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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뜨니 고블린-345화 (345/374)

345화

재정비

쿠알론은 루프스와의 전투로 상당한 부상을 입었다. 비록 그의 손에서 후퇴하는데 성공하기는 했지만, 동시에 본래 루프스보다 한층 강하다고 해도 좋을 그가 후퇴를 선택해야 할 만큼 부상을 입었다는 의미기도 했다.

그런 그가 제대로 전투에 참여하는건지, 아니면 그저 식귀들을 지휘하기만 하는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상당한 부상을 입었던 그가 본격적으로 움직인다는 것은 비록 완치하지는 않더라도 전선으로 직접 나서는게 가능할 정도로 회복되었다는 뜻이니, 루프스는 그저 가만히 앉아있을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루프스는 그의 부하들과 함께 식귀들을 상대할 대책을 세우고자 회의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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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귀들이 인간들의 영역을 침공했다는 이야기가 루프스를 비롯한 고블린들에게 전달되었을 무렵. 여기저기를 들쑤시고 다니던 공격대는 마침내 두개의 지휘개체가 있는 무리를 잡아내고, 운이 좋은건지 나쁜건지 가장 강대한 식귀가 이끌고 있는 무리를 발견 할 수 있었다.

힐끔

"다르군"

멀찍이 떨어진, 식귀들 쪽에서는 보기도 힘들 정도로 고지대에 있는 바위 근방에서 은신하고 있는 공격대의 지휘를 맡고 있는 노인은 조용히 움직이는 식귀들을 보면서 신중히 입을 열었다.

그의 동료들 대부분은 그의 말에 공감하는 모습을 보였다. 짧지만 나름대로 꽉 찬 식귀들과의 전투경험은 지금까지 마주쳤던 놈들과 눈 앞에 있는 놈들과의 차이를 알려주었다. 다만 여전히 소수는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는 눈치를 슬쩍 보여주었다.

"쯧쯧, 놈들의 모습을 보고도 모르겠느냐? 잘 봐라. 지금까지 마주쳤던 놈들 중에서 저렇게 통제되는 움직임을 보였던 놈들이 있더냐?"

"아!"

그렇게 끝내 홀로 알아차리지 못했던 이들은 노인의 타박을 듣고서야 다른 식귀들과 눈 앞의 식귀들의 차이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공격대가 마주쳐온 식귀는 지금까지 크게보면 두가지 부류로 나뉜다고 할 수 있다. 지휘개체가 섞여있거나, 지시가 가능한 장소에 있어 비교적 통제되는 느낌을 주는 놈들. 혹은 아예 고삐가 풀려버린듯 마구잡이로 움직여대는 놈들이다.

하지만 통제가 된다고 하더라도 잘 훈련된 정병과 같은 느낌은 아니다. 기껏해야 어린아이들에게 지시를 내리는 것 같은 질서 속에 혼잡함이 섞여있는 느낌이 전부였다. 다만 놈들이 개체 하나하나가 지닌 힘 자체가 워낙 크다보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했을 뿐이다.

그러나 눈 앞에 있는 놈들은 그정도가 아니다. 지시를 내리면 그대로 따를 뿐인게 아닌 마치 훈련된 병사들처럼 각각의 역할을 맡고 있는 모습이었다.

일부는 주변을 경계하며, 또 일부는 마치 정찰을 다녀오듯 앞서나갔다 되돌아오기를 반복했다. 거기에 다른 장소에 있는 식귀들과도 연락을 하는듯 지금까지 보이지 않던 놈들이 갑자기 나타나 저들의 대장으로 보이는 놈과 마주하고는 다시 달려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정말 다른 놈들과 연락을 하고 있는 거라면... 거 참, 몬스터나 다름없는 놈들이 가지가지 하는구만"

달려오는 전령으로 짐작되는 식귀들을 보면서 청년은 어이없다는듯 이야기했다.

"확실히 저 놈들이 연락책이라면 지금까지 만났던 놈들하고는 차원이 다르다고 해도 무리가 없는 놈들이겠군"

장년인도 청년의 말에 공감하는듯 움직이는 식귀들을 보면서 혀를 찼다. 마음처럼 안되는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불만에 가득차있는 소리가 그의 주변으로 울렸다.

"일단 지켜보도록 하지. 그리고 몇몇은 만일에 대비해서라도 지금 떠나고 있는 놈들에 대한 감시도 진행하도록"

노인은 앞서 나타났던 놈들을 쫒기 위해서 그리고 앞으로 나타날 놈들도 쫒기 위해서 먼저 움직일 이들을 선별했다. 전자는 지금 당장 출발할 생각이며, 후자의 경우는 그 때 그 때 정해진대로 움직이도록 지시를 내려두었다.

