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0화
반격
인간들이 모두 영주성으로 진입하고 그 뒤를 따르듯 루프스의 군대도 곧장 제라임 성으로 접근했다. 마주쳤다가는 전투가 벌어질 확률이 높으니 일단 그들과 거리를 벌리기 위해서였다. 식귀들이 공통의 적이라고 이해하고 있는 것은 오로지 고블린들 뿐이었기에 더더욱 그러했다.
그러나 그런 루프스의 생각을 드란은 이미 알고 있었던 듯싶다. 그 증거는 지금 루프스의 눈앞을 메우고 있는 식귀들의 모습만으로도 충분했다.
"이 자식, 이런 놈들을 숨겨두고 있었구만"
루프스는 지면을 뚫고 나타나는 동물형 식귀들의 모습을 보면서 헛웃음을 지었다. 놈들이 멍하니 보고만 있을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이 정도로 대비를 해두었을 줄은 생각도 못했다.
분명히 말해서 동물형 식귀들은 하나같이 최상급 몬스터와 비등한 놈들이다. 분명히 루프스를 비롯한 간부진들과 비교한다면 보다 약하거나 비등한 수준이다. 그러나 문제는 놈들은 마치 일반 병사처럼, 그리고 앞서 인간들에게 덤벼들었던 식귀들 처럼 그 수가 무수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그런 수의 폭력을 막아줄만한 고블린들, 간부진과 루프스 그리고 고블린들을 통솔하는 각 조장들을 제외하고는 대다수가 상급에 머무르고 있었다.
즉 대다수가 지금 그들의 눈 앞에 나타난 식귀들보다 못하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루프스도 그와 함께있는 다른 고블린들도 누구 하나 두려움도 거리낌도 없었다. 그저 정면에 나타난 적들을 바라보면서 전의를 불태울 뿐이었다.
식귀들은 연달아서 바닥을 뚫고 등장했다. 이제껏 나타나지도 들키지도 않았던 것이 신기할 정도로 연달아서 지상으로 솟구쳤다.
고블린들은 그런 놈들을 피해 움직였다. 놈들의 등장만으로 피해를 입는다면 그것만큼 어처구니 없는 일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말대로 고블린들은 바닥에서 진동이 느껴지면 바로 옮기는 식으로 어떻게든 놈들로부터 피하는데 성공했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난잡하게 솟아오르는 놈들 때문에 그들도 저절로 뿔뿔이 흩어졌다는 점이었다.
"이...!"
푸확-! 푸욱
"성가신..."
푸확=! 푸욱
"놈들 같으..."
푸확-! 푸욱
"...니라고!"
파인피는 연달아서 노린듯이 솟아나는 식귀들의 모습에 이를 갈면서 바닥을 박차 자리를 피했다.
동시에 그냥 피하기에는 억울하다는 생각으로 바닥에서 솟구치는 놈들을 향해 불타오르는 창을 내질렀다. 그의 창은 정확히 놈들의 머리로 쏘아졌고, 그의 창에 머물고 있는 불꽃이 그런 식귀들의 머리를 단번에 불태워버렸다.
프리트는 아예 자신의 주변에서 나타나지도 못하게 그 자신을 늪지로 뒤바꾸어버렸다. 그리고 그가 있던 장소에 있던 식귀들은 그대로 솟구치지도 못하고 다시 지면에 잠식되어 그대로 프리트에게 먹혀버리고 말았다.
스콘드는 마찬가지로 지하에 머물고 있는 그의 시체들을 이용해서 아예 솟구치지도 못하게 만들어버렸다. 그가 어지간히도 땅 속을 이용해서 시체들을 옮기기를 반복하다보니 그의 시체들은 그야말로 땅을 파내는데는 두더지 못지 않았다. 그리고 그 덕분에 덮쳐들어오는 식귀들을 오히려 역으로 덮치는데 성공했고, 그가 다루는 시체 주변의 식귀들은 미처 올라오지도 못하고 그대로 지하에서 그들에 의해서 살점을 뜯어먹혀야만 했다.
루프스가 있는 장소는 그야말로 혼돈의 도가니라고 말 할 수 있었다. 바닥에서 솟구치는 놈들은 서로 뒤엉키면서 나타나거나 시간차로 오히려 서로가 서로를 덮치는 사태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었다. 식귀들이 서로가 서로에게 피해를 입히는 동안 반면에 루프스는 조금의 피해도 입지 않고 놈들을 그저 혼란에 빠트리고 있었다.
그 외에 고블린들 중에서도 유일에 올라선 루프스의 자식들, 그리고 최상급 몬스터에 달하는 그의 자식들은 놈들의 출현에 당황하기는 했지만 침착하게 피하면서 어느정도 익숙해졌을 때는 놈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 마저 가능했다.
