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3화
재정비
노인과 일행들은 조심스럽게 성의 입구로 침투했다.
조심스럽게 가까이 다가간 그들은 우선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기까지 오면서 상당한 수의 식귀들을 보았지만, 대략 하루 전 부터는 그 어떤 식귀들도 그들의 눈에 들어오지 않았으며 그 어떤 전투도 벌어지지 않았다.
달라진 점은 그 뿐만이 아니었다. 한겨울에도 상당히 울창한, 그들에게 지금이 초겨울이라는 사실도 떠올리기 어려울 정도로 울창한 숲을 지나왔었다. 그러나 식귀들을 제대로 마주치지 못했을 무렵부터 그들이 지나오는 땅은 황폐해졌다. 그야말로 그들이 생각하고 있던 식귀들의 땅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 한 모습의 땅으로 변해갔었다.
하지만 그들로서는 그게 그저 놈들의 발원지와 가까워지면서 생겨난 변화인지 아니면 그들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서 발생한 일인지 구분 할 수 있는 능력은 없었다.
그렇기에 식귀들의 본거지로 처들어간 것이며, 그들이 지금 조심스럽게 주변을 살피면서 성의 입구로 다가가는 이유였다.
"생각과는 다르구만"
식귀들이 지금까지 보인 모습을 떠올리면 성문을 지키는 모습은 아니더라도, 이 주변에 적어도 몇의 식귀쯤은 이 자리 근처를 돌아다니고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그런 그들의 생각은 기우였다는 듯이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노인과 일행들은 그저 덩그러니 놓여있는 성문을 바라보았다.
유지보수에 전혀 아무런 노력도 안한듯 낡고 허름한 문이었다. 게다가 확실히 무슨 일이 있긴 했던 듯 문자체에 금이 가 있었으며 몇몇 부분은 완전히 부서져버려 어딘지 휑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노인은 비교적 멀쩡한 성벽과 허름한 성문을 몇번 번갈아보더니 앞서 들어가는 이들을 따라 들어갔다. 뭔가가 이상하다는 생각은 들고 있었고, 무언가 있음이 틀림 없어보였지만 지금 그가 이곳에 온 이유는 그런 것을 해명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앞서 들어가는 이들을 따라 들어선 노인은 제라임 성 내부의 풍경을 보면서 할말을 잊어버렸다. 그리고 그것은 그보다 앞서 들어온 이들도, 혹은 그의 뒤를 따라서 들어온 이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훼...휑하군"
어디선가 마른 바람이라도 불어올 듯 한 황야가 그들의 눈 앞에 펼쳐져 있었다.
완전히 황야라고 부를수는 없었지만, 명백하게 이곳에 무언가 이상한 일이 있었음을 증명해주는 정도의 역할은 해주었다.
그렇게 노인을 비롯한 대다수의 인원들이 생각과는 전혀 다른 광경에 넋을 잃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기껏해야 건물들이 무너져 내리고 간신히 살아남은 건물들도 대부분이 반파되어 있었으니 그들이 놀라지 않는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놈들은 건물을 쓰지 않은 건가?"
몇번인가 자신들의 시설을 이용하는 모습도 확인했었다는 보고가 무색하기만 한 모습이었다.
그렇게 그들이 넋을 놓고 주변을 구경하기 바빴다면, 그들 중 도적 계열의 기술이나 직업을 지닌 이들은 앞으로 나서고 있었다.
"이거 전투흔이 상당한데요?"
얼마 지나지 않아서 주변을 둘러보면서 정보를 수집하던 이들이 간략하게 간추린 정보를 그에게 전달해주었다.
"이 일대는 물론이고 제법 떨어진곳 까지 확인했습니다만, 이곳에 살고 있는 놈들에 대한 흔적은 조금도 손에 넣지 못했습니다. 다만 가장 최근에 살았던 생명체에 대한 흔적은 여기저기 널려있는 전투흔들 뿐이었습니다"
잠시 심호흡한 그는 다시 노인을 향해서 입을 열었다.
"그리고 이 흔적들을 살펴본 결과 이 성 전체에서 상당히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던 듯 합니다"
"그런건 주변을 둘러보면 금세 알 수 있는 일이지, 다른건 없나?"
