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을 뜨니 고블린-355화 (355/374)

355화

재정비

노인은 조심스럽게 앞으로 발걸음을 내딛었다.

터벅

돌바닥을 두들기는 발소리가 좁은 통로 내부에 울려퍼졌다. 그 발걸음 소리는 고요한 공간에 울리기 때문인지 예상치 못한 큰 소리를 내고 있었지만, 여전히 전진하는 그들의 앞길을 막는 것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꿀꺽-

그러나 적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이곳은 식귀 놈들의 본거지였다. 당연히 발소리가 울려퍼지니 혹시나 나타나지 않을까 경계 할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얼마나 걸어갔을지 알 수 없지만 슬슬 튼튼한 몸을 가지고 있는 그들도 한껏 긴장한채로 걷다보니 슬슬 피로가 쌓이고 있을 무렵에야 일직선으로 이어진 통로와는 다른 장소를 찾을 수 있었다.

그곳은 텅 빈 공터였다. 아니 정확히는 집기들은 박살이 나있고, 그 내부 구조물들 대부분이 무너지면서 폭삭 내려앉으면서 공터처럼 변해버린 장소였다.

특히나 이곳에서 눈에 띄는 것은 유난히 화려한 외형을 지니고 있는 의자였다. 마치 장식이란 장식은 있는데로 가져다붙인 화려한 한편 조잡하게 보이는 의자였다.

"싸움이 벌어진 곳은 여기였나..."

노인은 주변을 둘러보고는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것인지 눈치챘다. 주변에 남겨진 파괴의 흔적들을 보건데 오히려 짐작하지 못하는게 말이 안될 정도로 지상의 흔적과 유사했다. 게다가 그들이 있는 장소와 반대쪽으로 건너가는 입구로 보이는 공혈 부근이 멀쩡한 것이 싸움의 시작은 이곳에서 벌어진 듯 보였다.

노인은 휑하니 뚫려있는 천장을 보더니 갑작스레 달리기 시작했다.

"흡!"

타앗- 콰득-

달리던 가속도를 이용해서 공중으로 점프한 노인은 구멍이 뚫린 곳에 손을 박아넣어 허공에 매달렸다. 그리고는 연달아 팔을 내밀어 천장과 이어진 바깥으로 나갔다가 다시 도로 뛰어내려 동료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뭐가 있었습니까?"

그를 향해 달려온 청년이 물었지만 노인은 고개를 저어주는 것 말고는 해줄 수 있는게 없었다.

"내가 알 수 있는건 별로 없더군. 그나마 알 수 있는거라고는 이 위가 우리가 들어온 방향의 반대편에 있다는 사실과 우리가 밖에서 보았던 전투의 흔적은 이곳에서 시작되거나 혹은 끝난게 분명하다는 것 뿐이다"

이곳에 펼쳐져 있는 흔적들은 그들로서도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로 격렬한 전투의 결과물이었다. 당연히 이런 전투를 벌인 놈들을 직접 만난다면 그리 좋은 결말을 맞이하지 못하리라는 것은 분명했다.

문제는 이런 흔적을 만든 존재들이 아직까지도 그 실마리도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었다.

한쪽은 이미 한차례 그들과 충돌한 전적이 있는 식귀로 추정되고 있었다. 그리고 반대쪽도 장소가 장소인만큼 식귀가 분명하다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들의 본거지인 이곳에 무슨 흔적이라도 있어야 함이 분명함에도 아무런 흔적도 찾을 수 없다는 것이 그들을 답답하게 만들어갔다. 그렇지만 노인은 포기하지 않았다. 아직 이곳의 모든 곳을 확인한 것도 아니며, 지금도 그들에게 미지인 장소가 바로 코 앞에 있었다.

공터를 훑어보고 끝내 아무런 소득도 얻지 못한 그들은 다시 앞으로 걸어나갔다.

그렇게 탐색을 재개한 그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들은 식은 땀을 흘리면서 조심스럽게 바깥으로 향해 도망치듯이 움직였다.

///

지하 통로를 통해서 침투하는데 성공한 루프스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공터와 그곳을 수색하는 모습의 인간들을 볼 수 있었다.

스윽-

이미 그들이 이곳에 있으리라는 사실은 밖에 남겨진 흔적을 통해 짐작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루프스가 그들을 발견하고 눈치채기 전에 기척없이 숨어드는 움직임은 자연스러웠다.

