, 루프스의 제지로 그저 영주성을 향해 달리는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모두가 무사히 영주성에 입성했고, 그와 동시에 루프스는 고블린들에게 반전해서 접근하는 놈들과 싸울 것을 지시했다.
영주성의 문은 식귀들에게 그리 넓지 않았다. 고블린들이라면 족히 여섯에서 일곱은 한번에 들어 갈 수 있는 넓이였지만, 식귀들이라면 기껏해야 하나 혹은 둘만이 간신히 욱여넣을 수 있는 크기였다.
여기에 놈들의 시체가 멀쩡히 남아있을 수 있었다면 그것만으로 이 영주성은 고블린들을 지켜주는 요새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허나 그건 불가능한 일이니 그저 한낱 망상으로 남을 뿐이다. 하지만 영주성은 고블린들을 보호해주는 역할은 충분히 맡을 수 있다.
지금은 폐허나 다름없는 모습이지만 이곳도 분명히 한명의 성주가 머물던 장소다. 그런 곳이 허술하게 만들어졌을리가 없다.
식귀들이라면 연달은 충격을 주면서 무너트리는것도 가능한 일이지만, 그것도 놈들이 제대로 지능을 활용 할 수 있을 때의 이야기다.
멀쩡히 입구에 서 있는 고블린들의 모습은 놈들에게 그야맨로 유혹이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무엇보다도 이 안에 다수의 고블린들이 있는것을 알고 있으니 더더욱 안으로 들어가기를 원할 것이다.
그러나 놈들의 숫자는 상당하며, 그들 모두가 목표로 하는곳은 영주성의 입구 단 하나 뿐이다.
자연스레 놈들은 한곳으로 몰려왔고, 그곳을 방어하기 위해서는 소수의 고블린들이면 충분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놈들을 죽이는 것은 입구를 막구 지키는 고블린들이 아닌 그들 자신들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조짐은 벌써부터 드러나고 있었다.
콰직- 뿌드득- 퍼걱
그워어어어어어-!
끼에에에에에엑-
입구로 몰려드는 놈들은 커다란 덩치를 지니고 있는 덕분에 입구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그 밀도는 높아져갔고, 밀도가 높아질수록 놈들은 서로를 짓밟고, 온몸을 엉켜대면서 한걸음조차 제대로 내딛지 못하는 상태가 되어갔다.
그 모습을 보면서 루프스는 예상대로 되었다는듯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스콘드를 비롯한 몇의 고블린들을 이곳에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안으로 발걸음을 내딛었다.
걸음을 내딛으면서 루프스는 헛웃음을 지었다. 어쩐지 지금 상황이 쿠알론을 상대했던 때와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때와 명확히 다른 점은 있었다.
적들의 수장을 트레이로 알았던게 정작 드러나보니 쿠알론이었던 것과 달리 명확하게 식귀들의 수장은 드란이었다.
지금 걷고 있는 길의 끝에는 다름아닌 그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는 잠입에 의한 암습이라면 지금은 전면전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각자가 동원 할 수 있는 전력 대부분이 가용되고 있었다.
그 때는 별 도움이 되지 않던 부하들도 이번에는 큰 도움이 되어줄것이라고 루프스는 생각하고 있었더.
그렇게 소수의 방어조를 남겨둔 루프스는 지하로 통하는 통로 본격적으로 들어섰다.
///
노인을 비롯한 인간들의 무리는 어느새 목적지를 바로 코 앞에 두고 있었다.
그들은 여기까지 오는 동안 식귀들의 앞과 뒤를 가리지 않는 맹공을 겪으면서 많은 동료들을 잃어야만 했다.
무엇보다도 가장 앞에 나서서 적들의 공격을 막아주던 방패병들의 희생이 가장 컸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그들의 수가 처음의 절반의 절반도 안된다는 점이 그 사실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공백은 그들에게 큰 빈공간을 느끼게 해주었다. 무엇보다도 전방을 막아줄 그들의 부재는 심적 공간 뿐만이 아닌 물리적으로도 큰 틈을 만들어버렀다.
그들의 공백을 매꾸기 위해서 병사들은 임시로라도 무기를 바꿔야만 했다.
