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9화
재정비
쿠알론은 후퇴하고 공격대원들은 그를 쫒지 않았다. 이미 앞서 많은 피해를 입은 그들로서는 그를 추적하기 위해서는 제법 무리를 해야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쿠알론이 상당한 부상을 안고 있었던 만큼 그가 다시 처들어오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할것이라는 생각도 있었다.
쿠알론으로서도 굳이 그들을 공격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그 전에 후퇴를하는데 성공하기는 했지만 일단 그의 몸이 여전히 그의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상황이기도 했다.
게다가 정신이 깨어나면서 돌아오는 기억들은 그의 진짜 적은 눈 앞의 인간들 보다도 오히려 그동안 형제로서 생각해왔던 드란임을 시사하고 있었다.
지금 그의 몸을 차지하고 있는 이질적인 무언가를 다름아닌 드란이 우악스럽게 집어넣었던 것이기도 했다. 게다가 드란은 그에 그치지 않고 쿠알론을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도록 묶어놓고서는 그대로 고문을 가해왔었다. 의식을 되찾은 지금와서 당시를 떠올려보면 아무래도 그는 자신의 몸 속에 있는 무언가가 그의 몸을 차지하게 만들기 위한 의도였다고 생각된다.
거기까지 생각한 쿠알론은 몸을 제대로 움직일수만 있다면 이를 갈았을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 이도 제대로 움직일수 없는 상황이 더욱 그의 분통을 터트리기도 했다.
'젠장! 젠장! 어떻게 그놈이!'
그야말로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그리고 정신이 돌아오면 돌아올수록 더더욱 드란을 향한 분노가 치솟아올랐다.
그러나 분노만으로는 무엇도 할 수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의식을 잃었다고 해도 신체는 계속해서 활동해온 덕분인지 그동안의 기억은 그에게도 남아 있었다. 그리고 덕분에 드란이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그의 부족이 어떻게 변해버렸는지, 마지막으로 그의 동생인 트레이가 어떻게 되었는지마저 알 수 있었다.
'트레이...'
그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트레이의 마지막은 드란의 지시로 다름아닌 그들의 아버지, 루프스가 있는 부족으로 처들어가는 뒷모습이었다. 그 때도 제대로된 의식이 없었기 때문인지, 당시의 쿠알론은 그렇게 떠나가는 트레이의 등을 보면서도 아무런 생각도 떠올리지 못했다.
그나마 유일한 희망은 트레이는 계속해서 저항해왔고 그 덕분인지 그는 조금씩 의식이 남아있는듯한 행동을 했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그가 부족에게 도움을 청해서 살아남았을 가능성도 있다는게 그의 생각이었다.
트레이가 실제로 어떻게 되었는지는 지금의 그로서는 알 수 없었고, 가능성도 희박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지금의 그로서는 그런 희망이라도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렇게 그동안 벌어진 일들을 내심 정리하면서도 그의 몸은 여전히 계속해서 움직였다. 제법 큰 부상을 입었기 때문에 삐걱대는 기미가 없지는 않았으나 그래도 그의 몸은 쉬지 않고 움직여 계속해서 이동했다.
약간의 통제력을 되찾았던 그가 할 수 있던 것은 신체에 약간의 명령을 남기는 정도였고, 그가 남긴 명령도 그저 그 자리를 벗어나라는게 전부였다.
그리고 그의 몸은 후퇴라는 하나의 명령으로 그가 왔던, 드란이 지배하고있는 제라임성을 향해 움직였다.
///
쿠알론이 인간들의 예상외의 저력에 후퇴하고 있을 무렵. 루프스를 비롯한 고블린들은 요새의 방비를 단단히하고 있었다.