허공중에 스며들듯이 숨어든 루프스는 조심스럽게 그들을 주시했다. 그보다 앞서 도착했으니 그들이라면 뭐라도 발견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그 발단이었다. 그들의 대장으로 보이는 노인이 한차례 무너진 천장을 통해 외부로 나갔다가 돌아오더니 잠시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는 다시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루프스는 그들의 등을 쫒았다. 길은 단 하나밖에 없으며, 그들이 좋은 실험대가 되어줄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과연 그의 생각대로 다시 앞으로 나아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새로운 방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전 방이 공터라고 부를 정도로 엉망으로 망가져 있었다면, 지금 그들 눈 앞에 있는 방은 비교적 온전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하지만 방이라고 하더라도 이곳은 방이라고 부르기에는 어딘가 부적절한 장소였다. 정확히는 방이라기 보다는 일종의 교통의 중심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무수한 식귀들이 모습을 보이는 장소였다.

루프스보다 앞서 이곳에 도착한 인간들은 그 모습을 보면서 멍한 표정을 지었다.그 모습은 분명히 눈 앞의 광경에 놀라는 모습이기는 했지만, 무언가가 다르다는 것 쯤은 그도 금세 알 수 있었다.

'뭐지? 뭔가..."

예상 외의 상황이었고 루프스에게도 충분히 충격적이라고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는 광경이었다. 실제로 그도 식귀들이 우르르 돌아다니는 눈 앞의 광경을 보고는 정신을 추스리기까지 미약하지만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나 인간들은 오히려 그보다 빠르게 침착을 되찾더니 뒤로 조심스럽게 물러났다. 그런 인간들의 모습은 루프스에게도 자극을 주었는지 어느새 제정신을 차리고는 움직이는 인간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인간들의 모습을 유심히 살피던 그는 한가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망설임이라고?'

어딘가 불안한 눈빛을 내비치는 와중에 그 속에는 일말의 망설임이 끼어 있었다. 그것을 이상하게 여긴 그가 다시 식귀들이 끊임없이 움직이는 방 안을 들여다 보았다. 필시 저곳에 저들이 망설임을 느끼는 원인이 있을거라 판단했다.

그렇기에 루프스도 곧 발견 할 수 있었다. 복부를 관통하는 상처를 지니고, 왼쪽 눈을 크게 가로지르는 상처에서는 붉은 빛의 가루가 부스스 흩날리고 있는 한 고블린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는 분명 루프스도 잘 알고있는 이였다.

'드란!'

그 동안 그렇게 찾을 수 없던, 도대체 어디있는지 감도 잡히지 않던 그의 자식이 지금 바로 그의 눈 앞에 버젓이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격정에 잠길뻔한 루프스였지만 그의 몸에 나있는 상처를 보자 조금씩 머리가 차게 식어갔다.

'저 상처 때문이었군'

루프스는 어느정도 머리를 식히고 나서야 인간들이 어째서 망설이는 기색을 보였는지 이해했다. 저들도 분명히 바로 앞에 펼쳐져있는 광경을 보았고, 그 기세만으로도 심히 상대하기 어렵다고 판단되는 드란을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저들이 망설임을 보인 이유는 다름아닌 드란의 부상이었다.

저 정도로 심각한 부상을 입은 상태라면 혹시 상대하는게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졌던 것이다.

그러나 일단 그에게 닿는것 자체가 문제였기 때문에 잠자코 물러나기로 결정한 듯 싶었다. 거기까지 생각하자 루프스는 그들에게 조금이나마 남은 관심도 거두어들였다. 저들이 어떻게 행동하든 결국 드란을 죽이지는 못할테니 관심을 꺼버린 것이다.

그러는 한편 루프스는 고민에 빠져야만했다. 두 가지, 그에게 마음에 걸리는 사항이 있었기 때문이다.

'누가 드란에게 저런 상처를 준거지? 그리고 쿠알론은?'

드란에게서 풍기는 기척은 분명히 이전 마주쳤던 쿠알론과 비등했다. 다만 그는 어정쩡했던 쿠알론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보여주려는 듯 그의 발밑으로는 회색 빛깔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루프스도 이용 할 수 있는 힘이기 때문에 단번에 그 정체가 영역이라는 사실 쯤은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러는 한편 그는 쿠알론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이 장소에 있을거라는 짐작과는 다르게 그의 모습은 이곳에 없었던 것이다. 쿠알론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그는 머릿속으로 일순 스쳐지나가는 외부와 이전 공터에서 발견했던 흔적들이 떠올랐지만 이내 떨쳐냈다.

그리고 그가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루프스에게는 흥미로운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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