창병과 검병들은 모두가 방패를 들고 있었다. 직접 들고 적들의 공격을 막아서는 이가 있는가 하면, 일단 등에 매고 있다가 동료가 당하면 추가로 앞으로 나서는 이들이 있었다.
고군분투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처참하리만치 망가져가면서도 그들은 조금도 발걸음을 늦추지 않았다.
그렇기에 노인과 병사들이 어느새 드란이 있는 방에 다다르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후우...후우..."
방패로 앞을 막아서고 있는 이들이 숨을 헐떡이면서 정면을 바로보았다.
그들의 정면에 자리잡고 있는 것은 옥좌였다. 그리고 그 위에서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 것은 이 끔찍한 식귀들의 왕이었다.
스윽 하고 고개를 드는 그를 보면서 노인을 비롯한 인간들 누구하나 움직이지 못했다. 그가 자연스레 내뿜는 위압감에 젖어 몸이 제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이라는 점은 그것이 그들만이 아닌 식귀들에게도 공통이라는 점이었다.
공격을 하지도 못하지만 방어도 제대로 못하는 상태에서 식귀들을 맞이한다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었으니 그들과 마찬가지로 식귀들도 움직이지 못한다는게 그들을 살렸다.
지긋이 그들을 바라보던 드란의 모습은 이전과 크게 달라진점은 없었다. 단 하나, 그의 복부에 뚫려있던 구멍이 이전에 비해서 조금 매워져있다는것. 그것만이 이전 노인이 보았던 그와 지금의 그가 지닌 유일한 차이점이었다.
몸이 굳고 절로 고개가 숙여질듯 하면서도 끝끝내 노인은 드란을 관찰했다.
몸이 회복중이라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드란은 그런 노인의 모습을 보았다. 위압감에 압도된 와중에도 그를 향한 관찰을 거두지 않는 모습이 흥미를 살짝 끌었으나, 그것도 잠깐이었다.
드란은 곧 인간들을 향한 관심을 거두고는 다시 몸의 회복에 집중했다.
그의 관식이 거둬지는 것과 동시에 노인도 병사들도 그리고 식귀들도 움직임이 자유로워졌다.
그리고 전투는 시작되었다.
인간들은 최대한 드란을 향해 다가가려하고 있었고, 식귀들은 그런 인간들의 움직임을 저지하려는듯이 마구잡이로 달려들었다.
인간측의 전법은 그리 바뀌지 않았다. 방패로 적들의 돌진을 막고 멈춰선 적을 향해 공격을 퍼붓는다.
방식은 바뀌지 않았지만 이미 지금까지 충분히 잘 써먹고 있으며 지금도 충분히 효과를 볼 수 있는 방법이다.
실제로 그것만으로도 다가오는 식귀들을 밀어내면서 전진하고 있었다.
하지만 방패를 쥐고있는 이가 힘이 빠지면 식귀들에게 그대로 짓눌려버려 목숨을 잃는다. 그렇게 생겨난 공백은 새로운 이가 끼어들어서 매우게 된다.
희생은 계속해서 나오지만 그들은 계속해서 발걸음을 내딛었다. 노인은 그리고 이제 처음의 절반에 절반도 남지않은 인원만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남은 인원이 줄어들자 점점 희생되어가는 이들의 숫자도 늘어만 갔다.
그렇게 얼마나 희생되었는지 드란의 옥좌에 그들이 도달 했을 때 남은 인원은 기껏해야 스물 남짓 밖에 남지 않았다.
그것도 하나같이 지쳐서 더 이상 움직일 힘도 없어보이는 이들 뿐이었다.
그러나 옥좌에 앉아 있는 드란을 보면서 그들은 전의를 불태웠다.
지쳐 후들거리는 다리로 땅을 딛고, 저릿거리는 손아귀에 쥐가나도록 다시 강하게 무기를 쥐어서 드란을 향해 겨누었다.
스윽-
그러자 그들이 다가온 것을 느꼈는지 미동도 없이 회복에 전념하는듯 보이던 그가 짜증내는 표정을 지으면서 다가온 이들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