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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뜨니 고블린-340화 (340/374)

340화

재정비

루프스는 훈련에 집중하고, 그의 휘하 고블린들은 요새를 재건하는데 집중하고 있던 그 시간.

지하통로에 진입했던 인간들은 쉬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온다!"

얼마나 지하에서 생활해왔는지 제대로 씻지도 못해 꼬질꼬질한 검댕이라도 얼굴에 덕지덕지 바른것 마냥 시커먼 사람들이 주변을 경계했다. 무엇하나 제대로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이었다. 빛 한점 보이지 않아도 주변을 인식 할 수 있는 식귀들에게 조명은 필요 없기 때문인지 이 지하통로에는 조그만 조명하나 없었다.

그렇기에 인간들이 의존 할 수 있는 빛은 공격대에 포함된 단 둘뿐인 마법사들이 교대로 만들어내는 빛의 구체 뿐이었다.

다만 빛의 구체라 하여도 주변을 환히 밝혀줄 정도로 빛을 발하는 것은 아니기에 그들의 활동 반경은 좁은 편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어느새 오랜시간 이어온 지하생활은 그들에게 시각이 아닌 다른 감각의 발전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그 덕분이었다. 이 고요한 곳에서 새로운 위협이 그들을 덮쳐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던 이유는 말이다.

쿠과과과-

주변을 경계하고 있던 그들의 측면으로 부터 그들이 예상한 대로 적이 튀어나왔다.

쿠워어어어어-!

좁은 지하통로 전체를 울려버리는 강대한 포효가 울려퍼졌다. 그리고 그 포효의 주인은 그들의 앞을 빠르게 스쳐지나갔다.

얼마나 빠른지 제대로 인식하기도 전에 반대편으로 곧바로 새로운 굴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여전히 놈의 공격은 끝나지 않았음을 그간의 경험으로 알고 있는 그들은 조금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쿠구구구-

그 생각대로 놈은 여전히 그들을 노리는 듯 이번에는 지면에서부터 진동이 울려오기 시작했다.

"피해!"

정확히 발 밑에서 울려오는 진동은 놈이 어디로부터 오고 있는지를 여실히 알려주고 있었다.

쿠과과과과과-

황급히 자리를 피하자 그들이 서 있던 자리에서부터 위로 솟구치면서 놈이 다시 나타났다. 순식간에 지나쳤지만, 그만큼 일순간 머뭇거리기라도 했으면 누구 하나는 희생되었을 것이 분명한 빠르기였다.

놈이 위로 솟구친 때에 맞춰서 은연중에 대장의 역할을 맡고 있던 노인이 고함쳤다.

"뛰어라!"

그리고 이미 여러번 놈을 마주쳤던 덕분인지 그 고함소리가 터지기 전부터 놈이 지나가자마자 뛰기 시작했다.

그들의 위에 놈이 자리잡고 있는 순간에는 그나마 감지하는 능력이 비교적 떨어지기 때문에 그제서야 뛰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얼마나 뛰었을까. 뒤편에서 여러번 쿵 쿵 소리가 울리고는 잠잠해질 무렵이 되어서야 그들도 달리기를 멈출 수 있었다.

"허억...후우...허억...후우..."

얼마나 최선을 다해서 뛰었던 건지 단순한 달리기만으로 하나같이 기진맥진해서는 바닥에 주저 앉았다.

"흐으... 여기서 더 건질게 있겠습니까?"

슬슬 나타나는 적마다 상대하기 어려워지니, 장년인이 노인에게 물었다.

"으음... 돌아가야하는건가..."

그도 점점 감당하기가 어려워지자 귀환을 염두에 두어야했다. 그렇지만 귀환을 하기에는 그들의 수확이 아직까지도 변변치 못한 상태였다.

기껏해야 놈들의 번식지를 몇개 파괴한 것이 지금까지 수확의 전부일 뿐이었다.

"하다못해 지상이었다면 이렇게 고민도 고생도 하지 않았을 텐데"

적들이 점점 강해지고 있다는 점은 분명히 그들이 후퇴를 고민하는 이유중 하나이다. 문제는 적들이 점점 강해진다기 보다는 지형을 이용하기 용이한 적들이 나타나 상대하기가 어려워진것이라는 점이다.

지하 통로라는 협소한 공간에 마법사들의 빛에 의지해야만 하는 어두운 공간은 시간이 지난다고 적응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반면 상대측은 지하에서 생활하던 동물의 몸을 차지하거나, 어둠속에 익숙한 고블린의 몸을 차지하고 있었다.