그의 대답에 노인은 퉁명스레 대꾸했다. 보고를 올리던 이는 무안해졌는지 뒷머리를 긁적거리면서 곤란해했다. 다만 그것도 반쯤 엄살 같은 것이었는지 이내 그는 자신이 알아낸 정보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이곳에서 전투가 벌어진지는 그리 오랜시간이 지나지 않았다고 한다. 당장 그들이 출발하기로 정한 날 부터 한달이 약간 안돼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이곳에서 벌어진 것은 다름아닌 일대일의 맞대결로 추측된다고 한다. 남아있는 흔적들이 크게 두개의 특징으로 나뉘는 점이 그 짐작에 신빙성을 주고 있었다.
그의 이야기에 노인은 다시 한번 주변을 스윽 둘러보았다. 확실히 남아있는 흔적은 크게 둘로 나눌 수 있었다. 누군가 땅을 갈아엎기라도 한 듯 거칠게 뒤집어진 흔적들과 무언가 굵고 날카로운 물체에 긁힌듯 깊게 파인 흔적의 두가지였다.
"그리고..."
그는 추가로 알아낸 사실을 이야기했다.
"이 땅을 뒤집어놓은 흔적들이 이전 마주쳤던 그 놈이 당시 남겼던 흔적들과 상당히 유사합니다"
"으음..."
노인은 그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들었다. 그들과 마주쳤던 식귀들 중 살아남은 녀석이라곤 단 하나밖에 없으니 누구를 지칭하는지는 금새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놈 이야기로군"
사실상 그들에게 가장 큰 피해를 줬던 식귀. 지금도 그 당시의 피해는 뼈저리게 느껴질 정도였다.
게다가 당시에는 더 큰 피해를 입을 가능성과 그를 쫒아서 제대로 싸울 수 있는 녀석들이 없다보니 그저 놓아주는 바람에 이후에도 여러모로 마음에 걸리기도 했었다.
간혹 놈으로 의심되는 식귀가 나타나는 경우가 있었지만, 결국 직접 마주친 일은 없었는데 이런 곳에서 흔적을 찾게 되었다.
"그런데 그놈이 왜 여기서 난동을 피운거지?"
명백한 식귀들의 영역. 게다가 인간 측에서는 이곳까지 공격해들어온 사례는 전혀 없었다. 그렇다면 놈과 또 다른 식귀가 싸웠다는 이야기인데, 서로 싸우는 경우를 본적이 없었던 만큼 노인은 의아함을 감출 수 없었다.
그렇기에 노인은 더더욱 앞으로 나아 갈 수 밖에 없었다.
"그걸 알려면 저곳으로 가봐야만 하겠구만"
노인은 한숨을 내쉬면서 제법 떨어져 있는 곳에 있는, 성 내부의 영주성을 바라보았다.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반파되어 있는 상태였지만 그 와중에도 마치 무언가가 있다는 듯이 불길한 느낌을 이곳저곳으로 흩뿌리고 있었다.
결심을 내린 노인은 무거운 한숨을 내쉬면서 영주성을 향해 바라보았다. 그러는 한편 함꼐 온 인원들 중 절반은 다시 놈들의 영역을 넘어서 왕국으로 돌아가라 지시했다.
만에하나 이곳에서 전멸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으니 조금이라도 이곳의 정보를 전달할 이들이 필요했다. 그러나 소수로 움직였다가는 식귀들에 의해서 목숨을 잃을 뿐이니 돌아가는 인원으로 절반이나 선발한 것이다.
그의 선택에 자기들도 함께 가겠다 반발하는 이들이 있었으나 노인의 설득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그렇게 내부적으로 잠시 정비를 마친 노인은 남은 이들을 이끌고 영주성을 향해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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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그 일행들이 제라임 성으로 침투하고 있을 때. 루프스는 제라임 성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드란을 상대하기 위한 준비는 대부분의 권한을 일임한 프리트에게 맡겨놓은 뒤였다. 요새를 뛰쳐나가던 그의 뒷편에서 한숨소리가 들리는 듯 했지만 그는 아랑곳 하지 않고 움직였다.
그가 향하는 곳은 제라임 성이었다. 일전에는 놈들의 본거지라고 생각되던 지하통로를 이용해서 움직였지만, 사실 진짜 의심해야만 하는 장소는 따로 있었다.
'녀석들이 점령하고 있었던 성. 거기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그걸 신경쓰지 않았었다니..."
그 때는 쿠알론의 부족을 의심하고는 있긴 했으나 지하통로의 인상이 워낙 강하다 보니 거기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했었다.
그리고 지금 다시 놈들과 맞서기에 앞서 드란이나 혹은 쿠알론의 정보를 얻기 위해서 움직인 것이다.
그런 그의 첫번째 목적지가 다름아닌 직전까지 그들의 본거지라고 부를 수 있는 제라임 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