그렇게 놈들을 쫓으면서 각자의 역할 분담을 나눠낸 그들은 일부는 앞서 떠났던 전령들을 쫒기 위해서 그리고 나머지는 계속해서 움직이는 적들을 쫒기 위해서 움직였다.

그리고 그 이외의 일부도 특정한 목적을 지니고 움직이기도 했다.

그렇게 공격대의 식귀 무리를 향한 관찰은 계속되었다.

관찰은 생각이상으로 오랫동안 이어졌다. 가장 큰 이유로는 노인의 감이었다. 지금 눈 앞에 있는 놈들이 보는것만으로도 만만치 않은 놈들이라고 알고있지만, 그의 감은 그보다 더욱 강렬한 경고를 보내오고 있었다.

그리고 노인이 그들을 공격하지 않고 있는데는 그 감 뿐만이 아니었다.

'저 놈'

눈을 게슴츠레 뜬 그는 식귀 무리의 중앙을 차지하고 있는 한 식귀를 바라보았다. 놈은 지금까지 만난 고블린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 놈들 중에서는 가장 거대한 놈이었다. 몸이 고블린치고는 우락부락한 것이 단순히 놈이 지니고 있는 능력이 몸을 불려준것일지도 모르지만, 단순히 강력한 놈이기에 그런것 뿐일 가능성이 있었다.

그리고 놈의 덩치를 지금까지 겪어왔던 몬스터들의 특징들과 취합한다면 놈은 지금까지 마주쳐온 어떤 몬스터들보다 강력할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이러고 있을 수는 없는데...'

노인은 차분히 걷고있는 식귀들을 보면서 생각했다.

이대로 놈들의 모습을 지켜보고만 있을수는 없었다. 당장 놈들이 멀쩡한 마을 여럿을 습격하는 모습을 지켜보았었다. 보기 괴로운 일이었지만 놈들을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없었기 때문에 그는 놈들을 향해 분노할뿐 직접 행동으로 나서지 않았다.

게다가 놈들을 그저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동료들은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놈들을 공격하자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언제까지 지켜보기만 하실겁니까!"

"놈들에 의해서 희생된 마을만 벌써 3곳입니다. 게다가 우리가 이렇게 미적거리는 사이에 피해를 본 마을이 벌써 몇이나 될런지..."

어딘지 우울한 표정의 동료가 노인에게 호소하기까지했다. 그러나 노인은 요지부동이었다.

"기다려라"

그는 그저 동료들에게 기다리기를 강요할 뿐이었다.

"대체 언제까지!"

그리고 그의 지시는 다른 동료들을 분개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움직이기를 얼마간 노인의 지시를 받아 떠났던 이들이 조금씩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가 기다리던 이가 돌아왔을 때가 되어서야 노인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원래라면 좀 더 기다려야한다만은..."

동료들을 모아놓고 입을 연 노인은 주변을 스윽 둘러보고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너희들 상태를 보니 앞으로 몇일씩이나 더 기다렸다간 뭔가 사달이라도 날것 같군"

아닌게 아니라 그의 동료들은 하나같이 눈에 핏발이 서서는 흉흉한 기세를 내뿜고 있었다. 게다가 사실 언뜻 침착해보이는 노인마저도 그들과 같은 모습으로 같은 기세를 내뿜고 있었다.

사실 그도 당장 놈들에게 덤벼들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있었던거다.

그 사실을 이전부터 알고 있었기에 그의 동료들도 불만이 쌓이는 중에도 어떻게든 그의 지시대로 참은 것이기도 했다.

"준비해라. 당장은 참아라. 놈들과 맞붙는것은 내일이다. 일단은 놈들을 치기 위해서는 만전도 부족하니 모두 평소 이상의 기량을 끌어낼 수 있도록 충분한 휴식을 취해둬라. 잠이 오지 않더라도 잠을 자고 밥이 안넘어가도 꾸역꾸역 집어 넣어라"

노인은 자신을 보고 있는 동료들에게 그렇게 지시했다. 모두 당장 놈들과 싸우고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으나 누구하나 상대를 만만히 보는 이들은 없었다.

이미 여러차례 놈들이 싸우는 모습을 확인했으며 그들도 눈이 있고 적들의 실력을 알아볼 안목도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전투가 승산이 그리 높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다만 놈들의 행실을 지켜보기 괴로운 마음에 그들의 리더인 노인에게 화풀이를 했던 것이다. 그러나 막상 싸울때가 되자 모두 노인의 말에 공감했고 또한 노인이라면 대책을 마련했으리라 믿었다. 그렇기에 모두 신체능력을 최대로 끌어 올리기 위한 휴식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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