쿠알론이 나타났다는 보고에 자신들도 직접 나서야되는건 아닌가하는 생각을 떠올리기도 했고, 그와 관련해서 회의도 진행되었지만, 결국 나서기에는 시기상조라고 보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요새는 충분히 재건했다고 말하기에 충분한 상태였지만, 식귀와의 전투로 잃어버린 전력을 복구했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게다가 이전 아깝게 그의 목숨을 끊는데는 실패했지만, 여전히 그가 입었던 부상이 유효하다는 사실이 보고로 들어오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루프스들이 상대해야하는 적은 쿠알론만 있는것이 아니었다. 그를 저지하는것도 중요하지만, 모든 것의 원흉으로 짐작되는 드란을 상대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전력은 깎여나간 상태이며, 주적이라고 할 수 있는 드란은 그 소재지가 여전히 불명인 상태였다. 그렇다면 고블린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뿐이 남지 않는다.
"흡!"
군락지의 숲 한복판. 그곳에서 루프스는 도끼를 냅다 집어던졌다.
콰직
"쿠어어어어"
그의 도끼는 허공을 갈라 단번에 한 고블린의 목숨을 위협하고있던 오크의 두개골을 갈라버렸다.
"음... 너무 풀어놓았던건가..."
루프스는 눈 앞에서 벌어지는 고블린들과 오크들의 전투를 보면서 탄식했다. 식귀들을 상대하기 위해서 그리고 앞선 전투에서 잃었던 전력을 복구하기 위해서 그는 지금 고블린들을 이끌고 사냥에 나선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의 눈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광경은 영 그의 마음에 들지 못하는 광경이었다.
상대는 떠돌이 오크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부족이었다. 루프스의 부족에 비한다면 현격히 떨어지는 전력이며, 이전 강대했던 오크 부족을 떠올려도 상당히 허약한 수준의 오크들이었다.
기껏해야 상급 수준의 오크가 두세마리 정도에 나머지는 하급과 중급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 오크 부족을 상대로 루프스는 현재 이끌고 온 고블린들과 함께 가벼운 몸풀기의 개념으로 대립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부하들, 고블린들의 전력은 그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기껏해야 오크들을 상대로 백중세를 유지하고 있으며, 오크들의 숫자는 대략 이백 그리고 고블린들의 숫자는 삼백에 달한다는 숫적 우위도 있었지만 족장으로 보이는 상급 수준의 오크와 그의 두 심복으로 보이는 두 오크가 가세하면서 전력적으로 우위를 점하지 못하고 있었다.
루프스는 백중세를 유지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일부러 목숨이 경각에 달하지 않는 이상은 도와주지 않고 있었다. 그나마도 시기가 늦어 목숨을 잃는 고블린들도 몇이 있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부하들이 몇이 희생되건 루프스는 조금도 꿈쩍하지 않았다. 어차피 눈 앞의 오크들도 이겨내지 못해서는 드란의 식귀들을 상대하기도 어렵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루프스의 태도는 그의 존재에 어느정도 안심하고 있던 고블린들의 안일한 마음가짐을 단번에 깨부숴버렸다. 최초 최선을 다하는 한편 어딘지 방심하고 있던 고블린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태도가 수정되었다.
결국 수에서 밀린 오크들은 차근차근 처리되었으며, 이후에도 몇몇의 희생이 있었지만 물량과 독으로 밀어붙여 끝끝내 오크 족장을 비롯한 세명의 상급 오크들의 목숨을 앗아 갈 수 있었다.
그렇게 상황이 일단락되는듯 하자 루프스는 지쳐 쓰러진 고블린들에게 잠깐의 휴식을 허락했다. 그리고 그들이 쉬는 동안은 확실하게 그들을 보호해주었다. 루프스로서도 그들을 계속해서 잃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니 그 정도 수고는 충분히 들일 수 있었다.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지친 몸을 추스르고, 다친 몸을 회복한 고블린들은 루프스의 선도하에 다시 움직였다.
새로운 적을 찾아나선 그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이번에는 홀로 주변을 돌아다니고있는 리저드맨을 발견 할 수 있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부하 고블린들만으로 상대하기에는 버거워보이는 적이었다.
그 때문에 루프스가 고블린들에게 눈 앞의 리저드맨과 싸우게 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러나 루프스는 그의 부하들이 보다 강한 적과 싸우는 경험을 쌓길 원했으며, 고블린들이 숫적 우위를 잡아낸다면 충분히 이길 수 있으리라 판단했다.
그렇게 고블린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리저드맨을 향해 달려들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