게다가 이 곳은 놈들의 본거지라고 할 수 있는 장소였다. 자연스레 인간들은 제대로된 휴식을 취할 수 없었고, 만전의 힘을 내기가 불가능에 가까운 장소였다.

"...조금만 더 고생해보도록 하지"

이대로 놈들의 본거지도 찾지 못하고 돌아갔다가는 면목도 서지 못한다고 생각한 것인지 노인은 조금 더 탐색을 이어갈것이라 이야기했다. 다른 이들도 그 생각에는 동의했는지 그의 의견에 별다른 토를 달지는 않았다.

주변을 경계하면서 그들은 앞으로 나아갔다. 간혹 마주치는 식귀들의 종류는 다양했지만, 이리저리 땅굴을 파면서 기습을 가해오는 지렁이형 식귀만 아니라면 하나씩 해치우면서 전진했다.

그렇게 나아가길 얼마나 지났을까, 점점 지쳐만가고 얻어내는 것은 없으니 모두 이곳에 온 것에 회의감을 느끼고 있었다. 특히나 그렇게 번식지를 지웠음에도 불구하고 그 수가 그리 줄어들지를 않은 듯 하니 더더욱 의욕은 떨어져만 가고 있었다.

의욕이 뚝뚝 떨어지다 못해 정말로 모두가 후퇴를 머릿속에 떠올리고 있을 무렵이 되어서야 그들은 무언가를 발견 할 수 있었다.

"...!"

왜인지 이제까지와는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자주 마주치는 식귀들 때문에 조심스레 나아가던 공격대는 어느순간부터 나타나지 않는 식귀들 때문에 의아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동시에 지금까지와는 어딘가 다른 패턴은 그들의 걸음을 더욱 조심스럽게 만들었다. 그렇게 자주 나타나던 놈들이 나타나지 않으니 문득 이 곳에 무언가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의 생각은 틀리지 않았음이 곧 증명되었다.

최초의 발견은 지금까지 발견했던 번식지와 그리 다를게 없었다. 다른 공간에 비해서 넓은 공동이 있었고, 당연히 공격대도 평소와 같은 번식지라는 생각에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그렇지만 그 안에 있는 것은 그들이 전혀 생각지도 못 한 것이었다.

케헥-

그르르륵

나직한 울음소리를 내면서 식귀들이 무수히 돌아다니고 있었다. 특히나 어지러이 돌아다니는 와중에도 선명히 그 규칙성이 보인다는 것에 공격대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유심히 살펴보고 나서야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여기는.. 대체..."

그리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눈치챈 노인은 놀라면서 입을 다물지도 못했다.

그야말로 식귀들의 영역에서 활동하는 모든 식귀들이 거쳐가고 있는 모습이었다. 한 공혈에서는 갓 성장을 마친듯 어리다고 말해도 충분한 식귀들이 끊임없이 나타나서는 어디론가 다른 공혈로 들어서고 있었다.

그리고 한편 다른 장소에서는 여러번의 전투를 경험한 듯 재생에 재생을 거듭한 몸에 여러 흉터가 남아있는 식귀들도 한 공혈에서 나와 또 다른 공혈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것도 하나의 공혈에서 단 하나의 식귀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었다. 계속해서 튀어나오며 각자가 목적지가 어디인지 안다는 듯이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각자가 다른 공혈로 들어갔다.

마치 만들어진 물품들을 모았다가 필요한 장소 각지에 배치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무엇보다도 그 수에서 공격대는 압도되었다. 이 한 장소에 모여있는 놈들 만으로도 족히 그동안 상대했던 식귀들 모두를 합친 것 보다도 많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 광경을 확인한 공격대는 놈들을 공격하겠다는 생각을 접을 수 밖에 없었다. 이미 상당히 지친 상태에 그동안의 연전으로 희생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그런 상황에서 그들보다 많은 수의 식귀들을 상대하고도 살아남을 자신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공격대는 그 이름이 무색하게도 조금의 공격도 시도해보지 못하고 조심스럽게 후퇴를 결정했다.

그들은 조심스럽게 뒤로 물러났고, 다행히 어느정도 거리가 떨어질 때 까지 식귀들은 그들의 존재를 모르는 듯 했다. 그에 슬쩍 안도한 그들은, 만들어진 지도를 이용해서 다시 왔던 길로 거슬러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그들의 생각과는 다르게 그들의 존재가 들키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그 사실을 증명하듯이 그들은 눈치채지 못했지만, 그들의 뒤편으로 서늘한 안광이 몰래 뒤따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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