하지만 그것도 루프스가 이끌고 있던 고블린들 중에서는 일부일 뿐이었다.
각자 움직이다보니 서로 거리가 벌어질 수 밖에 없었고, 홀로는 동물형 식귀에게 대항하기 어려운 대부분의 고블린들은 그저 놈들을 피해 달아다니기 바빴으니 서로 뿔뿔이 흩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그렇게 식귀들이 모두 바닥에서 치솟앗을 무렵에는 처음부터 가까이 있던 이들이 아니면 대부분이 서로 뿔뿔이 흩어진 상황이 만들어졌다.
동시에 식귀들은 더 이상 바닥에 동족이 없다는 사실을 파악하고는 곧장 고블린들을 향해 돌진했다.
식귀들이 돌진해올 때 루프스는 자신의 주변에서 온몸이 분해되어 사라지기 시작하는 식귀들을 한번 흘깃 확인하고는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식귀들을 향해 시선을 고정시켰다.
타-닷-
그리고는 가장 가까이에 위치한 식귀를 향해 달려들어 그는 자신의 도끼를 적을 향해 내리쳤다.
그의 돌진은 일종의 신호탄이 되어 서로 흩어져있는 와중에도 일시에 식귀들을 향해 돌격했다.
식귀들은 고블린들을 향해 달려들고, 그런 식귀들을 향해 고블린들은 미친듯이 마주 달렸다. 손아귀에 쥐고 있는 무기를 휘두르기 위해서, 그리고 그들의 앞길을 막는 놈들을 그대로 날려버리기 위해서.
고블린들은 달려드는 식귀들의 위로 올라타고는 연달아서 무기를 놈들의 몸에 찔러넣었다.
동물형이라고 하더라도 그 덩치가 일반적인 동물들과 비교했을 때 수배는 차이가 나기에 가능한 공격방식이었다.
루프스는 식귀들을 공격하면서, 자신과 마찬가지로 놈들을 향해 달려드는 그의 부하들을 보면서 생각했다.
'서두를 필요는 없다'
써걱
'설마하니 드란도 우리가 이 정도로 막힐거라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겠지'
콰드드득!
'우리는 놈들과 인간들이 서로 어떤 결과를 내는지 지켜보면 될 뿐이다. 두 세력이 맞붙으면 어디 하나 정상은 아닐테니까'
루프스는 식귀들을 연달아 베어내면서 생각했다. 그리고 놈들을 찍어내고 날리고 베어내면서 기다렸다. 루프스는 상황을 보건데 놈들이 자신들이 처들어오리라 짐작했으리라는건 분명했다.
게다가 드란은 부상 때문에 어디로 몸을 제대로 옮기지도 못할것은 분명했으니 자신의 거처로 끌어들인 인간들을 상대하고는 바로 자신들을 상대하리라는건 뻔하디 뻔한 일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드란은 한가지 계산을 잘못했다.
지금 그들을 막아서고 있는 식귀들은 고블린들에게 장애물이 되어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 만큼 전투를 치뤄야만 하며, 그것은 곧 그들의 성장으로 이어질 것이다.
그리고 그 사실을 떠올렸기 때문에 루프스는 비교적 느긋하게 이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투를 바라 볼 수 있었다. 그런 그의 눈에는 분투하는 고블린들 중에서 슬금슬금 다음단계로 나아 갈 수 있는 고블린들의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그런 고블린들을 보면서 루프스는 입가에 미소를 띄웠다.
'네놈이 무슨 생각을 하고있던지 간에'
푸화아악-
'이제 곧 그 목을 따주러 가마'
루프스는 입가에 음울한 미소를 지으면서 앞길을 가로막는 식귀들을 하나하나 찍어넘겨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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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은 간신히 영주성의 문을 통과하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식귀들의 방어를 뚫어내고 또 뚫어내면서 간신히 도달한 이곳은 방금전까지 있던 곳과 과연 같은 장소인지 의심이 갈 정도로 다르게 보였다.
그들의 뒤에는 그들을 뒤쫒아온 식귀들이. 그리고 정면에는 이곳에서 대기중이던 식귀들이 있었지만, 그들을 헤치우는데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전투를 벌이고 얼마의 시간이 지났는지도 제대로 모를 무렵. 그렇게 힘겹게 뚫어냈던 놈들이라고는 믿기지 않도록 허탈하게 모두가 바닥에 몸을 누이고 있었다.
하지만 노인은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자신의 속을 채우는 이 알 수 없는 허탈감의 존재를 무시했다.
그는 그저 그가 바라는 결말을 위해서 앞으로 전진했고, 지금도 그는 자신이 이곳까지 온 이유. 식귀들의 왕을 향해 앞으로 걸어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